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63화 (163/194)

(163)

보도를 타고 흐르는 핏물을 보며 동무벽은 자신의 고슴도치 같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백호부대원 중 사백여 명을 쓰러뜨린 상태. 자신의 뒤에 있는 지원군의 수는 반으로 줄어 있었다. 칠십여 명의 무인을 보던 동무벽은 자신의 앞에 선 자를 바라보았다.

유세운에게 허락 받은 자. 북천혈풍단주가 호랑이 가죽투구를 눌러쓴 채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말 한대로 네놈의 목을 가지러 왔다.”

“찾아갈 수고를 줄여줘서 고맙군.”

동무벽은 태연히 말하고 자신의 보도를 휘둘러 핏물을 털어냈다. 동무벽은 턱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넌 무인이냐?”

“무슨 소리냐?”

동무벽의 물음에 북천혈풍단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동무벽은 보도로 그를 겨누며 말을 이었다.

“일단 네놈의 목을 가져가는 과정에서 다른 이들이 방해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동무벽의 말에 북천혈풍단주는 웃음을 지었다.

“얄팍한 수로군. 그래봤자 네놈의 목이 떨어지는 건 순간이다.”

북천혈풍단주는 자신의 대도를 뽑아 들며 웃음을 지었다.

“네놈의 목이 떨어지는 순간 저 뒤에 있는 중원인도 도륙날 것이다.”

“난 광오문의 우호법인 동무벽이다.”

“난 북천방의 북천혈풍단주 등악표다.”

동무벽은 말의 옆구리를 차며 보도를 휘둘렀다.

“등악표! 받아봐라!”

등악표는 달려오는 동무벽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육우령의 그림자는 전 북천방도 모두에게 드리워져 있다. 방주가 인정한 무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이가 그를 넘어서려 했던가.

방주만큼이나 많은 존경을 받는 무인을 꺾었다는 상대. 비열한 수에 당할 육우령도 아니었다. 등악표의 대도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기대해 보마!”

등악표의 말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펄럭이는 붉은 망토와 바람을 가르는 대도의 소리가 전장을 가로질렀다.

콰콰쾅.

정면으로 강환과 선환이 부딪치는 경력의 여파에 주작부대원도 관백의 부대원들도 모두 뒤로 물러나기 바빴다. 서로 말은 안했지만 어느새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고 둘의 결전을 지켜보기 바빴다.

관백의 신형이 좌우로 빠르게 흔들리며 공손령의 간격을 지우고 다가가려 했지만 굳게 땅을 디디고 선 그녀는 빈틈이 없었다. 느린 신법을 보강하는 방법이었을까? 혀를 내두를 만한 창술로 간격을 지울 틈을 보이지 않았다.

아까부터 시작한 강환끼리의 대결. 관백은 입맛이 썼다. 자신이 상대할 자는 공손령만이 아니다. 가뜩이나 적은 인원 자신이 모자란 몫을 해줘야 했다.

관백의 눈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미안하오.”

“무슨 헛소리냐?”

말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찔러 들어오는 장창을 피해내며 관백은 속으로 감탄했다. 저 덩치에서 쉬지 않고 창을 휘두르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한 것은 자신. 관백의 발이 한보 앞으로 내딛었다.

“어디를 들어오는 것이냐?”

공손령의 장창이 머리를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관백의 신형이 반보 옆으로 움직이며 장창을 피하며 다시 앞으로 한보 내딛었다. 공손령의 장창이 옆으로 휘어지며 베어왔다.

부웅.

관백은 바닥으로 몸을 숙이며 장창의 공세를 피해냈다. 위험을 감수한 만큼 전신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막아내기도 힘겨운 공손령의 장창을 피하며 한걸음씩 다가가는 관백의 마음으로 유세운의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의기상인.

심검의 경지. 무엇보다 빠른 것은 마음.

공손령의 조급해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눈앞에 선연히 그려지는 자신이 갈 방향. 공손령의 장창이 만들어내는 공세의 빈틈이 보였다.

“이익!”

미친 듯이 휘두르는 장창을 피하는 무아지경에 빠진 듯한 관백의 모습에 공손령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디를 공격해도 어떤 방법을 이용해도 관백은 미리 알았다는 듯이 피해내고 있었다. 점점 장창을 짧게 잡아갔다.

이미 관백의 선법의 간격 안으로 들어섰다. 장병의 이점은 이미 사라졌다. 공손령의 얼굴에 비장함이 어렸다.

“칠성격(七星擊)!”

텅.

서로 다른 속도로 뻗어가는 일곱 번의 찌르기. 느리고 빠르고 창끝이 흔들리며 뻗어가는 일곱 가지 다른 공격. 주작장군의 위를 받으며 북천방주 이청형에게 전수 받은 창법이 펼쳐졌다.

관백의 눈이 번뜩였다. 입가에 자기도 모르는 채 지어지는 미소는 유세운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공손령이 펼친 칠성격의 위력 앞에 찢어질 듯 펄럭이는 장포에도 관백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슬며시 뻗은 왼발. 관백의 신형이 흔들렸다.

슈아악.

믿을 수 없을 만큼 여유 있는 움직임으로 관백의 신형이 칠성격을 가르고 들어섰다. 흔들리던 관백의 신형이 공손령의 코앞으로 들이닥치며 그의 부채가 휘둘러졌다.

“선풍참!”

쩡.

“꺄악!”

피를 토하며 날아가는 공손령의 가슴이 길게 베어졌다. 분수처럼 쏟아지는 피를 보며 관백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관백의 부채가 섬전처럼 휘둘러졌다.

파팟.

날아가던 공손령에게 날아간 날카로운 경기는 가슴 근처의 혈도를 점해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던 피를 줄였다. 관백의 신형이 날아올라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힘내라! 아직 승부가 난 것은 아니다!”

“와아!”

주작장군을 쓰러트린 것만으로 관백의 부대는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퍼펑.

“크악!”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지는 자들을 가르며 청의 금검대 인물들이 장내로 들어섰다. 관백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무슨 일인가?”

덕선은 관백에게로 달려오며 대답했다.

“유문주님이 북천방주를 상대하신다고 저희에게 관호법님을 도와 주라고 하셨습니다.”

관백은 덕선의 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군. 지금은 문주님을 믿는 수밖에.”

비틀거리던 도병우는 하후추에게 전음을 보냈다.

(하후 외문주님. 저자의 시선을 잠시만 끌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왜 그러시오?)

도병우는 지친 시선으로 궁역을 바라보며 전음을 보냈다.

(무력만으로 당해낼 방법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하후추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후추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궁역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나?”

하후추의 패검의 끝에 검환이 맺혔다. 궁역은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마지막 발악인가?”

궁역의 자세가 낮아지며 내뻗은 좌검의 끝에 검은 색의 검환이 맺혔다. 하후추는 입안이 타는 듯했다.

도병우는 곰방대의 손잡이를 비틀어 쥐고는 하후추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하후추가 좌검을 상대하는 그 순간 밖에 기회가 없었다.

궁역의 신형이 하후추를 향해 달려들었다.

텅.

진각을 내딛으며 뻗어가는 쾌검. 하후추의 패검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도병우가 궁역의 좌측을 노리고 곰방대를 찔렀다. 한줄기 강기와 함께 들어오는 도병우의 공세에 궁역은 웃음을 지으며 오른팔을 뒤로 돌렸다.

우도에서 뻗어오는 도강에 곰방대의 강기가 스러지는 순간 도병우의 곰방대에서 셀 수 없을 만큼의 세침(細針)이 쏟아져 나갔다.

슈파팟.

궁역의 시선에 경멸의 빛이 스쳤다. 뒤로 돌려 막던 우도가 위로 치켜 올라가며 하후추의 패검을 막아갔고 좌검이 호선을 그리며 강기막을 펼쳤다.

콰쾅.

급작스레 펼쳐진 강기막이 세침들을 막는 동안 하후추의 패검이 벼락처럼 궁역의 우도를 쳐냈다. 궁역은 한발을 뒤로 빼며 몸을 선회했다.

거리를 두고 멀어진 궁역은 왼쪽 팔꿈치에 박힌 하나의 세침을 발견하고 뽑아냈다.

“크흐흐. 이것 참 중원이라는 곳은 재밌는 곳이군.”

비꼬는 투가 역력한 말에 도병우는 얼굴을 붉혔다.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나 펼치는 최후의 한 수를 저렇게 쉽게 막아내다니. 하지만 곰방대에 들어간 세침에 묻은 마비약은 금세 궁역을 멈추게 만들 것이다.

궁역은 오른손에 들린 도의 손잡이에 매달린 작은 구슬을 입으로 뜯어 물었다. 궁역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방주님에게 하사 받은 피독주(避毒珠)다.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군.”

태연한 궁역의 얼굴을 보며 도병우의 안색이 검어졌다. 궁역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너 같은 자를 가장 경멸하지. 각오하는게 좋을 거다.”

천천히 내려서는 발걸음. 평야의 땅을 밟고 선 이청형은 유세운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오늘 참 분주하게 돌아다니더군.”

“흥.”

코웃음을 친 유세운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아무리 자연지기를 쓴다지만 너무나 많은 내력을 발출했다. 몸에 쌓인 피로도 가볍지 않았다.

별로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상대는 이청형. 최상의 상태라도 승부를 짐작할 수 없는 상대다.

“어떠냐? 아직도 네 생각은 변함없나?”

“헛소리 집어치워라.”

유세운은 이청형의 한마디에 그를 향한 분노가 다시 끓어올랐다. 사부님을 욕보인 자. 결코 용서해줄 마음은 없었다.

이청형은 유세운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좋다. 중원은 역시 넓군. 심검의 고수를 다시 보게 되다니 말이야.”

“엥? 무슨 소리냐?”

유세운의 물음에 이청형은 뒷짐을 진 채 답했다.

“나를 찾아와 비서(秘書)를 전한 자.”

“뭐야? 비서? 잠깐 전한 자라니… 그런 자가 심검에?”

유세운의 다급한 물음에 이청형은 한걸음 앞으로 내딛으며 답했다.

“중원의 힘을 느껴보고 싶어졌었다. 그리고 너를 만났군.”

이청형의 뒷짐을 졌던 손이 풀어져 내려왔다.

“중원의 힘을 보여라.”

“좋아. 다시는 잊지 못하게 해주마.”

이청형의 좌권이 삼 장(三丈)을 격하고 경력을 발출했다. 유세운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이청형을 향해 쏘아져 갔다. 최단거리로 달려온 유세운의 좌권이 이청형의 가슴을 노렸다.

“무모하군.”

이청형의 우수(右手)가 갈고리 모양을 취하며 유세운의 손목을 노렸다. 유세운의 왼발이 진각을 내딛었다.

텅.

내뻗던 좌권이 거둬지며 왼쪽 팔꿈치가 이청형의 우수를 노렸다. 와선형의 경력을 느끼며 이청형의 눈빛이 신기하다는 듯이 변했다.

텅.

이청형의 우보가 진각을 내딛고 우수가 거두어 지며 좌장이 유세운의 옆구리를 노렸다. 유세운의 팔꿈치가 방향을 틀어 이청형의 좌장을 막아갔다. 그리고 반보 앞으로 다가가며 내뻗는 우권에 이청형은 웃음을 지었다.

“하하. 너무 자신만만하군.”

이청형의 좌장이 거두어지며 중지를 퉁겼다.

핑.

이청형의 탄지신통에 유세운은 좌측 어깨를 뒤로 빼며 와선파천지를 펼쳤다.

쾅.

처음으로 이루어진 경력의 충돌에도 불구하고 유세운은 어깨를 흔들어 경력을 풀어냈다. 내뻗던 우권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이청형의 신형이 비스듬히 기울어지며 우수가 호조(虎爪)를 취했다. 유세운의 팔꿈치를 겨누고 섬전처럼 쏘아져 갔다.

“흥!”

유세운은 오른쪽 팔꿈치로 이청형의 호조를 찍어 누르며 그 힘을 이용해 왼발을 차올렸다. 유세운의 왼발을 보며 이청형의 왼손 중지가 다시 한번 퉁겨졌다.

핑.

날카로운 파공음. 다시 한번 펼쳐진 탄지신통에 유세운은 왼발을 거두어들이며 오른 발을 차올렸다.

파파팡.

순간적으로 펼쳐진 원앙연환퇴(鴛鴦連環腿). 이청형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차분히 좌장과 우장을 번갈아 휘두르며 막아냈다.

경력의 여파를 빌어 뒤로 일장이나 물러난 유세운은 이청형을 보며 이를 갈았다.

“흥! 제법이군.”

이청형은 유세운의 어깨 너머로 피어오르는 구름먼지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주사위가 멈춰야 결과를 알 수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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