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다급히 달려와 천막의 앞에서 헐떡이는 사내를 보며 문을 지키던 무사가 물었다.
“자네 왜 그러나?”
하늘도 흐려서 해가 보이지 않아 더욱 추위를 느끼고 있는데 호들갑을 떠는 동료 무사가 예뻐 보일 리가 없었다.
“헉. 헉. 문주님 계시는가?”
문을 지키던 무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기침하셨지만 왜 그러는지 말을 해야 알리던지 할 것 아닌가?”
“큰일… 큰일일세.”
같은 청의 금검대 소속인 무사는 자신의 동료가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언제 있었던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래. 무슨 일인가?”
“북천방이…”
찻잔을 들어 올리던 조상은 자신도 모르게 손이 멈춰졌다.
“지금 뭐라고 했나?”
아침부터 호들갑을 떨던 무사는 호흡을 고르며 다시 한번 보고를 올렸다.
“북천방이 전력으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조상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조상의 물음에 무사는 천천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르면 내일 아침. 늦어도 점심이면 도착할 속도입니다.”
조상은 무사의 말에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가? 알겠으니 나가 보거라.”
“예.”
조상은 무사가 나가는 것을 지켜보다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휴. 외문주 덕에 그들의 행방은 확실히 알아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하후추가 북천방의 행로에 청의 금검대와 은검대로 편성한 다섯 개 조를 내보내 그들의 동향을 살피게 하지 않았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오일은 넘게 걸리는 거리였건만 그 거리를 육우령의 선발대를 쓰러 트린지 이틀만으로 줄이다니. 중원에서 오는 천룡문과 창천궁의 지원세력을 만나기도 전에 각개격파 당하게 생겼다.
조상은 씁쓸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긴급회의를 소집 하거라.”
“예.”
문밖에 서있던 청의 금검대 무사가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조상은 찻잔을 집어 들었다.
펄럭.
“문주님. 긴급회의가 소집됐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게?”
자다 일어나서 머리가 난장판인 유세운은 머리를 정리할 생각도 않고 짜증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관백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답했다.
“뭔가 중요한 사안인 것 같습니다.”
“알았어.”
유세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청의를 걸치며 다시 한번 투덜거렸다.
“아 진짜 다른 옷은 없는 거야?”
투덜대던 유세운은 옷을 걸치고 머리를 잠깐 매만지고 나서야 천막을 나섰다. 기다리고 있던 관백을 가로지르며 다시 한번 투덜거렸다.
“거참 간만에 좀 쉬려는데 왜 계속 불러내는 거야?”
“하하하. 뭔가 중요한 일이니 긴급회의겠지요.”
“중요한 일 아니기만 해봐.”
투덜거리던 유세운은 조상의 천막 앞으로 다가갔다. 천막을 지키던 무사들이 경외감에 사로잡힌 눈빛으로 포권을 취하는 것을 보고 유세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섰다.
불편한 안색의 산영삼검과 청죽오검. 그리고 조상의 옆에 처음 보는 청의 면사녀가 있었다. 새하얗다 못해 창백해 보이는 피부에 초승달처럼 휘어진 아미. 지혜로 충만한 커다란 눈은 보는 이의 마음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여인이었다.
‘꽤나 예쁘군.’
간단히 평을 내린 유세운은 조상의 맞은편에 자리로 가서 앉았다. 도병우가 먼저 나와 있었다. 동무벽은 명목상 육우령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자리에 나오지 못했다.
“무슨 일입니까?”
유세운의 물음에 청의 면사녀 조예림은 아미를 살며시 찌푸렸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태연히 물어보는 태도가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무례하시군요.”
조예림의 말에 유세운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유세운은 물었다.
“지금 내게 한 말이오?”
“그래요. 유문주님이시죠?”
“그런데 누구시오?”
유세운의 물음에 산영삼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분노로 인한 것이리라.
유세운은 그들을 살며시 한번 보고는 피식 웃었다.
“안색들이 안 좋아 보이는데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오?”
“이…”
산영일검이 분노한 기색으로 말을 하려하자 조예림이 먼저 자신의 소개를 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청의문의 조예림이라고 합니다.”
도병우가 유세운을 향해 다급히 전음을 보냈다.
(청의문의 소문주입니다. 삼봉 중 한명이지요.)
‘쳇. 삼봉이라고 만나는 사람 중 누구도 연혜보다 나은 사람이 없구만. 대체 누가 삼봉을 정한거야?’
“그래 뭐가 무례하다는 거요?”
“어찌 인사도 없이 용건부터 물어보시는 건지요?”
유세운은 조예림의 말에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긴급회의라고 했으니 그만큼 긴급한 상황이라고 생각했소. 그리 신경 쓰지 마시오.”
유세운의 시선은 다시 조상을 향했다.
“그래. 무슨 일입니까?”
조상이 말을 꺼내기 전 조예림의 전음이 유세운의 귀로 파고들었다.
(형님 되시는 분은 예의도 바르고 의기도 하늘을 찌를 듯한 영웅이건만 당신은 형님만도 못하는 군요.)
(내 형님을 아시오?)
조예림은 갑자기 머리로 울려오는 유세운의 혜광심어에 당황했다. 아무렇지 않게 혜광심어를 펼치는 유세운을 보는 조예림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어렸다. 말로만 들었지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심검의 경지를 직접 느끼니 감히 대꾸를 하지 못했다.
유세운이 다시 혜광심어를 날리려는 찰나 조상의 입이 열렸다.
“북천방이 늦어도 내일 오후면 이곳에 도착한다네.”
“내일 오후라면… 아직 하루나 남았군요.”
태연하게 말하는 유세운을 좌중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좌중의 시선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왜 다들 그런 표정입니까?”
유세운의 말에 산영일검은 입가에 가득 비웃음을 지었다.
“하루 안에 무슨 대책을 세울 수 있단 말입니까?”
유세운은 산영일검을 보며 피식 웃었다.
“훗. 오면 막아야지 무슨 대책이란 말이오? 아하! 산영일검께선 도망이라도 가자고 말하려 한거요?”
“누가 그런다고 했단 말이오!”
소리치는 산영일검을 보고 유세운은 손을 내저었다.
“물러나지 않으면 막는 것 뿐. 뭐 그리 긴급한 일도 아닌 걸로 이렇게 소집을 하고 그러십니까?”
유세운의 말에 조상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조예림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이 없는 건가? 아니면 자신감인가?’
조예림은 자기도 모르게 유세운에게 물었다.
“자신 있으신가요?”
조예림의 물음에 유세운은 그녀를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어차피 늦어도 사 일이면 영호형님의 지원군이 도착할 테고 길어도 일주일이면 천룡문과 북천방의 정예들도 도착할 테니 그들을 막는 날은 육일이면 충분 할 텐데 뭐가 걱정인거요?”
“그러니까 그들을 무슨 수로 육일이나 막는다는 말입니까?”
조예림의 말에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청의문은 북천의 선발대를 어떻게 일주일이나 막았소?”
그 말에는 산영일검이 대답했다.
“목숨을 걸고 막았지. 무슨 다른 방법이 있었는가?”
유세운은 대답한 산영일검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이번은? 적의 숫자가 많아져서 겁을 먹은 것이오?”
유세운의 물음에 산영일검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이번에는 북천방주 광천주 이청형이 있지 않은가!”
산영일검의 말에 유세운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나도 들어봤소. 그가 있다고 뭐가 달라진다는 거요?”
“그는 이미 심검에든지 오래된 고수라는 것을 모르시오? 아무리 광오문주라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소!”
“맞소. 어차피 승부는 겨루어 봐야 아는 것. 그들이 온다는 것 만으로 겁을 집어먹고 두려워하는 상대라면 승부는 겨루어 보지 않아도 뻔한 것 아니오?”
붉어지는 산영일검의 얼굴을 바라보며 유세운은 말을 이었다.
“북천방주 광천주 이청형은 내가 상대할 거요. 그렇다면 나머지 적을 상대할 구상이나 하시오.”
유세운은 조상을 바라보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조문주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조상은 유세운의 말을 곱씹다가 그의 말에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무엇인가?”
유세운은 조상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저희 지원군도 청의문의 모든 고수들도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오늘 하루 술이라도 나누어 주어 교대로 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술을 말인가?”
조상의 물음에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본대의 진행 속도와 향방을 알았으니 야습만 조금 경계한다면 다른 이들을 쉬게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전력으로 달려오는 자들이라면 지칠 대로 지칠 터. 그동안 피로라도 풀어놔야 그들을 상대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유세운의 말에 조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화산파가 당한 이후로 쉬지 않고 달려와 쉴 틈도 없이 북천의 선발대를 막았었다. 밤에도 야습을 경계하며 뜬눈으로 보낸 날이 며칠이었던가. 문주로서 그들을 쉬게 못해줬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상은 유세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지원군으로도 보급품을 보낼 테니 그리 알고 있게.”
“하하하. 그럼 그렇게 알고 가보겠습니다. 도군사.”
“예.”
유세운은 도병우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지원군은 도군사가 알아서 배급해 주도록 해.”
“알겠습니다.”
유세운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천막을 나갔다. 조상은 유세운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결국 북천방주는 유문주의 몫이 됐군.”
산영일검은 못내 분한 듯 자리에 앉으면서 옆구리를 쓰다듬었다. 다급히 응급치료를 했지만 조예림에게 찾아가 부탁하지도 못했다. 청의문의 내문에서도 알아주는 고수들인 자신들이 동무벽 일인에게 모두 당했다는 말을 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북천방주 광천주 이청형이라면 중원에도 예전부터 소문이 들려왔었다. 심검에 들었던 자로 북천제일고수로 불리는 자다. 중원에 있었다면 천하제일이 되었을 고수였다.
“과연 그를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조예림은 산영일검의 말에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문주님 말씀대로 최선을 다할 뿐이죠. 나머지는 하늘에서 정해줄 것입니다.”
“진인사 대천명이라…”
조상은 아직도 유세운이 나간 천막의 문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천막을 나간 유세운은 따라 나온 관백을 향해 물었다.
“어느 정도나 됐어?”
“어제 밤에 다 끝냈습니다.”
유세운은 멀뚱히 관백을 보다가 웃음을 지었다.
“너무 부지런한거 아냐?”
관백은 유세운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미뤄둬 봐야 좋을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럼 며칠이나 움직이지 못하는 거지?”
“주기적으로 점검을 해줘야 하겠지만 적어도 일주일은 내력을 운용할 수 없습니다.”
유세운은 관백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군.”
유세운은 자신의 천막으로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유세운은 작게 중얼거렸다.
“무엇이 그리 급했나? 전력으로 이곳으로 오다니.”
유세운의 말에 관백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문주님.”
“왜?”
관백은 유세운이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지금 보고 계신 곳은 남쪽입니다. 누구를 향해 말씀하시는 건지?”
“흠.”
유세운은 괜스레 헛기침을 하고서는 자신의 천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빠른 걸음으로 가는 유세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관백은 유세운이 바라본 반대 방향인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래. 무엇이 그리 급했기에 이리 서두르는 것이오?”
듣고 대답할 이 없건만 관백은 넋두리라도 하듯이 북쪽 하늘을 향해 물었다.
이곳을 향해 이를 악물고 달려올 그들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