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49화 (149/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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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북천방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육우령은 청룡도를 움켜쥔 채로 유세운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유세운은 자신을 바라보는 육우령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광오문으로 들어오라는 말이다.”

육우령은 유세운의 말에 피식 웃었다.

“내손에 묻은 피가 얼만데 들어오라는 말이오?”

“그래서? 설마하니 너만큼 피를 묻힌 자가 없을까봐?”

육우령은 청룡도를 집고 천천히 일어났다.

“북천의 선두로 수많은 중원인을 죽였소. 그런 내가 중원에 발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소?”

육우령은 잠시 말을 끊고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나를 받아들인 다는 것은 중원의 무인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과 같소.”

“그래서?”

유세운은 멀뚱히 육우령을 바라보고는 되물었다. 육우령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넌 만족했어?”

유세운의 물음에 육우령은 할말을 잊었다. 유세운은 일어선 육우령의 코앞으로 다가가 말을 이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유세운은 육우령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왜 남을 의식하지? 자신에게 솔직해져.”

“그건…”

유세운은 어깨를 으쓱하며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내가 보고 들은 바로는 겁쟁이는 아닌 것 같았는데… 남의 눈을 의식해서… 그게 두려워서 피하겠다면 잡지 않겠어.”

유세운은 마지막으로 육우령을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단지 네가 마음에 들었어. 그 뿐이다.”

육우령은 자신의 가슴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북천의 땅이 좁다며 셀 수 없이 청룡도를 휘둘렀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찾아와 비무를 거는 이도 없었다. 그것은 북천방에 몸을 담는 다해도 마찬가지.

유세운은 육우령의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팔짱을 끼고 턱을 살짝 들어올렸다.

“난 광오문주다. 남의 시선 따위 의식하지 않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광오문도로써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지.”

유세운은 팔짱을 풀며 마지막으로 말을 이었다.

“최소한의 것만 지킨다면 말야.”

육우령은 결국 유세운에게 힘없이 웃어보였다.

“좋소.”

유세운은 육우령의 대답에 밝게 웃었다.

“동호법.”

“불렀소?”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동무벽을 보고 유세운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어디 가서 내상약이라도 받아다 줘. 새로운 문도가 생겼으니…”

“문주는 우리가 귀도 없는 줄 아쇼? 그렇게 난장판을 치고 다 떠들어 놓고는…”

유세운은 동무벽을 향해 슬며시 주먹을 들어올려 보였다.

“그래서?”

유세운의 전신에서 은근히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동무벽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렇다는 말이오. 어이 어서 가자고.”

동무벽은 육우령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자신의 막사로 가는 것이리라.

관백은 유세운의 뒤로 다가가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유세운은 관백을 흘끔 보고는 피식 거렸다.

“말했잖아. 내가 하고 싶은 바를 하는 거라고. 왜 관호법은 육문도가 싫어?”

“하하하.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유세운은 관백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말했다.

“오늘은 관호법도 들어가 쉬어. 내 막사 곁으로 오면 가만두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유세운은 길게 기지개를 키며 하품을 했다.

“아함. 그럼 난 들어가서 잘테니 내일 보자고.”

“쉬십시오.”

유세운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관백은 멀뚱히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도가 녀석한테나 가볼까?”

동무벽은 자신의 천막으로 육우령을 데리고 갔다.

“아무데나 앉지.”

육우령은 동무벽을 바라보다 청룡도를 천막 구석에 세워두며 물었다.

“어떻게 만났나?”

“응?”

동무벽은 육우령의 물음에 멀뚱히 그를 바라보았다. 육우령은 그런 동무벽을 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문주 말일세. 어떻게 만난건가?”

동무벽은 피식 웃었다.

“그거 말인가? 어이없게 만났지.”

동무벽은 천막 안에 놓인 술병을 들어 육우령에게 던졌다. 육우령은 동무벽이 던진 술병을 받아들고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얘기를 나누는데 술이 빠질 수는 없지.”

“하하하. 그런가?”

육우령은 술병의 마개를 따고 한 모금을 들이켰다. 진한 죽엽청의 향이 혀끝을 감돌았다. 동무벽은 자신의 옆에 나뒹구는 술병을 하나 들고 마개를 열었다.

“그거 아나?”

“뭐 말인가?”

동무벽은 주변을 살며시 돌아보고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문주가 사실은 방향치일세.”

“응?”

동무벽은 작게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크크크. 그것도 아주 심각하지.”

“그걸 어떻게 알았나?”

동무벽은 천막의 기둥에 등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나랑 관가 녀석이… 아 아까 봤겠군. 나 말고 그 잘생긴 친구 있잖은가.”

육우령은 동무벽의 말에 관백을 생각해 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도를 섞고 싶은 상대였다.

“둘이 일이 있어 은거 아닌 은거에 들어갔지.”

벌컥.

동무벽은 나머지 술을 몽땅 털어놓고는 말을 이었다.

“크~. 그리고 이십년 만에 도환의 경지를 깨닫고 무림에 다시 나왔지. 그런데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는 거야.”

동무벽은 웃음을 지었다.

“별 수 없었지. 그래서 관도를 지키고 있다가 처음 만난 자를 털기로 했네.”

“설마…”

육우령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꺼내자 동무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게 문주였네. 잘못 걸린 거지. 하필이면 강호에 재출도 하고 처음 만난 자가 심검의 경지에 든 자일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동무벽은 다른 술병을 집어 들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더 웃긴게 뭔 줄 아나?”

“뭔가?”

동무벽은 술병의 마개를 따며 웃음을 지었다.

“문주가 방향치여서 길을 잘못 들어 그리로 오게 된 거였네.”

육우령은 동무벽의 말에 결국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인연이란 것은 결국 하늘이 맺어주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동무벽은 육우령에게 술병을 들어 보이며 웃음을 지었다.

“광오문에 들어온 것을 환영하네.”

육우령은 동무벽의 웃는 모습을 보며 마주 술병을 들어 보였다.

“후회하지 않을 것 같군.”

펄럭.

“뭐하고 있나?”

도병우의 천막을 들어서던 관백은 무언가를 열심히 갈던 도병우를 봤다. 놀란 표정의 도병우를 보며 관백은 손에 들고 온 술병을 보여줬다.

“도군사랑 술이나 한 잔 하려고 왔네.”

도병우는 잘게 갈던 무언가를 곰방대에 채워 넣었다.

“흥. 무식한 동가랑 마시지 왜 나랑 마시자고 왔나?”

도병우의 말에 관백은 아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하. 오늘은 동가를 다른 이 한테 뺏겼다네.”

“뭔 소린가 그게?”

관백은 도병우의 맞은 편 의자에 앉으며 술병을 탁자위에 올려  놓았다.

“그런데 방금 그건 뭔가?”

도병우는 관백의 물음에 흠칫 놀랐다. 하지만 곧 태연히 헛기침을 하며 곰방대에 불을 붙였다.

“흠흠. 약이야. 이 나이 되니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관백은 술병을 하나 건네면서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난 또 무슨 안 좋은 거라도 하는 줄 알았네.”

“흥.”

도병우는 곰방대를 깊이 빨아들이며 술병을 집어 들었다.

“대체 누가 자네에게서 동가를 뺏어갔다는 거야?”

관백은 술병의 마개를 따서 한입 마시고는 웃음을 지었다.

“새로운 문도지 누구 겠나?”

“새로운 문도? 무슨 소리야? 광오문에 누가 새로 왔다는 건가?”

관백은 도병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병우는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설마 육우령은 아니겠지?”

“하하하. 역시 도군사군. 말 안 해도 알아채는 것을 보니.”

“제정신이야?”

버럭 소리를 지르는 도병우를 바라보며 관백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 그러나?”

“그자의 손에 묻은 중원인의 피가 얼만데 그런 소린가?”

도병우의 말에 관백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도병우는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뭘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그가 북천인이기 때문인가?”

“뭐?”

관백의 물음에 되묻던 도병우는 그의 이어지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자네 손에 죽은 중원인은 몇인가?”

“무…무슨 소리야?”

관백은 술병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대답했다.

“문주님의 생각일세. 그냥 따르면 되는 거지. 뭘 고민하나?”

“자네 육우령을 받아들임으로써 얻게 될 파장은 생각해 보지 않았나?”

관백은 도병우의 물음에 그저 가볍게 웃어주었다.

“난 문주님의 의견에 동의하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누구의 시선에 끌려 다니지 않는 것. 그것이 광오문의 매력 아닌가?”

“그래도 최소한이란 것이 있는 걸세!”

관백은 술병을 기울여 마시다가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고는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그보다 준비는 잘 돼가나?”

“무슨 준비?”

“이제 본대가 올 것이 아닌가? 그들을 어찌 상대할지 말일세.”

“지금 제정신인가?”

“물론이네. 이정도로 취하지는 않지.”

도병우는 곰방대를 빨아 들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들이 오기 전에 나머지 지원군들이 도착하길 바라게. 이번에야 문주님이 육우령을 훨씬 압도하는 무위를 가지고 있었으니 우리끼리 해볼 생각을 해봤지만 그들이 오면 얘기는 달라지네.”

“그런가?”

도병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북천방주는 어쩌면 문주보다 강할지도 몰라.”

도병우의 말에 관백은 웃음을 지었다.

“그럴리야 없을 걸세.”

자리에서 일어난 관백은 도병우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럼 가보겠네. 좋은 시간이었군.”

“훗. 뭐가 좋다는 건가? 고민거리만 안겨주고서는.”

“그래도 오늘은 푹 쉬게나.”

“흥.”

천막을 펄럭이며 나가는 관백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도병우는 자신의 곰방대를 내려 보았다.

“이젠 이것이 없으면 살아가질 못하게 돼 버렸어.”

도병우는 곰방대를 깊이 빨아 들였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고민마저 빨아서 내뱉으려는 듯 깊이 빨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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