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81화 (181/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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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 어떻게 하죠?”

위지청의 물음에 위지평은 안색을 굳혔다. 물론 자신들이 나설 일은 아니었다. 혈천문에서 창천궁의 백연혜와 유가장의 식구들을 공개처형한다는 선언은 자신들도 보고를 받았다. 창천궁에서 해결해야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역시 포기 할 것이다.

지금 이곳 산장에 모인 사천의 병력은 전 무림의 마지막 남은 보루였다. 수라마교에 의해 일궁 이문에 남아있던 모든 무사들이 죽음을 당했다. 이런 시국에 백연혜와 유가장의 식구들을 구출하기 위해 전력을 줄이는 일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걸 잘 아는 위지평이기에 더욱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백연혜와 유가장의 식구라면 유세운과 창천궁을 노린 포석이라고 볼 수 있었다. 창천궁의 위치가 발각된다면 자신들이 있는 이곳 또한 발각되어 손쓸 새 없이 바로 수라마교나 혈천문과의 일전을 준비해야 했다.

흑무기마대에 의해 쫓기다가 종적이 묘연해진 유세운이 떠올랐다. 백연혜는 유세운이 사랑하는 여인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유가장의 식구들이라면 당연히 구해야 할 사람이다.

위지평은 유세운 덕에 그나마 북천방을 막아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을 새서 달려온 유세운이 아니었다면 아마 육우령의 손에 모두 죽었을 지도 몰랐다.

위지평은 자신을 바라보는 동생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두 눈에는 걱정과 고민이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동생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지금 남아있는 청의문에 있어 중요한 전력이다. 문을 위해서라면 나서서는 안되는 문제였다.

위지평은 손을 들어 자신의 입술을 매만졌다.

위지청은 위지청의 행동에 그런 질문을 한 자신의 입을 욕했다. 차라리 말없이 혼자 갔으면 됐을 것을 괜히 위지평에게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지평이 입술을 매만진다는 것은 무언가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 하는 버릇이다.

위지청은 가만히 그의 생각이 결정되기를 기다렸다. 만약 그가 안된다고 하면 야음을 틈타 자신만이라도 그들을 구하러 갈 생각이었다. 유세운이 청의문과 자신들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자신의 목숨따윈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위지청은 조용히 자신의 어깨에 올라오는 누군가의 손에 깜짝 놀라 검의 손잡이에 손을 얹으며 돌아보았다. 지금 자신들이 나누는 얘기는 청의문도 조차 알면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린 위지청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자신의 사부인 하후추였다.

절망에 잠긴 위지청의 눈을 보며 하후추는 가볍게 전음을 보냈다.

(조용히 있거라. 평아의 결정이 나면 들어보자꾸나.)

위지청은 하후추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묵묵히 위지청을 바라본지 일 각이 지나고서야 위지평의 고개가 들려졌다.

그의 눈에는 단호한 결의가 빛났다. 고개를 들던 위지평은 위지청의 뒤에 서 있는 하후추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읍을 했다.

“오셨습니까.”

“그래 결정했느냐?”

하후추의 말에 위지평은 잠시 멈칫했지만 결국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예.”

“그래 어떻게 결정 지었느냐?”

하후추의 물음에 위지평은 잠시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았다.

“저 혼자 구출하러 가겠습니다.”

“안 돼요!”

다급히 소리치는 위지청의 목소리에 위지평은 마음이 흔들렸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가면 반드시 죽는 곳이었다. 동생을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하후추는 가만히 그런 그들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되었다. 너희 둘이 다녀 오거라. 그것이 그나마 살 확률을 높이는 것이겠지.”

하후추의 말에는 진한 슬픔이 베어 있었다. 자신도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외문을 책임져야 하는 자신이 이곳을 떠나갈 수는 없었다.

“사부님…”

지금 하후추가 한 말은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는 뜻이다. 그 둘이 빠지는 것에 대한 문의 문책도 가볍지는 않을 것이었다. 위지평의 눈을 보며 하후추는 웃음을 지었다.

“우리 문은 유문주에게 많은 빚을 졌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청의문 전원이 나간다 해도 달리 할 말은 없을 것이다만 지금의 강호에 남은 마지막 보류인 우리가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는 것이니라. 문주님에게는 내가 말하도록 하마.”

“제가 허락하죠.”

하후추는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조예림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문주님.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조예림은 하후추의 말에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 전언을 듣고 바로 달려왔죠. 그러지 않으면 청의문의 미래를 짊어질 두 분을 다시 못 볼 수도 있으니까요.”

조예림의 말에 위지남매는 얼굴을 붉혔다. 조예림은 위지남매를 보고는 웃음을 지었다.

“부탁드릴 것이 있어요.”

“하명하십시요.”

조예림은 무릎을 꿇는 위지남매에게 다가가 그들을 일으키며 말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아무 무리 없이 구출하기를 원하지만 아마도 그것은 힘들 거예요. 그들 또한 육대세력의 일좌를 차지하던 곳. 구출 시도는 하되 목숨이 위험하다 생각되면 주저하지 말고 피하세요.”

조예림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이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말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미 그곳에서 발각된 순간 죽은 목숨이리라. 하지만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조예림은 입가에 가는 미소를 지었다.

“창천궁의 백공자가 창명백검수를 데리고 오늘 저녁 출발한다고 하더군요. 같이 움직이시는게 조금 더 안전할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포권을 취하는 위지남매의 귀로 하후추의 전음이 들려왔다.

(살아 돌아 오거라.)

고개 숙인 위지남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백연문은 자신의 애검을 허리에 차고 말에 올라 뒤를 돌아보았다. 창명백검수들이 말없이 도열해 있었다. 이 길은 죽으러 가는 길이었다.

장차 창천궁의 가장 주력이 될 이들이지만 자신과 가장 뜻이 잘 맞는 이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필요했다. 그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보았다.

“정녕 흑무기마대에게 당한 것이오? 그렇지 않다면 제발 이번 한번만 도와주시오. 내 생명을 당신에게 맡기리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백연문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한 기의 기마를 보았다. 백연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

창천백검수의 대장인 여운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궁주님에게 허락을 받았습니다. 소공녀님이 위험할 때 곁에 없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죽어 마땅합니다. 제발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여운의 말에 백연문은 입가에 가는 미소를 지었다.

“내 그대를 잊고 있었군. 알겠네.”

그런 그들을 향해 세기의 기마가 다시 다가왔다. 백연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청운이 다가오는 것이야 이해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다른 두 명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었다.

“청의쌍검께서는 어쩐 일입니까?”

위지평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백소저와 유가장의 식구들을 구하러 가신다는 얘기를 듣고 왔습니다.”

“예. 전력에 차질이 생기지만 안 갈 수가 없더군요.”

위지평은 백연문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예. 저희도 구출에 동참하기 위해 왔습니다.”

백연문은 위지남매의 말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 길은 죽으러 가는 길이었다. 분명 유세운 때문이겠지만 그런 길을 주저없이 같이 가주겠다는 것에 가슴이 떨려왔다. 백연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저희가 해야 될 말이군요.”

위지평의 웃음에 백연문은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백연문은 북쪽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혈천문이 차지하고 있는 창천궁으로 향한다. 아마 살아남기 힘든 곳일 것이다. 포기할 자는 앞으로 나서라.”

백연문의 말이 끝났음에도 누구하나 눈빛하나 흔들리는 이 없었다. 백연문은 검을 뻗으며 소리쳤다.

“나를 따르라!”

열려진 산장의 문을 따라 백여 기의 기마가 먼지를 일으키며 빠져나갔다. 백연문은 마지막으로 밤하늘을 올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만약 살아있다면 제발 도와주시오.”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유세운은 쉬지도 않고 수련했다. 더욱이 은광천세처럼 자연지기를 받아들여 펼치는 수련이라 잘못하면 주위에 나무들이 부서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유세운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일주일의 시간동안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수련에 매달렸다.

“하앗!”

유세운은 주변에 모인 자연지기를 받아 들였다. 그리고 와선형으로 발출하는 것이 아닌 의지를 담아 내뿜었다.

스윽.

은빛의 강기로 이루어진 자신의 크기와 같은 형체를 보며 유세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지금 모인 강기의 힘은 자칫 잘못하면 커다란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은광천세에 드는 것 이상으로 많은 자연지기를 거두어서 만든 것이었다. 당연히 그 파괴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크하하하.”

미친 듯이 웃는 유세운의 뒤로 은태정이 나타나 피식 거렸다.

“뭐냐? 일주일동안 죽어라 수련한 결과가 그거냐?”

“앗! 이게 얼마나 많은 힘을 들인건지 아시는 겁니까?”

“생각을 해도 저런 엉뚱한 것이나 생각해 내는 네가 한심하다.”

“언제는 이렇게 만들어 보라고 하셨잖아요!”

따지고 드는 유세운을 향해 은태정은 피식 거렸다.

“그래. 그래서 뭘 얻었느냐?”

은태정의 말에 유세운은 머리를 긁적였다.

“흐음. 자연지기의 운용이 더 뛰어나졌다는 것 밖에는 없는데요?”

“그래. 지금 네가 가진 것은 단순한 운용력이다. 광검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거지.”

“아니 언제는 이렇게 수련하라면서요!”

빠악!

결국 참지 못한 은태정의 주먹에 맞은 유세운이었다. 은태정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까지 운용할 수 있지 않으면 자연지기를 담는다 해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라면 적어도 심검의 수준에서는 너를 넘어설 자가 없겠지.”

은태정의 말에 유세운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일주일을 죽어라 수련했는데도 아직 광검의 경지는 멀기만 했다. 은태정은 유세운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이제 자연지기와 하나가 되어라.”

“예?”

뜬금없는 은태정의 말에 유세운의 얼굴에 당황함이 어렸다. 은태정은 유세운을 보며 입가에 가는 미소를 지었다.

“자연지기를 너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너와 하나가 되도록 수련을 하란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차피 너를 통해 뻗어 나온 자연지기는 모두 무상진기를 통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만을 쓸 뿐이지. 그렇다면 강해지는 법은 간단하지 않겠느냐. 얼마든지 많은 자연지기를 담을 수 있게 너의 우주를 자연과 하나로 만들거라.”

“말도 안돼요!”

“그 전에는 이곳을 나갈 수 없다.”

은태정의 한마디에 유세운은 눈물을 머금고 다시 폭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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