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57화 (157/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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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윽.

마른 헝겊으로 닦아내는 청룡검이 불빛을 받아 푸른빛을 토해냈다.

조심스럽게 검을 닦아가는 막철유의 시선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보는 듯했다. 그가 이 검을 받은 지 벌써 십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북천방의 사대천왕이 된다는 것. 그보다 명예스러운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육우령이라는 자를 만나기 전까지. 방주가 심검에 들기 전 마지막으로 겨룬 사내다. 그 후로 방주는 단 한번도 남과 손을 섞지 않았다.

심검에 오르고 북천방도 전부를 모아놓고 펼친 한 수.

아직도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면 전율이 일었다.

스윽.

닦으면 닦을수록 푸른빛을 토해내는 청룡검의 검신을 바라보던 막철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항상 검을 손질 할 때면 마지막은 무엇이라도 베어야 했다. 그것이 설령 바람일 지라도.

슈악.

막철유는 한번의 베기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기분이 최상이군. 내일의 전쟁 때문인가?”

막철유는 청룡검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너도 긴장되는가 보구나. 조금만 기다려라.”

유세운은 잠시 지켜보다 고개를 내저었다.

“허공답보로 넘어간다 해도 들키겠는걸?”

관백은 말없이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하긴 하지만 그 방법 밖에 없을 듯 합니다.”

“무슨 방법?”

유세운의 물음에 동무벽이 작게 웃었다.

“성동격서를 하자는 말이냐?”

“응.”

관백의 대답에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위험하겠는데?”

관백은 유세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적어도 저쪽 진영에서 소란이 일어난다해도 북천방주가 바로 나서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문주님이 최대한 빨리 청룡장군 막철유를 해치우고 저희를 구하러 와주셔야죠.”

유세운은 관백의 말에 피식 웃었다.

“누구를 구해줘? 어차피 북천방주만 아니면 걱정할 일 없잖아. 갑자기 엄살은…”

“혹시 모르니 드리는 말입니다.”

“좋아. 그렇다면 그 방법으로 하지.”

유세운의 승낙이 떨어지자 관백이 동무벽을 보고 웃음 지었다.

“기왕 하는거 화끈하게 가는게 좋겠지?”

“물론이지.”

관백은 유세운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저희가 저쪽을 노릴 테니 반대쪽을 이용해 들어가십시오.”

“알았어.”

청룡장군에게 보고를 올려 부하들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쉬게 되었다는데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흔들었다.

사대천왕 중 청룡장군 막철유의 부관이 된지 올 해로 오 년 째 되었다. 열명의 백인대장 중 무공은 서열 삼 위. 이번 중원 정복의 선두에 서게 된 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청룡장군의 위를 이어 받으려면 이번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야 했다. 걸음을 옮기던 부관은 졸고 있는 무사를 보고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부…부관님.”

“졸지마라. 너를 믿고 자는 동료들이 있으니.”

“예!”

대답을 한 무사는 두 눈에 힘을 주고 섰다. 부관은 무사를 보며 씁쓸히 웃었다.

북천방에서 사대천왕의 군에 들려면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하고 들어오는지 모른다. 그런 그들이 보초를 서면서 졸 정도로 혹사한 이번 행군. 자신도 지금 서 있는 것이 한계 같았다. 무사에게 한 말은 자기 자신에게 한 말과도 같았다.

걸음을 옮겨 다음 보초병들을 향해 가려던 부관은 무의식적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쩡.

“크윽!”

“커헉!”

그나마 자신은 검을 들어 막았지만 다른 보초들은 억눌린 비명소리와 함께 세상을 떴다. 자신도 막은 것이 신기할 정도의 강력한 도세. 부관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호오. 쓸만한 놈인데?”

부관은 목소리가 들린 곳을 보기 위해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구척의 거한. 고슴도치 같은 수염을 한 자가 자신을 보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시간 끌지 마. 곧 이리로 들이 닥칠 거니까.”

부관은 다른 자의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남자인 자신이 보기에도 혀를 내두를 만한 미안의 중년인이 부채를 들고 펄럭이고 있었다.

부관은 자신이 도를 막으며 난 소리를 듣고 주변의 보초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자세를 바로 했다. 가슴이 답답하긴 했지만 유일하게 깨 있는 백인대장으로 이들을 막아야 했다.

“네놈들은 누구냐?”

부관의 물음에 고슴도치 수염을 한 거한이 번쩍이는 보도를 들어 올리며 답했다.

“광오문의 우호법인 동무벽이란 어르신이다. 미안하지만 이젠 안녕이다.”

텅.

진각을 내딛으며 내뻗는 도를 따라 강기가 춤을 췄다. 부관의 얼굴에 다시 한번 경악이 어렸다.

“제길!”

피하기는커녕 막기도 불가한 도세에 전력을 다해 검을 쳐냈다.

밖에서 들려온 소리에 막철유는 청룡도를 빼어 든 채로 몸을 날렸다. 천막을 나선 막철유는 걸음을 멈췄다.

짙은 흑의를 입고 장난끼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복면인을 발견한 막철유는 코웃음 쳤다.

“뭐냐? 암습하러 온 놈이냐?”

막철유의 말에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웃기는 놈이군. 청의문주가 보냈느냐?”

“……”

유세운은 아무 말 없이 막철유를 바라보았다. 막철유는 막사의 동쪽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성동격서인가? 제법이군.”

막철유는 자신의 애검인 청룡검을 들어 유세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희는 상대를 잘 못 택했다. 사대천왕 중에서도 나 막철유를 택한 걸 지옥에 가서 후회 하거라.”

“할말은 끝난 거냐?”

유세운이 입을 열자 막철유의 인상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뭐야?”

“어지간하면 조용히 처리 할려고 했는데 너 말이 너무 많다. 시간 끌지 말고 덤벼.”

유세운의 말에 막철유의 인상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건방진 놈! 입심만큼 실력도 대단한가 보자!”

막철유의 신형이 질풍처럼 유세운을 향해 덤벼들었다.

과일을 집어 들던 이청형은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소란스러운 밖의 상황이 영 맘에 안 들었다.

“무슨 일이냐?”

천막의 문을 열고 비천마왕이 들어서며 답했다.

“야습인 것 같습니다.”

비천마왕의 말에 이청형은 웃음을 터트렸다.

“야습을 하면 뭔가 달라지나? 어리석은 자들이군.”

이청형의 말에 비천마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육우령을 내줄 생각이 없나 봅니다.”

이청형은 비천마왕의 말에 피식 웃었다.

“훗. 아니. 저들은 그를 내놓아야만 할 걸세. 그를 내놓지 않는다면 저들에게 남는 건 죽음뿐이니.”

비천마왕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만약 이번 야습에 광오문주나 청의문주가 껴 있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문의 문주가 직접 야습을? 하하하. 그러다 잘못되면 전쟁은 지고 시작하는 것일텐데?”

이청형의 말에 비천마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혹시 모르니 제가 가 봐도 되겠습니까?”

“자네가?”

“혹시 압니까? 대어를 낚을지?”

이청형은 과일을 한입 베어 물며 대답했다.

“광오문주라는 자라면 죽이지 말게. 그 자와는 손속을 겨루어 보고 싶으니 말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비천마왕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뒤돌아 막사를 벗어났다. 이청형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수라마교라…”

쩌쩡.

동무벽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보도를 휘둘렀다. 처음 자신의 일도를 막았던 자에게 두 번째 도를 휘둘러 깊은 내상을 입혔지만 곧이어 달려오는 자들 중 자신의 도를 막아내는 자들이 둘이나 있었다.

“제법인데?”

동무벽의 보도는 쉬지 않고 상대들을 압박했다. 한 명이라도 더 쓰러트려야 내일의 전쟁이 쉬워질 터. 하지만 상대들이 쉽사리 쓰러져 주질 않았다.

동무벽을 지켜보며 부채를 휘두르던 관백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대체 뭐하는 건가?”

관백의 부채는 두 번 휘두른 일 없이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었다. 관백의 손에 목숨을 잃은 자만 보아도 벌써 서른을 헤아리고 있었다.

동무벽은 자신의 보도를 막는 자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네놈들 제법이다만 이제 그만 자라!”

앞의 둘이나 쓰러트려야 간신히 세 명. 동무벽의 오른발이 진각을 내딛었다.

텅.

동무벽의 도에 실린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동무벽의 보도를 막아내던 두 백인대장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냐? 이것도 전력을 다한 게 아니었나?”

“제길!”

달려오면서 쓰러지고 있는 부관을 봤지만 설마 백인대장 둘을 상대로 버티는 자가 있을 줄 몰랐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들이 당할 상황. 백인대장은 이를 악물고 검강을 뿌려댔다.

“죽어랏!”

슈아악.

동무벽을 향해 쏟아지는 검강을 보며 관백은 고개를 내저었다.

“꽤나 애먹었어.”

“크아악!”

“커헉!”

동무벽의 일도가 두 백인대장의 검강을 가르고 그들의 가슴마저 가르고 지나갔다. 피를 뿜어대며 쓰러지는 백인대장들을 보는 청룡부대원들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한 부대원이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네…놈들은 누구냐?”

관백은 아찔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광오문에서 온 사람들이지.”

쩡.

부러질 듯 휘어지는 청룡검을 보는 막철유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아직까지 단 한번도 자신의 검이 이렇게 휘어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청룡칠검 제 삼식. 청룡뢰영(靑龍雷影).

섬전처럼 빠른 청룡칠검 최고의 쾌검을 펼쳤건만 상대가 코웃음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따라 참 느리게 검을 펼쳤나 싶었다. 일단 펼쳐지면 상대의 비명소리나 들으면 다행인 검이건만 상대의 코웃음 소리라니.

가볍게 들어올려진 상대의 팔꿈치가 검면에 닿는 신기한 장면도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격렬한 통증.

손아귀에서 어느새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으스러지게 쥐고 있는 검병을 따라 검신으로 한줄기 핏물이 흘러내렸다.

유세운은 막철유를 향해 고개를 내저었다.

“뭐야? 그따위 느린 검을 보고 찔려달라는 표정인데?”

“건방진 자!”

막철유의 신형이 다시 한번 앞으로 뻗어오며 청룡검을 휘둘렀다.

파파팟.

세 방향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검격을 보고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정신을 못차렸군.”

텅.

진각에 이어지는 일권.

와선형의 강기가 검격의 방향을 틀어버렸다. 부릅떠지는 막철유의 시선을 보며 유세운은 미소를 지어줬다.

펑.

“커헉!”

정신없이 뒤로 밀려나는 막철유를 보며 유세운은 손가락 마디를 꺾으며 말했다.

“다음 일 초에 끝내주지. 최선을 다해라. 후회없게.”

“크흐흐. 좋다.”

슈아악.

막철유의 청룡검의 검신을 타고 푸른 검환이 맺혔다. 유세운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후회없길 빈다.”

“크하하하. 미친 소리!”

막철유는 떨어지지 않는 발로 땅을 박차고 유세운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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