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26.
걸인각성(乞人覺醒) - 거지의 깨달음 2
모든 길은 반드시 옳은 길로 돌아간다
제1장 신물 건곤패
엽지혼은 괴이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낮에 내가 도라지국을 끓여주었다는 것이냐? 그리고 넌 그것을 먹은 후 몸에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단 말이지?”
엽지혼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이라곤 어젯밤 별로 높지도 않은 언덕배기에서 살려달라고 애걸하던 장면과 뒤돌아설 때까지 뿐이었다. 제정신을 차리자마자 두서없이 쏟아내는 제자의 말을 대충 듣고 그는 어이가 없었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언덕에 매달린 사내는 죽었으며 제자의 몸엔 특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하지 않는가.
“거참, 이해할 수가 없구나. 어떻게 그런 곳에서 떨어져 죽을 수 있단 말이냐. 세상에서 가장 재수없는 사람이라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구나. 허… 거참. 혹시 네놈이 지금 나와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렷다?”
표영은 두 손을 마구 흔들며 요란스럽게 말했다.
“사부님도 참, 제가 이제까지 말한 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사실 그대로라구요. 그냥 냅다 죽어버렸다니까요. 근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부님이 끓여주신 도라지국이었답니다. 전 그것을 먹은 후 젊은 나이에 결혼도 못해 보고 이렇게 죽는구나며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몰라요.”
과장된 몸짓으로 말하는 제자의 말을 듣고 엽지혼은 기가 막혔다.
“허허허……. 그것 참, 내가 정말 도라지국을 끓여주었다 이거지?”
엽지혼은 얼굴 가득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머금었다. 하지만 마음까지 모두 웃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자신의 기억엔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는데 제자를 위험에 빠뜨릴 뻔했다는 것이다. 아직 몸을 살펴보지 않아 그것이 독초(毒草)인지 단정하긴 어렵지만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밤 시간의 나는 분명 나지만 낮 시간의 또 다른 나는 도대체 알 수가 없으니…….’
속으로 안타까움을 곱씹을 때 표영의 너스레가 이어졌다.
“사부님! 그런데 이상한 건 말이죠. 도라지국을 먹고 무척 고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맛은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몰라요. 이제껏 살아오면서 먹어본 것 중에 최고였답니다. 게다가 지금은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져 마치 새가 된 것 같지 뭐예요. 훨훨∼ 사부님, 근데 정말 그게 도라지였을까요?”
마치 새라도 된 양 표영은 양손을 펄럭이며 환하게 웃었다.
“껄껄껄, 녀석.”
엽지혼도 우스운지 덩달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예로부터 산삼(山蔘)이나 귀한 영초(靈草)를 도라지나 다른 하찮은 것으로 인식하고 먹는 경우가 많은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제자의 신색(身色)을 보아하니 결코 독초를 먹은 것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표영의 손목을 잡았다.
“그럼 한번 살펴보자꾸나.”
엽지혼의 지금 상태는 무공을 온전히 소실한 채었다. 단전(丹田)이 파괴되고 중요 경락(經絡)이 끊어지는 바람에 그동안 쌓아놓은 엄청난 내공은 다 흩어지고 말았다. 그저 미세한 진원지기(眞元之氣:사람 몸의 원기(元氣))만으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을 뿐인 것이다. 하지만 내공을 완전히 잃었다고는 해도 무인(武人)으로서의 감각과 그 지식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무공을 전혀 모르는 일반 의원들도 진맥을 통해 환자 몸 안의 기를 느끼고 파악, 분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바라볼 때 엽지혼은 어지간한 의원들보다도 월등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비록 반미치광이의 꼬락서니지만 그는 과거 중원오대고수의 반열에 오른 이었다. 중원오대고수란 천선부(天仙府)의 부주(府主) 오비원, 혈곡(血谷)의 곡주(谷主) 단천우, 소림사 장로 각봉대사, 마천(魔天)의 천주(天主) 도의봉, 그리고 전대 개방 방주 천상신개 엽지혼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 엽지혼이기에 몸 안의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중원오대고수란 이름은 아무에게나 거저 불러대는 이름이 아닌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손목을 통해 진맥하던 엽지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이 뚫렸단 말인가?!’
임, 독맥 타통이란 말은 흔하게 할 수 있거나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무림인이라면 꿈에라도 소원하는 경지. 그것이 생사현관의 타통이자 임독맥의 타통이었다. 현재 강호에서 이러한 경지에 오른 사람은 고작 천선부주 오비원 정도일 것이다.
‘나조차도 이루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어떻게……!’
정녕 한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였던 엽지혼조차도 다다르지 못한 경지인 것이다. 만일 무림인들이 엽지혼의 머릿속의 생각을 듣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아마 당장에라도 표영에게 달려들어 그 피라도 빨아 먹으려 난리를 쳤을 것이다. 그만큼 임독맥 타통은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엽지혼은 이 믿어지지 않는 현실 앞에 이맛살을 찌푸리고 손목에 이어 머리 위 백회혈(百會穴)로 손을 가져갔다. 백회혈은 사람 몸의 가장 위쪽에 자리한 혈도다. 정수리의 숨구멍이라 표현하기도 하는데 몸의 모든 혈의 중심축과 같은 곳이라 할 수 있어 몸의 현상을 파악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음…….”
엽지혼은 심각한 표정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혹시 자신이 잘못 파악한 것은 아닌지 다시 점검하고 또 점검했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다. 임독맥 타통. 그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임독맥을 뚫을 수 있게 한 힘에 대해 추적했다. 두 개의 거대한 기운이 서로 상생 작용을 일으키며 안정되게 몸 안에 감돌고 있음이 느껴졌다. 대개 두 개의 힘이 존재하면 서로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 상례다. 하지만 제자의 몸 안에는 전혀 격돌의 기운은 보이질 않고 오히려 서로를 유기적으로 돕고 있었다.
‘참으로 믿을 수가 없구나. 도라지를 먹었다고 했으니 그것이 하나의 힘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또 하나의 기운은 무엇이란 말인가?’
엽지혼의 의문에 대한 답은 묵각혈망의 내단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단은 국에 녹아져 국물로 복용하였으니 그 존재에 대해 표영도 엽지혼도 짐작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왜 두 개의 큰 힘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보완하고 있는가.
그것은 원래부터 천년하수오와 묵각혈망이 서로 상생의 이치를 띠고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묵각혈망은 천년하수오의 지기(地氣)를 도움받고 천년하수오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묵각혈망의 보호를 받는 상태로 서로 공생한 터였다. 살아 있을 때도 이처 서로를 보완했던 두 영물은 그 기질상 표영의 몸 안에서도 서로를 유기적으로 돕고 있는 것이었다.
한편 표영은 머리 위에 손을 얹고서 한참이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부를 바라보며 초조함을 금치 못했다.
“사부님! 몸에 이상한 독이라도 퍼진 것입니까? 뭐가 잘못되었나요? 말씀 좀 해보세요.”
하지만 엽지혼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듯 여전히 손을 올려놓고 깊이 생각에 잠겼다.
‘조금만 힘을 기울인다면 내공이 수십 갑자에 이르게 되는 것은 순식간이겠구나. 큰 대로(大路)가 뚫린 셈이니 작은 노력에도 큰 내력을 얻게 될 것이다. 이건 한낱 도라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 현세에 보기 드문 대단한 영약을 복용한 후에나 가능한 일이지. 암, 그렇구 말구. 하하하… 이놈은 무슨 복을 타고났는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기연 중의 기연을 얻었구나.’
“사부님, 말씀 좀 해보세요∼”
표영의 고함 소리에 엽지혼의 망상은 깨어지고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그는 아까완 달리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허허, 이놈아, 귀청 떨어지겠다.”
“사부님, 제 몸은 어떻습니까? 아까는 심각한 얼굴을 하시더니 이번엔 왜 또 웃으시는 거죠? 저는 이제 죽는 건가요?”
타악.
엽지혼의 손바닥이 표영의 머리통을 갈겼다.
“껄껄껄, 녀석 하곤. 그래도 일찍 죽기는 싫은가 보구나. 네가 먹은 것은 도라지가 아니라 대단한 영약을 복용한 것이다. 네놈은 이 사부에게 백번 절해도 고마움을 다 갚을 순 없을 것이야. 내가 그것을 가져다 주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껄껄껄, 이제 너는 어지간해서는 맞아죽기도 힘들게 되었으니 그런 염려일랑은 하지도 말아라.”
정작 표영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기연을 얻었는지 실감하지 못했지만 사부가 거짓말을 할 리는 만무한지라 기쁨에 차 환호성을 터뜨렸다. 뭔지는 몰라도 좋은 일일 것은 확실하니까 말이다.
“정말이세요? 와아∼ 다행이다. 아까 사부님이 심각해지실 땐 정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르실 거예요.”
“네가 먹은 것은 아주 오래된 산삼이나 하수오 같은 것일 게다. 넌 아무래도 하늘이 돌보고 있나 보구나. 천복(天福)을 타고난 녀석 같으니라구. 껄껄껄.”
엽지혼은 한바탕 웃다가 짐짓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음…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어. 너무 아쉬운 일이지……. 왜 내가 그것을 먹지 않고 네놈에게 주었는지 후회가 막심한걸. 음, 아까워, 정말 아깝단 말이야.”
엽지혼은 진짜 아쉬운 것처럼 입맛까지 쩝쩝 다셨다. 표영은 장난 삼아 사부가 하는 말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듣고 보니 마음 한구석이 찌르르 하니 아팠다. 농담 속에 진담보다 더한 진심이 담겨 있다고 했던가. 표영은 사부의 말속에서 ‘내가 먹었다면 혹시 몸을 고칠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 난 나도 모르게 몹쓸 짓을 하고 말았구나. 왜 내가 그것을 먹게 되었을까. 사부님의 몸은 점점 악화되어 가지 않은가. 난 아무것도 해드린 것도 없이 도리어 좋은 것을 가로채고 말았구나.’
어색한 표정이 된 제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엽지혼은 피식 하고 웃었다. 의외로 둔하게만 보았는데 마음이 예민하기 이를 데 없음을 본 것이다.
‘허허, 정이 많은 녀석이야. 그냥 해본 소리였는데 마음에 걸렸나 보구나.’
그는 어색함을 깨뜨리려 크게 한바탕 껄껄거리며 주먹으로 머리를 쥐어박았다.
탁!
“이런 바보 같은 녀석 같으니. 네놈 앞에서 이젠 농담도 못하겠구나. 내 몸은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세상 어떤 의원이나 영약도 내 몸을 고칠 수는 없으니 미련한 마음 품지 말아라. 게다가 오래 살게 되면 네놈의 못난 꼴을 계속 봐야 할 테니 그것도 나는 원치 않아. 알겠느냐, 이놈아.”
엽지혼의 말은 단순히 표영에게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만은 아니었다. 실제 그의 몸은 하늘의 신이 내려와 고치지 않고서는 회복되기 힘든 상태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수들에게 몸이 난도질당한 것도 있지만 그전에 서서히 독에 중독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독은 살수들에게 공격을 당하기 전까지는 스스로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독에 대해 추론해 본 결과 얻은 결론은 두 가지 독이 만나 효력을 발휘하는 종류의 독이었을 것이라는 정도였다.
“영아.”
엽지혼이 아직도 못내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제자를 가만히 불렀다.
“네, 사부님.”
“이 사부는 이렇게 지내는 것에 대해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감사하고 있단다. 왠 줄 아느냐? 후후후… 하늘은 말이야. 참으로 마음이 넓기도 하시지. 이 늙은이가 말년을 쓸쓸하게 보낼 것을 염려하신 나머지 하늘은 너를 보내주지 않으셨더냐. 난 너를 만난 것만으로도 그저 하늘에 감사할 따름이다.”
표영은 마음이 뭉클해졌다. 더불어 가슴에서 뜨거운 덩어리 같은 것이 솟아 올라와 하마터면 왈칵하고 눈물을 쏟을 뻔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가까스로 눈물을 참으며 표영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음에 제가 도라지를 발견하면 아, 아니, 산삼을 발견하면 꼭 사부님께 드릴게요.”
“후후후, 좋아. 남아일언 중천금이니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야.”
“그럼요.”
“껄껄.”
“하하하하.”
사부와 제자는 기쁜 마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지만 사부와 제자의 마음은 각기 다른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엽지혼은 제자의 따스한 마음에 풍요로움을 느꼈고 표영은 마음 깊이 사부를 염려했다. 아까 사부가 한 말대로라면 정녕 고칠 길이 없어지는 것이니 더욱 마음이 아려온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표영이 갑자기 생각난 듯 엽지혼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사부님, 어제 그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저로선 왜 산비탈에 매달려서 살려달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답니다. 장난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체력 단련을 위해서 그렇게 매달려 있었던 것일까요?”
엽지혼은 제자의 말을 듣자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제자의 몸에 일어난 현상에 놀라느라 정녕 그 영초(靈草)가 어떻게 발견되었는지를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음… 아무래도 기이한 영초는 매달려 있었던 사람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 대단한 것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을 리는 만무하지 않겠는가?’
그는 확인 차 처음에 들었던 말을 다시 한 번 물었다.
“네가 낮에 보았을 때 그의 몸이 가득 거무스름하게 변했다고 했었지?”
“네, 아주 새까맣더라니까요. 옷을 봐서는 한인(漢人)인 것 같은데 얼굴만 봐서는 괴물 같았다구요.”
“그렇다면… 독에 당한 것인가…….”
엽지혼은 오른손으로 턱을 매만지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 그 사람을 한번 살펴보러 가자꾸나. 혹시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의복이나 몸에 지닌 물건을 통해서라도 강호의 어느 파에 속한 사람인지는 대충 알 수 있을 것이다.”
엽지혼이 비록 불의의 습격을 당해 이곳에 거주한 지 10년이 지났다고는 해도 강호 인물 중 어지간히 이름난 이들은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그로선 혹시 친분이 있는 자가 죽었을 수도 있는지라 그저 지나칠 수 없었다. 현재로썬 죽은 자가 영초(靈草)의 주인일 가능성이 가장 농후한지라 이토록 대단한 것을 지녔다면 강호의 하류배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를 알아보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 속에 엽지혼이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으윽! 사부님.”
갑작스레 표영이 배를 움켜쥐고 몸을 구부린 채 신음성을 토했다.
“…낮에 먹은 것이 뭐가 잘못됐나 봅니다. 윽…….”
곧 숨이 넘어갈 것같이 표영은 괴로워했다. 순간 엽지혼은 놀라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곧 이어 엽지혼은 눈가에 웃음을 머금고 태연히 그 하는 짓거리를 바라보았다.
‘후후, 하마터면 속을 뻔했군.’
방금까지 샅샅이 몸을 진맥해 보지 않았다면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간파하지 못했을지 몰랐다.
“사부님! 죄송합니다만 저, 저는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사, 사부님께서만 다녀오셔야겠습니다.”
표영 딴에는 머리를 쓴다고 쓰며 놀라운 연기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엽지혼은 두 주먹을 어루만지며 ‘뚜드득 뚜드득’ 소리를 낸 후 가만히 중얼거렸다.
“후후후, 제자야. 그냥 갈 테냐, 아니면 이 자리에서 몇십 대를 맞고 갈 테냐?”
강호에서 잔뼈가 굵은 엽지혼이다. 그는 제자가 겁에 질려 시체를 보러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단박에 알아차렸던 것이다.
서늘하게 들리는 사부의 위협에 표영이 언제 아팠냐는 듯 깡총 뛰며 몸을 일으켰다.
“어라, 갑자기 몸이 개운한걸요. 하하하.”
“진작 그럴 것이지. 잔말 말고 어서 가자.”
표영은 말은 했지만 정말이지 가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시체를 보러 간다면 필연코 무덤을 파헤쳐야 할 것이다. 낮이라면 대충 사부에게 떠넘기면 되겠지만 지금은 밤이 아닌가. 사부가 제정신인 상태이니 꼼짝없이 자신이 땅을 파고 시체를 끄집어내야 할 것이다. 낮에 봐도 무서운 시체를 밤에 파내야 하다니…….
표영은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사부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엽지혼은 제자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와 표정으로 말하자 뚱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표영은 뒷짐까지 지고선 천천히 동굴을 왔다 갔다 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