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결전
막철유의 신형이 다가오는 것을 보던 유세운은 앞으로 한걸음 크게 내딛었다.
텅.
검환을 향해 뻗어지는 주먹에 맺힌 선명한 은빛의 강환. 막철유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유세운은 그런 막철유의 표정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검환과 부딪힐 것만 같던 유세운의 강환은 아슬아슬하게 비켜 지나갔다. 푸른 검환이 유세운의 주먹을 비켜 지나가는 것을 본 막철유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넌 죽은 거야!”
“글쎄?”
유세운의 팔꿈치에 나타난 또 하나의 강환을 본 막철유의 얼굴에 절망감이 어렸다.
쩡.
막철유의 청룡검이 다시 한번 격렬한 충격에 하늘로 치켜 올라갔다. 훤히 보이는 가슴을 향해 유세운의 주먹은 멈추지 않고 뻗어왔다.
펑!
“크아악!”
입에서 피를 뿜으며 날아가는 막철유를 보며 유세운은 어깨를 으쓱 했다. 죽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의 상처다.
“아마 다시는 나를 볼일이 없을테니 말해주마. 난 광오문주 유세운이다.”
유세운은 말을 마치고 천막 밖으로 나왔다.
횃불들이 모여 대낮처럼 밝아 보이는 곳이 있었다. 요란한 소리로 봐서 아직도 열심히 교전중인 듯 했다.
“좋아. 성공적이군.”
동무벽은 보도를 휘두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 나만 이런 놈들이 걸리는 거야?”
또 다른 백인대장 둘이 덤비는 모습을 보며 관백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자네 옆에 쓰러져 있는 자들이 다 그런 놈들이라 그런거 아닌가?”
“그래도 그렇지.”
동무벽이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관백 또한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상대들에게 벌써 다섯 개째 작은 검상을 입었다. 주변에 쓰러진 자만해도 칠십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내가 만만해 보이나? 왜 이렇게들 나한테만 달려드는 거지?”
관백의 말에 동무벽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자네보고 반해서 그러는 걸 거야.”
“그런 농담은 하지도 말게.”
부채를 휘두르던 관백은 갑자기 느껴지는 오싹한 기운에 부채를 멈췄다.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자가 빈틈이라고 생각했는지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을 보고 가볍게 발길로 차내고는 중얼거렸다.
“누구냐?”
쩌쩡.
일도에 두 명의 백인대장을 뒤로 물린 동무벽이 관백의 옆으로 다가와 섰다.
“앞으로 나와라.”
“흐흐흐. 제법인 놈들이군.”
전신을 흑의로 감싼 자. 비천마왕이 천룡부대원들 사이에 모습을 드러냈다.
동무벽이 비천마왕을 보고 이를 갈았다.
“제길. 저런 놈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는데…”
관백은 동무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비천마왕을 쏘아봤다.
“넌 누구냐?”
“글쎄. 너희 정도가 내 이름을 알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군.”
비천마왕의 여유 있는 말투에 동무벽이 보도를 겨누었다.
“그딴 허튼 소리 들어주고 있을 시간 없다.”
비천마왕은 동무벽의 보도를 보며 입가에 진한 미소를 그렸다.
“너희가 광오문주도 아니니 오랜만에 피 맛이나 볼까?”
비천마왕이 나서자 그의 기세에 밀려 청룡부대원들이 뒤로 물러났다. 비천마왕의 오른손이 들려지자 핏빛의 강환이 나타났다.
“흐음.”
관백과 동무벽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렸다. 비천마왕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비천폭뢰환(飛天暴雷環)이다. 받아봐라.”
번쩍.
아무 소리도 없이 촌음을 가르며 날아오는 비천폭뢰환을 바라보며 동무벽의 보도와 관백의 부채가 휘둘러졌다.
콰쾅!
“쿨럭.”
굉음과 함께 충돌의 여파로 피어오르는 먼지 속에서 들려오는 기침소리에 비천마왕의 얼굴에 놀람이 깃들었다.
“살아남았나?”
먼지 구름 속에서 뻗어오는 강맹한 기운에 비천마왕은 다급히 신형을 피했다. 막아서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보였다.
콰콰쾅.
그가 서 있던 자리에 세 개의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내려서는 비천마왕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제법 빠른데?”
여유있는 목소리에 비천마왕의 시선이 먼지구름 속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동무벽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젠장. 왜 이렇게 늦었소? 까딱 잘못하면 염라대왕 얼굴 보러 갈 뻔 했잖소.”
“위험했습니다. 문주님.”
관백의 말에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야. 섬광마멸지가 없었다면 못 막아 줄 뻔 했어.”
“섬광마멸지?”
비천마왕의 물음에 유세운은 손을 내저어 먼지를 휘날리며 대답했다.
“그래. 그건 그렇고 넌 누구냐? 너 같은 놈이 있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는데?”
“네놈! 무광이랑 무슨 관계냐!”
“이게 어디서 감히!”
유세운의 신형이 벼락처럼 비천마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진각이 내딛어지고 유세운의 일권이 뻗어 나갔다.
텅.
“흥!”
비천마왕의 코웃음 소리와 함께 그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일장이나 옆으로 밀려났다. 완벽히 유세운의 권세에서 벗어난 비천마왕의 손에는 예의 붉은 강환이 다시 맺혔다.
“아까와는 다를 꺼다.”
“이 미꾸라지 같은 자식이!”
관백은 유세운을 향해 다급히 전음을 날렸다.
(문주님. 북천방주가 오기 전에 자리를 떠야 합니다!)
(먼저 움직여!)
유세운의 혜광심어에 관백은 고개를 끄덕이고 동무벽의 팔을 잡고 뒤로 몸을 날렸다. 비천마왕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과연 내 앞에서 도망 칠 수 있을까?”
비천폭뢰환으로 관백과 동무벽을 노리던 비천마왕은 코앞으로 들이닥친 유세운을 보고 이를 갈았다.
“건방진!”
비천폭뢰환의 방향이 틀어지며 유세운을 향했다. 유세운은 코웃음을 치며 오른발을 차올렸다. 발끝에 모인 은빛의 강환.
콰쾅.
“크윽!”
뒤로 두 걸음 물러나던 비천마왕의 시선에 경력의 여파를 이용해 멀리 도망가는 유세운의 모습이 보였다.
“크윽! 미꾸라지 같은 놈!”
쫓아가려던 비천마왕은 불현듯 떠오른 북천방주의 이야기를 생각하고는 이를 갈았다.
“으득. 네놈! 결코 쉽게 죽지는 못할 것이다.”
조예림은 다급하게 병자들의 천막 문을 젖히고 들어오는 유세운과 두 호법을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시죠?”
유세운은 관백을 가리키며 말했다.
“관호법 상처 좀 봐주시오.”
“상처요? 이 밤에 무슨?”
솔직히 조예림도 잠에 들려고 했던 시간이다. 이런 야심한 시간에 찾아온 유세운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이 밤이니까 상처를 입은 거요. 대낮에 그런 애송이들을 상대로 상처 입을 만큼 관호법이 약하지는 않으니까.”
관백은 유세운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이정도 상처면 그냥 금창약만 발라도 낫습니다.”
관백의 말에 동무벽이 코웃음을 쳤다.
“고작 백 명도 베지 못했으면서 입은 상처하고는…”
“하하하. 자네에 비하면 한 열 배는 더 많이 벤 것 같은데?”
동무벽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벤 놈들의 수준이 달랐잖아.”
조예림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설마 북천방을 공격하고 온건가요?”
“공격이라고 까지 할 건 아니오. 우리 셋이 다녀온 거니까.”
유세운의 말에 조예림은 더욱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셋이서 북천방의 진영에요?”
유세운은 관백을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어서 상처를 보여드려. 괜히 내일 그것 때문에 지장있다고 하지 말고.”
“하하하. 알겠습니다.”
상의를 벗은 관백의 몸에 깊지 않은 상처들이 보였다. 하지만 피가 계속적으로 흐르는 것을 본 조예림은 품에서 침통을 꺼내 다급히 지혈을 했다.
피가 멈추는 것을 본 조예림은 금창약을 가져다 바르고는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능숙하게 관백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던 동무벽과 유세운은 혀를 내둘렀다.
“금방이네?”
“그러게 말이오.”
반각도 지나지 않아 관백의 치료를 마친 조예림은 유세운과 동무벽을 보며 물었다.
“두 분은요?”
유세운은 어깨를 으쓱했다.
“설마 그 정도 다녀오는데 무슨 일이 있었겠소?”
유세운의 말에 조예림은 고개를 내저었다.
“할 말이 없군요.”
유세운은 동무벽의 어깨를 두들겨 주고는 미소를 지었다.
“관호법을 좀 챙겨주고 도군사한테 오늘의 성과를 전해. 마지막에 그 검은 놈도 알려주고. 나는 이만 자러 갈께.”
“알겠소.”
유세운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조예림이 물었다.
“대체 가서 무슨 일을 저지른거죠?”
조예림의 물음에 동무벽은 자신의 고슴도치 같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별 거 아니고 사대천왕 중 한 놈을 처리하고 오는 길입니다.”
“예?”
놀라 되묻는 조예림을 향해 관백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치료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일단 저희는 도군사와 얘기를 나눌 것이 있어 실례하겠습니다.”
“예. 조심하세요.”
막사를 나가는 관백과 동무벽의 뒷모습을 보며 조예림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해보려는 가 보네. 사대천왕 중 한명을 잡기 위해 직접 움직이다니…”
도병우는 관백과 동무벽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어때 성공했나?”
“성공했으니 이곳에 있겠지.”
동무벽의 말에 도병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대천왕 중 한명을 해치웠다면 그나마 승산이 조금은 있었다. 적어도 이어지는 동무벽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런데 의외의 복병이 있다.”
“복병?”
관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신 말을 이었다.
“심각한 상대야. 우리가 재 볼 수 없는 상대였어. 아마 초마의 경지에 든 자 같아.”
“초마의 경지?”
관백의 말에 도병우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동무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문주와 겨뤄도 백 초는 넘게 치고 받을만한 자더군.”
“문주랑 겨룰만한 자라고? 북천방주 아냐?”
“아니. 비천폭뢰환이라는 마공을 쓰던데?”
도병우는 관백의 말에 안색을 침중하게 굳혔다.
“왜 아는 자야?”
동무벽의 물음에 도병우는 당황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하지만 그런 고수가 있다니 내일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 같군.”
도병우의 말에 동무벽과 관백도 서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자가 어디서 튀어 나온 거지?”
“육우령도 말을 안 해 준걸로 봐서 북천방의 숨은 고수가 아닐까?”
관백의 추측에 도병우는 곰방대를 꺼내 물며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겠군. 모를 일이야.”
“뭐가?”
동무벽의 물음에 도병우는 신경질적으로 곰방대를 털었다.
“이길 방법 말야.”
“뭐 별것 있나 우리보다 적을 많이 해치우면 되지.”
도병우는 동무벽을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답했다.
“어떻게 살면 자네처럼 단순하게 사는지 궁금할 따름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