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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호를 끼고 있어 수많은 시객과 문인들이 줄을 있는 악양. 악양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부호의 저택의 대문 앞에 광오문 일행이 들어섰다. 유세운은 마차에서 내리며 힘겹게 중얼거렸다.
“이제야 도착한 건가?”
유세운은 몇 번이나 자연지기를 못 느끼는 몸에 대해 욕을 퍼부었다. 지치기는 왜 그리 빨리 지치는지 마차에 실려 가면서도 기진맥진했고 배에서 보낸 오 일은 정말 죽고 싶은 지경이었다.
동무벽은 웃음을 지으며 대문을 두드렸다.
“이봐! 양총관 나와!”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저녁. 동무벽의 내력이 담긴 목소리가 저택의 담장을 넘어갔다.
“아니 어떤 미친 놈이 소란이냐!”
대문을 열고 빗자루를 든 채로 뛰쳐나오는 초로의 늙은이를 향해 동무벽은 고슴도치 같은 수염이 닿을 만큼 얼굴을 바짝 디밀었다.
“지금 당장 가서 양가 녀석 나오라고 전해.”
“이 무슨 되먹지 못한!”
대뜸 빗자루를 휘두른 초로의 늙은이는 가볍게 빗자루를 막아내는 동무벽의 솥뚜껑만한 손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양가 녀석이 오기 전에 몸이나 한번 풀어보자는 거야?”
“아니 그게…”
당황하는 노인을 보며 유세운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해.”
“크흐흐. 알겠소. 오늘 문주 덕에 봐주는 줄 알아.”
식은땀을 흘리는 노인 뒤로 대문이 열리며 양관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만 가보게.”
“알겠습니다. 양대인.”
구원의 손길에 감사하며 노인이 빠르게 사라졌고 양관척은 유세운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문주님. 기다리게 하셔서 죄송합니다. 오신다고 미리 연락이라도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유세운은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아 지금 피곤하니 일단 안으로 들어가지.”
유세운의 말에 양관척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무벽을 바라보았다. 동무벽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관척은 무슨 사연이 있으려니 하며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앞서가는 양관척의 뒤로 동무벽과 관백이 따라 들어갔고 유세운은 지친 걸음을 옮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이거 불편해서 못 돌아다니겠군.”
유세운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도병우는 새로 산 곰방대를 입에 물며 웃음을 지었다.
“어서 예전처럼 돌아가십시오. 보는 제가 다 안쓰럽습니다.”
유세운은 도병우를 쏘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예전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그런 말을 못하게 해줄 테니 기대해도 좋아.”
도병우는 순간 유세운이 뿜어내는 기세에 지금 꾀병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 도병우의 뒤이어 들어오던 육우령은 그런 도병우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축하하네.”
“뭘 축하 한다는 거야!”
소리치는 도병우를 뒤로 하고 육우령은 유세운의 뒤를 따라 양관척의 대궐과 같은 집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위에 어둠이 깔리고 주변을 분간하기 어려워진 악양에 검은 갑주의 사내들이 들어섰다.
출파는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역시 편하군.”
청운마왕이 손을 쓴 덕에 악양으로 힘들이지 않고 들어섰다. 더욱이 기마를 같이 끌고 왔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 흑무기마대가 진을 펼치려면 기마는 반드시 필요했다.
청운마왕은 출파의 웃음에 곰방대를 깊이 빨아들였다 연기를 내뿜으며 답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실패하지나 마.”
청운마왕의 말에 출파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흑무기마대 전원이 나선 일이다. 실패란 말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실례라는 것을 알아라.”
출파의 말에 청운마왕은 어깨를 으쓱 했다.
“글쎄. 인원은 적다지만 그들의 무위는 강호의 어떤 문파의 고수들보다 강하다는 소식이다.”
청운마왕의 말에 출파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크흐흐흐. 중원이 북천방만 바라보고 우리를 보지 못했군. 세외 양대 세력 중 하나인 우리의 실력이면 중원의 전력과 붙어도 이길 수 있다.”
출파의 자신에 찬 말에 청운마왕은 결국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기에 이번 거래가 성립 된 거야.”
출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대외적으로 알려진 중원의 전력이다. 서열 오 위의 자가 자신에 필적하는 수라마교가 개입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출파는 자신들에게 헛소리를 한 유세운에 대한 복수와 돌아오는 중원 상권의 이익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좋아.”
출파의 기마가 머리를 돌려 뒤를 향했다. 그의 뒤에는 흑무기마대의 가장 핵심이 되는 열명의 무인들이 투구 속에서 눈을 빛내며 자신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출파는 그들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흐흐흐. 먹이가 코앞이다.”
출파의 뜻을 알아차렸음인지 그들의 전신에서 살기가 뭉클 피어올랐다. 출파는 제 삼 부대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몸은 완쾌 되었나?”
“예!”
간단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선발에 서고 싶다는 욕망의 냄새가 짙게 풍겼다. 출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제 삼 부대가 나와 함께 대문을 통해 들어가고 나머지 부대원들은 모두 저 곳에서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포위한다. 항시 진을 운용할 수 있게 간격을 유지해라.”
“예!”
출파의 시선은 다시 대궐 같은 양관척의 집을 향했다. 사냥의 시간이 다가왔다.
양관척이 안내한 곳에서 차를 마시던 광오문 일행은 이어서 들어오는 요리들에 입을 쩍 벌렸다. 한상 가득 산해진미가 김을 내며 들어오는 모습에 유세운은 양관척에게 총관을 맡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세운은 다시 한번 곽부설에게 확인 차 물었다.
“그러니까 만수화의가 형산에 있단 거야?”
“예. 제 동생이 자개봉에 있는데 그곳에 같이 계실 겁니다.”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눈앞에 산해진미가 있으면 무엇 하는가? 자신이 치료를 받으려면 앞으로 또 죽을 듯이 내달리게 생겼다. 더욱이 자연지기도 없이 내력도 한줌 없는 일반인 보다 못한 자신의 체력으로 말이다.
유세운은 만사가 귀찮아지는 것을 느꼈다.
“휴~.”
짙은 한숨에 양관척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래도 행적을 알았으니 다행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군.”
양관척의 말대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만수화의 행적을 알아낸 것만도 천우신조라고 생각했다. 유세운은 좋게 생각하며 앞에 놓인 술병을 들었다. 양관척은 총관답게 최상급 죽엽청을 일인당 한 병씩 가져다 놓았다.
유세운은 술병을 들어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좋아. 만수화의를 만나러 또 다시 움직여야 할 것 같으니까 오늘 만큼이라도 분위기를 내서 마시자고.”
“하하하. 역시 문주님입니다.”
양관척의 웃음소리에 그의 부인도 옆에서 다소곳이 웃음을 지었다. 한 모금 들이킨 유세운은 순간 술기운이 확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내력이 없으니 바로 취기가 올라왔다.
“흐음. 정말 좋은 술인가 본데?”
여태껏 몸에 쌓였던 피로를 풀려는 듯 일행은 유세운의 모습에 웃음을 지으며 모두 젓가락을 들었다.
유세운은 약간 붉어진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다 물었다.
“아! 현이라는 사내는?”
유세운의 물음에 양관척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문주님의 예상대로 문을 떠났습니다.”
“쳇! 밥값은 다하고 가라고 했는데 먼저 가버렸단 말야?”
유세운의 말에 양관척은 밝게 웃었다.
“하하하. 밥값이라면 넘치도록 하고 갔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양관척의 말대로 현이라는 사내는 새로운 사업 구상도 몇 개나 해놓고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장부만 남기고 떠났다. 그것을 본 양관척은 그를 놓친 것이 더욱 후회됐었다.
동무벽은 오리고기를 통째로 손에 든 채 한입 가득 물어뜯으며 물었다.
“혈천문에서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냐?”
동무벽의 물음에 양관척은 조용히 술잔에 죽엽청을 따르다가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혈영단의 눈과 귀가 우리보다는 문주님 쪽을 향한 것 같던데?”
동무벽은 자신의 고슴도치 같은 수염을 씰룩거리며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젠장. 이거 형산으로 가다가 부딪치면 안 좋은데…”
아무리 새로운 경지에 대해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는 천풍쌍기라도 혈천문이라는 육대세력의 일좌를 담당하고 있는 그들은 무리였다. 동무벽의 말에 양관척은 술잔을 들이키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걸? 문주님의 행보는 예전 창천궁을 향해 가셨을 때처럼 지금 강호의 정보망에 잡히고 있지 않아. 문주님의 몸이 상할 정도의 이동 속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일 거야.”
양관척의 말에 동무벽과 관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
누가 뭐래도 광오문은 유세운이 있어야 했다. 광오문주가 없는 광오문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유세운은 밝게 웃었다.
“좋아. 내일 바로 떠나자고.”
유세운의 말에 육우령이 자신의 미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곳에서 형산까지는 얼마나 걸리나?”
그나마 가장 절친한 동무벽이 곧장 대답했다.
“우리가 이곳으로 향한 속도로 간다면 길어도 십일이면 도착 할 수 있을 거야.”
관백도 연어요리를 한점 집어 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 한 달이 걸리지 않겠군.”
관백의 말에 좌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세운은 곽부설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이번에 곽문도의 동생도 볼 수 있겠는데?”
곽부설의 냉막한 얼굴에 봄기운처럼 훈훈한 미소가 어렸다.
“부족한 동생 놈입니다.”
“하하하. 곽문도도 동생 얘기할 때보면 영 살수 같지가 않아.”
웃음을 터트리는 유세운을 보며 곽부설은 자신의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양관척의 대궐과 같은 집이라도 천명이라는 인원이 충분히 포위했다. 대략 십장 거리를 두고 담장에서 떨어져 대기하고 있는 흑무기마대원들을 본 출파는 자신의 수염을 한번 훑어 내렸다. 준비는 끝났다. 수많은 인원으로 펼치는 몇 겹의 천라지망(天羅蜘網)만큼은 아니더라도 흑무기마대원들이라면 나는 새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자신했다.
출파는 아까부터 말없이 대문을 쏘아보고 있는 제 삼 부대장의 곁으로 다가갔다. 중원에서의 설욕을 갚을 기회. 두눈 가득 살기를 뿜어내는 모습을 보며 출파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출파가 가장 앞에 서서 대문을 향하자 그의 옆으로 청운마왕이 말을 끌고 왔다.
“지금 바로 칠건가?”
출파는 잠시 고민했다. 언제 친다 해도 승리는 당연했다. 이익과 무인의 호승심을 자극할 만한 적수가 같이 기다리고 있는 곳. 약간의 긴장감이 전신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었다.
“지금이라면 충분할 것 같군.”
청운마왕은 입으로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줄까?”
청운마왕의 말에 담긴 뜻을 눈치 채지 못할 출파가 아니었다. 청운마왕이 아무리 풍류공자 같은 모습을 보인다 해도 그 또한 엄연한 심검에 들어선 무인. 손속을 겨루고 싶어 함이 분명했다. 하지만 출파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거래도 있었고 우리에게도 복수의 의미가 있으니 도움은 필요없어.”
출파의 말에 청운마왕은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의 구경은 허락해 주겠지?”
“크흐흐. 이곳까지 황군의 눈을 피하게 해 준 대가로 그정도야 들어주지.”
출파의 시선이 다시 양관척의 집 대문을 향했고 그의 손이 들어 올려졌다.
모든 흑무기마대원들의 시선이 출파의 손을 향했다. 아니 그의 손에 들린 장창에 맺힌 강기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