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56화 (156/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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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으로 돌아온 유세운은 도병우를 보며 물었다.

“작전은 어때?”

도병우는 유세운의 물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저 병력을 보시고도 그러시는 겁니까? 정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도병우의 말에 유세운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어.”

유세운은 고개를 돌려 천막을 치고 있는 북천방의 진영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사부님을 욕보인 자. 절대로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다.”

조상이 천천히 말을 몰아 유세운에게 다가왔다.

“유문주 육우령을 돌려 주는게 어떻겠소?”

조상의 물음에 유세운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이미 광오문도가 됐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놀라 되묻는 조상에게 유세운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

“전 문도를 남에게 내줄 수 없습니다.”

유세운의 말에 조상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하나로 인해 이 인원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 수는 없소.”

“물론. 그 하나로 이 모든 인원을 죽음으로 내몰 생각은 없습니다. 전 저 자들을 용서해 줄 마음은 터럭만큼도 없으니 말입니다.”

“누가 누구를 용서한단 말이오?”

조상의 물음에 유세운은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당연히 저들을 용서해 줄 수 없다는 말이죠.”

유세운은 도병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막사로 가지.”

“알겠습니다.”

조상은 멀어지는 유세운과 광오문도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자고 저런단 말인가? 그를 감싸다가 모든 이들을 죽게 할 생각인가?”

펄럭.

막사의 문을 젖히고 들어간 유세운은 청룡도를 집고 앉아 있는 육우령을 보고 물었다.

“뭐해?”

육우령은 유세운을 보고 가는 미소를 지었다.

“물음에 답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유세운은 육우령의 말투에 이상함을 느끼고 퉁명한 목소리로 물었다. 육우령은 태연히 대답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중원의 무인들이 모두 모인다면 북천방과의 자웅을 결할만할 터. 저로 인해 위험을 안으실 필요 없습니다.”

유세운은 육우령을 보며 피식 거렸다.

“그거 알아?”

“무엇 말씀이십니까?”

유세운은 육우령의 코앞까지 다가가 말을 이었다.

“광오문도는 내 허락 없이는 마음대로 다칠 수도 없어. 내가 내 문도를 남한테 내줄 놈으로 보였다면 실망이야.”

“하지만…”

육우령이 말을 꺼내려 하자 유세운은 손을 내저었다.

“됐어. 다시는 그딴 소리 하지마. 다시 한번 그딴 소리하면 묻지 않아도 답해주지.”

유세운의 말에 육우령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리에 앉은 유세운은 도병우를 바라보았다.

“작전을 말해봐.”

도병우는 유세운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꼭 하셔야겠습니까?”

“응.”

단호한 유세운의 대답에 도병우는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다행히 내일 공격을 한다고 했으니 기회는 오늘뿐입니다.”

도병우의 은밀한 목소리에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 북천방주를 치자는 말이야?”

유세운의 물음에 도병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문주님이 북천방주를 맡으면 이길 수 있으시겠습니까?”

도병우의 물음에 유세운은 입맛을 다셨다.

“쩝. 붙어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내 아래는 아닌 것 같아.”

“그럼 어떻게 그를 치자는 말입니까?”

도병우의 물음에 유세운은 결국 화를 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

“일단 고수의 수를 대충이라도 맞춰보죠.”

“고수의 수를?”

도병우는 육우령을 돌아보며 물었다.

“북천방에서 가장 까다로운 사대천왕이 누구요?”

육우령은 도병우의 물음에 잠시 고민했다. 사대천왕이라면 북천방을 떠받드는 네 개의 기둥. 누가 약하고 누가 강하고를 말하기조차 애매한 자들이었다.

도병우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암습을 했을 때 자신 혼자 힘으로 막고자 할 자가 있다면 누구요?”

도병우의 물음에 육우령은 피식 웃었다.

“사대천왕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 혼자 힘으로 막으려 할 꺼요. 그래도 한명을 꼽으라면 청룡장군 막철유가 가장 오만하니 그가 좋을 듯 하오.”

육우령의 말에 도병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청룡장군이라면 저들의 좌측 우리에게는 우측에 막사를 짓는 자들이겠군.”

도병우는 탁자 위의 잔을 움직여 놓으며 말을 이었다.

“이곳이 북천방주가 있는 본진이라 치면 이곳이 사대천왕 중 청룡장군 막철유라는 자가 있는 곳일 겁니다.”

“그래?”

유세운은 도병우가 가리키는 잔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병우는 그 잔을 뒤집으며 말했다.

“오늘 밤 그를 처치하는게 좋을 듯싶습니다.”

“그가 없으면 조금 나은가?”

도병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자 하나가 주는 것만으로 저들의 사기 저하와 우리 측에서 부담해야할 강적이 하나 주는 것이니까요.”

도병우는 육우령을 보며 물었다.

“그자의 막사가 어딘지 어떻게 알 수 있소?”

“그건 간단하오. 사대천왕 누구나 자신의 막사에는 자신의 기를 걸어 놓소.”

육우령의 말에 도병우는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찾기 어렵지 않아 다행이군요.”

도병우는 유세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일은 문주님이 해주셔야겠습니다.”

유세운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도병우는 관백과 동무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많은 이가 가면 북천방주가 알아채고 공격을 올 때 피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 둘만 데리고 가는게 좋을 듯 싶습니다.”

유세운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그럴 거라면 동호법과 관호법까지 갈 것 없이 나 혼자 가면 되지.”

유세운의 말에 동무벽이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농담 하시오?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동무벽의 말에 유세운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쳇! 그렇다고 설마 불 켜진 막사로 못 돌아 올까봐?”

“모를 일이지.”

동무벽의 작은 중얼거림에 유세운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흐흐흐. 동호법. 요새 참 많이 컸단 말야.”

동무벽은 유세운의 말에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도병우는 그런 유세운을 말리며 말을 건넸다.

“그 자를 해치우는데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여 주십시오. 죽이신다면 좋고 만약 죽이지 않는다 해도 이번 전쟁에 참여 못할 만큼의 상처를 주셔야 합니다. 그것도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확실히 말이죠.”

유세운은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하게 말이지. 뭐 만나봐야 알겠지만 전력을 다하면 몇 초 안에 승부가 나겠지.”

유세운의 말에 동무벽과 관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력을 다한 유세운이라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 도병우는 자신의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청룡장군의 부대를 전부 괴멸시키진 못하지만 우두머리가 없으면 그나마 상대하기 편하겠죠.”

도병우의 말에 육우령은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사대천왕이 강한 이유는 그들 본인의 힘도 있지만 그들 부대의 무서움에 있다는 것을 차마 말해 주지 못했다.

해가지고 평야가 어둠에 덥히자 청룡장군 막철유는 자신의 애검인 청룡검을 차고 막사 밖으로 나왔다. 걸음을 옮기던 막철유는 보초를 서던 자가 조는 모습을 발견하고 고함을 쳤다.

“죽고 싶어 그러느냐! 야습에 대비해라!”

막철유의 외침에 졸던 보초는 사색으로 변해 자세를 바로 했다. 언제 막철유의 청룡검이 목을 칠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 적이 한두 번도 아니었으니 창을 쥔 손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막철유는 보초를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오 일이 걸릴 거리를 이 일 만에 주파한다는 것이 사람이나 말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말에게 먹이를 주는 시간 두 번을 제외하고는 잠도 자지 않고 달려왔다. 그러고도 쉬지 못하고 보초를 세우는 것이 여간 미안하지 않았다.

막철유의 시선이 저 멀리 청의문의 막사에 켜 놓은 화톳불을 향했다.

“육우령을 꺾는 자라…”

사대천왕 중 누구하나 자신이 육우령보다 강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북천의 이인자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였다. 방주가 그를 아끼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무인이라면 우러러보게 되는 자.

그런 자가 소문에 의하면 일문의 호법에게 패했다고 했다. 중원은 넓고 기인이사는 모래알처럼 많다던 이야기꾼들의 말이 농담만은 아닌 듯 했다.

“장군님.”

막철유는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자신의 부관인 것을 알았다.

“무슨 일이냐?”

“이곳은 평야입니다. 야습이 가능할까요?”

막철유는 자신의 부관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자신의 뒤를 이어 청룡장군의 위를 이어 받을지도 모를 자다. 아직 무공은 부족함이 있었지만 결단력이나 통솔력이라면 몇 번의 시험을 이미 거친 상태. 막철유는 태연히 입을 열었다.

“허를 찔렸을 때 가장 큰 타격을 입는 법이지.”

막철유의 말에 부관은 고개를 숙였다.

“막사 외곽으로 보초들을 돌리고 조금이라도 쉬게 해줬으면 합니다만…”

막철유는 부관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들이 오기 전에 땅굴을 파지는 않았을 터. 외곽만 확실히 지켜도 야습은 피할 수 있을 듯싶었다.

“좋다. 그렇게 해라. 단.”

“예. 하명하십시오.”

“백인대장들도 한 명 씩 보초를 통솔하는데 있어라.”

막철유의 말에 부관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래. 가봐라.”

물러가는 부관의 뒷모습을 보며 막철유는 자신의 애검인 청룡검의 검병을 어루만졌다. 오랫동안 자신의 손길에 길들여진 검병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내일이 기대 되는군.”

막철유는 자신의 막사로 걸음을 옮기며 먼지를 뒤집어 쓴 청룡검이나 손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일이면 너에게 중원인의 피를 흠뻑 마시게 해주마.”

청룡검에게 속삭인 막철유의 신형이 자신의 막사로 돌아갔다.

짙은 어둠이 내리 깔린 축시.

짙은 흑의를 입은 유세운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적의 진영을 쳐다 보았다.

“저기 커다란 깃발이 꽂힌 곳이 그 자가 있는 곳이라고?”

“예.”

관백의 대답에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말야.”

“말씀 하십시요.”

“저기 외곽에 왠 놈들이 저리 많아?”

유세운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던 동무벽과 관백도 고개를 끄덕였다. 막사 주위를 지키고 있는 보초들에 그들 사이를 계속 돌아다니는 동초들이 거의 백 명에 달했다.

관백은 씁쓸히 웃었다.

“조용히 들어가기는 힘들겠는데요?”

동무벽은 자신의 보도를 두들기며 말했다.

“뭐 굳이 조용히 들어가야 할 필요 있어?”

동무벽의 말에 관백은 고개를 내저었다.

“소란을 피우면 청룡장군 막철유를 죽일 수 있는 시간이 줄어. 북천방주의 실력이라면 그의 막사에서 여기까지 촌음의 시간이면 충분할 꺼야.”

유세운은 중앙에 자리 잡은 진형을 보며 거리를 재 보았다.

“저 정도 거리라면 소란스러웠을 때 한달음에 달려올 거리군.”

유세운의 말에 관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군요. 이럴 때 곽문도라도 있었으면…”

“쩝. 없으면 어쩔 수 없지.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수밖에.”

유세운의 시선이 막철유의 막사를 향해 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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