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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하늘을 향해 도움을 구하다 (4/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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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하늘을 향해 도움을 구하다

소공공이 떠난 뒤 표만석과 화연실 부부는 망연자실(茫然自失) 상태에 빠졌다. 거지 노릇을 하도록 만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해 둘 수도 없었다.

“부인, 당신의 생각은 어떻소?”

침상에 누워 뒤척이다 표만석이 한숨 쉬듯 물었다.

“소공공께서 하늘에 빌어보라고 했으니 전 내일부터 기원을 드려야겠어요.”

“음…… 나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소만, 아이를 개방으로 보내는 게 어떻겠소? 개방은 강호에서도 알아주는 문파이고 기인들도 있을 터이니 비록 고생은 되…….”

한참 말하던 표만석은 부인의 고함 소리에 놀라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안 돼요!”

어찌나 크게 소리쳤던지 표만석이 화들짝 놀랐다. 화연실은 미안했던지 소리를 낮춰 말했다.

“소리쳐서 미안해요. 하지만 영이를 거지가 되도록 할 수는 없으니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휴우- 알겠소, 큰 아이는 무당파에 간 지 3년째고 한 번씩 볼 때마다 크게 성장하는 것을 보고 역시 구대문파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 여겼기에 개방에 대해 생각해 본 것뿐이오. 내 앞으론 말하지 않으리다.”

첫째 아들은 표숙으로 17세의 나이로 무당에서 수련 중이었다. 두 부부는 고민 속에 파묻혀 눈은 감았으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부터 화 부인은 뒤뜰에 정화수를 떠놓고 하늘을 향해 기원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있기에 우리 인생이 삶을 누릴 수 있음을 압니다. 비를 주관하시고 땅을 움직이시며 구름의 흩어짐과 나아감,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아시는 하늘이십니다. 그런 하늘에 빕니다. 이 부족한 어미에게서 난 둘째아이가 몸이 좋지 않습니다. 제가 바라는 바는 뛰어난 천재도 아니고 세상을 구할 능력을 바람도 아닙니다. 그저 모든 사람들과 같이 평범한 사람이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이 늙은 어미의 소원은 오직 그 한 가지뿐입니다. 부디 만성지체를 벗어나도록 인도해…… 흑흑…….”

그녀는 말을 맺지 못하고 한동안 울다가 다시 기원을 올렸다.

그녀의 목표는 5천 번의 기원을 올리는 것이었다. 기간으로 보자면 하루 세 번. 오전 오후 저녁 시간을 정하고 드린다 했을 때 약 5년의 기간이 필요한 정성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날로부터 시작된 정성을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몸이 아프나 하늘을 향해 기원함을 잊지 않았다.

표만석은 몇 번이고 부질없는 행동이라며 말려보았으나 부인의 마음은 철석같았다.

흔히 백일 정성, 천일 정성을 말하지만 화 부인의 아들을 위해 하늘에 쌓는 정성은 그런 것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하루 세 번 정성을 드릴 때마다 목욕재계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녀가 약 4년 동안 4,300회에 이른 정성을 하늘을 향해 드리게 되었을 때였다.

‘지극한 정성은 하늘을 감동시킨다’는 말은 결코 헛된 말이 아니었다.

어느덧 화 부인의 지극한 정성은 향기가 되고 형체를 이루어 하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즉, 이 뜻은 천계(天界)의 주관자인 대천신(大天神)에게 상달되었음을 의미했다.

이로써 천계(天界)에서는 본격적으로 표영의 문제가 논의되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찬란한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그곳에서 한 음성이 울렸다.

“요즘 들어 지상계(地上界)에서 화연실이라는 여인으로부터 연일 간절한 소망이 올라오고 있다. 얼마나 집요하고 끈질긴지 그 기원 소리로 인해 편히 쉴 날이 없구나. 어떻게 된 노릇인지 하루도 쉬는 날조차 없더란 말이다. 이 일을 조속히 해결해 주지 않을 시 언제까지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할지 암담하기 그지없으니 그대들은 대응 방안을 내놓도록 하라.”

옥빛으로 반짝이는 천좌(天座)에 앉은 대천신이 형형한 눈빛으로 하명했다. 대천신의 몸에서 발산되는 기이한 광채로 인해 어떤 모습인지는 볼 수 없었고, 단지 가끔씩 빛 속에서 투명하게 얼굴 형상이 비추일 뿐이었다.

대천신의 보좌 앞으로는 일곱 무지개 빛깔의 형형한 광채를 띠고 각기 한편에 일곱 명씩 좌우로 늘어서 있었는데 그들은 십사성존(十四星尊)이라고 불리는 천계의 대신들이었다.

“먼저 자료 화면을 보여주도록 하겠다.”

대천신의 말이 떨어지자 십사성존이 위치한 중간지점의 구름바다가 빠르게 회전했다. 잠시 후 큰 화면으로 화연실이 정화수를 떠 놓고 기원하는 모습과 함께 그녀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화면 하나하나마다 눈물로 채워지고 간절함이 배어나왔다.

십사성존은 왜 대천신의 부름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장면이 다 펼쳐지고 다시 구름바다로 원상 복귀된 후 적운신(赤雲神)이 자줏빛 광채를 발하며 고했다.

“우주삼라만상(宇宙森羅萬象)을 지으신 대천신께 아뢰옵니다. 그녀의 소원은 그 정성이 심히 갸륵하나 우주의 정한 질서와 운명이 있기에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옵나이다. 그녀의 기원은 그 경로를 막으시고 듣지 않으심이…….”

적운신의 말은 대천신의 호통 소리에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적운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게냐? 내가 오늘 너희를 부름은 해결책을 강구하도록 함이 아니었더냐. 너는 날이면 날마다 그녀의 간구를 들어야 하는 짐의 고충을 알기나 하는 게냐? 그리고 뭐라고? 그녀의 간절한 기원에 대한 경로를 막고 듣지 말라니…… 이런 고얀 놈 같으니라고!”

대천신이 진노하자 백색 광채를 발하던 몸이 붉은 광채로 돌변했고 적운신의 자줏빛 광채가 움츠러들었다.

“남운신(藍雲神)!”

느닷없는 부름에 적운신의 옆에 서 있던 남운신이 황망히 대답했다.

“네, 남운신 여기 있나이다.”

“저놈을 한 대 쳐라.”

“네? 네, 분부대로 거행하겠나이다.”

대천신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는 일. 남운신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퍽.

남운신의 주먹이 적운신의 턱을 갈기자 턱 주위로 검은 기운이 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나 적운신은 번개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렸다.

“속하 큰 죄를 지었사옵니다. 존귀함에 수고로움을 끼친 죄 용서하여 주소서.”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닌 것. 때에 맞는 말이 진정한 말인 것이다.”

“명심하겠나이다.”

적운신은 턱을 슬그머니 어루만지며 후회했다.

‘대천신께서 왠지 그녀의 기원에 불만이 있는 듯 말씀하시기에 드렸던 말인데 속으로는 그런 정성을 기뻐하고 계신 거였구나.’

그때 청광을 발산하며 청운신(靑雲神)이 나섰다.

“속하, 한 말씀 올리겠나이다.”

“말하라.”

“만성지체로 타고남은 지극한 정성이 있다 하여도 그저 변화시켜 줄 내용이 아닌 줄로 아옵니다. 모두들 알고 계시듯 만성지체를 깨뜨릴 방법은 지상계에서 험난한 고난을 겪으며 거지와 같은 최하의 삶을 사는 것뿐이옵니다. 속하가 생각하기론 그 아이가 자연스럽게 거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줌이 가장 좋은 방법일 듯싶사옵니다.”

청운신의 말에 대천신의 몸을 감싸는 빛은 옥색 광채가 되었다. 수긍의 빛이었다.

“역시 그래야겠지. 아무리 정성이 크다 해도 그 아이의 수고로움이 없이 어미의 정성만으로 깨는 것은 곤란한 일이야. 음… 좋다, 앞으로 일 년간에 걸쳐 만성지체의 아이에게 꿈을 꾸게 하라. 진전이 보이면 그 다음에 내 직접 아이의 어미를 설득하도록 하겠다.”

십사성존은 각기 광채를 발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옳으신 처사이시옵니다.”

제4장 마음을 움직이는 꿈

“할아범∼ 할아범∼!”

연이어 들려오는 소리에 운학 노인은 다급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허허허……. 도련님,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겁니까?”

운 노인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침상에 옆으로 누운 표영이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헤헤헤… 할아범, 저기 떨어져 있는 사과 좀 주워줘.”

“어이쿠. 땅에 떨어진 것은 버리셔야죠. 먼지가 잔뜩 묻어 몸에 해롭습니다.”

운 노인은 표영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늘 곁에 있으면서 잔심부름을 해온 터였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주우면 되는 것을 그것이 귀찮아서 사람을 불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운 노인은 표영의 습관을 잘 알고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용변을 보는 게 귀찮아 수박같이 수분이 많은 과일은 아예 먹는 걸 포기할 정도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할아범도 참…… 괜찮아, 그냥 먹지 뭐.”

“도련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물로 씻어가지고 오겠습니다.”

“할아범은 너무 부지런해. 그렇게 살면 너무 피곤하지 않아?”

“허허, 도련님도…….”

운 노인은 어이가 없는지 표영의 푸르스름한 청안을 바라보곤 이내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된 게 내 주위엔 모두들 부지런한 사람들뿐일까. 괴이한 일이야.”

만성지체를 타고난 표영에게 있어 이 세상 어느 누가 부지런하지 않게 보일 것인가. 잠시 후, 운 노인이 씻은 사과를 들고 들어와 침상 옆 탁자에 앉았다.

“이 사과를 드신 후 점심 식사를 하셔야 하니 또 주무시면 안 됩니다. 아셨죠?”

운 노인에게 있어 가장 큰 곤욕은 표영의 잠을 깨우는 일이었다. 하루 온종일 자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날은 이틀간을 잠으로 보내는 날도 있는데, 그땐 거의 두 시진(약 4시간)가량을 고함을 질러대야만 비로소 일어나곤 했다.

“음, 그러지 마시고 함께 밖으로 나들이를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열흘 전에 나들이를 했는데 또 한단 말야? 에구, 할아범… 너무 무리하지 말자구.”

운 노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껄껄껄껄, 도련님! 거울을 한번 들여다보세요. 얼굴이 새하얀 게 마치 분을 발라놓은 것 같지 않습니까? 이래서는 남자라고 말하기도 부끄럽게 됩니다.”

실제 표영의 얼굴은 새하얗다 못해 창백해 보일 지경이었다. 거기에 워낙 곱게 자란데다 아버지 표 장주를 닮아 부드러운 인상에 친근감을 주는 모습이었기에 운 노인은 간혹 이렇게 놀리곤 했던 것이다.

표영이 새하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답했다.

“괜히 피곤하게 나가지 말구 여기서 이야기나 하자구.”

얘기를 꺼내놓고도 크게 기대도 하지 않았던 터라 운 노인은 빙긋 웃었다.

“허허. 그러시죠.”

“할아범, 할아범은 꿈 자주 꿔?”

“음… 몸이 좋지 않을 때는 자주 꾸는 편이랍니다. 왜 요즘 꿈이 많아지셨나요?”

“사실 이 말은 할아범에게 처음 하는 건데 한 달 전부터 잠만 자면 꿈을 꾸게 되지 않겠어.”

“그거 참 괴이한 일이로군요. 생각이 많으면 꿈이 많아지는 법이죠. 근데 도련님은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잖습니까?”

다른 사람 같으면 욕으로 들을 말이지만 표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맞아… 할아범도 이상하지?”

“그래, 어떤 꿈을 꾸시는 겁니까?”

“그게 말이야, 늘 어머니가 나와서 정화수를 떠놓고 뭐라 뭐라고 하시는데 그 소리는 못 듣겠어.”

“마님께서 도련님이 잘되라고 하늘에 기원하시는 거랍니다. 그게 마음에 걸리셨나 보죠.”

“그럴까? 근데 어머니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몇 년 전부터인데 왜 요 근래 꿈을 꾸게 되는 것일까?”

“왔다 갔다 하시면서 마님의 모습을 보신 것이 마음에 쌓이셨던 것이겠죠. 이젠 도련님도 잠을 줄이시고 학문을 쌓으세요. 그래야 마님께서도 그 고생을 하지 않으실 것 아니겠습니까.”

“음……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할아범,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거라구.”

“에구…… 도련님도……. 자, 이제 점심때도 다되었으니 식사하러 가시죠.”

“아…… 귀찮아, 한 번만 먹으면 한 달 정도 식사를 하지 않는 그런 음식은 없을까? 할아범이 좀 알아봐 주라.”

“허허허…… 사람 사는 데 먹는 재미가 최고인데 한 달에 한 번만 먹는다면 서운해서 되겠습니까.”

-하늘이시여. 다시 이렇게 빕니다. 사랑하는 아들 영이 부디 게으름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살도록 이끌어주십시오.

저희 부부는 이제 늙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어린아이는 여전히 스스로의 삶을 이끌어갈 힘이 없습니다. 흑흑…… 우리 영이를…….

표영은 꿈에서 어머니의 모습과 음성을 들었다. 둔한 마음에 파도가 일며 표영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베개를 적셨다.

처음 두 달간 꿈을 꿀 때는 멀리서 어머니가 정성을 드리는 모습만을 보았다. 하지만 그 뒤로부터 10개월 간은 마치 눈앞에 어머니가 계신 것처럼 생생하게 모습과 음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마다 표영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매 꿈마다 간절하게 들려오는 어머니의 눈물 어린 말씀은 표영의 가슴을 적셨다.

‘아! 내가 어떻게 해야 어머니의 기도가 끝이 날까? 어떻게 하면 나의 이 게으름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마음은 원하고 있지만 도무지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어느덧 계속되는 꿈을 통해 표영은 어떤 길이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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