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3장 (24/199)

 # 23

23.

“오늘부터는 내공심법과 무공초식을 알려주도록 하마. 너는 모든 것을 철저히 암기하는 데 주력하고 그 뜻을 이해하는 데 힘쓰도록 해라. 익히는 것은 세상에 나가 하나둘 생활 속에서 익히면 된다. 내공심법은 마음과 제일 일치하는 부분이니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심법의 이름은 비천진기(卑賤眞氣)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비천(卑賤)이라 함은 인생의 비천함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인생은 사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울음으로 시작해 죽는 순간까지 많은 고난과 눈물과 한숨으로 시간을 보낸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생들은 그런 것들을 억지로 잊으려 하지. 어떤 이들은 재물을 모으는 것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하고, 어떤 이들은 사랑을 통해 인생의 가치를 얻으려 하고, 혹 다른 이들은 명예와 권세를 통해 나름대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한단다. 하지만 결국은 모두 한줌의 재로 변해 스러지고 마는 것이 인생인 것. 피었던 모든 꽃이 결국은 시들고 푸른 풀들이 마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단다. 그러다 보면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내가 왜 사는지를 알지 못한 채 일생을 마감하고야 말지. 하지만 사람이 태어나 사는 데는 특별한 그 무언가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지금은 뚜렷이 알 수 없는 것이긴 해도 어찌 됐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확실한 것이란다. 도둑질을 일삼는 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자식에게는 바른길을 가도록 가르치려 애쓴다. 그리고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인간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본성의 가르침이 계속 들려오지. 그것은 인생이 바르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또 한편 인생은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길 원하는 묘한 본성으로 인해 욕심을 품게 되고, 그런 욕심은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하지. 하지만 진정한 거지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다. 그러니 인생의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 힘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비천진기다. 너는 비천진기의 구결을 따라 심법을 운용하되 반드시 비천함에 처해보고 인생의 슬픔과 고통을 경험해야 할 것이다. 그럴수록 더욱 큰 힘을 얻을 것이고 내력은 빠르게 증강될 수 있을 것이다. 쿨럭쿨럭.”

“사부님,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시고 내일 이어서 말씀하세요.”

표영은 요즘 들어 더욱 초췌해지는 사부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낮과 밤사이에 형으로 혹은 제자로 지내면서 어느덧 그 정은 깊어진 터였다. 엽지혼은 심하게 기침을 한 후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내 몸은 내가 잘 알고 있으니 염려하지 말거라… 개방에는 두 가지 심법이 존재한다. 비천진기 외에 또 하나는 육절신공(六節神功)이라고 하는 것이 있지. 개방의 인물들 중에는 진정으로 비천진기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그 속에 든 힘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다. 겉으로 보기엔 육절신공이 더욱 훌륭해 보이고 비천진기는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거든. 그러니 마음으로 믿고 따르지 않는 거란다. 믿음을 갖지 않고 의심 속에서 정말 그럴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비천진기는 그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되고 말지. 육절신공은 순수하게 무공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진정한 개방의 힘을 얻을 수는 없다. 비록 진전이 처음에는 빠르게 보일지라도 최고의 무학으로서는 발전할 수 없게 되니 너는 거기에는 마음을 둘 필요가 없다.”

다음으로 들려준 것은 내공 운용법과 심법의 요결, 혈도의 위치와 기의 순환되는 과정 등이었다. 그는 표영에게 여러 번 들려준 후 암기하도록 했고 얼마나 암기했는지 시험해 보고 부족한 부분을 다시 들려주었다. 그리고 세세하게 왜 그러한 원리가 이루어지는지 또한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차례차례 매일 무공 전수가 이어지길 반년의 기간이 지났다. 실제로 반년이라는 기간이라면 무공을 어느 정도 익힐 수 있을 정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엽지혼이 무공을 전수할 시간은 고작 새벽녘의 일식경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에 그리 긴 시간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표영은 낮 시간을 빌어 밤에 알려준 구결을 암기하고 이해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동안 엽지혼이 전수해 준 무공들은 이러했다. 경공은 낙엽부영(落葉浮影)과 풍운보(風雲步), 그리고 걸인만취(乞人漫醉)와 연쌍비(燕雙飛), 그 다음 권법으로는 파옥권(破玉拳)과 취팔선권(醉八仙拳), 음공으로는 천음조화(天音造和), 그 외에도 여러 장법과 권법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고 이를 전수받았다.

그 모든 것을 이해함에 있어서 표영에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제17장 손을 놓으라니까

깊은 밤, 엽지혼과 표영은 동굴 밖으로 나와 거닐었다. 이날따라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 끼어 사방은 어둡기 그지없어 한치 앞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저기서 이야기하자꾸나.”

엽지혼은 무공을 가르치는 틈틈이 무림정세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는데 이날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자 함이었다. 동굴에서 얼마 걷지 않아 두 사람의 귀로 신음 소리 비슷한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사… 사람 살려…….”

언뜻 들으면 그저 스치는 바람 소리로 착각할 정도로 미약한 소리였지만 계속해서 듣다 보니 둘은 곧 그것이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의 목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가보자.”

엽지혼이 먼저 소리 나는 쪽으로 향했고 표영도 그 뒤를 따랐다. 근처에 이르자 예상했던 대로 구조를 요청하는 소리가 확실했다. 둘은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사람의 신음 소리를 찾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정도 눈이 어둠에 익숙해졌다.

둘은 백의를 입은 한 사람이 절벽에서 뻗어난 나뭇가지를 붙들고 다 죽어가는 소리를 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두 사람 다 자주 다닌 곳이었다. 눈을 감고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표영과 엽지혼은 나뭇가지를 붙들고 신음성을 토해내는 사람을 보고 일순 할 말을 잃고 멍해졌다. 그러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허리를 젖히고 웃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는지 급기야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며 배꼽을 쥐고 요동쳤다.

“으하하하하…… 우하하하…….”

“푸하하하… 세상에나 세상에…….”

둘의 웃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에게 있어 이러한 행동은 가혹하기 그지없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매달린 백의인은 분노로 눈이 이글거렸다.

‘저, 저런 개새끼들을 봤나. 어찌 인간들이 저럴 수가…….’

생각해 보라. 누군가 곧 죽을 상황에 처해 있어 한시가 급한 때 정작 구해주러 온 사람이 발광하듯 웃고 있다면 그 기분이 어떠할지. 백의인이 어찌 생각하든 표영과 엽지혼은 웃고 난리를 치는 데 있어서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거의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처럼 웃어대던 둘은 장장 차 한 잔 마실 시간 동안이나 웃었다. 그러다 웃는 것도 지쳤는지 숨을 헐떡거리며 바닥에서 일어나선 입가에 묻은 침을 닦았다. 그래도 표영보단 인생을 더 오래 산 엽지혼이 사태를 수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꺼억 소리 내어 마저 웃다가 매달린 사내를 향해 물었다.

“이보게, 거기서 뭐 하고 있나?”

엽지혼의 말투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이 얼마나 어이없는 질문인가.

‘뭐 하고 있냐’니. 이것은 마치 누군가가 죽음의 위기에 처해 쓰러져 있는데 그를 보고 말하길 ‘당신은 왜 그리 죽어가는 것이오?’라고 묻는 것과 같다 할 수 있었다.

‘이 나쁜 놈들, 구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 깔깔대며 웃더니 이제 와선 뭐 하고 있냐고? 차라리 위에서 돌을 던지지 그러냐, 썅.’

매달린 백의인은 화가 치밀었다. 몸만 성했다면 당장에라도 요절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쉬운 것은 자신이었다. 그는 간신히 한 자 한 자 힘들게 말했다.

“여기서… 뭘 하다니… 헉헉… 이놈들아, 나를 끌어올려라. 구해주면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겠다. 헉헉…….”

엽지혼과 표영은 황당했다. 구해달라는 사람치고는 너무나 당당함이 가득했다.

“하하하, 지금 장난 하고 있는 것이오? 제자야, 이 사람이 굉장히 심심했던 모양이구나.”

표영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사부님. 하하… 혼자 놀라고 하고 우린 이만 들어가죠.”

“헉! 이, 이봐. 날 끌어올려 주어야 할 것 아니야.”

그는 다급했다. 이미 몸 전체에 마비 증세가 오고 있었다. 게다가 언제 나뭇가지가 부러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엽지혼과 표영은 전혀 개의치 않고 동굴 쪽으로 향했다. 몇 걸음이나 뗐을까.

“으아악∼!”

엽지혼이 비명을 내지르고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일식정(30문)정도밖에 버틸 수 없는 엽지혼인지라 시간이 되어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사부님!”

표영은 절벽에 매달린 사람이야 어찌 됐든 엽지혼을 들쳐 업고 동굴로 향했다.

“으윽… 가지 마… 헉헉… 끌어올려 줘야지… 헉헉.”

백의인의 힘없는 말에 표영이 쾌활하게 답했다.

“갔다 올게. 조금만 참어. 도저히 못 참겠으면 그냥 손을 놔 버려. 그럼 깨끗이 끝나는 거야.”

표영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져가자 매달린 백의인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어째 이리 재수가 없단 말인가. 사람이 달려오기에 구함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건만 하필 저런 머저리 같은 놈들이라니……. 아, 마교는 이렇게 끝이 나고 마는가.’

비록 자신의 말투가 예의 없이 나오긴 했다손 치더라도 둘의 행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바람 앞에 등불과 같이 위태로웠다. 독은 이미 온몸에 퍼졌고 간신히 심장으로 들어가는 것만 막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는 것만도 거의 초인적인 힘이라 할 수 있었다.

‘내가 조그만 조심했었더라면… 내가 묵각혈망을 소홀히 대하지만 않았었더라면… 이 위험한 길로 걸음을 옮기지만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후회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저 아까 그 머저리들이라도 다시 돌아와 구해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대로 만약 손을 놓게 되는 날엔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다시는 세상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고 몸이 말해 주고 있었다.

“어이, 잘 있었어?”

표영이 어느새 사부를 눕혀놓고 돌아와서 말을 건넸다. 백의인은 뛸 듯이 기뻤다. 이제껏 사람을 많이 만나보았지만 이렇게 반가운 것은 처음이었다.

‘이 머저리야, 어서 좀 구해주렴.’

“으윽…….”

말하기조차 힘들어 그는 신음 소리로 대신했다.

“이봐. 내가 아까 말하려다 사부님이 옆에 계셔서 말을 못했는데, 사람이란 상황에 맞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거야. 정말 살고 싶으면 ‘저 좀 살려주세요’,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거야.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 자, 그럼 어서 살려달라고 해봐. 안 그러면 나 이번에는 가서 진짜로 안 온다.”

백의인에겐 실로 염장을 지르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의 신분이나 체면상 어떻게 ‘살려주세요’라고 말한단 말인가. 하지만 일단 살고 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는 솔직히 말할 기운조차 없는 상태지만 혼신의 힘을 끌어내 가느다랗게 말했다.

“헉헉… 살… 살려주세…….”

마지막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표영이 따지고 들었다.

“‘살려주세’가 뭐야? 누굴 살려주자는 거야? 흐흐흐, 좋게 말할 때 똑바로 해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