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광천주 이청형
퍼퍼펑!
“크악!”
유세운은 뒤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청의 금검대 고수 백 명이 유세운이 만든 길을 따라 백호부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청의 금검대 백인대장의 앞을 달려오는 갈색 말을 보며 유세운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 오늘은 끝까지 한번 같이 가보자.”
가볍게 몸을 띄워 올린 유세운은 갈색 말의 안장에 올라타고 말의 허리를 찼다.
“달려라. 오늘은 멈추지 않게 해주마.”
“머…멈춰라!”
입 가득 선혈을 토하고 양팔을 못 쓰게 된 상황에서도 일어나며 소리치는 야율적을 향해 유세운은 감탄의 눈빛을 던졌다.
“대단하군.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유세운의 손에서 뻗어나간 와선파천지를 향해 야율적은 뛰어올라 발차기를 했다.
퍼엉.
와선파천지의 경력을 감당 못한 야율적의 신형이 풍차처럼 회전하며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야율적이 날아간 방향으로 말을 몰며 유세운의 십지에서 쉬지 않고 와선파천지가 펼쳐졌다.
퍼퍼펑.
“크아악.”
달려가는 말 위에서 부채를 펼쳐든 관백은 백호부대를 관통하는 유세운의 부대와 미친 듯이 보도를 휘두르는 동무벽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아주 신났는데?”
관백은 코앞에 보이는 주작부대의 대장기를 바라보았다. 주작부대 역시 오백의 주작부대원들이 앞을 막고 있었다. 관백은 말의 고삐를 왼쪽으로 챘다.
히힝.
방향을 틀어 주작부대의 좌측 끝에 있는 백인대장을 향해 관백의 부채가 휘둘러졌다.
부채의 궤적을 따라 뻗어가는 선강(扇?).
바라보던 백인대장이 다급히 창을 휘둘렀다. 창의 끝을 따라 뻗어오는 강기가 관백의 선강에 밀렸다.
퍼엉.
“크윽!”
부러질 듯 휘어지는 창대를 움켜쥐는 손에 한줄기 핏물이 흘러내릴 때 관백이 옆을 지나가며 다시 한번 부채를 휘둘렀다.
“나는 동가처럼 힘으로 상대해줄 마음 없어.”
스걱.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백인대장의 수급이 날아올랐다. 관백의 뒤를 이어 따라오던 백오십 명의 지원군이 일제히 병장기를 휘둘렀다.
“죽어라!”
“중원이 어디라고 넘보는 거냐!”
차차창.
격렬한 병장기의 충돌음 사이로 관백의 시선은 주작기를 쫓았다. 자신들이 있는 쪽으로 주작기의 방향이 틀어지는 것을 본 관백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달려라.”
관백은 말의 허리를 차며 앞으로 내달렸다. 자신이 주작장군에게 묶여 있으면 부대의 전투력이 떨어지는 건 기정사실. 주작장군을 만나기전에 최대한의 피해를 입혀야 했다.
관백의 부대가 뒤로 돌아 후방의 주작부대를 공격했다.
붉은 면사를 쓰고 지켜보던 주작장군 공손령의 눈빛이 흔들렸다.
“저런 쥐새끼 같은…”
공손령의 양발이 말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히히힝.
슈아악.
잘게 쪼개지며 쏟아져 나가는 강편(?片)에 청룡부대원들이 속절없이 쓰러져 나갔다. 그나마 백인대장들이나 막아서고 있는 형편. 그런 백인대장들에게는 여지없이 하후추의 패검이 날아들었다.
콰앙.
“크헉.”
청의문의 외문주로 있는 하후추의 패검을 막아내기엔 청룡부대 백인대장들의 검은 너무나 얇았다. 중병의 이점에 이어 눈부시게 빠르게 뻗어가는 패검을 보며 두 눈만 크게 뜨다가 죽어나간 백인대장이 둘이다.
하후추는 패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연환강편을 펼치고 그것을 막은 자들을 처리하는 자신과 두 제자들의 연환공격에 청룡부대원 중 이백 가까이가 쓰러졌다.
어제 야습으로 청룡장군과 백인대장 다섯을 해치운 효과가 이토록 클 줄은 몰랐다. 차근차근 밀고 들어가는 모습에 하후추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해볼만 하겠는데?”
연환강편이 펼쳐지려는 모습을 본 하후추는 말을 좌측으로 몰았다. 저쪽에서 합공으로 백인대장 한 명을 벤 위지남매가 우측으로 말을 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연환강편을 펼쳐랏!”
슈아악.
도병우의 명령을 따라 펼쳐지는 연환강편을 보고 청룡부대원들이 처음으로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후추는 도병우의 명령을 따라 펼쳐지는 연환강편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저거 정말 쓸만하군.”
고개를 돌려 청룡부대를 바라보던 하후추의 얼굴이 굳어졌다. 청룡부대의 중앙을 가르며 다가오는 검은 색의 기가 보였다.
“현무장군인가?”
자신이 도병우의 부대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자가 모습을 드러내려했다. 하후추는 패검을 움켜쥐고 말을 몰아 도병우에게 다가갔다.
“도군사. 현무부대가 오고 있소.”
도병우도 현무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룡장군이 없어서 그나마 수월했는데 이제부터가 관건이군요. 원형진을 짜라!”
도병우의 명령에 열명씩 이루어진 지원군의 부대가 원형진을 짰다. 도병우의 시선을 받는 곳. 현무기가 펄럭이며 청룡부대가 좌우로 늘어섰다.
짙은 흑의에 피부가 검은 사내가 들어섰다. 짙은 턱수염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말에 타고 있어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그리 큰 덩치의 사내는 아니었다. 많이 잡아 봐야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웃음을 지었다.
“막철유가 없는 틈을 타 재미 좀 보고 있었나 보군.”
사내의 웃음에 도병우는 곰방대를 꺼내 들었다.
“현무장군인가?”
사내는 도병우를 바라보며 왼손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래. 내가 바로 사대천왕 중 현무장군의 위를 받고 있는 궁역이다.”
도병우는 궁역의 검을 보며 곰방대를 움켜쥐었다. 하후추를 향해 시선을 보내던 도병우는 그의 시선이 궁역에게 고정돼 있는 것을 보았다. 도병우의 시선이 하후추의 시선을 따라 궁역에게 향해졌다.
“좌검우도(左劍右刀)?”
궁역의 왼손에 들린 검과 오른손에 들린 도를 보고 도병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귀찮은 상대군.”
쌍검도 아닌 좌검우도의 고수를 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궁역의 뒤로 나타나는 현무부대의 쌍검이나 쌍도를 보며 도병우는 자신의 염소수염을 쓰다듬었다.
“수장이 있는 부대는 얼마나 다른지 봐야겠군.”
청의문주 조상은 입안이 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막상 전쟁을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사방에 들려오는 비명소리가 커져갔다. 적은 수로 처음에는 밀고 들어갔지만 이쪽의 부상자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자칫 잘못하면 손쓸 새 없이 당할 지도 몰랐다. 외문주 하후추가 직접 찾아와 한 말. 북천혈풍단을 막기 위해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 청의문의 정예와 내문의 고수들도 모두 손에 땀을 쥐었다.
산영일검이 옆에서 말을 건넸다.
“문주님. 언제까지 기다리실 겁니까?”
조상은 산영일검을 돌아보며 답했다.
“북천혈풍단이 움직이는 순간이 우리가 움직이는 순간일세.”
산영일검은 조상의 말에 다시 한번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초반에 패도적으로 밀고 들어가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 잠시 후면 북천혈풍단이 움직일 것도 없이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조상은 북천혈풍단의 핏빛 혈기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며 말고삐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움직여라. 북천방주.”
백호부대를 두 번이나 파죽지세로 밀고 지나간 유세운은 말의 고삐를 틀었다.
뒤돌아 본 청의 금검대 고수들은 얼굴에는 패기가 넘쳤지만 이미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쉬지 않고 검강을 내뻗는 다는 것. 아직 이들에겐 무리였다.
청의문 외문의 가장 주축이 되는 무인들이기에 이만큼이나 버텨온 것. 유세운은 고개를 돌려 동무벽을 찾았다. 백호장군이 없는 백호부대에서 그를 막을 자는 없어 보였다. 거침없이 뻗어가는 도세에 세 명의 백호부대원이 죽어나갔다.
(동호법. 백호부대를 부탁한다.)
동무벽은 유세운의 혜광심어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말고 관호법이나 도와주십시오.)
유세운은 말고삐를 움켜쥐고 소리쳤다.
“지금부터 백호부대를 가로질러 주작부대를 공격한다. 아직 시작일 뿐이다. 가자!”
“예.”
기합을 내지르며 사기를 올리는 청의 금검대 백 명의 고수들을 이끌고 유세운의 갈색 말이 다시 한번 땅을 찼다.
비천마왕은 장내를 살펴보다가 팔인교 안에 타고 있는 이청형을 돌아보았다.
“이대로 놔두실 생각이십니까?”
비천마왕의 물음에 이청형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뭐 사대천왕만한 고수를 얻기가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중원이 내 발밑으로 들어온다면 다시 충당 되겠지.”
이청형의 시선은 주렴을 넘어 백호부대를 다시 반으로 가르고 있는 유세운을 향했다.
“광오문주라고 했나? 생각보다 열심이군.”
이청형의 말에 비천마왕의 시선도 유세운을 향했다.
“저렇게 지쳐서 어디 제힘이나 발휘하겠습니까?”
비천마왕의 말에 이청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심검에 달해 자연지기를 이용하는 고수라해도 지치기는 매한가지. 어디 얼마나 더 힘차게 움직이는지 지켜보지.”
비천마왕은 이청형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의 자만이 이번 승부를 알 수 없게 만들고 있어. 어차피 나와 당신이 움직이면 그것으로 승부는 끝이긴 하지만.’
관백은 말의 고삐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히히힝.
거친 울음소리와 함께 멈춰선 말위에서 관백은 부채를 폈다.
“주작장군이십니까?”
붕. 붕.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두 번 장창을 휘두른 적의(赤衣)의 여인이 면사를 휘날리며 답했다.
“잘도 도망가더구나. 내가 북천방의 주작장군 공손령이다.”
관백은 부채를 가볍게 저으며 입가에 아찔한 미소를 지었다.
“말이 무척이나 힘들겠습니다.”
터질 듯한 적의를 보며 관백은 웃음을 지었다. 주작장군이라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여자였다. 하지만 말이 힘들어 보일정도의 거구. 커다란 덩치의 여인을 보며 관백은 면사로 가린 얼굴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아마도 보여주기 민망했나 보지?’
공손령의 장창이 관백을 겨누었다.
“네놈 그런 미소로 얼마나 많은 여인을 울렸는지 모르지만 내겐 소용없다.”
공손령의 말에 관백은 고개를 숙여보였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흥.”
관백은 공손령을 쏘아보며 부채를 접었다.
착.
공손령의 뒤에 있는 네 명의 적의녀. 주작부대의 백인대장들 정도의 수준으로 보였다. 자신이 주작장군 공손령을 상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저들에게 부대원들이 당할 것이다. 관백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오래 끌어선 안 된다.’
벌써 지원군에서 당한 자가 열을 넘어섰다. 쓰러트린 수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워낙 병력의 수가 적다보니 이쪽의 피해가 더 커보였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흥. 건방진 자. 각오해라.”
공손령은 장창을 든 채 기세를 피워 올렸다. 관백의 얼굴이 굳어질 때 공손령의 입이 다시 열렸다.
“적의사공녀(赤衣四珙女). 내가 저자를 맏고 있는동안 남은 자들을 주살하라.”
공손령은 명령과 함께 말의 옆구리를 박찼다. 질풍처럼 내달리는 말과 하나가 되어 뻗어오는 장창을 보며 관백은 혀를 찼다.
“그럴 수는 없소.”
관백의 부채가 펴지며 뿌려지는 강기가 공손령의 장창을 막아갔다. 관백의 시선은 공손령의 뒤에서 솟구쳐 오르는 네 명의 적의녀를 향했다.
‘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