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62화 (162/194)

(162)

콰쾅.

격렬한 굉음과 함께 장창에서 쏟아져 나오던 강기와 관백의 선강이 부딪쳤다. 자신을 넘어가려는 네 명의 여인들에게 손을 쓰려던 관백의 귀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허튼 생각 하지마!”

퍼퍼퍼펑.

“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대번에 옆으로 날아가는 적의사공녀를 보며 주작장군의 눈이 커졌다.

“무슨?”

주작장군의 시선이 닿는 곳. 주작부대원의 장창을 밟고 뛰어오르는 자가 보였다. 펄럭거리는 청의가 하늘을 가렸다.

“그 곰 같은 여자는 관호법이 맡으라고!”

“뭐야!”

관백을 향하던 장창이 휘어지며 날아오는 자를 향했다. 감히 자신에게 그따위 말을 하다니.

슈슈슉.

삼 연속 찌르기가 펼쳐졌지만 하늘을 가린 자는 믿을 수 없는 짓을 하며 피해냈다. 허공을 밟다니.

“허공답보?”

관백은 공손령을 향해 부채를 찌르며 말했다.

“너무 문주님만 보는 것 아니오? 당신의 상대는 나요.”

“건방진 것들!”

공손령의 장창이 다시 관백을 향했다. 찔러오던 부채를 쳐내고 다시 관백의 목을 노렸다. 관백은 여유 있게 미소를 지었다.

“입마저 험하니 참으로 고생이 많겠소.”

관백은 말안장에서 뒤로 누우며 공손령의 장창을 피해냈다. 말안장에서 한바퀴 돈 관백은 등을 퉁겨 몸을 띄웠다. 말안장 위에 올라선 관백을 향해 공손령의 장창이 다시 한번 날아들었다.

슈아악.

관백은 부채를 펼쳐들어 공손령의 장창의 방향을 슬며시 틀어내며 그 위에 올라섰다. 공손령의 얼굴이 붉어졌다.

“무시하는 것이냐?”

공손령의 장창이 내력을 받아 휘어졌다. 관백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좋은 창술이오.”

관백의 신형이 장창을 밟고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공손령의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어렸다.

천풍쌍기가 위명을 날리던 시절 패도적인 동무벽의 도법과 함께 섬세한 신법과 선법으로 이름을 날리던 관백의 신법이 펼쳐졌다. 일시에 부채의 공격권으로 들어갔다.

공손령의 좌장이 연속해서 세 번을 쳐냈다.

퍼퍼펑.

관백의 부채가 좌우로 움직이며 공손령의 장력을 틀어냈다. 얇은 창대위에서 신형을 움직이면서도 부채로 장력을 쳐내는 모습에 공손령의 안색이 미미하게 떨렸다.

“차핫!”

공손령의 장창이 횡으로 휘둘러졌다. 관백은 여유 있게 공손령의 말머리에 내려섰다.

“제 간격으로 들어오셨군요.”

“과연 그럴까?”

붉은 면사 아래 공손령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휘둘러졌던 장창이 그녀의 허리를 돌아 관백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헛!”

텅.

관백의 신형이 뒤로 솟구쳐 올랐다. 짧게 끊어져 들어오는 공손령의 장창의 간격을 피하는 관백을 보며 공손령은 이를 갈았다.

히힝.

그것도 그냥 뒤로 몸을 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애마를 단 한번의 발굴림으로 죽인 관백을 향한 살의가 전신을 덮어갔다.

“각오해랏!”

주작장군 공손령의 장창에 붉은 강환이 어리는 것을 보며 관백도 바닥에 내려섰다.

“좋습니다.”

관백의 부채 앞으로 흰색의 선환이 피어났다.

콰쾅.

“크윽.”

뒤로 물러나는 하후추와 도병우의 얼굴에 황당함이 어렸다. 도병우는 염소수염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뭐 저런 괴물 같은 자가 다 있지?”

현무장군 궁역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뭐하는 건가? 고작 이정도로 잘난 척을 한 건가?”

좌검우도이면서 어디하나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패도적인 우도와 빠른 쾌검을 구사하는 좌검. 어떻게 저런 수련을 해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궁역은 좌검을 세우고 우도로 하후추를 겨누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듣지 못했군.”

“청의문의 하후추라고 하오.”

하후추의 말에 궁역의 얼굴에 비웃음이 지어졌다.

“뭔가? 중원의 육대세력의 하나인 청의문의 외문주나 되는 자가 이정도 밖에 안되다니 실망이군.”

궁역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하후추를 향해 달려들었다. 도병우는 이를 악물며 곰방대를 휘둘렀다.

짧게 끊어 치는 곰방대에서 강기가 휘몰아쳐 나왔다. 도병우의 성명절기인 광풍편강(狂風片?)이 펼쳐졌다.

“아직도 모르겠나?”

궁역은 하후추를 향해 달려가며 시선도 돌리지 않고 우도를 휘둘렀다.

부아앙.

우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패도적인 강기에 휘말려 도병우의 광풍편강은 속절없이 날아갔다. 도병우는 정신없이 발을 움직여 경력을 흩으려 놓았다.

궁역의 발이 기묘한 방위를 밟는다고 느낀 순간 좌검이 눈부신 속도로 하후추의 요혈들을 노렸다. 일순간 아홉 방위를 찔러오는 좌검을 보며 하후추는 이를 악물었다.

“하앗!”

하후추의 발이 청류보를 밟으며 그의 패검이 분광참뢰검을 펼쳤다.

차차차창.

다섯 번의 요혈을 막아내고 나머지는 쾌검의 경로를 틀어 놓았지만 작은 검상을 세 군데나 입었다. 눈앞으로 달려든 궁역의 왼발이 진각을 내딛었다.

텅.

궁역의 우도가 선회하며 베어 왔다. 일체의 변식도 없이 패도적인 위세로 들어오는 우도를 향해 하후추의 패검이 휘둘러졌다.

쩡.

“크윽.”

궁역의 눈이 빛나며 다시 한번 좌검이 움직이려는 찰나 도병우가 다시 한번 곰방대를 휘둘렀다. 궁역은 입맛을 다셨다.

“귀찮군.”

궁역은 말을 마치자마자 좌검을 흔들었다. 도병우의 곰방대의 경로를 끊으며 들어온 좌검이 도병우의 목을 노렸다.

“우습게 보는가!”

도병우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이어져 휘두르는 곰방대가 간신히 궁역의 검을 쳐냈다.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난 도병우는 눈을 들어 궁역을 바라보았다. 궁역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도병우를 바라보았다.

“그정도 실력으로 감히 전장에 나오다니 겁이 없군.”

“크윽.”

궁역은 우도로 하후추를 겨누고 좌검으로 도병우를 겨누었다.

“중원은 내 검을 받을 인물이 없는가?”

촤라락.

주렴이 걷어지며 이청형이 팔인교 밖을 내다보았다. 주작부대원들이 튕겨져 날아가는 모습들이 보였다. 이청형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음을 지었다.

“도저히 가만 두어서는 안 되겠군.”

이청형은 비천마왕을 돌아보았다. 전방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비천마왕에게 이청형은 미소를 지었다.

“별로 도움이 필요하진 않으니 자네 맘대로 하게.”

“알겠습니다.”

비천마왕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여기저기서 나는 혈향에 전신에 묘한 흥분이 일고 있었다. 도와달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여 청의문도와 무인들의 피가 맛보고 싶어졌다.

이청형은 시선을 거둬 주작부대원들이 날아다니는 곳을 바라보았다.

“단주.”

“예.”

호랑이 가죽 투구를 눌러쓴 북천혈풍단주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이청형은 멀리 청의문의 진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마 북천혈풍단주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니 상대해 주게.”

이청형의 말에 북천혈풍단주가 주저하며 답했다.

“방주님.”

“응?”

아직껏 단 한번도 되물어 온 적이 없던 북천혈풍단주였던지라 이청형은 의아한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꼭 상대하고 싶은 자가 있습니다.”

이청형은 그의 말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육우령을 쓰러트렸다는 자를 말인가?”

“예.”

“좋다. 단! 그자에게 진다면 내 너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감사합니다.”

이청형은 팔인교 안으로 들어가며 명령했다.

“가자! 광오문주 유세운이라는 자에게로.”

텅.

팔인교를 매고 있던 팔인의 거한들이 동시에 발을 굴러 주작부대원들이 비산하는 곳을 향했다. 비천마왕은 팔인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어디로 가볼까?”

청의문주 조상의 눈이 흔들렸다. 기다리던 북천혈풍단이 백호부대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문주님. 적들이 움직였습니다.”

산영일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조상은 손을 들어 올렸다.

“가자. 청의문의 저력을 보여줘라!”

“와아!”

조상의 말이 땅을 박차고 백호부대를 향해 치달렸다. 그의 뒤를 이어 산영삼검과 청죽오검. 청의 은검대와 동검대 전원이 뒤를 따랐다.

청의문주 조상을 필두로 줄지어 늘어선 무인들은 어느새 쐐기 진형을 짜고 있었다. 조상은 눈을 빛냈다.

“언제까지 네놈들의 발길이 중원에 머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냐?”

작은 중얼거림을 뒤로 하며 조상의 말이 백호부대를 향해 움직이는 북천혈풍단의 중심을 향했다.

달려가던 조상은 북천혈풍단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단 한기의 말을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오는 자가 보였다. 전신을 흑의로 두른 자.

산영삼검이 조상을 앞질러 적을 맞으러 달려 나갔다.

“받아라!”

산영삼검의 검이 뻗어 나가는 모습을 보던 조상이 다급히 외쳤다.

“피하게!”

“이미 늦었다.”

짧은 대답과 함께 단 한기의 기마에서 폭발적인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핏빛의 강환이 순간적으로 산영삼검을 덮쳐갔다.

“크아악!”

“크헉!”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산영삼검을 보며 조상은 손을 들어 청의문의 정예들을 멈춰 세웠다.

비천마왕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청의문주. 당신의 피 맛이 보고 싶어졌어.”

비천마왕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기세에 조상의 얼굴이 굳어졌다.

유세운은 주작부대원들을 향해 펼치던 와선파천지를 멈췄다. 유세운이 멈춰 서자 청의 금검대의 고수들도 따라 멈춰 섰다. 적은 수로 돌격하다 멈추자 자연스레 주작부대원들에게 포위당하는 형상이 되었다.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북천방주가 왔소.”

청의 금검대 백인대장은 지친 눈빛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주작부대원들이 반으로 갈리며 장내로 들어서는 팔인교가 보였다.

유세운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북천방주는 내가 맡을 테니 관호법을 도와주시오.”

“위험합니다.”

유세운은 청의 금검대의 백인대장을 돌아보았다. 청수한 외모에 짙은 검미가 인상적인 사내였다. 유세운은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었다.

“이번 승부의 열쇠는 백인대장에게 달렸소.”

유세운의 말에 백인대장의 시선이 흔들렸다. 하지만 곧 진지한 얼굴로 포권을 취했다.

“청의 금검대 좌대장(左大壯) 덕선이라고 합니다.”

유세운은 덕선의 소개에 아직 이름도 몰랐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덕선은 포권을 취한 채 말을 이었다.

“오늘 하루 마음으로 모신 분. 무사하십시오.”

“무사하십시오.”

덕선의 뒤에 있던 청의 금검대의 고수들이 모두 포권을 취해 보였다. 유세운은 피식 웃었다.

“저놈을 용서해 줄 마음 없으니 어서 가 보시오.”

“알겠습니다.”

덕선은 굳은 얼굴로 말머리를 돌렸다.

“관호법님이 있는 곳까지 멈추는 자는 없도록 하라!”

“예!”

청의 금검대원들이 주작부대원들을 향해 검강을 뿌려대며 멀어지는 모습을 보던 유세운은 고개를 돌렸다. 팔인교의 주렴이 걷어지며 이청형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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