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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청안동자 (2/199)

제1장 청안동자

청해성의 서쪽 경원 지역에 위치한 표가장은 겉에서 보기엔 여느 때와 다를 바가 없었으나 그 안의 풍경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아…… 왜 이리 늦는 걸까?”

장주 표만석은 뜰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마음을 졸였다. 그는 평소엔 점잖고 덕이 많기로 이름이 높았는데 오늘은 그 여유로움을 찾아볼 수 없고 초조함만이 얼굴 가득 서려 있을 뿐이었다.

그의 보통 때의 용모는 대인의 풍모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검 날을 연상케 하는 반듯한 짙은 눈썹, 잔잔함 속에 사물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 그리고 말에 책임을 지는 입술. 이 모든 것이 지금은 초조함 속에 묻혀 있는 것이다.

이마엔 구슬땀이 흐르고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발을 동동거렸고, 입술은 바싹바싹 타는지 연신 쩝쩝거렸다.

“으아악!”

방 안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비명 소리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를 악물었다. 그건 마치 자신이 고통을 당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길 잠시 후.

“으앙∼ 으앙∼!”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시녀가 달려 나오더니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장주님, 기뻐하십시오. 둘째 도련님입니다. 마님도 건강하십니다.”

순간, 표만석의 얼굴은 화사한 꽃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하하하…… 그래…… 그래…… 너무나 감사한 일이로구나.”

부인은 나이가 마흔이나 된 고령(高齡)에 ‘산모로서’ 해산을 하게 되어 심히 걱정이 컸던 그였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씻은 듯이 사라지자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했다.

“아이의 이름은 영(永)이라고 짓도록 해야겠다.”

길 영(永) 자를 씀은 그가 늘그막에 아이를 낳았고 이 아이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섰다. 땀에 젖은 부인 화연실이 아이를 안아 들고 있는 모습에 울컥 눈물이 나오려 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매무새도 흐트러져 있었으나 아가씨 적에 곱게 차려입고 보았던 모습보다도, 혼인식 때의 아름다운 모습보다도 비할 수 없는 성스러운 아름다움이었다.

“수고했소.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이구려.”

표만석은 따뜻한 시선으로 부인과 아이를 감쌌다.

“아이의 이름은 영(永)이라고 합시다.”

화 부인은 사랑스럽게 아이를 바라보며 조그맣게 불렀다.

“영이로구나. 표영.”

조언참(曺彦參)은 다리에 불이 날 정도로 다급히 표가장을 향해 뛰었다. 그는 경원 지역에서 가장 이름 높은 의원으로 염소수염이 인상적인 60세가 다 되어가는 노인이다.

“좀 더 빨리 뛰십시오. 조 의원님.”

앞서 달려가는 표가장의 가복(家僕) 봉운이 뒤돌아보며 외쳤다.

“헉헉… 난… 힘이… 헉헉…….”

조언참은 젊은 봉운을 따라가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닌지 헉헉거렸다. 안 그래도 염소수염이 수평으로 휘날릴 정도로 부지런히 뛰고 있는데 여기서 더 빨리 달리라니…….

아마도 그가 표가장주에게 받은 은혜가 크지 않았더라면 결코 노구를 무릅쓰고 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봉운은 답답하기도 하고 조 의원이 힘에 부친다고 생각해 다가와 등에 업었다.

“꽉 붙드십시오.”

“헉헉…… 고맙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이놈아, 진작 좀 이렇게 하지.’

조언참은 어제 표가장에서 있었던 장주의 둘째 아들 표영의 돌잔치에 참석했었는데 하루 만에 아이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고 하자 믿기지 않았다. 분명 어제 진맥을 했을 땐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말이다.

표가장 안으로 들어가며 봉운이 큰소리로 도착을 알리자 장주 표만석이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조 의원님. 아이의 눈이…… 눈이…….”

곧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 장주의 말에 조언참은 사태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라 여기고 허겁지겁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안주인 화연실은 아이를 품에 안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는데 눈이 퉁퉁 부어있는 것으로 보아 줄곧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에 반해 품 안의 아이는 엄마의 걱정도 모른 채 방실거리며 웃고 있었다.

“조 의원님, 아이의 눈이…….”

“너무 심려 마시고 잠깐 아이를 내려놓으십시오.”

조언참은 비로소 아이를 보았다.

“음…….”

그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아이의 눈이 푸르스름한 청광(淸光)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검은 눈동자 주위로 흰자위가 있어야 하건만 흰자위 부분에 푸른 청광이 있었으니 부모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의원 생활 40년에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구나.’

그는 먼저 진맥을 했다. 가느다란 기운을 감지하며 몸 안 곳곳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는 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음…….”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양미간을 찌푸리는 조언참의 행동으로 표만석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고 화연실의 얼굴은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조 의원님, 뭐가 잘못된 겁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시구려.”

조언참은 아이의 눈 가까이에서 손을 빠르게 이동했다. 어린 표영은 눈꺼풀을 끔벅이며 반응했다.

“얼라라 까꿍.”

다시 활짝 웃으며 눈을 마주치자 아이가 까르르 하고 웃었다.

“휴∼.”

“무슨 문제입니까? 어서 말씀을 해보십시오. 이거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표만석의 다그치는 말에 조언참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이상한 일이로군요. 진맥을 해보니 몸의 모든 기능이 다 정상입니다. 게다가 아이의 시력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요. 그런데 이런 눈의 변화는 처음 보는 일입니다. 여러 의서를 두루 섭렵했다고 자부하는 저로서도 알 길이 없군요.”

일단 그 말에 부부는 안도했다. 아침에 본 아이의 눈빛에 놀라 이제까지 당황해하고 있었을 뿐 간단한 실험도 해보지 못한 그들이었다.

조언참의 말이 이어졌다.

“언제부터 눈에 청광이 어렸습니까?”

안주인 화연실이 답했다.

“새벽녘에 아이에게 밥을 줄 때 뭔가가 좀 다르다고 느꼈는데 아침이 되자 확연히 드러날 만큼 푸르스름해졌답니다.”

“이건 잠시 나타났다 사라질 증상인지도 모릅니다. 아이의 몸은 매우 건강합니다.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더 건강하기까지 하니 심려하지 않으셔도 될 듯하외다.”

“정말이십니까?”

표만석은 조언참의 의술을 절대적으로 신뢰했지만 아들 걱정에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렇습니다. 염려하지 마시고 혹여 다른 이상이 생기면 지체 없이 저를 불러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조 의원님.”

“허허. 당연히 해야 할 도리를 한 것뿐입니다. 돌아가는 길에 봉운을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좋은 보약을 지어드릴 테니 먹여보도록 하시구려.”

조언참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힐끔 아이를 바라보았다.

‘참 괴인한 일이로군. 이젠 청안동자(靑眼童子)라고 불러야겠는걸.’

어린 표영은 조언참이 속으로 한 말을 듣기라도 한 듯 까르르 웃었다.

“으윽…… 배야…… 어어어…….”

곧 숨이 넘어갈 듯 배를 움켜쥐고 표영은 방바닥을 떼굴떼굴 굴렀다. 이제 10살이 된 표영은 곱상한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괴로운 신음을 발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표만석과 화연실 부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서 빨리 조 의원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엄마…… 배가…… 너무 아퍼…….”

“영아, 조금만 참아라, 곧 의원님이 오셔서 치료하면 곧 낫게 될 거란다.”

화연실은 방을 뱅글뱅글 돌며 괴로워하는 아들의 배를 어루만져 주면서 안타까워했다. 아들의 얼굴은 처음에는 창백하더니 이젠 쑥색으로 변해 있었다. 거기에 눈에서는 청광이 흐르고 있었기에 괴이한 느낌을 주었다.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무슨 일입니까?”

조언참이었다.

“아이가 반 시진(1시간) 전부터 배가 아프다고 저러고 있습니다, 어서 살펴주십시오.”

이제 70세를 바라보는 조언참의 얼굴엔 과거보다 주름이 더 깊어져 있었다.

“잠깐 물러서 주십시오. 제가 청안동자를 살펴보겠소이다.”

10살이 될 때까지 표영의 눈에 서렸던 청광은 사라지지 않았기에 인근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청안동자라고 부르고 있는 실정이었다.

“음…… 이거 참…….”

조 의원의 얼굴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가득 찼다.

“어떻습니까?”

“장(腸)에 문제가 생긴 건가요?”

부부의 질문에 조언참이 뛰어오느라 흘린 땀을 소맷자락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허허…… 변비로군요.”

“네?”

놀라는 부부를 두고 조언참이 표영에게 물었다.

“표 공자, 용변을 얼마 동안 보지 않았지?”

표영은 괴로워 말 대신 오른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음, 5일 동안?”

조언참의 말에 표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손바닥을 두 번 펼쳤다.

“10일?”

표영이 쑥색 얼굴을 찌그러뜨리며 다시 손바닥을 세 번 오므렸다 펼쳤다,

“15일이라 이거군.”

그때서야 비로소 표영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광경을 지켜본 표만석과 화연실은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지금껏 커오는 동안 표영이 다른 아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게으르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건 정도가 지나친 것이다.

조언참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마도 배설되어야 할 것들이 창자에 너무 오랫동안 있어 모두 다 숙변이 된 것 같군요. 관장을 해야겠습니다.”

두 부부는 아들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 그렇게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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