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48화 (148/194)

(148)

천막 뒤로 나온 유세운은 천막을 지키고 있던 동무벽과 관백을 향해 말했다.

“근처에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해.”

“알겠습니다.”

고개 숙여 대답한 관백은 동무벽과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겨 유세운과 육우령을 등지고 섰다.

유세운은 육우령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준비 됐어?”

육우령은 청룡도를 비켜들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됐소.”

유세운은 가볍게 몸을 풀며 말했다.

“좋아. 시작하지.”

육우령은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자신을 두근거리게 만든 자. 육우령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청룡도로 유세운을 겨누었다. 동무벽이 호법으로 있다면 그보다 강한 자 일 것은 자명한 일. 여유는 없었다.

“핫!”

텅.

기합과 이어지는 진각. 밤공기를 가르며 나아가는 청룡도의 일격에 유세운은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었다.

“좋군.”

텅.

진각을 밟은 유세운의 신형이 육우령의 청룡도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청룡도를 향해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본 육우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우습게 보이는가!”

“글쎄?”

지잉.

유세운의 손앞에 나타난 세 개의 강환에 육우령의 청룡도가 멈춰졌다.

“강환을 이렇게 빠른 시간에?”

유세운은 멈춰진 청룡도를 오른 발로 차올렸다.

쩡.

앞으로 찔러가던 청룡도의 힘이 비켜지며 유세운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청룡도의 간격을 지우고 들어선 유세운의 오른 발이 육우령의 코앞에서 진각을 내딛었다.

텅.

육우령은 유세운의 어깨가 들어오는 것을 보며 다급히 오른손을 들어 막았다.

퍽.

“크윽!”

뒤로 정신없이 밀려나던 육우령은 다시 달려오는 유세운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힘을 흘려버리지 않고 맞선 육우령의 입에 선혈이 흐르기 시작했다.

“차핫!”

뗘지지 않는 발을 움직이며 육우령의 신형이 회전했다. 동무벽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사선승룡환인가?”

동무벽의 예상대로 육우령의 두발이 강하게 진각을 내딛으며 푸른색의 강환이 땅을 긁으며 유세운을 두 동강 낼 기세로 덤벼들었다.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구나.”

유세운의 신형은 멈추지 않았다. 육우령을 향해 직선으로 다가가며 오른발을 들어 올라오는 청룡도를 내려찍었다.

“무슨…?”

당황하는 육우령의 시선에 유세운의 오른발을 타고 감도는 강환의 은빛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쾅!

“크헉!”

회전력까지 가미시킨 육우령의 청룡도가 유세운의 오른발에 깔렸다. 먼지를 피워 올리며 바닥에 박힌 청룡도를 뽑아 올리려던 육우령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타고난 신력에 모든 내력을 이용해도 유세운이 한 발로 밟고 있는 청룡도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유세운은 붉어진 육우령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그렇게 얼굴도 붉어지니 관운장의 현신 같군.”

육우령은 대답조차 않고서 청룡도를 들어올리려 했다. 유세운은 가만히 팔짱을 끼고서 말을 걸었다.

“태산을 들 수 있나?”

“무슨 말인가?”

육우령의 물음에 유세운은 웃음을 지었다.

“자연지기를 이용하는 자는 태산이 되고자 하면 태산이 하늘이 되고자 하면 하늘이 될 수 있는 자들이다.”

유세운의 눈이 육우령의 호안에 머물렀다. 유세운은 발을 들어 올렸다. 육우령은 청룡도를 회수하며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묻고자 하는게 고작 이것이라면 실망이야. 이것 밖에 안 되나?”

유세운의 물음에 육우령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아니오.”

육우령은 두 눈을 감았다. 깊이 들이마시는 호흡에 몸에서 힘이 넘치는 것 같았다. 태산이 되면 태산을 하늘이 된다면 하늘을 베겠다던 의지가 청룡도에 깃들었다.

“차핫!”

밤하늘을 가르며 떨어져 내리는 육우령의 청룡도를 보며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둔한 자는 아니군.”

유세운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팔각연환권을 펼쳤다. 앞으로 나아가며 청룡도의 창대를 올려치는 일각. 몸을 반 선회하며 이어지는 왼쪽 팔꿈치의 올려치기. 한걸음 앞으로 나가며 내뻗는 일권. 다시 유려하게 뻗어지는 일각. 네 번의 공격 끝에 유세운은 육우령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터터터텅.

연이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육우령의 청룡도는 하늘 높이 치켜 올려졌다. 유세운은 육우령의 품안에서 웃음을 지었다.

“좋은 일도였다.”

자신의 품안으로 파고들어 진각을 내딛는 유세운은 보며 육우령은 마주 웃음을 지었다. 단순한 말이었지만 흡족한 대답이었다.

펑!

짙은 혈향에 고개를 내젓던 조예림은 갑자기 들려온 굉음에 놀라 천막을 나섰다.

밤하늘의 공기를 맡으니 조금은 나아지는 듯 했다. 하루 종일 부상자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그 부상자가 대부분 북천의 무인들이었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지원군 오백으로 승부를 지었다고 들었다. 그중에 지원군의 부상자는 단 넷. 그렇다고 크게 다친 것도 아니었다.

쾅!

지금까지와는 다른 충돌음에 조예림의 얼굴에 호기심이 어렸다. 지원군의 천막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할 만 했다.

조예림의 신형이 밤하늘을 가르며 사뿐히 지원군 천막의 기둥을 밟았다. 기둥을 밟은 발에 살며시 힘을 준 조예림의 신형은 다음 천막으로 움직였다.

소리의 근원지는 지원군 천막들의 중앙. 가장 커다란 천막의 뒤였다. 거리는 이십 장 정도 되었다. 조예림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저곳이라면 유공자의 동생분이 있는 곳?”

조예림은 며칠 전 아버지의 추궁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발에 힘을 주었다.

터터터텅.

격렬한 연타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밤늦게 야영지에서 이정도로 요란하게 비무를 할 리는 없을 터. 조예림은 더욱 궁금증에 사로잡혔다. 거리는 십장 까지 줄였다. 두 번의 도약이면 닿을 거리였다. 다시 한번 발에 힘을 주려던 조예림은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심장이 내려앉을 뻔 했다.

“더 이상 다가오시면 안 됩니다.”

어느새 홀연히 나타나 자신의 바로 앞을 막은 사내.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 다가왔는데도 상대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충격에 조예림은 상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천풍쌍기의 단풍선주 관백.

아버지와 같은 시대의 후기지수 중 일인이었다는 사람이다.

이번 승전보의 주인공 중 한명. 빼어난 외모에 입가에 머물러 있는 미소라면 수많은 여인이 울었을 듯 했다.

조예림은 관백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누군지 아나요?”

관백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소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곳부터는 금지(禁地)입니다.”

조예림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새로 생긴 무림의 금지인가요? 이런 외진 평야에 들어보지 못한 말이군요.”

관백은 부채를 들어 펼치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희가 있는 곳이 광오문이고 문주가 사람을 들이지 말라하면 그곳이 곧 금지가 되는 것입니다.”

관백의 말에 조예림은 말문이 막혔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요?”

관백은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앞으로 가실 수는 없습니다.”

동무벽은 자신의 보도를 어루만지며 고슴도치 같은 수염을 씰룩였다.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한다.”

“무슨 헛소리냐?”

산영삼검이 전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앞을 막아선 동무벽이었다. 관백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고 애초부터 그들의 시큰둥한 반응이 영 맘에 들지도 않았었다.

동무벽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못 들었나? 이곳은 얼마 전부터 금지가 됐다.”

“헛소리! 들어보지도 못한 말을 지껄이는가!”

산영이검의 말을 들은 동무벽은 코웃음을 쳤다.

“자신의 견문이 짧은 것을 남 탓으로 돌리지 마라.”

“미친!”

차차창.

셋이 하나가 된 듯 뽑아드는 자세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동무벽은 한숨을 내쉬며 기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희가 먼저 뽑은 것이니 나를 탓하지 마라.”

스릉.

동무벽의 보도가 밤하늘의 달빛을 받아 빛났다. 산영일검이 씹어 뱉듯이 천천히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한다. 비켜라. 우리의 손속을 탓하지 말고.”

산영일검의 말에 동무벽은 자신의 보도를 왼손으로 퉁겼다.

징.

“들리나? 내 보도는 말만 많은 자와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는데?”

동무벽의 말에 산영일검의 입가에 조소가 어렸다.

“건방진 자. 네가 자초한 일이다.”

산영삼검이 일제히 천막의 기둥을 박차며 동무벽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현란하게 흩어지는 산검의 묘리가 그들의 손에서 펼쳐졌다.

세 방향을 짓쳐들어오는 모습에 동무벽은 미소를 지었다.

“심심하던 차에 고맙군.”

츄아악.

동무벽의 보도가 밤하늘의 공기와 달빛을 일시에 갈랐다.

일도에 산영삼검의 산검을 두 조각 낸 동무벽의 보도가 다시 한번 뿌려졌다.

퍼퍼퍽.

“크윽!”

“컥!”

칼등으로 후려친 것이라 죽지는 않았지만 갈비뼈가 두 대는 가볍게 나간 듯 했다. 천막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산영삼검을 향해 동무벽은 웃음을 지었다.

“아까 회의장에서 지은 무례라면 목을 따도 시원찮지만 이 정도에서 봐 줄 테니 물러나라. 이곳은 금지다.”

말을 마친 동무벽은 유세운이 있는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쿨럭.”

선혈을 토해내는 육우령을 바라보며 유세운은 바닥에 떨어진 청룡도를 집어 들었다.

육우령이 묻고자 하는 바를 묻기 위해 그와 함께 한 청룡도를 든 유세운은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의 일도. 낮에 보여줬던 동무벽의 한 수에 버금가는 일도였다.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선혈을 토해내는 육우령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걸리겠어?”

“뭐가 말이오?”

“지금 입은 내상을 치료하는데 말야.”

육우령은 몸을 일으켜 세우며 대답했다.

“족히 한달은 요양해야 할 것 같소.”

“잘됐군.”

육우령의 호안에 의문이 깃들었다.

“뭔 소리요?”

유세운은 청룡도의 날을 쥐고서 창대를 육우령에게 건넸다. 육우령은 청룡도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평생을 같이 하고 단 한번도 손에서 놓지 않던 청룡도를 놓쳤다. 청룡도를 보기에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다. 유세운은 청룡도를 건네주며 웃음을 지었다.

“속 시원히 물었나?”

육우령은 유세운의 모습이 태산같이 느껴졌다. 육우령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소.”

유세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자네의 청룡도는 아직 뭔가 부족한 듯한데? 마지막 일도는 시작일 뿐인 거 아냐?”

유세운의 말에 육우령은 당황했다. 다시 한번 유세운을 처음 보았을 때의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육우령은 손을 내밀어 청룡도를 움켜쥐었다.

두근. 두근.

가슴을 울리는 심장 고동 소리에 당황하는 육우령의 귀로 유세운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나를 따라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