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2장 (13/199)

 # 12

12.

“하, 한번 생각… 은 해볼게요.”

덜덜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한이 걸린 듯 떨었다.

“생각은 해보겠다고? 흥!”

원구협은 코웃음을 치더니 몽둥이를 사정없이 휘둘렸다. 가문의 비전인 타구일일(打狗日日)로 익혀온 몽둥이질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퍼퍽퍼퍽-.

“으악! 어거거…….”

인정사정없이 퍼부어지는 몽둥이질에 표영은 바닥을 구르며 연신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표영은 거의 반 시진(1시간) 동안이나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두들겨 맞음에도 불구하고 비법을 배우겠노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무공도 익히지 않은 몸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오기가 아닐 수 없었다.

표영은 언뜻 게으르기 때문에 그저 하자는 대로 다 할 것처럼 보이나 실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게으른 사람일수록 원래 오기가 강하기 마련이다.

그 이유는 주위의 수많은 갈굼과 따가운 시선에도 꿋꿋이 버텨내면서 자연적으로 철면피적인 기질이 몸에 배어가기 때문이다. 오기는 게으름을 피운 나날이 길면 길수록, 혹은 그 정도가 심한 사람일수록 더 강하다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표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제껏 중원 천지에 비견될 만한 사람이 없을 만큼 게으른 만성지체가 아니던가. 그러므로 그 오기와 버팀이 대단한 것이었다.

이렇듯 철면피신공(?)을 기본 내공으로 간직하며 들었던 말도 못 들은 척하기와 극악한 환경에서도 잠 이루기를 실천해 온 만성지체의 표영인지라 몽둥이찜질을 당하면서도 선뜻 개 비법을 배우겠다고 말하지 않는 깡다구를 부렸다.

하지만 표영도 기괴한 인물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개장수 원구협도 결코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이제까지 잡아온 개가 수천 마리에 해당하는 그로서는 하루 종일 팬다고 해도 전혀 거리낌을 갖지 않을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은 전심전력으로 몽둥이질을 하고, 한 사람은 얻어터지는 데 온 힘을 기울인 가운데 두 시진(4시간)이 지났다. 이 정도면 어느 한쪽이 포기할 법도 하건만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잠깐 숨을 돌리고 다시 원구협은 두 시진을 쉬지 않고 패버린 후 밧줄로 꽁꽁 묶어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아놓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표영은 몸이 저려오는 가운데서도 아직까지 의지는 굳건했다.

‘이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음… 그래, 잠을 자야겠구나. 얼른 자자. 자야 해. 자장… 자장… 자장…….’

스스로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사상 초유의 행위를 하면서 잠을 청하려 했다. 하지만 만성지체도 사람인지라 뼈마디가 욱신거려 잠들 수가 없었다.

그때 ‘꺼억’ 하는 경쾌한 트림소리가 들렸다. 원구협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오며 낸 소리였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몽둥이를 집어 들고 다시금 사정없이 패기 시작했다. 무심의 극치를 달리듯 얼굴엔 아무런 표정변화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나는 당연히 해야 할일을 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너무나 태연했기에 혹여 누군가 원구협의 모습을 보았다면 그 또한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을 것이다.

퍼퍼퍼퍽- 퍽퍽- 퍼퍼퍽-.

“으아악… 사람 살려……!”

이렇게 이어진 타격 소리와 비명 소리는 놀랍게도 삼 일이라는 시간 동안 울려 퍼졌다. 그 처절한 울림에 하늘과 땅이 놀라고 산과 들이 숨을 죽였으며 더불어 주변의 개들도 숨소리를 죽여야만 했다. 말이 좋아 삼 일이지 그건 차라리 전쟁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것도 아주 일방적인 전쟁…….

가끔 큰 충격으로 인해 표영이 혼절하기도 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원구협은 개의치 않고 팼기에 그 아픔으로 인해 혼절에서 깨어나 또 비명을 지르고 또 혼절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삼 일이 지나가고 사 일째가 되려고 할 쯤 표영은 비로소 현실의 두터운 벽을 인식했다.

‘목숨을 부지하려면 개 비법을 배워야 한다. 일단 살고 보자.’

개 비법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이렇게 맞는 것보다는 쉽겠지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 것이다.

“하라부지(할아버지) 비우께어(배울게요). 그마(그만) 때르어(때려요).”

이 말을 간신히 내뱉은 표영은 곧 풀려날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발음이 명확치 않아 반항하는 것으로 오해한 원구협이 반 시진을 더 패버린 것이다.

그 후 다섯 차례에 걸쳐 계속된 표영의 말로 표영의 의지를 알게 된 원구협은 비로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밧줄을 풀어주었다.

“하하하! 장하다. 잘 생각했어. 좀 아팠지? 하하하!”

표영의 고개가 푹 처졌다.

‘좀 아팠냐고요? 이거 정말 너무하시는군요.’

그날 밤 표영은 온몸에 붕대를 친친 감고 오랜만에 진짜 밥다운 밥을 먹을 수 있었다(물론 팔다리가 부러졌기에 원구협이 떠 먹여주는 것을 누워서 간신히 먹었지만). 하지만 그 맛이란 개밥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후 한 달 정도가 지나 표영의 몸이 회복되자 원구협은 사제의 연을 맺는 의식을 거행했다. 그는 개장수의 업(業)을 어느 무림 문파보다도 더욱 소중하게 여겼고 자신의 일에 대한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했기에 마치 무공을 전수하는 사부처럼 구배지례를 행하도록 했다.

표영은 무릎을 꿇고 반복해서 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절을 아홉 번이나 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세 번째부터는 급격히 속도가 떨어져 고의적으로 느린 동작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 그냥 엎드려 잤으면 좋겠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닌지라 몸에 힘이 없는데다가 밥을 먹은 지 얼마 안 된 터라 잠이 몰려온 것이다.

원구협은 사랑스런 제자가 느릿느릿 절하는 것을 보고 크게 만족했다. 그 모습은 달리 보면 깊은 성의가 담겨 있는 듯 보였다. 그렇게 아홉 번째 절을 받은 후였다. 이제 막 거둬들인 제자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후에 도무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음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얼마나 감동했으면 저럴까. 내가 사람 하나는 잘 골랐지. 암, 그렇고말고. 흐뭇하구나.’

그렇게 일 다경(15분) 정도가 지날 때까지도 표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시금 일 다경이 지났다. 원구협은 이제 기다리는 것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하기사 표영이 머리를 들 때까지 지금껏 참았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라. 너의 충성된 마음은 내 잊지 않으마.”

원구협은 표영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러자 작게 미는 힘에 의해 표영의 몸이 흔들흔들하더니만 그대로 옆으로 허물어졌다. 입가엔 어느새 침이 질질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미 잠든 지 오래인 것이다.

원구협은 이 황당한 상황에 벌떡 일어났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를 몰라 할 뿐이었다.

“뭐, 뭐냐. 이건…….”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어찌나 추운지 동굴 안에서 두꺼운 이불로 온몸을 친친 감고 있어도 그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펴영은 추위로 몸을 떨고 있는데 천장에 매달린 고드름 세 개가 떨어지며 옆구리를 때렸다.

“으어어∼!”

극심한 고통에 번쩍 눈을 떠보니 개장수, 아니, 이젠 사부라고 불러야 할 원구협이 노려보고 있었다. 아까 잠결에 느낀 추위는 구혈잠혈로 공포 분위기를 이끌어 낸 때문이었고 고드름 세 개는 타구일일의 몽둥이찜질 세 번이 꿈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동안 지켜보면서 새로 받아들인 제자가 게으르다는 것을 간파한 원구협이 이런 방법으로 깨운 것이었다.

“이놈, 어서 일어나라. 오늘부터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겠다.”

표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네? 잠 좀 더 자면 안 될까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표영은 다섯 대를 벌었다.

“으아악∼!”

원구협은 표영과 마주 보고 앉아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르침을 베풀기 전 우리 가문의 비사(秘史)를 네게 알려주겠다. 이 사부의 이름은 원구협(願句俠)이라고 한다. 원래 우리 집안은 대대로 개장수의 집안으로 전 중원에 우리를 따를 만한 집안은 없다고 할 수 있느니라. 나의 할아버지, 즉 너에게는 사조님이 되시는 분의 존함은 원구제(願句帝)로 전설적인 개의 황제로 군림하셨던 분이다. 그분의 얽힌 이야기는 참으로 경이롭다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만큼 대단하단다. 어허, 이놈 보게!”

원구협은 기가 막힌 듯 고함쳤다. 평상시와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잠을 못 잔 표영이 침을 흘리며 졸고 있었던 것이다.

“정신 차리지 못할까!”

옆에 높아둔 검은색 죽봉이 여지없이 날아와 머리를 가격했다.

따악-

표영이 몸을 꿈틀하더니 소매로 침을 닦으며 말했다.

“사부님, 계속 말씀하십시오. 제자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워낙에 야무진 대답 소리에 원구협이 물었다.

“정말이냐?”

“사부님, 계속 말씀하십시오. 제자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냐?”

연거푸 똑같은 말을 하자 원구협은 화가 치밀었다.

“사부님. 계속 말씀하십시오. 제자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이 녀석이 장난하겠다는 것이냐?”

“사부님. 계속 말씀하십시오. 제자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이런 고얀 놈……!”

원구협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흑죽봉을 들어 빠르게 휘갈겼다.

“으어억! 무슨 일이에요. 사부님?”

실은 표영은 이제야 깨어난 것이었다. 사부가 말하는 도중에 몰래 잠자기 위해서 머릿속으로 한 번씩 대답이 나오도록 정해놓았는데 처음에 한 대 얻어맞으면서 그게 흐트러져 말끝마다 나오게 된 것이었다. 점점 천한 생활을 하다 보니 만성지체의 천재성이 조금이나마 발휘된 것이다.

“허허… 이놈 보게나. 다시 졸면 그땐 용서치 않겠다.”

“하하하.”

표영은 멋쩍음을 달래기 위해 크게 웃은 후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정성을 다해 듣겠습니다.”

“좋다. 음,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그렇지. 중원에 있는 개들치고 할아버지 앞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은 개가 없었고, 그 위력은 하늘을 두르고 바다를 뒤덮을 만한 것이었다. 그런 할아버지께도 어려운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란다. 할아버지께서는 원래 20세 때에 목숨을 끊으려고 하셨다. 그 이유는 어린 나이에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어 그만 가문의 비전을 전수받지 못하셨기 때문이지. 개장수가 되지 못하고 일생을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신 게야. 아마도 그때 할아버지께서 스승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리고 기연을 얻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나 또한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때부터 우리 집안은 진정한 견왕지가(犬王之家)가 될 수 있었던 거란다.”

개장수 원구협은 마치 그 시절 속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듯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뜨며 말을 이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할아버지는 자신의 대에 이르러 개 비법을 전수받지 못하게 되자 삶이 의미를 잃고 그로 인해 절벽에서 뛰어내리시게 되었단다. 근데 놀랍게도 절벽에서 떨어지는 할아버지를 마침 그곳을 지나시던 조사님께서 날아와 할아버지를 구하시게 된 것이지. 그리고선 목숨을 끊으려 하셨던 이유를 들으시고 크게 웃으셨단다. 이렇게, 으하하하하!”

원구협은 실제 크게 웃음소리를 흉내 냈다. 그 모습을 표영이 눈에 힘을 주고 바라보자 약간 멋쩍어진 원구협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험험… 그냥 한번 웃어봤다. 험험… 계속 이야기하마. 그렇게 웃으시곤 견왕지로의 비결을 자세히 알려주시고 유유히 사라지신 게지.”

표영은 사부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어떻게 중간에서 구해냈다는 말인가. 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싫어하는 표영이라 사람이 날아다니듯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나도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힘들게 걷지 않아도 될 테니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그나저나 조사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시구나.’

한 번도 보지 못한 조사님이었지만 왠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부님, 그분은 어떤 분이셨나요?”

“사조님은 모든 것이 신비에 싸인 분이라고 할 수 있지. 그분의 존함은 양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모님은 하영이라는 이름을 쓰신다고 하더구나. 그 후에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도 찾을 수가 없었기에 제자로 삼으시고 비전을 전수해 주신 그날을 우리 가문에서는 큰 명절로 삼아 기념하고 있단다.”

표영은 왠지 모를 전율에 휩싸여 조용히 ‘양정’이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양정이라고요?”

“그렇다. 그때부터 우리 가문은 번창하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중원 최고의 개장수 가문으로 군림할 수 있게 된 것이란다. 내가 너를 처음에 받아들이려 했던 것은 이 나이가 들도록 아직 내게 아들이 없는 터라 외부인 중에서라도 일생을 걸고 충성을 다할 제자를 구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전수해 주려고 한 것이었다. 사실 이 비전은 아무에게나 전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조님께서도 그 놀라운 비법을 외인이셨던 할아버지께 전수해 주시고 제자로 받아들여 주셨으니 그 뜻을 받들어 비록 네가 개방에 마음을 두고 있다고는 해도 그 재능이 아까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러니 너는 마음을 다해 전심으로 배움에 열심을 다해야 할 것이다.”

“네, 사부님. 그런데…….”

“뭐냐?”

“혹시 배우기 힘든 것은 아니겠죠?”

그 질문에 원구협의 표정이 굳어지자 표영이 얼른 말을 바꿨다.

“하하… 뭐, 물론 그렇다고 제가 배우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물어본 거예요.”

원구협도 얼굴을 풀고 여유 있게 말했다.

“하하하, 네 녀석이 해온 6개월 동안 개밥을 뺏어 먹는 일이 제일 어려운 것이었다. 나머지는 훨씬 수월한 것들뿐이니 염려하지 마라. 게다가 네놈은 사흘간 몽둥이질을 당하고도 버티는 깡다구가 있지 않더냐. 하하하!”

원구협은 몽둥이질에 대한 말을 꺼낸 후 약간 미안한 감이 있어 너털웃음으로 무마하려는 듯 크게 웃어젖혔다.

“뭐 그렇다면 문제될 것이 없죠.”

이때까지만 해도 표영은 험난한 고난의 길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원구협은 다시금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구결을 전수코자 입을 열었다.

“잘 들어라. 이제 네가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은 이름하여 ‘견왕지로(犬王之路)’라 한다. 견왕지로라 함은 개들의 왕이 걸어가는 길로써 사람과 제일 가까이에 있는 개들을 잘 다스려 모두에게 유익을 끼치는 참된 삶을 말하는 것이다. 늘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

한마디 한마디가 오랜 수양을 거친 도사처럼 거창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견왕의 길은 일곱 관문을 넘었을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원구협은 견왕지로의 일곱 관문의 큰 흐름을 설명해 주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첫째. 견식식탐(犬食食耽).

개밥을 탐냄과 동시에 오히려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반 년 동안은 스스로 밥을 지어먹거나 돈을 내어 사먹어서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바이니 오로지 시전자는 개밥만을 탐내고 개밥으로 연명해야만 한다. 이렇게 함은 개와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 이 과정이 없이는 결단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거의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은 삼 일을 넘기기 힘들고 비범한 사람은 두 달 정도는 버틸 수 있다.

하지만 그 뒤 주화입마에 빠져 미쳐 버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할 수 있다. 진정한 기재와 인연자는 6개월의 기간을 마치 짧은 며칠인 것처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될 것인 바 그런 자야말로 견왕의 자격에 합당한 자라 할 수 있다.

둘째. 견치지겁(犬齒知怯).

견치지겁이라 함은 개 이빨의 무서움을 안다는 것으로 견식식탐과 마찬가지로 6개월여에 걸쳐 수행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이 과정은 견식식탐을 수행했을 때라야만 연마할 수 있는 것으로 1단계를 통과한 자는 어렵지 않게 견치지겁을 맞아들일 수 있다. 그 까닭은 반 년 동안 개들은 밥을 빼앗긴 원한에 사무쳐 있는 터라 그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니 물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는 개의 이빨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끝마쳐야만 한다. 이 공부의 목적은 개 이빨의 무서움을 알아야만이 비로소 다스림도 가능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무서움과 고통을 알고서야 비로소 진정한 지존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견육다식(犬肉多食).

약 세 달에 걸쳐 수련해야만 한다. 이때는 오로지 모든 식사를 개고기로만 해야 할 것이며 다른 음식을 입에 대서는 절대 안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온몸에는 개들이 두려워할 기운이 쌓이게 되는 단계에 접어들게 되어 이때부터는 개들로서는 약간의 두려움을 갖게 될 것이다. 견육다식에 이르게 되면 비로소 입신(立身)에 이르게 된다.

넷째. 흉악육식(凶惡肉食).

이때는 개보다 더욱 흉포한 동물들을 잡아먹도록 해야 한다. 견육다식의 과정에서 개들을 먹어치운 것과 같이 늑대나 살쾡이, 심지어 호랑이나 곰 같은 것을 주식(主食)으로 삼아야 한다. 만일 하루하루 이런 흉악한 맹수들을 먹을 수 없을 때는 그 대신에 개고기로 대신하도록 하되 이때도 다른 것은 절대 입에 대서는 안 된다. 기간은 두 달이다.

다섯째. 타구일일(打狗日日).

타구일일이라 함은 하루하루 개를 두들겨 패야 한다는 뜻으로 흉악육식으로 쌓은 기세를 빌어 닥치는 대로 개들을 패버려야 한다. 기간은 석 달, 매일 하루도 걸러서는 안 되는 것은 앞의 단계와 동일하다. 마음이 나태해져 하루라도 쉬게 된다면 이제까지 쌓은 대법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인즉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 석 달 동안의 타구일일을 거치게 되면 몸에서는 개들이 위축될 만한 기운이 암암리에 풍겨 나와 어느 개라 할지라도 꼬리를 내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친다면 뛰어난 개장수는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진정한 견왕지로의 지존이 될 수는 없게 된다.

여섯째. 구혈잠혈(狗血潛血).

말 그대로 개의 피를 뒤집어쓰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개의 피를 목욕할 때처럼 가득 담아놓고 하루 세 번 각기 한 시진(두 시간)씩 총 세 시진에 걸쳐 온몸을 담그도록 해야만 한다. 기간은 석 달. 반드시 하루도 거르지 말고 피를 뒤집어쓰고 있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까지 이르게 되면 비로소 몸에는 살기(殺氣)로 가득 차게 될 것이며, 그 살기를 쏘인 개들은 하나같이 꼼짝 못하고 꼬리를 내리는가 하면 오줌을 갈기고야 만다. 이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혹여 개 피를 한 모금이라도 마시게 되는 날이면 심각한 부작용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후유증이 있을지는 피를 마신 분량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인 심신평정을 온전히 수행한다면 주화입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 심신평정(心身平定).

심신평정이라 함은 이제까지 쌓은 모든 것을 마음에 정리하고 그동안 몸에 배인 개에 대한 살기와 욕망을 버리는 것이다. 한 달에 걸쳐 수련하며 심신을 맑게 하여 평정한다면 비로소 평범한 가운데 있으나 비범의 경지인 지존의 자리에 있게 되고 지존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평범해 보이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더불어 살기를 뿜어냄에 있어서도 뻗고 거둬들임이 자유자재의 경지에 이르게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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