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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당.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벌떡 일어나며 고함치듯 소리치는 산영삼검 중 산영일검의 말에 유세운은 인상을 찌푸렸다.
“포로에 대한 처벌권을 달라고 했나?”
조상은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유세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조상은 유세운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보고 조상은 씁쓸하게 웃었다.
“왜 그러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항복을 권했으니 대우도 정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유세운의 말에 산영일검이 다시 한번 흥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그들의 본대가 오는 마당에 그들에게 무슨 대우란 말이오! 모두 목을 쳐야 하오.”
유세운은 조상을 향했던 시선을 거두어 산영일검을 바라보았다. 유세운의 두 눈에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청의문주님과 얘기중이니 조용히 좀 해.”
유세운의 말에 산영일검이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이런…”
유세운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자네가 그들의 목을 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자…자네?”
산영일검의 흥분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유세운은 말을 마쳤다.
“시끄럽게 떠들 거라면 나가 있어. 회의에 방해되니까.”
“이 건방진…”
검을 뽑으려던 산영일검은 조상의 말에 행동을 멈췄다.
“뭐하는 짓인가? 청의문을 욕보일 셈인가?”
“무…문주님.”
당황하는 산영일검을 보며 관백은 부채를 슬며시 놓았다. 유세운은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산영일검을 바라보았다.
산영일검은 화를 못 참고 이를 갈더니 조상에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천막을 나갔다. 산영이검과 산영삼검이 따라 나가자 회의장에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조상은 유세운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유세운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조상은 양손을 깍지 끼며 회의장의 탁자에 손을 얹었다.
“그런데 어쩔 셈인가?”
“북천의 무인들 말입니까?”
“그렇네. 그들에게 죽은 청의문의 사람도 한들이 아니라 나도 그들의 처벌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네.”
유세운은 조상의 말을 듣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모두 북천으로 돌려보낼 겁니다.”
“돌려보낸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조상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위험한 생각이네.”
“괜찮습니다.”
유세운은 태연히 대답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세운은 조상을 향해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면 허락하신 줄 알겠습니다.”
조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세운은 회의실 천막을 걸어 나갔다. 그 뒤를 따라오는 관백과 도병우는 유세운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자신들에게도 해주지 않은 이야기였다. 유세운은 자신의 천막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작게 말했다.
“관호법이 일일이 그들을 점혈해 줬으면 해.”
“점혈을 말입니까?”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풀어준다고 해도 그건 북천방과의 싸움이 끝난 다음이야. 그 안에 적의 머릿수를 늘려 줄 필요는 없겠지?”
“알겠습니다.”
아찔한 미소를 짓는 관백을 바라보며 유세운은 따라 웃었다.
“그 원성을 어쩌려 그러십니까?”
곰방대를 꺼내 물며 물어오는 도병우를 바라보며 유세운은 피식 거렸다.
“웃기지들 말라고 해. 내가 생각하기에 옳으면 된 거야. 굳이 남들의 원성을 신경 쓸 필요야 없지.”
도병우는 한숨을 내쉬고 유세운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유세운은 자신의 천막을 걷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두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은 육우령과 맞은편에서 보도를 안은 채 서 있는 동무벽이 보였다. 동무벽이 유세운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어떻게 됐소?”
유세운은 육우령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뭐가 어떻게 돼? 얘기는 잘 됐어.”
유세운은 육우령의 앞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제 됐으니 모두 나가봐.”
“알겠소.”
동무벽은 주저 없이 걸음을 옮겼고 관백은 유세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저으며 밖으로 나갔다. 도병우는 곰방대의 연기를 내뿜으며 밖으로 나갔다.
유세운은 가만히 두 눈을 감고 있는 육우령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오기전이야 어떠했든 동무벽과의 싸움에서 보인 그의 무위는 감탄할 만했다. 과감한 결단 덕에 수많은 북천 무인들의 목숨도 건질 수 있었다.
유세운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눈을 떠라.”
육우령의 호안이 떠졌다. 범을 연상케 하는 두 눈에 안광이 빛났다. 마주한 거리는 오 척. 한걸음에 달려가 공격할 수 있는 거리다. 무방비 상태의 유세운을 바라보며 육우령은 잠시 갈등했다.
“그렇게 두 눈을 부라리면서 공격이라도 해보려고?”
유세운의 말에 육우령은 피식 웃었다.
“됐소. 일단 만나본 것만 해도 다행이군.”
“날 만나고 싶었어?”
육우령은 유세운의 물음에 대답은 않고 바라만 보았다. 유세운은 걸음을 옮겨 천막 구석에 놓인 육우령의 청룡도를 들어 올렸다.
“오. 이것 무거운데?”
무게를 가늠해 보던 유세운은 주저 없이 육우령을 향해 청룡도를 던졌다.
턱.
육우령은 자신의 손으로 돌아온 애병을 바라보며 어이없어했다.
“무슨 짓이오?”
유세운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날 보러 북천에서까지 왔으면서 만나보고 끝이야? 동호법에게 들었는데 도로 묻기를 좋아 한다며?”
육우령은 유세운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렇다면 물어. 성심성의껏 대답해 줄께.”
유세운의 말에 육우령의 두 눈이 기대에 찼다.
촤르륵.
팔인교에 쳐져있던 주렴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무표정한 이청형이 보였다. 허공섭물의 진기를 펼치며 이청형은 느리게 되물었다.
“다시 한번 보고해라. 어떻게 됐다고?”
보고를 올리던 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한번 같은 보고를 올렸다.
“육우령을 비롯한 북천의 무인들로 구성된 선발대가 대패. 전원이 죽거나 사로잡혔습니다.”
이청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걸이 한번에 보고를 올리던 자는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해간다고 느꼈다. 이청형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살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이청형은 보고 하던 자를 지나쳐 땅에 내려섰다. 이청형은 짙은 눈썹을 가늘게 떨며 중얼거렸다.
“이것이 중원의 땅이라는 건가?”
쿠구구.
이청형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대지가 울음을 토해냈다. 이청형은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물었다.
“상대가 누구냐?”
“광오문의 동무벽이라는 자에게 사로잡혔다고 들었습니다.”
“광오문?”
이청형의 시선이 다시 한번 보고를 올리던 자를 향했다. 전신을 옥죄는 기운에 보고를 올리던 자는 빠르게 다시 말을 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보고된 바 없는 신생문파 인 것 같습니다.”
“그런 곳의 호법에게 육우령이 잡혔다고 말하는 건가?”
“예.”
이청형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육우령이 누구인가. 북천의 하늘아래 자신 말고는 그를 당할 자가 없으리라 여겼던 인물이다. 탐을 냈지만 자신의 품에 머물지 않았던 사내. 그런 그가 듣도 보도 못한 문파의 문주도 아닌 호법에게 사로잡히다니 이건 계략임에 틀림없었다.
“비겁한 놈들.”
이청형은 전신에서 들어보지도 못한 광오문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말들이 정신없이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물러났다. 최대한 이청형에게서 멀어지려는 말들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진기를 거두어들인 이청형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좋다. 잠시만 아주 잠시만 그를 맡기마.”
이청형은 사뿐히 몸을 날려 팔인교 위에 올라섰다.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이청형이 물었다.
“얼마나 걸리나?”
“예?”
이청형의 손이 가볍게 내저어졌다.
퍼억.
“큭!”
보고를 올리던 자의 오른 팔이 대번에 날아갔다.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피를 보며 이청형은 다시 한번 말했다.
“두 번 묻게 하지마라. 청의문이 있는 곳까지 얼마나 걸리냐?”
보고를 올리던 자의 낯빛이 점점 창백해졌다.
“지금… 속도라면 오일이 걸리고 서두른다면 삼일이면 도착 할 것 같…습니다.”
이청형은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틀을 주마. 그 안에 그들 앞까지 가도록 해라.”
“존명!”
“가봐라.”
보고를 올리던 자가 사라지고 나자 팔인교 옆으로 전신을 흑의로 덮은 비천마왕이 다가왔다. 비천마왕은 나직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서두르시는 겁니까?”
이청형은 비천마왕을 향해 시선을 주며 물었다.
“광오문이 어딘가?”
비천마왕은 이청형의 물음에 고개를 내저었다.
“광천주님을 만나러 올 때까지 강호에 적을 올리지 않은 문파입니다.”
“확실한가?”
“물론입니다.”
비천마왕의 말에 이청형은 코웃음을 쳤다.
“웃기는 군. 그럼 생긴지 몇 달 밖에 안 된 문파의 문주도 아닌 자가 육우령을 능가하는 고수라고?”
“저도 흥미롭군요.”
이청형은 비천마왕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육우령이라면 육대 세력의 주인들이라도 승부를 점칠 수 없는 자다. 그런 그를 꺾은 자가 있는 문파를 모르다니 수라마교의 정보망도 기대할 만 하지는 않군.”
비천마왕은 이청형의 말에 두 눈을 빛냈다.
“후후후. 제가 이 일을 맡고 나서 생긴 문파라면 이미 조치가 취해졌을 겁니다.”
“그래? 기대되는군.”
이청형은 고개를 돌려 남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만나보면 알겠지.”
비천마왕은 수라마교를 무시하는 이청형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가만히 날짜를 세어보던 비천마왕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교주님이 탄생했을 만한 시간이군.’
비천마왕의 시선은 이청형을 따라 남쪽 하늘로 향했다. 거대한 홍기가 휘둘러지고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청형은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틀이다. 그 안에 너희가 육우령을 어찌 한다면… 지옥을 맛보게 해주마.”
남쪽 하늘을 바라보는 이청형의 전신에서는 살기가 넘실거렸다. 듣도 보도 못한 자들에 대한 분노는 짙은 살기로 변했다.
이히히힝.
사방에서 말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북천방의 정예들이 일제히 내달렸다. 팔인교를 매고 있던 거한들도 일제히 경신술을 펼쳤다.
비천마왕은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의 옆구리를 걷어차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천이마왕은 왜 내게 광오문에 대해 알려주지 않은 거지?”
흙먼지를 휘날리며 북천방의 오천 무인들이 일제히 남쪽으로 치달렸다. 그들의 말발굽 소리 뒤로 기다란 흙먼지만이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