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90화 (190/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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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우태는 자신의 피처럼 붉은 색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리 뒤로 검마도의 녀석 들이 진을 치고 있다는 건가?”

“예.”

단우적의 대답에 단우태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들이 이곳에 왔다면 일전은 피하기 어려울 터였다. 분명 어부지리를 노리고 정파와의 싸움에 약해진 틈을 타 공격을 할 터였다.

“검마도의 능력이 얼마나 되지?”

단우태의 물음에 단우적은 바로 답했다.

“검마도주가 아마도 천륜광검을 터득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밑으로 비풍십이검주라는 심검에 이른 고수 열둘이 있습니다. 그리고 검마도의 소도주인 영호천 또한 심검에 들었습니다.”

단우태의 인상이 바로 찌푸려졌다.

“거의 우리 수라마교에 비견될 만한 전력이군.”

오늘 아침에 창운산장이 보이는 곳에 도착한 수라마교로서는 속이 뒤집어 질 일이었다. 비록 혈천문의 남은 무인들이 창운산장을 먼저 치기 위해 앞에 포진해 있다고는 했지만 그들이 뚫리는 건 시간문제일 터였다. 지금 모여 있는 정파의 정예들이 그들보다 약하진 않을 테니.

단우태는 이를 악물며 천천히 뱉어내듯 말을 꺼냈다.

“좋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수라천마대와 묵검마왕, 황권마왕을 정파 쓰레기들을 청소하는데 내보내고 나머지는 검마도의 녀석들을 공격한다.”

오행마제와 적청쌍마단, 그리고 비천십팔마왕과 비천십팔마단을 이용한 수라마교 핵심의 인물들이 모인 진형이었다. 묵검마왕과 황권마왕이 비록 비천십팔마왕의 수좌와 이 위의 실력이지만 이번 청의문을 칠 때 입은 상처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다. 그들을 제외한 총 병력으로 검마도와의 일전을 벌일 셈이었다.

단우적은 단우태의 명령을 서둘러 수라마교의 인물들에게 전했다.

창운산장의 대문을 열고 나와 있던 유세운은 수라마교의 움직임을 지켜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부님. 쟤네들 왜 저러는 겁니까?”

유세운의 물음에 옆에서 같이 지켜보던 은태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보아하니 잘하면 손 안대고 코풀 수 있을 듯도 하구나.”

혈천문의 뒤쪽에서 달려오는 일천여 명의 마인들이 뿜는 기세가 가벼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뒤로 남아있는 오백여 명의 기세가 훨씬 위험해 보였다. 혈천문도들도 일제히 달려오는 모습이보였다.

유세운의 입가에 장난끼 어린 미소가 그려졌다.

“지금 우리를 우습게보고 있는 거 맞죠?”

“허허. 그런 듯 하구나.”

유세운은 혈천문의 가장 앞에서 달려오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오른 팔이 없는 노인은 품에서 혈륜을 꺼내 들고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유세운은 뒤를 돌아보았다.

육우령이 청룡도를 들고 달려오는 노인을 쏘아보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서 있는 곽부설의 모습도. 유세운은 육우령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노인은 육문도가 맡아.”

“알겠습니다.”

유세운은 은태정을 바라보고는 어깨를 흔들며 풀었다.

“그럼 저희는 저 뒤에 있는 녀석들한테 볼일을 보러 가죠.”

“그래. 가자.”

유세운과 은태정은 동시에 땅을 박차고 앞으로 쏘아져 갔다. 쏘아져 가는 유세운의 뒤로 사천의 정예도 동시에 대문을 벗어나 혈천문의 무인들을 향했다.

유세운과 은태정이 앞으로 달려가자 혈륜마 황형산이 꺼내든 혈륜을 던졌다.

슈류륭.

날카로운 기세와 함께 날아오는 혈륜을 힐끔 본 유세운은 뒤이어 달려올 육우령을 위해 가볍게 지력을 날렸다.

쾅!

붉은 강기에 휩싸인 채 날아오던 혈륜은 대번에 산산조각이 났고 놀란 얼굴의 황형산을 비켜지나가며 유세운은 친절히 설명해 줬다.

“네 상대는 내가 아냐!”

“무슨 소리냐!”

황형산의 물음에 대답조차 않은 유세운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혈천문도들을 향해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내가 다음에 다시 보이면 어떻게 한다고 말했을텐데!”

“죽어랏!”

혈마단의 고수를 필두로 달려드는 이들을 향해 유세운의 분노가 폭발했다.

콰콰쾅.

“크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비산해가는 혈천문의 무인들을 바라보던 황형산의 귀로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를 보는가!”

황형산은 자신을 향해 미염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육우령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청룡도에 실린 도강을 보며 작게 이를 갈았다.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앞으로 쏘아져 가는 황형산의 품에서 다시 한 개의 혈륜이 꺼내졌다. 허공을 가르며 뻗어오는 황형산의 혈륜을 향해 육우령의 청룡도가 대기를 갈랐다.

“하앗!”

얼마나 은태정에게 쌓인 게 많았던지 육우령의 청룡도가 내뿜는 기세는 태산이라도 쪼갤 수 있을 것 같았다.

콰쾅.

황형산의 얼굴이 살며시 일그러졌다. 되 튕겨져 온 혈륜을 받아든 황형산은 수라마교주를 욕했다. 그에게 오른팔을 잃지만 않았어도 쉽게 상대할 수 있을 자 같았다. 이제 막 심검에 든 듯한 육우령이라면 손쉽게 상대할 수 있을 터였지만 지금 자신의 오른 팔이 없는 상황이라 승부를 종잡을 수 없게 됐다.

곽부설은 육우령과 황형산의 일초를 보고는 마음 놓고 혈천문의 무리들로 파고들었다.

혈천문 무인들의 이마에 한줄기 혈흔을 남기며 곽부설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 또한 은태정에게 쌓인 것이 많았던 터였다.

혈천문도 들을 가르고 지나간 유세운은 자신의 앞으로 달려오는 자를 보았다. 전신을 흑의로 감싸고 검은 두건까지 쓰고 있는 자였다. 비록 왼팔이 없는 상대였지만 그의 손에 들린 검을 본 유세운의 안색이 싸늘하게 굳었다.

푸르게 빛나는 창룡검을 들고 달려오는 자를 향해 유세운의 전신에서 살기가 뻗어 나왔다.

“네놈이냐?”

유세운의 살기에 멈칫했던 묵검마왕은 자신의 실수를 생각하고는 코웃음 치며 다시 몸을 날렸다.

“무슨 헛소리냐!”

“창궁검을 죽인게 너냐고 물었다.”

“제법 실력이 있었지만 내게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면 너 또한 같은 처지가 되게 해주마!”

유세운의 신형이 땅을 박차고 묵검마왕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묵검마왕의 손에 들린 검에서 묵빛의 검강이 뻗어 나왔다.

“묵영천변(墨影千變)!”

하늘까지 매울 듯한 묵빛의 검강이 유세운을 에워쌌다. 유세운은 자신의 전신을 옭아매는 묵영천변을 보면서도 감흥이 일지 않는 듯 묵검마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묵룡환(墨龍環)!”

유세운은 일일이 자신의 초식을 외치는 묵검마왕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묵영천변으로 전신을 둘러싸인 유세운의 앞에 한 마리의 용을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검환이 떠올랐다. 유려하게 자신의 자태를 뽐내듯 달려오는 묵룡환을 향해 유세운의 손에서 와선파천지가 쏟아져 나왔다.

콰콰콰쾅.

몇 번의 와선파천지를 맡고도 다가오던 묵룡환이었지만 그 수가 열 번을 넘어가자 흐릿하게 사라졌다.

“쿨럭!”

피를 토하는 묵검마왕을 향해 유세운의 일권이 뻗어갔다.

빠각.

일 권에 담긴 사 변(變). 일 수에 묵검마왕의 사지를 못쓰게 만든 유세운은 멈추지 않고 달려가 그의 가슴을 향해 팔꿈치를 날렸다.

“크아악!”

와선형의 기의 발출에 격산타우의 묘리까지 실었다. 피를 토하고 풍차처럼 날아가는 묵검마왕의 시신에 맞은 수라마교의 마인들도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유세운은 살짝 은태정의 상태를 보았지만 그의 앞을 막아서던 거한의 사내는 어느새 차디찬 바닥에 누워있었다.

“쳇! 아직 사부를 따라가려면 멀었군.”

유세운은 다시 한번 땅을 박차고 나가며 수라마교의 마인들을 향해 팔각연환권을 풀어냈다.

“크아아악!”

백연문을 비롯한 정파의 무인들은 지금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적의 진영을 두 줄로 가르는 은빛의 길. 그들이 지나간 길에는 사방으로 비산하는 적들의 시신만이 있었다.

“이것이 광검에 이른 자의 실력인가?”

중얼거리는 백연문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혈천문도의 수급을 대번에 날렸다. 게다가 육우령의 신위 또한 가벼이 볼 것이 아니었다.

소문으로 들어왔었지만 설마 심검의 경지에 들어섰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혈륜마 황형산을 압도해 가는 그의 무위는 정파 무인들의 피를 끓어오르게 했다.

그리고 혈천문도 사이를 제집마냥 뛰어다니는 곽부설이 지나간 길에 쓰러지는 시신의 수도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백연문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가라! 중원의 혼을 보여줘라!”

백연문의 외침을 따라 남아있던 정파 무인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다.

단우태의 얼굴은 소태를 씹은 듯 찡그러졌다.

“뭐야 저것들은?”

단우태의 말에 단우적의 얼굴도 당황으로 물들었다. 양떼의 무리에 뛰어든 호랑이처럼 쉴 틈 없이 손을 내젓는 사내와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특이할 점이라면 둘 다 은발에 은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일 수에 담긴 능력은 이미 심검의 그것을 넘어서고 있었다.

“무광 은태정과 일권무적 유세운인 것 같습니다.”

단우적의 말에 단우태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남아있는 정파의 쓰레기들 중에 저 정도의 실력을 가진 이들이라면 그들 밖에 없을 터였다.

이미 코앞으로 다가온 검마도의 무인들을 바라보던 단우태가 이를 갈며 명령했다.

“그렇다고 길을 내줄 수야 없지. 비천십팔마왕 중 여섯을 저 소년에게 붙여라. 내가 유세운을 처리하마.”

“알겠습니다.”

비록 광검의 경지에 이르렀다지만 이미 천년의 역사에 가장 먼저 그 경지를 이룬 천마광휘였기에 단우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돌아올동안 검마도의 녀석들을 상대해라.”

“예.”

간단히 명령한 단우태는 주저 없이 유세운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단우적은 살아남은 열네 명의 마왕 중 여섯을 보내고 뒤로 돌아섰다. 다가오는 검마도의 무인들을 향해 단우적의 기세가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너희와 우리 둘 중에 하나는 이곳에서 사라져야 하겠지.”

검마도의 저주가 풀린 이상 전면전은 피할 수 없었다.

정신없이 수라마교인들을 쳐날리던 유세운은 걸음을 멈춰 세웠다. 자신을 향해 허공을 가르며 다가오는 사내가 보였다.

유세운의 시선은 자기도 모르게 은태정을 향했다. 은태정을 향해 몸을 날리는 여섯의 흑의인들도 눈에 들어왔다.

“사부님! 어떻게 할 까요?”

“젠장! 검마도주는 내게 넘겨라!”

“알겠습니다.”

유세운은 은태정의 허락을 가볍게 받아내고는 멈춰 섰다. 그의 앞으로 내려서는 사내를 본 유세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네가 수라마교주냐?”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군. 네가 유세운이냐?”

유세운은 단우태를 바라보며 속으로 진땀을 뺐다. 그냥 사부랑 자리를 바꿀 걸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광검에 이른 자신이 보기에도 한점의 빈틈이 없어 보였다.

단우태도 유세운을 마주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수라의 뜻을 완전히 이은 자신이 작아 보일 정도의 능력이었다. 단우태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광검의 경지인 것 같군.”

“그러니 네가 나를 마중 나왔겠지.”

“천륜광검이냐?”

단우태의 물음에 유세운은 코웃음을 쳤다.

“그런 과거의 고리타분한 무공과 비교하면 곤란하지.”

유세운의 여유있는 말에 단우태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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