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11.
제9장 첫 번째 사부를 만나다
표영은 뒹굴뒹굴 거리며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생각했다. 이젠 어떻게 하면 개 비법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였다.
‘개 비법… 개 비법… 개를 눈으로 제압해야 하는 법.’
그렇게 장령 지방에 한 달간을 이리저리 뒹굴 거리며 빈둥거리고 있을 때였다. 한참을 자다가 길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표영의 눈이 찻잔처럼 휘둥그레졌다.
그가 본 것은 한 노인과 여섯 마리 개들의 행진이었다.
비쩍 마른 노인이 앞에 걸어갔고 그 뒤로 개 여섯 마리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쫄쫄쫄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끈이나 줄 같은 것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개들은 덩치가 엄청 컸고 면상도 우락부락한 것이 하나같이 성질이 난폭하게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잔뜩 풀이 죽어 있는 게 애처롭게 보일 정도였다.
‘와∼ 대단한걸. 어떻게 험악한 개들이 저리도 잔뜩 쫄게 되었을까. 내가 저 할아버지처럼만 될 수 있다면 개방에 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텐데. 흐흐흐…….’
표영은 배시시 웃으며 개들 뒤쪽으로 쭐레쭐레 따라갔다.
늙은 개장수는 뒤따르는 표영을 힐끔 쳐다보며 웬 떨거지냐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렇다고 따라오지 못하도록 막지는 않았다. 개장수를 따라 도착한 곳은 장령 지방의 변두리였다.
개장수의 집은 아주 특이했다. 대개의 집이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 반해 개장수의 집은 담벼락 대신 개 우리가 담을 대신해 빙 둘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건 뭔가 달라도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개장수가 개 우리 사이로 지나자 덩치가 큰 개부터 시작해서 작은 강아지까지 모두들 꼬리를 흔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인기 만발의 대대적인 환영 인사였다.
‘정말 대단한걸.’
표영은 개장수의 집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서서 어떻게 하면 개장수에게 비법을 배울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냥 들어가서 한 수 배우겠다고 말할까? 음… 혹시… 이거 너무 어려운 난관을 거쳐야만 터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겠는걸.’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표영인지라 생각만으로도 피곤이 몰려들었다. 개방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지만 정해진 틀이나 규칙적인 생활을 제일 두려워했기에 이곳까지 와서 다시 망설여진 것이다.
‘왜 이리 복잡한 거야.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표영은 머리가 복잡해지자 잠을 자고 나면 어떻게 해결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곧 바닥에 눕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오랜만에 그리운 어머니의 모습이 보았다. 언제나 보아도 또 보고 싶은 어머니의 모습이…….
‘어머니, 훌륭한 거지가 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렇게 몇 날을 표영은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개장수 집 근처를 배회했다. 그런데 그렇게 지내는 데 있어서 문제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잠을 자면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기에 배는 마치 구멍이라도 난 듯 허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면 마을이 있는 것을 이곳에 오면서 보았지만 거기까지 간다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입장에서 오 일이 지났다.
오 일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지내다 보니 뱃가죽이 뼈와 찰싹 달라붙어 숨을 쉬면 가죽이 뼈에 부딪치며 아파올 정도로 배가 고팠다.
그러다 문득 표영은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그 생각이란.
‘당장 눈에 띄는 것을 아무것이나 먹자. 귀찮다.’
이것이었다. 오로지 중원 천지에서 만성지체를 타고난 표영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근데 중요한 건 당장 눈에 띄는 것이 다름 아닌 개밥뿐이라는 것이었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구나. 개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도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잖아.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니 개들도 이해할 거야.’
물론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수도 없이 널려 있지만 표영의 눈엔 오로지 개밥밖에 안 보였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표영은 처음엔 개들이 모두 잠들어 있을 때를 노렸다. 밤중에는 주로 그릇에 건더기보다는 국물만이 남아 있었는데 개들이 자다가 목마를 때 한 번씩 일어나서 혀로 국물을 핥아먹기 위해 남겨놓은 것들이었다.
표영은 그나마 미안한 마음에 국물만을 먹어치운 것이었다.
표영 딴엔 자신의 이 기특한 마음을 개들이 분명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개들 입장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개들은 아침이 되면 마른 목을 축일 국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음에 분노했다. 혹시나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까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았지만 놀랍게도 남김없이, 깔끔히, 여지없이 그릇은 비워져 있었던 것이다. 개들에게 있어서 그 황당함은 소변을 보려고 했는데 느닷없이 대변이 나와 버리는 것과 비교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혹시 주인님이 국물을 버리신 걸까?]
[목말라--.]
개들은 자기들끼리 멍멍, 왈왈, 짖어대며 이 불가사의한 사태를 파악하려 노력했지만 전에 없던 일이라 어떤 개도 진상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개들이 문제의 진상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밤을 새가며 그릇을 지키던 몇몇 개들이 얼마 후 범인을 찾아낸 것이다.
[저… 저놈은 이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빌어먹을 거지 아니야!]
[ 어먹을 게 따로 있지 우리 것을 뺏어먹어. 꼴에 또 맛있는 줄은 알아가지구.]
[절대 못 준다. 내 밥은 내가 지킨다!]
결사적인 항전 태세를 갖춘 개들은 먹을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그릇을 지켰다. 하지만 표영도 살아야 한다는 처절한 생존논리에 입각해 빠른 손놀림으로 개밥그릇을 수중에 넣고 그릇을 비워 나갔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특이한 점은 그릇을 가로채는 그 순간에도 개들은 전혀 짖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표영은 나름대로 자신의 동작이 워낙에 느려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아서라 생각했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논리였다. 무슨 조화인지는 몰라도 개들은 뻔히 보는 앞에서 그릇을 탈취 당했을 때 분노로 가득 찬 눈을 번뜩이고 흉악한 이빨만 드러낼 뿐 결코 짖어대는 일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표영의 등장으로 인해 개들은 밤이면 밤마다 단 한시라도 경계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밤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차츰 담이 커진 표영이 낮에도 어슬렁거리다가 개들이 밥을 먹을 때 손을 집어넣어 한 움큼씩 개밥을 가로채곤 했던 것이다.
비록 게으른 표영이지만 그래도 먹고 사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능인지라 창살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빼는 동작만큼은 신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쩌다 한두 번 개에게 물리는 일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개 이빨을 피해낼 수 있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생활 중에 표영은 가끔씩 개장수의 예리하게 빛나는 눈과 마주치기도 했는데 이상하게도 개장수는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고 단지 가끔씩 번뜩이는 눈으로 주시하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럴 때 표영은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지라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슬며시 웃어주곤 했다.
어느덧 표영이 개밥으로 연명한 지 삼 개월이 지났다. 누군가에게 개밥만 먹고 삼 개월, 아니, 일주일만 보내라 해도 삶의 회의를 느끼고 차라리 죽겠노라고 말할 테지만 표영에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원래부터 시간 개념이 극히 희박한 고로 삼 개월은 짧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에 반해 착취당하는 입장에 놓인 개들에게 있어서 삼 개월은 지옥과 같은 나날이 아닐 수 없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개들은 거지로부터 자기들이 먹어야 할 밥을 빼앗길 때마다 스스로 분노를 삭일 만한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 방법들은 각 개들의 성격과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는데 제일 많은 개들이 취한 행동들을 순위대로 5위까지 분류해 보자면 이러했다.
1위. 화를 참지 못해 우리 안에서 발광을 하며 창살에 머리를 박아대는 바람에 머리가 터진 개들.
2위. 밥을 지키느라 잠을 못 자 눈이 시뻘겋게 변한 채 불면증에 시달리는 개들.
3위. 밥을 빼앗겨 점점 비쩍 말라가며 신경쇠약증에 걸린 개들.
4위. 드물게 나타났으나 혀를 물고 자살을 시도한 개들.
5위. 자포자기한 것인지, 아니면 도를 터득한 것인지 뺏어가든지 말든지 그저 멍한 눈으로 푸른 하늘만 바라보는 개들.
그렇게 다시 석 달이 더 지나 개장수 근처에서 개밥을 축낸 지 총 여섯 달이 흐르게 되었을 때였다. 표영은 이날도 어김없이 개밥으로 배를 채우고 한숨 잔 후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보게. 자네는 어디서 온 누구인가?”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탈한 옷차림의 늙은 개장수였다. 비쩍 마른 몸에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지만 눈빛만은 노인답지 않게 강렬했다.
“네? 아, 개장수님이시군요. 아이고, 이거 제가 그동안 밥을 축내면서 가끔 뵙습니다만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습니다요. 죄송해서 어떡하죠.”
육 개월 동안 공짜로 밥을 얻어먹은 것이 그래도 미안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숙였다.
“괜찮네, 개보다는 사람이 먹고 사는 게 중요하지 않겠나. 다시 묻네만 이곳엔 무슨 목적으로 온 겐가?”
노인은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제가 여기 온 이유는 사실 개방에 들어가려는 생각 때문이었답니다. 전 훌륭한 거지가 될 참이거든요. 그런데 그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그 말에 노인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표영은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개를 잘 다룰 줄 알아야만 개방 제자가 될 수 있다지 뭐예요. 음… 그러니까 눈빛만으로도 개를 제압할 수 있어야 하는, 뭐 그런 수준에 올라야 한다고 하지 않겠어요.”
표영은 사실 이 말이 개 비법을 좀 배우면 안 되겠냐는 뜻을 간접적으로 한 것이나 다름이 없어서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거린 후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개 비법을 배우려고 이곳까지 오긴 왔는데 막상 배우려니 귀찮은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표영이 말꼬리를 흐리자 개장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음… 그렇군. 그럼 자넨 아예 이 기회에 개방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개장수가 돼보는 게 어떤가?”
표영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다른 건 몰라도 그건 곤란해요. 저는 꼭 거지가 되어야 하거든요. 그것도 꼭 개방에 들어가야 하구요.”
개장수의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가득했다. 이 개장수의 이름은 원구협으로 집안 대대로 개장수의 길을 걸어온 원가의 명문 후손이었다.
“그렇군. 자네가 정 싫다면야 어쩔 수 있겠나. 또 보세.”
그는 쓰게 입맛을 다시며 돌아섰다.
밤중에 개장수 원구협은 밖을 나와 표영의 행동을 살펴보았다. 살금살금 다가가 개밥그릇을 가로채는 모습을 보고 절로 한숨이 나왔다.
“휴…….”
그가 낮에 표영에게 한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진정한 후계자를 물색 중이었다. 나이는 벌써 60대 중반이 되어 가지만 아직까지 대를 이를 자식이 없다보니 이러다 대대로 물려받은 비법이 사라지지나 않을까 염려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저런 아이를 발견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건만…….’
그가 이처럼 아쉬워하는 이유는 요즘 젊은 것들은 무공이나 기타 학문에 관심을 기울일 뿐 도통 개 비법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표영의 놀라운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역시 뜻을 다른 곳에 두고 있으니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개장수가 되겠노라고 지망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들 삼 일도 견뎌내지 못하고 하루 만에 도망가 버리기 일쑤였다. 그 원인은 개들의 왕이 되는 첫 번째 단계를 넘기기가 무척이나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 첫 번째 단계는 견식식탐(犬食食貪)이라 불렸다. 견식식탐이란 개밥을 약 6개월여에 걸쳐 먹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어지간히 비위가 강한 사람들조차 열흘을 넘기기 힘든 것이다. 아니, 열흘 정도라면 그나마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아무리 개장수라는 직업이 전망과 수입이 좋다 해도 흔들림 없이 6개월간 개밥을 먹는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애송이 같은 떨거지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건만 견왕지로(犬王之路)의 1단계인 6개월 과정의 견식식탐을 스스로 달성해 버린 것이다.
그러니 원구협으로서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동안 개들이 짖지 않았던 것은 원구협이 표영을 더 관찰해 보고자 개들에게 엄명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개들로서야 그 말을 거역할 시 바로 식탁에 놓이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떤 개도 짖지 않았던 것이다. 개장수 원구협은 이대로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비법이라도 전수를 해야 할 것인가 갈등에 휩싸였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런 기재를 다시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비록 개방에 들어간다고 해도 가르쳐야 되지 않을까? 나의 대(代)에서 비전이 사장(死藏)된다면 조상님들을 무슨 면목으로 대한단 말인가. 그래, 이 녀석을 통해 후대(後代)에나마 전수될 수 있도록 하자.’
다음 날 원구협은 표영을 앞에 두고 굳센 어조로 말했다.
“음… 자네가 나중에 개방에 가든 가지 않던 그것은 상관하지 않겠네. 하지만 내 모든 것을 자네에게 전수해 주고 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표영은 느닷없는 제안에 머리가 아팠다. 밥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트림을 꺼억- 하고 토해낸 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야 손해 볼 것이 없지만 개장수님은 큰 손해를 보는 것이잖아.’
또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운학 할아범이 말하길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고 했는데 나중에 괜히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사람이란 원래 하라고 하면 하기 싫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어지는지라 왠지 내키지 않았다.
“음… 개장수님의 말씀은 고맙지만 생각해 보니 배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원래 뭔가를 배운다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원구협은 이렇게까지 양보했는데도 일거에 거절당하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래도 꾹 눌러 참고 더 부드러운 어조로 권했다.
“제발 부탁이네. 나의 평생의 소원이네.”
“안 되겠어요. 아, 신경 썼더니 굉장히 피곤하다. 저 이만 잘래요. 앞으로 조금만 더 얻어먹고 다른 곳으로 갈게요.”
표영은 그 자리에서 몸을 누이고 바닥을 뒹굴뒹굴 구르며 한껏 여유를 부렸다.
뒹굴뒹굴…….
원구협은 자신에게 대를 이을 만한 자식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안타깝게도 나이 마흔에 자녀 없이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직계 후손에게 견왕지로(犬王之路)의 비전을 전할 수 없게 된 그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새로 혼인할 수도 없잖은가. 나이가 65세이기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원구협은 귀한 인재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떻게 해서든 제자로 삼아야만 한다.’
그의 눈이 일순 빛을 발했다. 강렬함에 강렬함이 더해져 핏빛까지 어른거릴 지경이었다. 그는 걸음을 옮겨 바닥에 떨어져 있는 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몸에서는 살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주변을 압도했다.
표영은 개장수 주위로부터 일어난 기세에 주변 공기가 차가워지자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머리가 쭈뼛 섰고 하체가 부들부들 떨려옴을 느꼈다.
‘뭐, 뭐지… 이건? 무, 무, 무서워…….’
이런 두려움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근처에 있는 개들도 두려운지 일제히 낑낑대며 몸을 비비 꼬고 괴로운 듯 바닥을 기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개장수 원구협이 견왕지로의 5단계인 구혈잠혈(狗血潛血)을 운용했기 때문이었다.
“개, 개장수님. 왜, 왜 그러세요?”
표영이 잔뜩 쫄아서 말을 더듬었다.
“흐흐흐, 배울 거냐. 안 배울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