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유세운은 아무리 이렇게 치고 받아봐야 몸풀이 정도 밖에 안 됨을 알고 뒤로 물러났다. 자신의 거리 안에 들어와도 상대는 역시나 강했다.
“이대로는 결말이 안 나겠군.”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바보냐?”
단우태의 말에 유세운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자신이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여태껏 용을 쓴게 자신이니 할 말도 없었다.
“근접전에 상당한 고수임을 인정하마.”
“흥!”
“그럼 이제 슬슬 결판을 낼까?”
유세운이 주변의 자연지기를 거두기 시작하자 단우태도 표정을 굳혔다.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해서 더욱 잘 알았다. 일권무적이라 불리는 저 자도 이미 완전히 광검의 경지에 들었다는 것을. 그렇다면 자신도 소흘히 할 수 없었다.
유세운은 자신을 향해 몰려들던 자연지기가 단우태에게도 몰려가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얼마 있지도 않은 것을 나눠먹자는 거야?’
유세운은 더욱 안으로 자연지기를 거두기 시작했다. 단우태는 천마광휘를 시전하기 위해 자연지기를 거두다가 유세운의 반응을 보고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걸로 승부를 가리자는 거냐?’
슈아아악.
단우태도 자연지기를 거두는 속도를 가일층 높였다.
육우령의 청룡도에 맺힌 푸른 강기가 혈륜마 황형산의 전신을 뒤덮었다.
“혈륜삼연강(血輪三連?)!”
황형산의 전신 진력이 담긴 혈륜 세 개가 푸른 강기를 가르며 파고들었다. 육우령이 펼치는 무공은 전방을 뒤덮는 푸른 강기였다. 넓게 퍼져있는 기운이라 황형산의 집중적인 공격에 반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누가 뭐래도 황형산이 아직은 육우령보다 한 수 위였다.
승리의 미소를 짓던 황형산은 육우령의 행동에 경악했다. 청룡도를 휘둘러 내뻗은 기운이 아직도 남아 있건만 육우령은 앞으로 진각을 내딛으면서 다시 한번 청룡도를 휘둘렀다.
“다른 건 몰라도 동무벽이 남긴 거다!”
슈아악!
대번에 두 개의 혈륜이 부서져 나갔다. 하지만 아직 하나의 혈륜이 이제는 거의 육우령에게 다가갔기에 황형산은 안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봤자다!”
황형산의 말에 육우령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육우령의 발걸음이 옮겨졌다.
쿵.
땅을 울리는 진각에 이어 높이 쳐들렸던 청룡도가 대기를 갈랐다. 황형산의 혈륜도 그것을 지켜보던 그 자신도 청룡도가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며 넋을 잃었다.
스걱.
비명소리조차 없었다. 이것을 연성하기 위해 육우령이 얼마나 은태정에게 구박을 받았는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가뜩이나 위험한 순간에 자연지기를 한번에 내뿜는 것도 아니고 세 번 연속해서 내뻗어야 되다니. 그래서 처음의 일격과 이격의 힘이 많이 약해짐을 걱정했지만 육우령은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연성하고 나자 갈수록 강해지는 기세가 상대를 격살하기에 무리가 없어 보였다. 육우령은 자신의 청룡도로 땅을 찍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으로 처음 무벽삼도(武劈三刀)가 세상에 빛을 보는군.”
육우령은 동무벽이 자신을 쓰러트린 도법을 생각하며 만든 도법으로 황형산을 꺾자 마음이 뿌듯해졌다.
육우령은 고개를 들어 보다가 곽부설이 아직도 바람처럼 움직이며 혈천문도 들을 격살하는 것을 보고 다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비풍십이검주와 싸우던 단우적은 상황이 무척이나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설마 마왕 중 여섯이 달려들었음에도 은태정을 어떻게 하지 못할 줄은 상상을 못했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서 한번의 발검 후 착검을 하는 이상한 검법의 비풍십이검주 또한 자신에게 전혀 밀리는 기색이 없었다.
다행이라면 비풍십이검주를 제외하고는 마왕들의 개개인 실력이 비풍십이검들에 비해서 높다는 정도였다.
“네놈 제법이구나.”
비풍십이검주는 주변을 돌아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비풍십이검을 압도하는 마왕들의 실력에 수는 더 많았지만 비등비등한 싸움이 계속 되고 있었다.
비풍십이검주가 씁쓸한 웃음과 함께 검을 뽑아 들었다.
“길게 끌어서는 안 되겠소.”
비풍십이검주는 한손에 검을 한손에 검집을 들고 바닥을 향한 채 단우적을 쏘아 보았다. 단우적도 더 이상은 시간을 끌 수 없음을 알았다.
단우적은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자신이 혈발에 혈미가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천마광휘를 익히던 중 도저히 벽을 넘어설 수 없어 초대 수라마교주가 익혔던 또 하나의 기공 수라폭혈공(修羅爆血功)을 익힌 탓이었다. 극성의 수라폭혈공 덕에 심검의 경지에서도 그 끝을 볼 수 있었지만 이 무공으로는 광검의 경지에 들 수 없었다.
단우적의 혈발이 하나하나 떠오르고 옷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자연지기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전신에서 그 힘을 개방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자신에게도 고통을 주는 것이었다. 단우적의 두 눈 안에 있는 실핏줄이 터지며 혈안(血眼)이 되는 것을 지켜보던 비풍십이검주가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깟 마공을 익히다니 한심하군!”
달려드는 비풍십이검주의 뒤로 남해의 거친 파도가 들이닥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단우적의 얼굴에는 조금의 걱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자신의 수라폭혈공의 위력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았다. 단우적은 그 자리에 서서 쌍장을 내뻗었다.
쿠구구.
달려드는 비풍십이검주 앞의 땅들이 경력의 여파에 뒤집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비풍십이검주의 죽립이 쪼개져 흩어졌다. 짙은 흑발의 비풍십이검주는 주저 없이 검과 검집을 교차해서 베어냈다.
“차핫! 옥뢰쌍격(玉雷雙擊)!”
베어내는 듯한 공격이었지만 비풍십이검주의 검과 검집에 뭉친 옥빛의 강기는 덩어리 진 채 단우적의 기세에 부딪쳤다.
콰쾅!
비풍십이검주는 천근추(千斤錘)를 펼치며 경력의 여파에 밀려나지 않았다. 가볍게 검으로 경력을 베어낸 비풍십이검주는 다시 한번 앞으로 달려가며 연속해서 검과 검집을 찔러 넣었다.
“옥뢰연환격(玉雷連環擊)!”
단우적은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빌어먹을 자식이 검을 쓰면서 왜 그런 무공을 펼치는 거냐!”
검이라면 일단은 베고 찌르는 것이건만 비풍십이검주가 쓰는 것은 마치 곤법에나 쓰일 법한 무공이었다. 단우적이 쌍장으로 내뿜었던 기세도 비풍십이검주의 옥뢰연환격과 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앞으로 달려드는 비풍십이검주를 향해 단우적은 수라폭혈공을 극성까지 펼쳤다.
쩌저적.
과도한 자연지기를 받은 단우적의 전신의 세맥이 터지며 전신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마치 마귀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공포로 물들었다.
비풍십이검주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단우적의 모습을 보아하니 동귀어진도 서슴지 않을 것 같았다. 비풍십이검주는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영호천을 보고 가볍게 미소를 지어줬다.
검마도의 저주는 풀렸으니 차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리는 없을 터였다. 비풍십이검주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자연지기가 전신을 통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이 사십 평생을 수련해온 검을 펼치기에 부족하지 않은 적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그리고 자신의 대(代)에 검마도의 저주가 풀렸다는 것도.
단우적은 전신에 모인 기운을 폭출하기 위해 비풍십이검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비풍십이검주의 감겼던 눈이 서서히 떠졌다. 하나의 옥빛 광구가 생겨나는 모습을 보고 단우적은 그 와중에도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런 무식한 자식이 끝내 신검합일도 아니고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달려가는 단우적의 전신도 핏빛의 강기로 휩싸였다.
콰콰쾅!
영호천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비풍십이검주가 얼마나 무공수련에 열중했고 자신들을 걱정했는지. 그리고 아버지를 제외하고 검마도의 누구도 그를 당해낼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검을 익힌 자가 날카로운 면보다는 저렇게 곤법처럼 무식한 면이 있어 그를 더욱 좋아했었다. 자신도 단우적의 경지가 무척이나 높아 보인 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막기 위해 비풍십이검주가 최선을 다한 것도 알았다.
“쿨럭!”
피를 토하며 서있는 단우적을 보고 영호천의 두 눈에 불길이 치솟았다. 비풍십이검주는 시신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으아악!”
영호천은 비명처럼 소리를 내지르며 앞으로 달려갔다.
단우적은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는 영호천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방금 전의 비풍십이검주를 해치우기 위해 무리해서 자연지기도 제대로 거두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빌어먹을!”
단우적은 다시 한번 자연지기를 들이마셨다. 아무래도 수라폭혈공도 한계에 달한 듯 보였다.
폭멸뢰를 써서 검마도의 무인들을 죽여야 하나라는 고민이 잠깐 든 새에 영호천의 품에 있던 고검이 뽑혀져 날아왔다. 이기어검의 묘리를 담은 고검은 날아오면서 빠른 속도로 선회하며 옥빛의 륜을 만들어냈다.
단우적은 폭멸뢰를 써야 한다는 것도 잠시 잊고 방금 전의 비풍십이검주를 욕했다.
‘그래. 검이라면 저렇게 베는 맛이 있어야지.’
스걱.
비명소리조차 지르지 못한 단우적의 시선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동안 수라마교의 마왕과 비풍십이검들의 싸움을 지켜만 보던 영호천은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고검을 높이 쳐들었다.
“검마도의 검사들이여 수라마교의 마인들을 쳐라!”
영호천의 명령에 검마도의 검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리고 영호천의 검도 비풍십이검과 겨루고 있던 마왕들을 향해 겨누어졌다.
은태정의 앞에 살며시 내려선 검마도주는 그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까지 알지 못하던 무공이군.”
은태정은 검마도주를 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당연하지.”
웃음을 터트리는 은태정을 바라보던 검마도주는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지금 바로 시작해도 괜찮겠나?”
“그런데 너 지금 누구보고 계속 반말을 지껄이는 거냐?”
은태정의 말에 검마도주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해야 열넷 정도로 밖에 안 보이는 소년이 저런 소리를 지껄이다니. 하긴 그 나이에 광검에 이른다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검마도주는 피식 거렸다.
“반노환동인가? 하지만 무림은 실력이 말해주는 곳이다.”
“그래. 실력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 건방진 놈.”
은태정은 검마도주가 반응하기 전에 달려들었다.
“이런 비겁한!”
검마도주는 빠르게 간격을 두려고 했지만 천하제일권을 익힌 은태정의 손에서 쉽게 벗어날 수는 없었다.
파파팍.
“크윽!”
검마도주는 다급히 호신강기를 일으켜 막으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은태정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면서 그를 압박해 들어갔다.
백연혜의 시선은 연신 유세운이 있는 곳을 향했다. 그녀도 이미 검강을 이룬 고수였기에 다른 이들과 같이 수라천마대원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들의 경지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아 위험했음에도 자신의 안위보다 유세운을 더 걱정했다.
“위험합니다!”
콰쾅!
“크악!”
다른 광오문도들이 워낙 눈에 띄게 행동을 해서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양관척도 이번 수련으로 인해서 몰라보게 강해져 있었다. 이미 수라천마대원들 중에는 자신의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당연히 양관척은 알게 모르게 백연혜를 보호하며 싸움에 임했다. 그리고 백연혜의 주위에서 창천백검수들도 정예화 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여운도 백연혜를 저번에 보호 못했다는 것 때문에 창천백검수를 그녀를 중심으로 포진 시킨 채 적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백연혜는 미안한 마음에 더욱 열심히 검을 놀렸지만 시선은 결국 유세운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