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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책
유세운의 천막 앞까지 다가간 위지청은 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뭐야? 지금 사부님이 저 지경인데 웃음이 나오는 거야?”
위지청은 유세운이 야속하다고 느끼며 천막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술병을 들어 마시던 유세운이 그녀를 발견하고 웃음을 지었다.
“어쩐 일이야?”
“지금 웃고…”
유세운의 물음에 대답을 하던 위지청은 고개를 돌리는 사내들 중 한 남자를 발견하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사로잡았다고 말로만 듣고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자. 사부의 몸을 저 지경으로 만든 자가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돌렸다.
창.
대번에 검이 뽑히고 땅을 박찼다.
“사부님의 원수!”
쩡!
“꺅!”
위지청은 자신의 검을 놓쳤다. 쥐고 있을 수 없을 만큼의 거력에 두들겨 맞은 검은 천막의 구석으로 날아갔다. 위지청은 멈춰선 채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위지청은 유세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세운오빠가 지금 저를 막은 건가요?”
“그래.”
위지청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뭐가?”
되묻는 유세운에게 위지청은 소리쳤다.
“어떻게 사부님의 원수랑 태연히 술을 마시며 웃을 수 있고… 저를 막을 수 있는 거죠?”
유세운은 위지청을 바라보며 말했다.
“광오문도는 내 허락 없이는 다칠 수도 죽을 수도 없어.”
“광오문도라고요?”
위지청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지금 저 자를 광오문도라고 하신 건가요?”
“그래.”
위지청은 유세운을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세운오빠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온 제가 바보군요. 저런 자를 밑에 둔 지도 모르고 말이죠.”
유세운은 위지청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움?”
“됐어요!”
위지청은 자신의 검을 회수하고는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유세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육우령을 돌아보았다.
“사부의 원수라는 말이 무슨 말이야?”
육우령은 씁쓸히 웃으며 답했다.
“청의문의 외문주 하후추의 제자일 겁니다.”
“아! 그렇다고 들었어.”
“그가 저와 싸우던 중 심각한 내상을 입었습니다. 죽지는 않았을 테지만 심각한 중상일 겁니다.”
“흐음. 하긴 육문도와 겨뤄서 당해낼 자라고는 청의문주 정도 밖에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네.”
유세운은 턱을 쓰다듬었다.
“도움을 요청하러 왔다는 말이 무슨 말이지?”
관백은 유세운의 말에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혹시 내상치료에 도움을 받으려 한게 아닐까요?”
“내상치료?”
관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예전에 양총관의 주독을 몰아주실 때 보니 문주님의 진기는 다른 이의 진기와 크게 반발이 없으니 막힌 경맥을 뚫어주기는 쉬울 듯 합니다.”
관백의 말에 유세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단 자연지기다 보니 다른 이의 내력에 충돌은 없는데…”
유세운이 생각에서 깨어나며 육우령에게 물었다.
“그 하후추라는 분 무공수위가 어느 정도나 돼?”
유세운의 물음에 육우령은 심각한 표정으로 답했다.
“검환에 이른 고수지만 북천방의 사대천왕의 상대는 안 됩니다.”
육우령의 말에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유세운의 말에 육우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혼자라면 무리지만 다른 이들과 함께라면 사대천왕중 한명을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아. 어쩔 수 없군.”
유세운은 동무벽을 향해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무도 육문도를 해치지 못하게 지켜.”
“걱정하지 마쇼.”
유세운은 관백을 보며 손짓했다.
“같이 병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보자.”
“예.”
관백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지평은 검을 손질하던 중 울면서 뛰어 들어오는 위지청을 보고 검을 회수했다.
“무슨 일이냐?”
“흑흑. 오빠.”
울면서 안기는 위지청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지평은 걱정스레 물었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우는 거냐?”
“세운 오빠가…”
“세운이가 뭘?”
위지청은 위지평의 품에서 소리쳤다.
“그 자를! 사부님의 원수인 육우령을 광오문에 받아들였어!”
위지청의 소리침에 위지평은 잠시 표정을 굳혔다.
“육우령을 광오문에 말이냐?”
“응.”
위지평은 위지청을 의자에 앉히고서는 자신도 의자에 앉았다.
“하긴 모든 포로에 대한 처우는 세운이에게 있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군.”
“오빠.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위지평은 위지청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청아야.”
“응.”
“육우령이라는 자. 진정한 무인이다.”
위지청은 위지평의 말에 두 눈을 더욱 커다랗게 떴다.
“오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위지평은 위지청의 물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사부님. 절대 살아계시지 못했다. 그를 막아섰던 우리들도…”
“하지만 그 자는…”
위지평은 손을 들어 위지청의 말을 막았다.
“그는 사부님을 인정했기에 그만큼의 시간을 기다려 준거야. 그 덕에 우리는 세운이를 만날 수 있던거고.”
“하지만…”
위지평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검을 다시 허리에 찼다.
“그는 무인이었어. 항상 청룡도로 물었지. 그에게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해줄 수 있었던 것은 세운이 뿐이었을지도 모르지.”
위지청은 위지평의 말에 입술을 삐죽이 내밀었다.
“그보다 사부님한테 가본다더니 어떻게 된거냐?”
“사부님이 깨어나셨어.”
위지청의 말에 위지평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너 왜 지금 여기 있는 거냐?”
“그게… 세운 오빠한테 내상치료를 부탁하러 갔다가…”
위지평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상치료가 아무나 해주는 것이더냐. 자신의 진기도 소모되고 위험할 지도 모르는 일을.”
“우리가 아무나는 아니잖아!”
위지평은 위지청의 투정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지만 사부님은 아직 세운이와 일면식도 없지 않느냐.”
“그렇지만…”
위지평은 위지청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웃음 지었다.
“하하하. 어서 가보자. 사부님이 우릴 보고 싶어할 지도 모르겠구나.”
은은히 감도는 탕약냄새와 짙은 혈향에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 장난 아니군.”
천막의 문을 열고 들어선 유세운은 청색 면사를 쓰고 분주하게 지시를 내리는 조예림을 보았다. 그녀의 명령을 따라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사내들을 보고는 유세운은 말없이 기다렸다.
조예림은 청의 동검대 인원을 차출 받아 치료를 하던 중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금지라고 막아서던 관백과 유세운이 자신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조예림은 유세운을 향해 다가가 물었다.
“이곳에는 무슨 일이죠?”
유세운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찾는 사람이 있어 왔소.”
“이곳은 환자만 있는 곳이에요.”
유세운의 말에 조예림은 어이없다는 듯이 답했다.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내가 찾는 사람도 환자요.”
유세운의 말에 조예림은 호기심이 생겼다.
“그가 누구죠?”
“청의문 외문주 하후추라는 분을 찾아왔소.”
“그분은 지금 심각한 내상으로 치료중이에요.”
유세운은 조예림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알고 왔소.”
“뭘 안다는 거죠? 그분은 지금 절대적으로 안정이 필요하세요.”
유세운은 조예림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하나 물어봐도 되겠소?”
“물어 보세요.”
유세운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가 그분의 내상치료를 도와줬으면 하는데…”
“내력이 고강할지는 몰라도 같은 진기가 아닌데 어떻게 그분을 돕는 다는 거죠?”
유세운은 조예림의 말에 수긍했다.
“그래서 묻는 거요. 자연지기로 그를 도울 수 있는지…”
유세운의 물음에 조예림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자연지기라고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해도…”
조예림은 주저했다. 사부인 만수화의에게 들은 바로는 자연지기란 모든 내력의 원천이 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한번도 실체를 보지 못한 것을 환자에게 처방을 내릴 수는 없는 일. 조예림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관백이 그녀의 얼굴을 보다가 한마디 했다.
“예전에 주독에 빠진 지기의 내공운기를 문주님이 도와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요? 그분은 어떻게 되셨죠?”
관백은 그녀의 물음에 아찔한 미소를 지었다.
“한번에 주독을 몰아내진 못했지만 거의 몰아냈죠. 별다른 부작용은 없었습니다.”
“그런가요…”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일단 그분을 만나서 의견을 물어보도록 하죠.”
유세운의 말에 조예림은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어깨를 으쓱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그분이니 그분의 의견에 따르도록 하죠.”
“당신도 위험해요.”
조예림의 말에 유세운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그렇다 해도 나는 상관없으니 물어나 봅시다.”
“그래요.”
조예림은 결국 유세운을 데리고 하후추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병자들의 천막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한 천막으로 간 조예림은 청의 금검대 인물의 경례를 받아 눈웃음을 지었다.
“하후 외문주님 깨어 계신가요?”
“허허허. 소문주님 어서 들어오시지요.”
천막 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조예림은 눈웃음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유세운과 관백은 말없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하후추는 조예림을 따라 들어오는 유세운과 관백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소문주님 뒤에 누굽니까?”
조예림이 소개해 주기 전에 유세운이 포권을 취해보였다.
“광오문주 유세운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위지남매에게 큰 도움을 얻었었죠.”
“허허허. 그 요즘 강호를 들었다 놨다하는 소문의 주인공이시구려.”
관백도 하후추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광오문의 좌호법인 관백이라고 합니다.”
“허허허. 무슨 복이 있어 천풍쌍기의 한분을 만나게 되는지 모르겠소.”
“청의뢰검의 위명이야 그 당시에도 유명했지 않습니까.”
관백의 말에 하후추는 손을 내저었다.
“허허허. 부끄럽소. 육룡을 넘어설지 모른다던 천풍쌍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소.”
유세운은 하후추에게 다가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한가지 물어 볼 것이 있어 왔습니다.”
“허허허. 물어 보시게. 아는 대로 답해 주리다.”
하후추의 말에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내상치료를 돕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을지 묻고 싶습니다.”
유세운의 말에 하후추는 조예림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이 역력했다. 조예림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유문주님의 내력이 자연지기라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위험부담이 커서 결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소?”
유세운은 하후추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북천방의 본대가 내일이면 도착합니다.”
유세운의 한 마디에 하후추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