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아무리 분노하고 내력을 끓어 올려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조상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비천마왕을 쏘아 보았다.
“하아. 하아.”
“크흐흐. 고생이 많군. 이만 편히 쉬게나.”
비천마왕의 양손에 핏빛의 강환이 맺혔다. 비천폭뢰환. 조상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마지막 진기를 끓어 올려 만든 푸른 강환을 보며 비천마왕은 혀를 찼다.
“쯧쯧. 그게 마지막 발악인가?”
청죽오검이 참지 못하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조상이 멈춰 세웠지만 문주의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태. 벌은 나중에 받아도 되었다.
“죽어랏!”
청죽오검의 검극에서 뻗어오는 강기를 보며 비천마왕은 귀찮다는 듯이 왼손을 휘둘렀다.
콰쾅.
“안돼!”
조상의 헛된 외침에도 불구하고 청죽오검의 신형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조각났다. 청죽오검의 피를 뒤집어쓴 조상의 두 눈이 분노로 가득 찼다.
“용서할 수 없다!”
비천마왕은 달려오는 조상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수라에게 바쳐지는 첫 제물이 됨을 기뻐해라.”
조상의 장환을 맞아가는 비천폭뢰환을 보며 비천마왕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콰쾅.
“크헉!”
피분수를 뿜으며 날아가는 조상을 보며 비천마왕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청의문의 남은 자들도 같이 보내주지.”
조상은 죽음이 참 가까이 다가왔다고 믿었다. 느리게 보이는 푸른 하늘. 한점 모이지 않는 내력. 날아가던 몸이 누군가에 의해 받아졌다. 조상은 침침해지는 눈을 들어 자신을 받은 자를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을 가리는 죽립의 창을 보며 조상은 의아해했다. 청의문 내에 죽립을 쓰는 인물은 없었다. 비천마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누구냐?”
죽립인은 조상을 내려놓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뽑혀져 나오는 고검. 영호천의 고검이 비천마왕을 가리켰다.
“천산(天山)에서 왔는가?”
영호천의 물음에 비천마왕의 안색이 변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심검에 든 상대였다. 비천마왕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아하! 남해(南海)에서 왔나보군.”
영호천의 전신에서 범접할 수 없는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넌 이 자리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흐흐흐. 이거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하는군. 난 본교의 십팔마왕 중 비천마왕이라 한다.”
영호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강해 보인다 싶었지. 난 영호천이라고 한다.”
영호천의 말에 비천마왕은 흠칫 놀랐다.
“설마…그렇다면 네놈은?”
콰쾅.
“제길!”
와선파천지를 비롯해 자신이 아는 모든 절기를 풀어내도 광천주 이청형을 상하게 하지 못했다. 유세운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평상시만 같았어도.”
이청형은 유세운의 말에 혀를 찼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안타깝군.”
이청형은 유세운을 바라보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육우령을 상대한 이후 더 이상 북천에서는 상대할 자가 없어 이것을 꺼내 본적이 없었지.”
지이잉.
이청형의 오른손에서 생겨나는 하늘처럼 푸른빛의 강환을 보며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대단한 것 나온다고.”
유세운의 주먹에 맺히는 은빛의 강환을 보며 이청형은 피식 웃었다.
“내가 왜 광천주라 불리는지 알게 해주지.”
이청형의 오른손에 맺혔던 강환이 점점 커지는 것을 보며 유세운은 당황했다.
“어이. 어이.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어느새 어린아이 머리통만 해진 푸른빛의 강환을 들고 이청형이 웃음을 지었다.
“광천환(光天環)이라고 하지.”
이청형의 손이 휘둘러지고 광천환이 순간을 가르며 유세운을 향해 쏘아졌다. 유세운의 우보가 진각을 내딛었다.
텅.
“이까짓 거!”
유세운의 쌍권에 맺힌 강환이 쏘아져 오는 광천환을 맞이했다. 쌍권의 강환과 부딪치려는 찰나 광천환이 두 개로 갈라졌다.
“응?”
머리와 다리를 노리며 날아오는 광천환을 피해 유세운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다리를 노리는 광천환을 향해 내뻗은 다리에 은빛의 강환이 생겨났다.
콰쾅.
“크윽.”
유세운은 발을 움켜쥐고 제자리에서 뛰었다. 이청형은 유세운을 보며 광천환을 회수했다.
“후후. 발이 저린가 보군.”
이청형의 말에 유세운은 두발로 굳건히 땅을 딛었다.
“웃기지마.”
유세운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자를 쓰러트리지 못하면 아무리 지원군이 와도 위험한 상황. 더 이상 지체 할 수 없었다.
“이 한번으로 끝내주마.”
유세운의 기세를 읽은 이청형은 광천환에 맺힌 자연지기를 풀어내며 웃음을 지었다.
“기대해 보지.”
“평생 잊지 못할 거다.”
유세운의 신형이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깊이 들이마시는 자연지기. 전신을 휘돌아 와선형으로 발출되는 자연지기가 눈부신 은빛을 내뿜었다.
“은천광세!”
은빛을 받은 이청형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북천광폭살(北天光暴殺)이라고 하네.”
이청형 뒤쪽의 자연지기가 일순 그의 몸을 거쳐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눈을 아리게 하는 하늘빛의 기운.
콰콰쾅.
“크윽!”
달려오던 기세보다 더욱 빠르게 튕겨져 나가는 유세운의 입가에 선혈이 흘러내렸다. 유세운은 숨을 몰아쉬며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소매로 닦았다.
“하아. 하아. 뭐야 저 녀석은.”
은천광세를 막아내는 자를 처음 본 유세운의 표정에 암담함이 어렸다.
“제길!”
눈부시게 피어오른 은빛의 광채와 하늘빛의 광채에 도병우의 시선이 흔들렸다.
“승부는?”
“저게 뭡니까?”
다가와 묻는 하후추에게 도병우는 자신의 염소수염을 습관적으로 쓰다듬으며 답했다.
“은광천세라고 문주님의 성명절기인데, 저 하늘빛은 잘 모르겠습니다.”
삼홍검 서중과 병환검 단량을 노려보던 궁역이 피식거렸다.
“방주님의 북천광폭살이다. 단 한번 펼치셨던 무공이지.”
북천방도들을 모아놓고 보여준 무공. 그 이후로 단 한번도 북천광폭살을 펼치지 않았다. 당시에도 누굴 상대로 하지 않고 펼쳤던 북천광폭살에 모든 북천방도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다.
궁역을 바라보던 단량이 서중에게 말을 건넸다.
“어지간하면 양보해.”
“흥. 웃기지마. 이런 놈이랑 겨뤄 보는게 자주 오는 기회인줄 알아?”
서중의 투덜거림에 궁역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들이 진짜 웃기지도 않는군.”
궁역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둘의 말싸움은 이어졌다. 눈 밑이 검은 단량이 장검을 내린 채 화를 냈다.
“네가 당해내지 못할 상대니까 하는 말이다.”
“그럼 너는 당해 낼 수 있고?”
삼홍검 서중도 지지 않고 말대꾸하자 단량이 장검으로 서중을 겨누었다.
“계속 덤비면 너부터 쓰러트린다.”
“오호. 그래. 한번 해보고 싶었다 이거지? 좋아.”
삼홍검 서중이 두 번째 검을 뽑아들며 서중을 노려보았다. 둘의 행동을 지켜보던 도병우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무슨 짓들…”
서중과 단량의 살기어린 시선이 꽂히자 도병우는 딴청을 피웠다. 서로를 향해 기세를 일으키는 모습을 본 궁역이 발이 땅을 박찼다.
“이것 들이 누구 앞이라고!”
서중을 향해 좌검의 쾌검이 펼쳐지고 단량을 향해 패도적인 우도가 휘둘러졌다. 서중과 단량의 고개가 동시에 궁역을 향해 틀어졌다.
“넌 빠져 있어!”
동시에 외침과 함께 단량의 장검과 서중의 쌍검이 휘둘러졌다. 궁역의 좌검이 펼치는 쾌검을 서중의 쌍검이 막아냈고 패도적인 우도는 단량의 장검이 막아냈다.
쩌쩡.
서중과 단량의 시선이 다시 마주쳤다. 서중이 투덜거렸다.
“쳇. 이놈부터 해치우고 보자고.”
“오늘 곡소리를 듣게 해주마.”
궁역을 쳐낸 단량과 서중이 나란히 섰다. 낭인천을 이끌던 둘이 나란히 선 모습을 본 궁역이 피식 거렸다.
“진작 그렇게 나올 것이지 왜 시간은 끄는 거냐?”
궁역의 좌검이 땅을 가리키고 우도가 하늘을 가리켰다. 천천히 움직이던 좌검과 우도가 만나는 곳에서 검은빛의 강환이 피어올랐다.
“한꺼번에 덤벼라.”
궁역의 기세를 보던 단량과 서중의 검에도 검환이 피어올랐다. 단량의 병색 짙은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너랑 같이 누군가를 노리게 될 줄은 몰랐군.”
“전장만 아니었어도 어림없어.”
대꾸하는 서중의 얼굴에도 미소가 그려졌다.
힘차게 내딛은 진각에 이어지는 도세. 등악표의 대도가 바람을 갈랐다.
“혈풍칠연격(血風七連擊)!”
등악표가 북천혈풍단주의 위를 받은 날. 이청형이 불러 가르쳐준 일 초. 패도적인 도세가 끊이지 않고 일곱 번이 펼쳐지면 피바람만이 불었다.
회심의 일격을 펼치는 등악표를 향해 동무벽이 진각을 내딛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 좋구나. 풍천팔단(風天八斷)!”
팔방을 베어 내는 동무벽의 도법이 펼쳐졌다. 깨달음이 한 걸음 진보했음인가. 예전의 도법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여덟 방위를 베는 도세가 서로 다른 속도와 변식을 품고 뻗어나갔다.
콰콰쾅.
등악표의 혈풍칠연격이 한번, 한번 풍천팔단의 도세에 부딪치며 힘이 줄어갔다. 등악표의 이마에 힘줄이 불거져 나왔다. 혈풍칠연격의 끝. 이어지지 않는 내력을 끌어 올리며 한걸음을 더 내딛었다.
쾅!
“크헉!”
풍천팔단의 마지막을 막아내지 못하고 내상을 입고 물러나는 등악표를 보며 동무벽이 고슴도치 같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미안하지만 이 승부는 여기서 끝났군.”
동무벽의 우보가 진각을 내딛었다.
텅.
“좋은 승부였다.”
동무벽의 마음이 담긴 일도가 펼쳐졌다. 등악표는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도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육우령이 당한 일도도 저것이었으리라.
콰쾅.
등악표의 뒤에서 날아온 두 개의 강환이 동무벽의 일도를 막아냈다. 등악표의 고개가 뒤로 돌려졌다.
“팔신장?”
“지금 뭐하는 겁니까?”
팔신장 중 둘이나 이곳에 나타난 것에 등악표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방주님을 보필하는 자들이 이곳에 나타나다니.
팔신장들이 동무벽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방주님이 허락한 일. 저자는 우리가 맡겠소.”
“무슨…”
내상을 입은 등악표는 자신을 가로질러가는 팔신장의 뒷모습만을 바라보았다. 팔신장 둘의 연수합격이라면 사대천왕도 이겨내지 못한다고 했다. 여덟이 모이면 북천에 방주를 제외하면 당할 자가 없다는 말도 있었다.
동무벽은 보도를 어루만지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가마나 매는 것들이 지금 누구 앞을 막는 거냐?”
팔신장들의 이마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실컷 떠들어라. 죽기 전에.”
“크흐흐. 가마나 매고 있었으면 죽지는 않았을 것을. 불쌍한 것들.”
동무벽은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이 땅을 박차고 둘을 향해 달려들었다. 웃고는 있었지만 자신 또한 많은 내력소모로 숨이 차왔다. 오래 끌어서는 좋을 일이 하나도 없었다.
“단번에 죽여주마!”
“웃기지 마라!”
동무벽의 도발에 넘어간 팔신장 둘의 강환이 전면으로 들이닥쳤다. 동무벽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