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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콰콰콰콰.
예전에는 그리 크지 않았었지만 은광천세를 수련하느라 폭이 넓어진 폭포의 물줄기가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폭포수 밑에 있는 바위에 정좌하고 눈을 감고 있는 유세운의 전신에 부딪친 물방울들이 무지개빛깔로 흩어졌다. 한시라도 빨리 광검에 이르러야만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거란 생각에 조급했지만 지금 유세운의 마음은 물과 같이 조용하기만 했다. 참선을 하는 고승처럼 평안한 얼굴로 물살을 맞는 유세운의 전신 세맥을 따라 무상진기가 흐르고 있었다.
단 한번이지만 광검에 이른 무공을 펼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곳에 도달하려니 까마득하기만 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당시 떠올렸던 사부의 광검을 펼치는 모습만 떠올리며 정좌하고 있었다.
“으아아악!”
애처롭게까지 들리는 비명소리.
곽부절은 눈을 가린 채로 정신없이 날아오는 대나무에 두들겨 맞고 있었다. 곽부절의 앞에는 은태정이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서 길이 삼 장에 달하는 대나무를 휘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소리조차 없이 날아간 대나무는 연신 곽부절의 연약한 몸을 두들겼다.
은태정은 시선을 돌려 양관척과 육우령을 바라보았다. 도병우는 만수화의가 잡아놓고 있으니 자신이 할 일은 이 세 명을 강하게 해달라는 유세운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 밖에 없었다.
은태정은 옆에 굴러다니는 돌을 하나 집어 양관척을 향해 냅다 던졌다.
빠악!
“컥!”
은태정이 가르쳐준 장법인 이름도 없는 장법을 수련하던 양관척은 뒤통수를 강타하는 충격에 비명을 내질렀다. 은태정의 목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사심(私心)없이 수련해라. 엉뚱한 생각하면 용서 없다.”
은태정은 대체 어찌 알았을까. 비록 은태정이 가르쳐 준 것이 강환을 만드는 수련법이었지만 도통 나아질 기미가 안보여 고민하던 찰나에 맞은 돌멩이였다.
육우령도 양관척이 맞는 것을 보고는 은태정에게 당할까 고민하며 성심성의껏 청룡도를 휘둘렀다.
빠악!.
“큭!”
그렇다고 은태정의 돌멩이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은태정은 대나무를 연신 휘두르면서도 말을 이었다.
“마음을 담으라고 했지! 누가 허공에다 청룡도 휘두르는 연습 하랬냐?”
육우령은 한숨을 내쉬며 아무 방해 없이 수련을 하는 유세운을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수련법만을 듣고 연못 속에 들어가 있는 곽부설에게도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물 속에서 수련을 하는 곽부설이라고 편한 것은 아니었다. 쾌검의 운용을 돕기 위해 물속에 들어와 있는 자신의 검은 어느새 물고기를 잡는데 사용되고 있었다. 그 역시 은태정에게 들은 수련법은 의기상인. 마음으로 먼저 물고기를 찌르는데 있었다. 하지만 막상 검을 뽑으면 물의 저항으로 인해 번번이 실패하기 나름이었다.
호흡이 모잘라 천천히 물 위로 올라온 곽부설의 귀로 은태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잇! 모두 밥 먹을 준비해라!”
전신에 부딪치는 폭포수 속에서 유세운은 천천히 일어났다. 이미 몸은 완전히 나았다. 만수화의와 은태정의 치료 덕에 몸은 나았지만 무공수련에 진전은 없었다. 유세운은 신형을 뽑아 올려 공터에 내려섰다.
울먹이며 장작을 모아오던 곽부절이 유세운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문주님.”
유세운이 하는 일은 잠도 자지 않고 폭포수 밑에서 수련을 하는 거였다.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곤 곽부절을 볼 일도 없었다. 유세운은 곽부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음을 지었다.
“그래. 수련의 성과는 있느냐?”
유세운의 물음에 곽부절은 흠칫거리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무공에 자질이 없나봐요.”
“하하하. 아니다. 지금은 네가 아프다 나은지 얼마 안돼서 그러는 걸 거야. 금방 좋아질테니 마음의 여유를 갖고 수련에 임하거라.”
“그럴까요?”
“그럼.”
표정이 밝아져 다시 장작을 구하기 위해 뛰어가는 곽부절을 바라보던 유세운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은태정을 돌아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은태정은 유세운을 보고는 고개를 내 젓더니 대뜸 손에 들린 대나무를 휘둘렀다.
부웅.
유세운은 다급히 고개를 뒤로 젖혀 대나무를 피했다.
빠악!
“크윽!”
하지만 그사이 다가와 주먹을 휘두른 은태정을 피하지 못했다. 유세운은 인상을 확 구기며 따졌다.
“윽! 왜 이러시는 겁니까!”
“왜 이러냐고? 이 자식이 군식구를 이만큼 늘렸으면 먹을 거라도 구해와야지. 매일 폭포수 밑에서 참선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으면 뭐가 얻어지냐!”
“그럼 말로 하면 되지! 왜 손부터 날리는 거예요!”
버럭 소리를 질러본 유세운이지만 은태정의 눈에 웃음이 감돌자 흠칫 놀랐다.
“알았어요. 쳇!”
가뜩이나 간만에 곽부절에게 무게 한번 잡아보았다가 바닥에 쳐박힌 자존심을 내세우지 못하고 유세운의 신형은 빠르게 폭포 위 숲으로 향했다.
반 각 만에 사슴 한 마리를 잡은 유세운은 어깨에 사슴을 매고 다시 돌아왔다. 곽부설이 모닥불 옆에 구워지던 잉어 한 마리를 내밀었다. 유세운은 사슴을 바닥에 내리고 잉어를 받아 한입 물었다.
곽부설은 사슴을 들고 연못가로 손질하기 시작했다. 작은 단도가 빠르게 움직이며 사슴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은태정이 유세운을 바라보지도 않고 물었다.
“어때? 진전은 있냐?”
“그게 그렇게 쉽게 얻어지면 광검입니까?”
유세운의 물음에 은태정은 작게 키득거렸다.
“크크크. 그렇지. 그게 한번 얻기가 얼마나 힘든건지 몸소 느껴봐야지.”
유세운은 은태정의 말에서 심술이 느껴졌다. 유세운은 혹시나 해서 물었다.
“그거 혼자만 고생한 것 같아서 저한테 시키는 건 아니죠?”
빠악!
“크윽!”
은태정의 답은 간단했다.
만수화의는 앞에 누워있는 도병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각오는 돼 있는 거냐?”
도병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죽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겠지요.”
대답하는 도병우를 보며 만수화의는 피식 웃었다. 지금껏 도병우와 이야기하면서 자초지종은 모두 들었다. 그렇다고 자신도 확실히 혈왕고를 처음 잡아보는 것이어서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성공확률은 반반. 만수화의는 한숨을 내쉬며 대침을 꺼내기 시작했다.
“알았다. 그럼 나도 마음 놓고 시술하마.”
만수화의는 도병우에게 다가가 백회혈에 대침을 박아 넣었다. 두 치나 들어가는 대침을 보고 만수화의는 한숨을 내쉬었다. 잘못 건드리기만 해도 죽을 사혈에 대침을 꼽는 것은 언제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일이었다.
만수화의는 손에 가죽 장갑을 끼고 품에서 작은 옥합을 꺼냈다. 남만의 오지에서만 산다는 쌍각혈린망(雙角血鱗?)이 들어 있는 통이었다. 의술과 독술은 끝내 만나게 되어 있었다. 만류귀종이라는 말이 가장 통하는 곳이기도 했다.
쌍각혈린망은 이름과 다르게 의외로 손바닥에 올라갈 만한 크기의 도마뱀이다. 머리에 두개 나 있는 뿔에서 나오는 냄새는 모든 독충과 독물들이 좋아하는 향이다. 그래서 사족을 못 쓰고 달려오면 쌍각혈린망의 독에 항상 당해 먹이가 되었었다.
먹이를 주기 위한 작은 구멍으로 무언가 썩는 듯한 향기가 새어 나왔다. 독충과 독물들이 좋아한다는 향.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냄새였다.
“이미 백회혈에 꽂아 놓은 대침으로 인해 혈왕고가 움직일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그렇다면 이 냄새에 이끌려 나오게 되겠지.”
츠츠츠.
쌍각혈린망의 입에서 기괴한 소리를 냈다. 먹이를 앞에 두었을 때 내는 소리란 것을 안 만수화의는 침착하게 기다렸다. 열려진 도병우의 입으로 어른 손가락만한 벌레가 기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지렁이처럼 온통 미끈거리는 혈왕고의 전신에는 도병우의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
만수화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군.”
천천히 기어오는 혈왕고를 보며 만수화의는 옥함을 근처로 가져갔다. 향이 진해지자 혈왕고는 더욱 빠르게 움직여 옥함의 구멍으로 다가갔다.
혈왕고가 머리를 구멍으로 집어넣는 순간 듣기 싫은 소리가 들려왔다.
콰직.
쌍각혈린망에게 걸려서 살아남은 독충을 못 본 만수화의는 태연히 옥함을 옆으로 치우고 팔을 걷어붙였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치료를 해볼까?”
마교에서 혈왕고를 상대의 몸에 풀 때 먼저 손을 쓰는 것이 파환단이라는 환약이다. 말이 환약이지 상당히 강한 독약이다. 그것을 먹으면 그 약을 먹는 동안은 혈왕고가 다른 짓을 안 한다. 그래서 그것을 먹지만 그것 또한 지독한 독. 결국 몸을 해하게 되는 것이었다.
만수화의는 침통을 꺼내놓고 도병우의 전신에 침을 꽂기 시작했다. 비록 파환단의 독이 강하다 하지만 자신의 실력이면 충분히 뽑아 낼 수 있었다.
그 후로 만수화의가 할 일은 혈맥을 따라 흘러나오는 파환단의 독기 어린 피를 닦아내는 일 뿐이었다.
양관척의 충심어린 부탁으로 은태정에게 경공을 배우게 된 진령은 밤마다 양관척에게 바가지를 긁고 있었다. 말이 좋아 천하제일고수에게 무공을 배우는 거라지만 그녀가 매일 하는 것은 땅에 박아 놓은 대나무 위에 서 있는 일이었다. 그것도 뾰족하게 잘라놓은 대나무. 용천혈에 내력을 몰아 놓지 않으면 언제 발에 구멍이 날지 몰랐다. 피를 본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오늘도 진령은 대나무에 금계독립 자세로 서 있었다. 그나마 수련의 성과가 있어 일주일 만에 그럭저럭 대나무 끝에 서 있는게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은태정은 오늘도 나른한 표정으로 곽부절을 향해 대나무를 휘두르고 있었다. 양관척도 일주일 만이라고는 몰라볼 만큼 집중력을 보이며 수련에 임했고 육우령의 청룡도도 예전과 같지 않았다. 마음을 담는 단계가 되었는지 예기가 번뜩였다.
곽부설도 상당한 진전을 보여 물고기를 검에 꽂은 채로 잡아와도 살아 있는 녀석들이 있었다. 자기가 잡혔는지 조차 모르는 쾌검. 어쩌면 가장 먼저 심검에 들지도 모를 녀석 이었다.
은태정은 고개를 돌려 진령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실수로 발바닥을 찔려 피도 나고 하더니 이젠 곧 잘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때가 된 것 같았다.
은태정은 곽부절을 저 만치 쳐서 날리고는 손을 흔들었다.
“잠깐 쉬고 있거라.”
“예.”
구원의 목소리에 곽부절은 얻어맞은 부위를 한번 어루만지고는 눈을 감고 주변을 느끼는 수련을 했다. 유세운이 그나마 귀띔 해주지 않았다면 아직도 대책 없이 얻어맞고 있었을 것이었다.
은태정은 손에 아홉 개의 대나무를 가지고 와서 바닥에 꽂아 놓기 시작했다. 더욱이 황당한 것은 꽂는 높이가 제각각 이었다.
“내려와 봐.”
은태정의 말에 진령은 불안한 표정으로 바닥으로 내려왔다. 겁을 먹어서 잘 모르고 있었지만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사뿐히 내려섰다. 은태정은 진령을 보고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대나무 위로 올라섰다.
“잘 봐둬라. 십이란 수는 완전함을 의미하니라.”
“예.”
은태정은 사뿐히 날아올라 다른 대나무 위로 올라섰다.
“간단히 열 개의 동작으로 이루어졌지만 이것이 끊임없이 돌고 돌때 너를 손 댈 수 있는 자는 몇 안 될 것이니라.”
“예.”
괜히 잘못 물었다 두들겨 맞는 광오문도들을 지켜 본 진령은 성급히 굴지 않았다. 은태정은 그녀가 보는 앞에서 열 개의 대나무 위를 사뿐사뿐 뛰어 다녔다. 물론 도중에 알아보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 곳은 아주 느리게 공중에서 선회하며 내려서는 은태정을 보며 진령은 머리에 새겨 놓기 바빴다.
은태정은 처음의 대나무 위로 올라와서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매일 이것을 몸에 익을 때가지 익히도록 하거라. 자다가도 밥을 먹을 때도 마음속으로 심상 수련하는 것을 잊지 말고.”
“예.”
은태정은 진령에게 간단한 보법을 가르쳐 주고는 바닥에 내려왔다. 은태정은 웃는 얼굴로 대나무를 보며 말했다.
“한번 해보거라.”
“예.”
진령은 은태정의 말에 대나무에 올라갔지만 첫 발을 내딛으면서 바로 비명을 내질렀다. 꼽혀 있는 대나무의 간격이 가까운 것도 아니었고 그녀가 밟아야 할 곳은 처음 곳보다 낮은 곳이었다. 대뜸 진령의 신발에 핏물이 베어 나왔다. 은태정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명심해라. 한 순간이래도 마음을 놓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그럼 수련하고 있거라.”
은태정은 돌아서며 안타깝다는 듯이 쳐다보는 양관척을 향해 한 번 눈을 부라렸다. 은태정은 고개를 피하는 양관척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나중에 무관이나 하나 차릴까?’
과연 은태정의 수련법을 견뎌낼 자가 몇이나 있을까 잠시 의문이 드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