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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오극전갈
당가는 강호에서 독(毒)과 암기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집단이다. 독을 사용함에 있어서는 그 근본된 독물을 채집하는 것이 필수다. 독 연막탁을 만든다든지 독 가루를 만든다든지 여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에 따른 재료들을 수집하는 것은 기술만큼이나 중요시되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당가에서는 매년 가을이면 오대절지로 정해놓은 지역을 순회하며 독을 채집했다. 이때는 치명적인 독물을 주로 취급하기에 당가의 가주와 오대장로들이 직접 독물을 채집하러 다녔다.
당가의 오대절지란 운남과 청해성의 고천암 부근, 그리고 섬서성의 호묘산, 하북성의 파혁산. 마지막이 표영과 엽지혼의 동굴이 있는 이곳 고호산을 칭하는 말이었다. 올해는 마침 고호산에서 채집을 하는 시기라 당문의 문주와 오대장로들은 고호산을 뒤지고 있었다.
그중 삼 장로 당운각은 오늘 마음이 조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오늘도 아무 소득이 없으면 정말 면목이 없게 되는데……. 어제도 나만 아무 소득 없이 돌아가지 않았던가.’
독을 채집하는 데 있어서는 무엇보다 감각이 중요했다. 오감(五感)이 발달하지 않고서는 바로 근처에 독물이 있다고 해도 그저 지나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독물을 찾아내지 못했음은 자신의 감각은 형편없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당운각은 오늘도 망신을 당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사방을 주시했다. 그가 한참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을 때 그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젊은 거지가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어라, 이 험한 산중에 웬 거지람. 요즘 거지는 산에서 구걸을 하나? 그럼 누구한테 구걸을 하지? 하하.’
자기가 생각해 놓고도 우스운지 당운각은 혼자 실실거렸다. 그러다 당운각은 언뜻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눈빛을 빛냈다.
‘저 거지에게 한번 물어봐야겠군. 이곳에 오래 거주했다면 혹시나 독물을 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어본다고 손해볼 일은 없으니 물어보기나 하자.’
당운각은 그렇게 생각을 한 후 신형을 날려 젊은 거지에게로 향했다. 약간의 거리가 있었으나 당운각에게 그건 지척에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당문의 오대장로 중의 한 명이라는 이름은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어이, 젊은 친구.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건가?”
당운각이 보고 있는 젊은 거지는 표영이었다. 음공인 천음조화를 익히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중이었다. 정신을 빼고 멍해 보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표영은 천음조화를 익히기 위해 땅의 소리와 하늘의 소리, 그리고 작은 풀들의 움직임, 아침에 깨어나는 대자연의 호흡 등을 듣고 있었다.
오늘로 천음조차를 연마한 지 7일째다. 비록 표영이 멍하니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고 있다고 해도 접근하는 사람의 소리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 노인은 신법을 보아하니 대단한 고수로구나. 이곳은 외진 곳이라 사람들이 어지간해서는 왕래가 없는데 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일까?’
“저는 그냥 놀고 있답니다.”
“어허허, 놀고 있었다고?”
‘이 녀석 바보 아니야. 괜히 시간만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그는 생각과는 달리 어느새 표영의 옆자리에 떡하니 앉고 있었다.
“조금 쉬었다 갈까.”
표영은 고개를 돌려 노인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귀밑으로 백발이 조금 자랐으며 독수리 같은 눈에 매부리코가 인상적이었다. 언뜻 보기엔 그리 선하다는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표영이 아무 말이 없자 당운각이 입을 열었다.
“이곳은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경치가 아주 좋아.”
“자주 오시나요?”
“난 의원이라네. 그러다 보니 직접 약초를 구하러 오기도 하고 혹은 뱀이나 기타 독물 같은 것도 잡으러 오곤 하지.”
당운각은 태연히 거짓말을 했다.
“아, 의원이셨군요?”
표영은 의원이라는 말에 자신이 본 첫인상은 잘못 본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 그저 첫인상만 가지고 사람을 다 파악할 순 없는 것이겠지.’
더불어 몸에 지닌 무공이 대단한데 거기에 의원이라는 말을 듣자 번뜩 사부님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강호엔 기인이 많으니 이분에게 사부님의 병을 한번 봐달라고 해볼까? 세상이 놀랄 신의(神醫)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표영이 사부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당운각이 말했다.
“네가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독이란 것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란다. 어떤 독은 병을 치료하는 효험이 있기도 하거든. 너는 이곳에 살면서 혹시 괴상하게 생긴 뱀이나 독물들을 본 적이 없느냐? 만일 네가 알려준다면 나는 너의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도록 하마.”
이 말은 표영의 마음에 쏙 드는 제안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막 부탁을 하려던 참인데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다니. 게다가 얼마 전에 오극전갈을 발견하지 않았던가.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게 그저 신기했다. 이 모든 것이 하늘이 예정해 놓으신 것 같아 어쩌면 사부님의 병을 고칠 수 있을지 모른다 생각했다.
“정말이십니까? 약속하시는 거죠?”
“그럼 내가 거짓말할 사람으로 보이느냐?”
‘이 머저리가 뭘 알고 있긴 있는 걸까? 어디서 방울뱀이나 보고서 하는 말이라면 네놈의 발모가지를 부러뜨려 주마.’
당운각의 속마음도 모른 채 표영은 사실대로 말했다.
“저는 며칠 전에 전갈을 보았답니다. 그 전갈은 보통 놈들과는 다른 것 같았어요. 등에 선명하게 다섯 줄기의 색이 덮여 있더라구요. 그 색깔은 그러니까, 황색, 청색, 적색, 백색, 녹색이었답니다.”
표영은 오극전갈이라는 말은 빼고 그저 그 형태만 설명했다. 사부님의 말씀 중 ‘삼 푼 정도만 자신을 드러내라’는 말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표영의 말에 당운각은 하마터면 경악성을 내지를 뻔했다.
‘이 거지의 말이 맞는다면 이건 정녕 오극전갈이 아닌가. 그저 해본 소리였는데 의외의 수확을 건질지도 모르겠는걸. 으흐흐.’
당운각은 기쁨의 함성을 꾸욱 눌러 참으며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그래? 다섯 가지 색을 지녔다 이거구나. 네 말대로 보통 독물은 아니겠는걸. 좋다, 이제 네가 원하는 것을 한 가지 들어주마. 내 힘이 닿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
‘이 거지 녀석은 분명 하루 종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할 거야.’
표영은 기다렸던 말인지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저와 함께 지내고 있는 사람이 몸이 매우 아프답니다. 대인께서 치료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매부리코의 당운각은 대수로울 것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훗, 꼴에 누굴 살려달라고 하는군.’
“좋다. 내 특별한 재주는 없지만 의원으로서 아픈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비록 네가 독물을 알려주지 않는다 해도 나는 그를 살리도록 노력하마.”
당운각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대인의 기운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표영은 하늘을 날듯이 기뻤다.
‘강호는 아직까지 그리 매정한 곳만은 아니로구나. 이리도 좋은 분을 만나게 되다니.’
표영은 신바람을 내며 그를 동굴로 인도했다. 엽지혼은 동굴 안에서 수혈이 짚인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표영은 안쓰러움에 한숨을 내쉬고 다가가 몸을 굽혀 수혈을 풀었다. 그때 당운각은 표영의 뒤쪽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엽지혼의 얼굴도, 그리고 혈도를 푸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저 자고 있는 환자를 깨우는 것 정도로만 생각할 뿐이었다.
“어서 일어나 봐.”
엽지혼의 몸은 요즘 들어 좋지 않았기에 혈이 풀려도 단숨에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표영은 약간의 시간을 두고 일어나는 것을 아는지라 몸을 일으켜 잠시 기다렸다. 표영이 일어서자 당운각은 누워 있는 엽지혼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보다가 점점 미간을 찌푸렸다.
‘음… 어디서 많이 본 듯한데. 어디서 왔더라…… 누굴 닮은 거지…….’
당운각은 조금 더 앞으로 걸어가 다시 자세히 살폈다. 순간 당운각은 등줄기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이, 이럴 수가! 이 사람은 엽 방주가 아닌가.’
지금의 엽지혼의 얼굴은 10년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약간 그 인상이 남아 있었을 뿐 초췌해진 몰골은 결코 그를 과거 중원오대고수였던 개방의 엽 방주라고는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운각은 달랐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엽지혼의 얼굴을 잊어버릴 수는 없는 그였다. 요즘도 가끔 엽지혼이 남긴 말이 꿈에서 들려오지 않던가.
“앞으로 한 번만 더 이런 짓을 하다 내게 걸리는 날엔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땐 목이 몸통에 붙어 있지 못할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15년 전의 일이었다. 당운각이 한 여인을 범하려 했을 때 엽지혼에게 걸려 두들겨 맞은 후 들은 말이었다.
‘이건 혹시 함정이 아닐까?’
두려운 마음에 당운각은 주변을 재빨리 두리번거렸다. 별다른 징조가 없음을 본 당운각은 옆에 서 있던 표영의 멱살을 잡아챘다. 그 빠르기가 번개와 같았으나 어느새 표영의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하며 손이 올라갔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표영은 생각을 통해 행동을 제어했다. 굳이 공격당할 일을 한 적이 없기에 무공을 드러낼 필요가 없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반쯤 올라간 손을 서서히 내리며 겁먹은 얼굴로 물었다.
“왜, 왜 그러세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당운각의 공격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공격한 터였다. 첫째는 저 노인이 정녕 엽지혼이라면 분명 이 젊은 놈은 그의 제자일 것이라 생각했다. 제자라면 무공을 익혔을 테고 부지불식간에 공격하면 자기도 모르게 방어를 하게 되어 그 본색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을 계산한 터였다. 둘째는 주변에 또 다른 적이 있거나 엽지혼이 갑자기 일어나 공격하는 것에 대비해 인질로 잡아두려 함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함정이니 뭐니 그런 것도 아니고 무공을 모르는 진짜 거지일 뿐인 것이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음, 하긴 닮은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
그때 온몸을 뒤틀며 엽지혼이 깨어났다. 그는 한 노인이 표영을 붙잡고 있는 것을 보고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바보 같았다.
“형, 무슨 일이야? 저분은 누구셔?”
당운각은 늙은 거지가 새파랗게 젊은 거지를 가리켜 ‘형’이라고 부르자 실소를 금치 못했다.
‘훗, 이건 또 뭐야. 형이라고? 후후… 그냥 미친 노인이었나?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게로군. 하긴 엽 방주일 리가 없지. 그가 어떤 사람인데 이렇게 미쳐서 지내겠는가. 하긴 자세히 보니 얼굴이 아닌 것도 같군.’
당운각은 슬며시 멱살을 놓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내 장난이 너무 심했나? 난 가끔 일상에 변화를 주기 위해 이렇게 파격적인 놀이를 즐기곤 한다네. 놀랐다면 내가 사과함세.”
표영은 그가 결코 선한 뜻을 지닌 자가 아님을 깨달았다. 처음에 예감이 맞은 것이다.
‘사부님의 얼굴을 보고 놀란 것을 보니 과거에 원수일 가능성이 크구나. 사부님을 구하려다가 도리어 재앙을 초래하게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티 내지 않고 엽지혼을 향해 말했다.
“응, 이분은 좋은 분이야. 너의 몸이 좋지 않음을 보고 고쳐 주러 오신 분이거든.”
“아, 그렇구나. 정말 훌륭한 분이시네. 의원님, 저 아야 하거든요. 고쳐 주세요.”
당운각으로서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정말 웃긴 녀석들이군. 세상엔 별 놈들이 다 있다니까.’
“자, 진맥을 한번 해보자꾸나.”
당운각은 언제 분노했었냐는 듯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엽지혼에게 다가가 몸을 살폈다. 가까이 다가가 보자 눈 밑이 검게 변하고 얼굴 여기저기에 저승꽃이 번져 있는 것이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이 뻔했다. 진맥을 짚어보니 진원지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진원지기는 몸을 지탱하고 생명을 유지하는 근본된 힘을 일컫는 것이었다.
‘후후, 역시 얼마 못 가겠어. 대라신선이 온다고 해도 회복되긴 힘들겠군.’
“음…….”
그는 고의로 신중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풀고 표영에게 말했다.
“잠깐 따로 보자꾸나.”
동굴 밖으로 나가는 당운각을 표영이 뒤따랐다.
“내가 보니 실로 어려운 지경에 빠져 있구나. 하지만 다행히 내게 그를 고칠 수 있는 약이 있다. 그 약을 복용한다면 거뜬히 생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내게 없으니 삼 일 후에 내가 그 약을 가져오도록 하겠다. 넌 기다릴 수 있겠지?”
“정말이신가요?”
표영은 씁쓸한 기분을 감춘 채 기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정말이고말고. 삼 일째 내가 약을 가져오거든 그때 네가 본 전갈이 있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렴.”
‘오극전갈은 나 혼자 거둬들이기엔 벅차다. 가주님과 여러 장로들과 합동으로 힘을 써야 할 것이야.’
“그럼 나중에 보자꾸나. 어디 다른 곳에 가지 말고 꼭 이곳에 있어야 한다.”
당운각은 쏜살같이 신형을 날려 산 밑으로 내려갔다. 당운각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며 표영은 인상을 찌푸렸다.
“휴우∼ 오늘 밤에 사부님이 깨어나시면 말씀을 드리고 내일이라도 당장 거처를 옮겨야겠다. 그는 틀림없이 사부님의 원수일 것이야.”
“허허, 이곳에 있는 소협이 우리에게 좋은 선물을 준다는 것인가.”
우렁찬 소리에 동굴에 있던 표영의 안색이 급변했다.
‘누구지?’
불안이 엄습했다. 설마 삼 일 후에 온다던 당운각이 돌아온 것이라면…….
“여기 꼼짝 말고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오면 안 돼. 알겠지?”
표영은 엽지혼에게 당부하고서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