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7장 (28/199)

 # 27

27.

“모름지기 사람의 목숨은 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험험, 그러기에 한번 죽어 땅에 묻은 사람을 다시 파낸다는 것은 인륜(人倫)에 어긋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험험, 이런 일이야말로 하늘도 땅도, 그리고 모든 사람들도 함께 분노하는 일인 겁니다. 그래서 생긴 말이 천인공조(본래는 천인공노(天人共怒)임))가 아닙니까. 어찌 고매하신 사부님께서 그런 천인공조 같은 일을 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이건 결코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그가 누구든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냥 잊어버리… 아야야∼”

눈까지 지그시 감고 한참 신나게 떠들던 표영은 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질질질 동굴 밖으로 끌려 나갔다. 엽지혼은 별 쓸데없는 소리로 귀를 더럽혔다는 듯 한 손으로 귀를 파내고 한 손으로는 제자의 귀를 잡고 무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끌려가는 와중에서도 표영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야야∼ 그러니까, 사부님, 무덤을 파내는 일은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이 된단 말입니다. 아야…… 아이고,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귀 좀 놓으세요. 제가 걸어가겠습니다. 아야야∼ 이러다 귀 떨어지겠어요∼”

“그래, 이놈아. 사부는 천인공노할 악인이다. 어쩔 테냐. 이 녀석이 수백 마리의 개를 때려잡았다고 큰소리치더니 순 허풍이었구나. 이렇게 겁이 많아서야 어찌 강호를 활보하겠느냐.”

“개하고 사람하고 어떻게 비교를 아야야∼ 사부님∼”

목멘 소리를 내봤지만 엽지혼은 그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질질 끌고 갈 뿐이었다.

실랑이를 하는 동안 어느덧 죽은 마교 교주 독무행이 묻힌 무덤에 이르렀다. 작게 솟은 무덤을 가리키며 엽지혼이 말했다.

“자, 파 보거라.”

역시 아니나 다를까 무덤을 파내는 일은 표영의 몫이었다. 달빛이 비춰주고 있다곤 해도 깊은 산중이다. 달빛마저 두려움을 안겨주는 데 일조했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가지들과 한 번씩 들리는 짐승의 울음소리는 절로 몸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한번 무서움이 일자 뒤쪽에서 약간은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사부의 숨소리도 두렵게만 느껴졌다. 그 속에서 무덤을 보고 있자니 당장에라도 시체가 흙을 뚫고 공중으로 치솟아오를 것만 같았다.

부르르르…….

‘사내대장부가 이까짓 일로 마음을 졸여서야 되겠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 용기를 북돋웠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신통치만은 않았다.

‘제길, 그래도 여전히 무섭기만 하잖아.’

표영은 어차피 파야 할 것이라면 후닥닥 해치우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허리에 차고 있던 밥그릇으로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땀까지 뻘뻘 흘려대며 얼마나 파냈을까. 뒤에서 사부가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너 지금 뭐 하고 있냐?”

그 말에 표영이 눈을 떠보니 엉뚱하게도 무덤이 아닌 그 오른쪽 옆을 파헤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이쒸∼ 이이익, 이게 뭐야.’

표영은 다시 울상을 지으며 이번엔 똑바로 무덤을 파 제꼈다. 영초와 내단 덕분에 몸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넘쳐 난지라 피곤함 같은 것은 느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간덩이까지 커진 것은 아닌지라 마음은 두려움으로 한없이 떨릴 뿐이었다.

‘시체님아, 시체님아, 벌떡 일어서면 안 되는 거 알고 있죠? 내가 시체님을 죽인 게 아니라고요. 난 분명히 똑바로 이야기해 주었잖아요. 손을 놓으라고 말이에요. 사람은 믿고 살아야 한다고 제가 얼마나 이야기를 했나요. 다음에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제발 사람 말 좀 믿고 사세요.’

두려움이란 실제 부딪쳤을 때보다는 그것을 기다릴 때가 더욱 두려운 법이다. 어린아이들이 의원에게 침을 맞을 때도 그러하지 않던가, 줄을 서서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야말로 실제 침을 맞는 순간보다도 더한 두려움과 초조함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표영도 그러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지간히 무덤을 파내게 되면서 불쑥 시체에 손이 닿게 되지나 않을지, 머리통을 만지게 되진 않을지 그저 초조하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정신없이 파 나가는데 물컹하는 느낌이 손에 느껴졌다. 순식간에 표영은 온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머리에서는 시체와 관련된 그림을 떠올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생생하게 무서운 시체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람의 몸이야 원래 물컹하지만 죽은 자에게서 느껴지는 그 물컹함이란 격을 달리하는 공포였다. 그 때를 맞추어 엽지혼이 표영의 어깻죽지를 덥석 하고 잡았다.

“으아악∼! 귀신이야!”

터질 것같이 긴장하던 표영은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 고함을 내질렸다. 어찌나 큰 소리였던지 어깨를 짚었던 엽지혼조차 화들짝 놀랄 지경이었다.

“이놈아, 정신 차리지 못해! 귀신은 무슨 얼어죽을 놈의 귀신이냐!”

철썩-

말과 함께 날아온 손바닥에 여지없이 뺨을 한 대 얻어맞고서야 표영은 정신을 차렸다.

“뒤로 물러서 있어라.”

“네, 네, 사부님.”

표영은 얼른 뒤로 돌아 사부의 허리춤을 잡았고 엽지혼은 가까이 다가가 조금 남은 흙 속에 손을 뻗어 시체의 가슴 부근의 옷을 잡고 쑤욱 끄집어냈다.

“음…….”

어제와는 달리 맑게 갠 밤하늘의 달빛은 얼굴을 식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독에 당한 것이 분명하군.”

시체의 상태는 어제 죽은 사람의 얼굴답지 않게 온통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게다가 얼굴과 몸은 물에 푹 잠겨 있다 나온 것처럼 퉁퉁 불어 있었다.

“지독한걸.”

개방은 독물을 다룸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 거지로 살다 보면 야산에서 뱀이나 전갈 등을 볼 기회가 많고 또한 잡는 경우도 많다. 그러기에 대충 독의 증상이 어떤지 어떻게 해독해야 하는지 알아두어야하는 것이다.

게다가 엽지혼은 전대 방주이자 중원오대고수 중 한 명이니 그 안목이야 말할 것도 없이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엽지혼으로서도 지금 이 시체의 상태를 보며 뚜렷하게 어떠한 독에 당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얼굴이 너무 변해 알아보기조차 힘들게 되었구나.”

혹시나 아는 인물일까 싶어 기대하고 있었건만 확인은 틀린 일이었다. 엽지혼은 시체의 입을 벌려 치아를 살폈다. 나이라도 파악하고자 함이었다. 치아를 통해 나이를 분석하는 것은 상당한 정확성을 지녔다. 이런 방법은 피부나 얼굴로 나이를 식별할 수 없을 때 주로 사용한다. 피부는 가꾸기에 따라 젊음을 유지할 수 있으나 어떠한 경우든 치아의 마모(磨耗)까지는 막을 수 없는 까닥이다. 하지만 치아를 살펴본 엽지혼은 얼굴 가득 난색을 표했다.

‘이런…….’

그건 치아가 고작 20대 초반 정도의 상태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나이면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로군.”

20대 초반이라면 엽지혼이 활약하던 당시에는 10대 초반이었을 테니 안면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젊은 나이라는 점은 또 다른 의문을 던져 주었다.

‘이 나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극독에 당했다니…….’

그는 혹시 죽은 이의 신분을 알 수 있을 만한 다른 단서가 없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반지나 팔찌, 혹은 목걸이를 통해 문파나 가문을 추측해 볼 요량인 것이다. 명망있는 세가나 각 대문파에서는 나름대로의 표식이나 신물을 지니는 것이 기본이다. 그중 가장 흔히 쓰이는 것으론 반지였다. 하지만 손가락과 팔목엔 반지나 팔찌 등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음으로 목을 살피는데 목걸이 줄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군.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엽지혼이 실망스러워하며 목덜미를 스칠 때 미세하게 걸리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뭐지?’

특이한 낌새를 느낀 엽지혼이 손에 걸리는 감각을 따라 쭉 몸을 훑었다. 목에 걸린 것은 놀랍게도 투명한 실이었다. 실을 잡아당기자 이어진 끝에서 동그란 모양의 직경 한 치(3센티)가량의 작은 명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명패는 검은빛을 띠었는데 너무 짙은 나머지 특이하게도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건 척 보기에도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달빛에 비춰진 명패는 좌우로 상상의 새인 봉황이 화려한 날개를 펴고 양쪽에 자리했고, 그 중간에 건곤(乾坤)이라는 두 글귀가 비상하듯 새겨져 있었다. 일단 엽지혼은 명패에 대한 것보다는 명패를 목에 걸게 만든 줄을 보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천잠사로 만들어진 끈을 사용하다니……. 음, 역시 펑범한 내력을 지닌 자는 아니었어. 천잠사까지 지니고 있는 걸 보아 어제 도라지로 착각했던 영약도 필시 이 사람의 몸에 지니고 있었던 것이겠구나.’

엽지혼이 천잠사에 놀란 것은 그 희귀성과 효용 때문이었다. 천잠사(天蠶絲)는 설산(雪山)에 사는 영물인 천잠이 설련실(雪蓮實)과 빙매실(氷梅實)을 먹이로 성장한 후 토해내는 일종의 비단실을 뜻했다. 그것은 질기고 단단하기가 천하에 비할 바가 없는 보물로 많은 무림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 헤매는 도검수화불침의 신기한 보물로 통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투명하고 견고한 까닭에 드물게는 천잠사를 무기로 사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 그것을 소유한 자라면 마땅히 그 신분도 범상치 않은 것임은 당언한 것이었다.

‘조각된 ‘건곤’이라는 글귀의 음각(陰刻)은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구나. 필시 뛰어난 장인의 손길이 닿은 것임이 분명해.’

엽지혼은 지금 천잠사를 보고 놀라고 있었지만 정작 천잠사는 명패에 비하자면 하찮은 것에 불과했다. 은은히 빛나는 묵빛의 명패는 만년흑옥석(萬年黑玉石)이었다. 만년흑옥석은 그것이 있다는 말은 들었을지언정 직접 보았다는 자는 찾아보기 힘들 만큼 희귀한 보물이었다. 만년흑옥석은 희귀성 못지 않게 진귀한 효용 또한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을 몸에 지니는 사람에게 따스한 온기를 느끼게 하는데 직접 기를 운행하지 않더라도 밤이든 낮이든 몸의 기를 조절해 주며 운행토록 하여 끊임없이 내력을 발전시켜 나가도록 해준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강호의 경험이 풍부하고 연륜이 깊은 엽지혼으로서도 이 명패가 흑옥석인지조차 알아보지 못했고 그 효용 가치는 더욱더 알지 못했다. 그때까지 허리춤에 매달려 전전긍긍하던 표영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사부님.”

“뭐냐.”

“이제 볼일 다 보셨으면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엽지혼은 씨익 웃었다.

“그러자꾸나. 자, 그럼 이제 묻어라.”

“네?! 사부님이 하시면 안 될…….”

“말이 많구나. 먼저 갈 테니 묻고 따라오거라. 대충했다간 혼쭐이 날 줄 알아라.”

휘적휘적 걸어가 버리는 사부를 바라보며 표영의 얼굴은 벌레라도 씹은 듯이 변했다.

‘이씨……. 어떻게 된 게 어제 낮에 일어난 일이 정반대로 일어나는 거냐.’

사부의 정신이 온전치 못할 때 시체를 묻게 했던 그 일이 고스란히 자신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이 생긴 것이 아닐까. 표영은 시체를 향해 푸념을 늘어놓았다.

“으이구, 시체님아∼ 왜 하필이면 이곳에서 죽어 저를 고생시키는 겁니까. 앞으로 또 죽으실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죽게 되면 장소를 가려가면서 죽어야 해요. 알겠죠?”

표영은 알아들지도 못하는 상대를 향해 몇 차례 더 중얼거리다가 두려운 마음에 후닥닥 묻고선 부리나케 동굴로 도망쳤다.

표영이 동굴 안으로 들어설 때 엽지혼은 자리에 앉아 뚫어져라 명패를 주시하고 있었다.

“건곤(乾坤)이라… 내 이제껏 이런 문파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내가 강호를 떠난 후에 만들어진 신흥 문파인 걸까?”

엽지혼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최대한 찾아보며 추론해 보았지만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은 사실 당연한 것이다. 이 명패는 바로 마교 교주를 나타내는 신물(神物)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무림문파에나 그 조직의 지존을 뜻하는 신물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개방은 타구봉, 소림사는 녹옥불장, 아미파 같은 경우는 서천보살자로 된 백팔염주 등이 그런 의미를 지닌 것들이었다.

건곤패는 마교 내에서 교주를 대함처럼 받들도록 되어 있기에 마교인들에게는 그 어떤 신성함보다 더욱 고귀한 물건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마교가 멸망한 지 200년이 지난 상황이다. 제아무리 경험이 풍부하고 대단한 엽지혼이라 할지라도 마교의 신물에 대해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이미 마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오래전에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그 신물에 대해서는 극히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까닭이다.

“이것이 문파 이름이 아닌 신분을 표시하는 것이라면 하늘과 땅이라, 참으로 광오한 말이 아닐 수가 없구나. 하늘과 땅을 다스린다, 하늘과 땅을 통치한다, 하늘과 땅을 지배한다. 대충 이 정도의 뜻을 지닌 것일까?”

표영은 아직도 아까의 두려움과 찜찜함에 사로잡혀 사부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자꾸만 뒤통수가 근질근질한 게 뒤를 돌아보면 아까 본 새까만 시체가 흉악한 몰골로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럴 땐 무슨 말이라도 해야 기분이 좀 나아지는 법인지라 표영은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다.

“사부님, 그것은 아마도 하늘과 땅 사이에 내가 있어 사람을 돕겠다… 뭐, 이런 뜻 아닐까요?”

엽지혼은 의외적인 제자의 말에 고개를 슬쩍 들어 바라보았다.

‘나는 자꾸만 부정적으로 생각했건만 이 아이는 사물을 건전한 방향으로 바라볼 줄 아는구나. 기특한 녀석.’

그것이 비록 어쩌다 나온 말이라 할지라도 마음에 없으면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법이다. 그의 연륜은 그런 기질을 감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엽지혼은 이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허허, 그럴 수도 있겠지. 만일 그 젊은이가 정파인이라면 그런 뜻으로 쓰였을지도 모르지. 녀석, 오랜만에 그럴싸한 말을 하는구나.”

표영이야 얼떨결에 한 말이었지만 엽지혼은 어린 제자가 마냥 대견스럽게 느껴져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에 적의를 품고 바라보고 있었구나.’

예전의 그의 모습은 호탕하고 밝기만 했었다. 허나 불의의 습격을 당하고 암중에 배신을 당한 후론 마음까지 불신에 찬 상태가 된지라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말년에 받아들인 제자가 마음이 순수한 게 더없이 위안이 되었다.

‘이 녀석만큼은 훌륭하게 자라주었으면…….’

엽지혼은 따스한 시선으로 표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너의 말을 들어보니 네게 해줄 말이 생각나는구나. 다름 아닌 개방인으로서 지켜야 할 방규에 대한 것이다. 여러 문파마다에는 각자 규율과 법도가 있어 질서를 갖추고 내실을 다지게 된다. 그처럼 개방에도 방규가 있어 전체 개방을 흐트러지지 않게 한단다. 하지만 다른 문파와는 달리 개방엔 단 한 가지의 규율만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의(義)를 숭상하라’라는 말이지. 실로 간단하기 그지없지만 의를 행한다는 말처럼 의미가 깊고 어려운 것도 없을 것이다. 너는 늘 마음속에 ‘의(義)’를 잊지 말고 실천해 나가도록 하여야 한다.”

사부가 무슨 말을 꺼내려고 이런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표영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거야 뭐, 착하게 살면 되겠죠.”

“하하… 좋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이 건곤패는 네가 지니고 다니도록 하거라.”

불쑥 내민 건곤패를 바라보며 표영은 기겁했다. 안 그래도 찜찜하던 차에 시체의 목에 걸린, 왠지 재수없어 보이는 물건을 달고 다니라니…….

“네?! 그, 그것은 시체님의 것인데 어찌 제가 가질 수 있겠습니까. 안 됩니다, 사부님. 어릴 적부터 어머니께서는 절대 다른 사람의 물건을 탐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표영이 언제 그런 말을 들을 기회나 있었겠는가. 늘 잠만 자고 밥도 먹지 않아 속만 썩여온 터에 그런 교훈의 말을 들을 시간조차 없었다. 아니, 훔치려고 해도 게으름 때문에 불가능한지라 표영의 모친 화연실이 그런 염려를 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허나 잔머리가 비상하게 발전하고 있는 표영인지라 있는 말 없는 말을 주워다 서슴없이 뱉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엽지혼이 생각을 거둘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네놈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들을 돕는다고 했지 않느냐. 아마 죽은 자도 너의 말을 듣고 네 녀석이 지니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이루어주는 것이 될 테니 말이다. 너는 부디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알고 땅위의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할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하여라. 네가 건곤(건)을 생각하며 좋은 마음을 품었듯이 힘을 믿고 언약한 자를 괴롭히는 악인을 벌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서 살아가는 지침으로 삼도록 하거라.”

사부의 뜻은 알겠지만 표영은 받아들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시체도 그냥 시체가 아니잖은가. 퉁퉁 불어 있는 데다 새까만 게 생각만 해도 몸이 오싹해졌다. 거기에 목걸이를 차고 다녔다가는 평생을 두고 시체의 모습이 기억에서 떠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더욱이 목에 차고 있으면 밥을 넘기기도 껄끄러울 것이 분명했다. 표영은 자신이 지어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불쌍한 표정을 짓고 서글프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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