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3장 (14/199)

 # 13

13.

제10장 처절한 수련

표영은 잠에 빠져 달콤한 꿈을 꾸고 있었다. 표영이 제일 좋아하는 꿈의 형태는 역시 만성지체답게 꿈속에서 곤하게 자는 것을 의미했다. 이게 심할 경우 어떤 날은 꿈속에서 잠을 자고, 그 자는 가운데 다시 꿈을 꾸는 경우도 있었다. 바로 지금이 그러했다. 한참 꿈 안에서 잠을 이루다 부스스 눈을 뜨는데 안개가 회오리치듯 사방을 휘몰아치다가 홀연히 눈앞에 모락모락 연기를 뿜어내며 밥상이 떡하니 등장했다. 밥상에는 국그릇이 놓여 있었고 국그릇 옆에는 친절하게 이 국이 무슨 국인지 큰 글씨로 기록되어 있었다.

견육국(개고기국).

표영은 출출함을 느끼고 한참 동안 고깃국을 떠먹었다. 냠냠쩝쩝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갑자기 입 안에 까칠까칠한 것이 느껴졌다.

‘뭐지?’

씹던 고기를 빼내 보니 고기에 개털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까칠까칠한 것은 개털이었던 것이다. 기분이 상해 ‘퉤퉤’ 하고 뱉어내는데 그때 마침 고깃국에서 잇몸까지 연결된 누런 이빨이 서서히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어거거…….’

표영이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누런 이빨들은 국물 위를 배회하더니 짖어대기 시작했다.

월월… 월월… 으르릉……!

‘헉! 이, 이건 뭐야! 이것들이 뜨거운 국물 속에서도 살아 있었단 말인가?’

어지간히 황당한 일에도 그러려니 하는 성격의 소유자인 표영이지만 이런 경우는 그 도가 지나친 것이었다. 근데 더 황당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쉬익-

국물 위를 떠다니던 이빨 하나가 솟아오르더니 표영의 어깨를 덥석 물어버렸다.

‘으악∼!’

얼마나 아픈지 고통이 뼈 속까지 파고들었고 비영이 터져나왔다. 손으로 잡아떼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고 개 이빨에서는 거품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 작은 국그릇에서 연달아 수십 개의 이빨들이 솟아올라 표영의 온몸을 잘근잘근 물어뜯기 시작했다.

‘으악∼살려줘! 이거 뭐야.’

너무나 큰 고통에 표영은 비명과 함께 깊은 잠에서 번쩍 하고 눈을 뜨며 꿈의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하지만 꿈이나 현실이나 악화일로(惡化一路)의 사태는 그게 그거였다. 한 마리의 개가 어깨를 물어뜯고 있는 중이었고 주위에는 대여섯 마리의 개들이 산발적으로 치고 빠지는 수법으로 물어뜯고 있었다. 물어뜯고 있는 족속은 개들만이 아니었다.

표영 또한 다른 개의 머리통을 깨물고 있는 중이었는데 꿈속에서 개털이 입 안에 걸린 것은 지금 이 상황이 꿈으로 형상화된 것이 분명했다.

표영은 손발을 어지럽게 뒤흔들며 개들과 일대 격전을 벌였다. 오늘로 견치지겁에 돌입한지 한 달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마음껏 자본 적이 언제였던지 옛날이 그립기만 했다.

사실 사부 원구협이 표영이 잠들 때든 깨어 있을 때든 시도때도 없이 개들을 풀어 물어뜯도록 했기 때문에 표영의 신경도 예전과 비할 수 없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견왕지로를 향해 달려가는 가운데 서서히 만성지체는 작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표영의 눈자위는 푸르스름한 기운을 잃지 않았지만…….

수련 5개월째, 견치지겁 중(中).

“으아아악∼!”

깨갱깽… 낑낑…….

사람의 비명 소리와 개들의 절규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지금 공터에서는 뿌연 연기 속에서 개와 표영의 처절한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대략 개들은 삼십여 마리 정도가 넘을 것 같았고, 그 가운데 표영과 개들이 서로 물고 물리고 뜯고 할퀴느라 정신없는 지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표영의 물어뜯는 솜씨가 여간한 것이 아니어서 누가 개고 누가 사람인지 분간이 안 갈 지경이었다.

“잘한다, 잘해. 힘내!”

“어… 어, 위험해… 옆으로 피해!”

“그래, 바로 그거야. 콱 물어버려!”

공터의 주변에는 약 100여 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열심히 표영을 응원하는 중이었다. 개들과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는 표영은 죽을 맛이었지만 주변 마을 사람들로서는 참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순간순간에 모두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아이들로부터 시작해서 가정 주부, 농부, 장삿꾼들, 할아버지, 할머니 등등 직업과 사회 계층을 막론하고 연령과 직업을 뛰어넘는 대단한 응원단이 아닐 수 없었다.

표영은 지금 견치지겁의 5개월째 과정을 밟고 있는 상태로 그동안 거의 삼백여 마리의 개들과 혈투를 벌이며 수많은 개들에게 부상을 입혔다. 물론 그 과정에서 표영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고난을 당한 터였다.

처음에는 잔머리를 굴려 개들에게 크게 물리면 상처가 나올 때까지는 편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사부 원구협이 구환보신단(狗患補身丹)이라는 영약을 복용시켰기 때문이다. 구환보신단은 개에게 물렸을 때 빠른 회복을 돕는 영약으로 복용 후 하루만 지나면 씻은 듯이 나았기에 다시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혈투를 벌여야만 했다. 그 효능으로 따지자면 개방의 구치환(狗齒丸)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게으른 표영으로서 이렇게 버틴다는 것이 신비로울 지경이었지만 사부 원구협은 상황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어갔다. 견치지겁의 과정 중 늘 원구협이 하는 말은 이것이었다.

“늘 깨어 있어야 하느니라. 눈만 떴다 하면 개들과 얼굴을 맞대어 싸우고 물려야 하며 잠을 자다가도 갑작스러운 기습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식사 도중에도 갑작스런 공격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표영이 받는 정신적인 고통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었다. 입술이 부르트고 혓바늘이 돋는가 하면 잠을 이루지 못해 개들과 싸우다가도 중도에 픽픽 쓰러져 험하게 뜯기곤 했다. 그 와중에 표영이 힘을 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주변 마을 사람들의 뜨거운 성원 때문이었다.

이건 사실 사부 원구협조차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 괴상한 대결을 구경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들게 된 것은 표영이 견치지겁의 두 달 과정을 이루고 있을 때부터였다. 심지어 나이 많은 노인들조차 응원의 열기는 뜨겁기 그지없었다.

관직에 있다 은퇴하고 소일하는 칠순 나이의 소하봉 노인의 말이다.

“내 이제껏 살면서 개들끼리 싸우는 개싸움은 많이 봐오고 돈도 걸어봤지만 사람과 개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싸우는 것은 머리에 털 나고 처음이야.”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이 12세부터 18세까지의 소년 소녀들은 ‘청안견투사(靑眼犬鬪士) 응원단’을 결성하여 격투(?)가 벌어지는 곳이 어디든지 따라가 뜨거운 성원을 보냈다. 그들은 청안견투사가 승기를 잡는 날에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고 개들에게 물어뜯기는 날에는 자기 몸이 아픈 것처럼 안타까워했다.

“나이도 우리와 별 차이가 나지 않건만 어찌 저리도 용감할까.”

그들은 또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때라 수많은 편지를 써 위로하기도 했다.

오늘 청안견투사님의 대결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답니다. 식사도 많이 하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셔서 내일은 꼭 좋은 모습을 보여주세요. 늘 지켜보고 있답니다.

- 금향이가.

표영은 개들과 격투를 벌이는 짬짬이 이런 격려의 편지를 읽으며 다시금 새로운 힘을 내곤 했다.

이런 열정은 동네 아줌마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몸에 좋은 것이라며 지렁이탕이나 개구리탕, 자라탕 등을 끓여 와서는 힘내라고 어깨를 두드려 주곤 했던 것이다. 또한 어린아이들에게도 표영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어린아이들은 집에 갈 생각은 않고 제일 먼저 표영에게 달려와 이름이 적힌 친필 서명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섰다. 표영이 직접 적어준 서명은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 어떤 것보다 가치있는 것이 되었으며 비싼 장난감과 교환도 가능한 보물과 같이 사용되었다.

표영은 견치지겁을 거치는 사이 인기인이 돼버린 것이다. 이런 별 우여곡절 끝에 표영은 6개월까지의 과정 동안 악전고투했고 끝내 모든 개들과 양패구상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오를 수 있었다.

“장하다, 제자야. 넌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로구나.”

원구협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표영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하지만 표영은 아직도 견치지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예전의 여유로움은 어디로 갔는지 늘 좌우를 두리번거리는가 하면 잠을 자다가도 개들의 습격이 있을까 봐 벌떡벌떡 깨어나곤 했다. 견치지겁이 끝난 후에도 며칠간은 불안한 듯 눈을 굴리며 초조한 목소리로 묻곤 했다.

“사부님, 정말 이제는 견치지겁이 끝난 거죠?”

“그렇다. 하하하, 이제 힘든 과정은 다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편안한 마음을 가지거라.”

사부의 위로가 있었으나 표영은 6개월 동안의 습관이 몸에 배어 쉽사리 믿어지지 않았다.

“고생했으니 긴장을 풀고 푹 좀 쉬도록 하거라.”

표영은 사부의 배려로 마음의 여유를 찾고 7일 정도 긴 잠을 잘 수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져본 휴식이었다.

“자, 이번에는 견육다식의 과정이다. 그동안 견치지겁의 어려운 관문을 잘 통과해 주었으니 내일부터는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만 하면 되느니라. 일전에 말했듯이 모든 식사는 개고기만 먹도록 한다. 알겠지?”

“…….”

표영이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대답이 없자 원구협이 다시 물었다.

“왜 그러느냐. 함께 치고 박은 개들을 잡아먹는 게 마음에 내키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냐?”

원구협은 참으로 마음이 여리고 감상적인 제자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나약한 마음을 가져서야 원…….’

“고개를 들어보거라.”

서서히 고개를 드는 표영의 눈은 눈물을 주르르 쏟고 있었고, 얼굴은 환희로 가득 차 있었으며, 입은 귀까지 닿을 듯 벌어져 있었다.

“이∼ 야∼ 호∼!”

너무나 기쁜 나머지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고 야호를 외치는 데 시간이 좀 걸린 것뿐이었다.

“뭐, 뭐냐… 허허… 참.”

원구협은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원구협의 말에 따라 그날부터 표영은 일체 모든 식사를 개고기로 대신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견치지겁 수련 시 표영으로부터 원한을 샀던 개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하나둘씩 모습이 사라져 갔다.

개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서로를 확인하며 서로 무사한지, 안녕한지를 살폈다. 아침에 일어나면 첫 인사는 ‘간밤에도 안녕하셨나’였고 잠을 자기 전에는 ‘오늘도 무사하길 비네’가 보편적인 인사말이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친구가 보이지 않게 되면 오싹한 기분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늘은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다음 차례는 자신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가운데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갔다.

또한 개들이 사라진 순서는 표영의 지목에 따라 이루어졌기에 그날부터 모든 개들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표영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굴욕적인 자세를 취하며 꼬리를 살랑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너! 너! 너! 너! 오늘 식사로 변해라.”

혹은…….

“거기 너!”

이렇게 외치면 지목받는 개는 기겁을 하게 된다. 그때 다시 말하길.

“…말고 옆에 있는 놈.”

이런 식이다 보니 개들로서는 자나 깨나 몸조심이었다. 이렇게 지목을 하게 되면서 표영은 점점 개들로부터 경외의 대상이 되어갔고,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표영의 몸에 쌓여갔다. 그렇게 다시 삼 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먹어치운 개의 숫자는 대략 오십여 마리 정도. 원래대로 하자면 30여 마리도 먹어치우기 힘든 상황이겠으나 견치지겁으로 이를 갈고 있던 표영인지라 오기로 하루에 한 마리씩 잡아먹어 버릴 정도였기에 숫자가 늘어난 것이었다. 불굴의 의지를 발휘해 먹고 게워내고 먹고 게워내고를 반복한 끝에 이루어낸 인간승리라고나 할까. 그로부터 표영의 입에서는 노린내가 진동했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고기 냄새가 주변을 압도해 부근에 있는 개들은 모두 표영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 다음으로 표영은 흉악육식에 이르렀다. 이때부터는 말 그대로 흉악한 성정을 지닌 짐승들을 먹는 시간이다. 원구협은 사냥을 가기 전 표영에게 물었다.

“뭐가 좋겠느냐?”

“음, 사부님! 호랑이가 어떨까요?”

“그거 좋지, 내 잠깐 다녀오마.”

표영은 사부가 어떻게 나오나 보려고 말한 것이었는데 대답은 너무 간단했다. 마치 ‘고양이 한 마리 잡아가지고 오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명색이 맹수의 왕이 아닌가 말이다.

‘허허… 사부님도 참 말을 너무 쉽게 하시는군. 호랑이가 그리 쉽게 잡힐라고.’

하지만 두 시진(약 4시간) 뒤 표영은 생각을 정정해야만 했다. 사부가 두개골이 빠개진 호랑이를 질질 끌고 온 것이다.

원구협은 호랑이를 빨랫감 던지듯 뜰에 던져 놓고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표영에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먹자.”

“네? 아… 네… 먹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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