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두 눈을 감고 깊이 들이마시는 자연지기를 느끼던 유세운은 문밖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호흡을 멈추고 내력을 갈무리했다.
“문주님.”
“무슨 일이야?”
펄럭.
천막의 문을 열고 관백이 양손에 술병을 든 채 들어왔다.
“청의문에서 술이 나왔습니다.”
“그래?”
관백의 뒤를 이어 동무벽과 육우령, 도병우가 차례로 들어왔다. 유세운은 멀뚱히 그들을 바라보다가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갑자기 다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온 거야?”
유세운의 물음에 관백이 웃으며 답했다.
“육문도도 새로 들어 왔는데 환영식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모였습니다.”
유세운은 관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육문도가 들어오고 술 한 잔도 같이 못했군.”
자리를 잡고 술병들을 나눠들은 모습을 본 유세운은 자신의 술병 마개를 열었다. 유세운은 술병을 들어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육문도. 광오문에 들어온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
“감사합니다.”
육우령은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술병을 들어 답했다.
“앞으로도 묻고 싶은게 있으면 언제라도 물어 봐.”
유세운의 말에 육우령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다 같이 술을 한 모금씩 마시고 술병을 내려놓자 도병우가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뭘?”
유세운은 도병우의 물음에 그를 바라보았다. 도병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북천방을 어떻게 막으시려는 겁니까?”
유세운은 도병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막기는 열심히 막아야지.”
“중과부적이란 말도 못 들어 보셨습니까?”
도병우의 말에 유세운은 어깨를 으쓱했다.
“별로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는데?”
도병우는 육우령을 바라보며 물었다.
“육문도. 미안하지만 북천방의 인원들에 대해 설명좀 해줄 수 있겠나?”
육우령은 가슴까지 내려오는 수염을 한번 쓸어내리고는 입을 열었다.
“북천방주 이청형을 필두로 그의 밑으로는 사대천왕이 있소. 사대천왕 개개인이 모두 강환의 경지에 든 고수들로 아마도 육대세력의 주인들과 필적할 만한 수준일 것이오. 그리고 그들 밑으로 일천의 북천의 무사들이 있소.”
육우령은 술병을 들어 한 모금을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청형의 친위대인 북천혈풍단(北天血風團) 일천이 있소. 북천혈풍단의 단주 또한 강환에 이른 고수요.”
유세운은 잠시 계산해보고는 중얼거렸다.
“그럼 일단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자들은 심검의 고수 한 명에 강환에 이른 고수 다섯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세운은 동무벽과 관백을 보고 피식 웃었다.
“우리는 심검 한 명에 강환 둘인가?”
도병우는 육우령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육문도와 청의문주님까지 하면 넷입니다.”
“아니 육문도는 이번 싸움에 나서지 않는다.”
도병우는 유세운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마저 없으면 어떻게 그들을 감당하려 하십니까?”
유세운은 도병우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너 같으면 동료였던 사람에게 칼을 겨눌 수 있겠나?”
“그건…”
“어차피 육문도는 내상을 치료하는 데만 한달은 걸릴 테니 이번에 전력으로 포함 하지마.”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도병우를 보고 유세운은 술병을 들어 한 모금을 들이켰다.
“적의 인원이라도 알게 됐으니 다행이군.”
“뭐가 다행이라는 겁니까?”
관백의 물음에 유세운은 미소를 지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았으니 도군사가 필승의 전략을 세우겠지.”
유세운의 말에 도병우의 낯빛이 파랗게 질렸다. 도병우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서…설마 이길 생각 이십니…까? 이 인원으로 말입니까?”
유세운은 도병우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럼 자넨 싸우기 전에 지려고 마음먹고 싸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완전 어거지입니다.”
도병우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인원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고수의 숫자가 모자르지 않습니까!”
유세운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싸움은 힘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거라며?”
“그…그렇긴 하지만…”
“하늘도 놀라게 한다는 머리 한번 믿어 볼께.”
유세운이 자신의 별호를 가지고 말하자 도병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고민하던 도병우는 자신의 곰방대를 꺼내 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는 가서 전략을 짜보겠습니다.”
“그럼 수고해.”
“수고하게.”
관백의 격려에도 도병우의 안색은 풀어지지 않았다.
“자네 둘! 엄청 고생하게 될 거야.”
동무벽은 자신의 고슴도치 같은 수염에 묻은 술을 닦아내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기게만 해. 문주는 어서 돌아가 봐야 하니까 말이지.”
“쳇!”
펄럭.
천막의 문을 열고 나가는 도병우를 보며 관백이 걱정스레 말했다.
“저렇게 혹사시켜도 될까요?”
“괜찮아.”
유세운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동무벽도 유세운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걱정 안 해도 될 걸. 누가 뭐래도 중원에서 알아주는 모사니까 말야.”
조예림은 병자들을 모아놓은 천막으로 들어서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벌써 일어나시면 안돼요.”
“허허. 언제까지 소문주가 힘들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소. 어서 일어나야지 뭔가 도움이 될 것 아닙니까.”
하후추는 전신에 붕대를 감은 채로 자리에 일어나 앉아 있었다. 하후추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지금 일어나서 그러는데 제가 며칠이나 쓰러져 있던가요?”
조예림은 하후추의 맥을 짚어보며 웃음 지었다.
“오늘로 삼일 째에요. 다행이네요. 정신을 차리셨으니 금방 나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하후추는 조예림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소문주.”
“예?”
“농이 마니 늘었군요.”
“무슨 말씀이신지…?”
하후추는 가만히 자신의 몸을 내려보며 웃음 지었다.
“허허. 죽지 않은게 신기할 정도로 망가진 몸이오. 어떻게 금방 낫는단 말이오. 짧아도 족히 한달은 요양을 해야 오 할이나 내력이 돌아올까 말까 한데 말이오.”
하후추의 말을 들은 조예림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알고 계셨군요.”
하후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자마자 운기부터 해봤다오.”
하후추의 말에 조예림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하후 외문주님은 기경팔맥에 응혈이 막혀 있는 상태에요. 침으로 뽑아내고는 있지만 한계가 있네요. 누군가의 도움으로 경맥을 뚫지 않고 혼자 힘으로 뚫어내려면 족히 한달은 걸릴 것 같아요.”
“누군가의 힘으로라…”
하후추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막힌 경맥을 뚫으려면 자신보다 고수여야 하고 그 위험부담을 감당할 만한 자가 있어야 한다. 성격이 다른 내력이 들어온다면 둘 다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하후추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휴~. 그래도 이렇게 쉴 수 있는 것을 보면 선발대를 아직도 막고 있나 봅니다.”
하후추의 말에 조예림은 방긋 웃음을 지었다.
“육우령과 북천방의 선발대 이천은 모두 포획 및 사살 됐어요.”
“무슨 말이오?”
하후추의 물음에 조예림은 그의 진맥하던 손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중원 무인의 지원대 중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온 유문주님 덕에 하루 만에 그들을 대파했답니다.”
“하루 만에 말이오?”
“예.”
하후추는 멍한 표정으로 천막의 지붕을 바라보았다.
“육우령 그자를 꺾는 고수라니 정말 심검에 든 고수가 맞나 봅니다.”
“육우령을 사로잡은 분은 광오문의 우호법이신 동대협이었어요.”
“그를 사로잡았단 말이오?”
하후추의 물음에 조예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제가 나가보질 못해서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아버님 말씀에 단신으로 그를 제압했다고 들었어요.”
“허허허.”
하후추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안이했는지 알겠소.”
“아니에요. 외문주님은 충분히 강하세요. 외문주님이 없다면 청의문이 얼마나 약해질지 상상도 하기 싫어요.”
조예림은 하후추를 바라보며 아까부터 천막의 입구에서 멈춰서 있는 인영이 신경 쓰였다. 안으로 들어서지도 않고 그렇다고 돌아가지도 않고 무언가 고민에 쌓인 듯 주저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조예림은 하후추의 곁에서 일어나며 웃음을 지었다.
“어서 완쾌하시길 바랄게요.”
“허허. 소문주의 걱정거리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빨리 낫도록 하겠소.”
“그래주시면 고맙죠.”
조예림은 천막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위지청이 커다란 눈을 들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문주님.”
“위지소저군요. 무슨 일이죠?”
“방금 전에 하신 말 정말이신가요?”
위지청의 물음에 조예림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
“어떤 말 말인 가요?”
“사부님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경맥을 뚫는다면 완쾌할 수 있다는 말이요.”
위지청의 물음에 조예림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론상으로야 가능하지만 같은 종류의 내력을 가지고 하후 외문주님보다 강한 내력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만 부담 없이 그를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
“사부님보다 강한 내력이요?”
“그래요.”
위지청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저와 오빠가 같이해도 안 되겠죠?”
위지청의 물음에 조예림은 고개를 내저었다.
“두 분의 내력이 고강한건 사실이지만 두 분의 내력이 하나가 아닌 이상 완벽한 조절은 무리에요. 그만큼 위험부담은 커지죠. 저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조예림의 말에 위지청은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조예림은 위지청의 표정을 보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분 혼자의 힘으로 어떻게든 빨리 낫길 바랄 수밖에요.”
“사부님이 얼마나 힘들게 그들을 막으셨는데요. 그분이 얼마나 우리를 위해 고생을 하셨는데요.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파요. 흑흑.”
위지청은 조예림의 손길에 눈물을 흘렸다. 조예림은 그런 위지청을 가만히 안아줬다.
“그분이 얼마나 애를 썼는지는 저도 잘 알아요. 그만큼 청의문에 없어서는 안 될 분이죠. 제가 최대한 힘써보도록 할께요.”
조예림의 말에 위지청은 눈물을 닦으며 그녀의 품에서 멀어졌다.
“고맙습니다. 소문주님. 이 은혜 죽어도 잊지 않을 께요.”
“당연한 일인걸요. 마음에 두실 필요 없어요.”
위지청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반드시 갚을게요.”
조예림은 말없이 미소만을 지어보였다. 위지청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돌아서며 작게 중얼거렸다.
“사부님보다 강한 내력을 가진 분 중 같은 내력을 쓰는 분이라면…”
병자들의 막사에서 멀어진 위지청의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지원군의 막사로 향하고 있었다. 위지청의 두 눈이 빛났다.
“사부님이 예전에 말씀하시길 심검의 고수는 자연지기를 다룰 수 있다고 했어. 가능할지도 몰라.”
지원군의 가장 큰 막사를 바라보는 위지청의 발걸음이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