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46화 (146/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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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라라.

퍼엉.

세기의 기마를 동시에 쳐 날려버린 유세운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면 정신없이 뒤로 물러나는 북천의 무인들을 보며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이제 조금씩 기억하겠지.”

유세운은 힘껏 땅을 박차고 십장 높이로 뛰어 올랐다. 이미 몇 번이나 관백의 부대가 훑고 지나간 북천의 진영은 쑥대밭이 돼있었다. 반대쪽에서 연환강편을 이용해서 천천히 전진하는 도병우의 부대 때문에 북천의 무인들은 관백을 피해 뒤로 가지 못하고 옆으로만 움직였다.

그리고 자신이 해치운 기마의 수 만해도 물경 오백을 헤아렸다. 사방으로 쳐내다 보니 커다란 원형으로 말에 깔려 비명을 지르는 자. 내상을 입어 피를 흘리는 자들이 즐비했다.

유세운은 사뿐히 바닥에 내려섰다. 뒤로 물러나면서도 여전히 자신을 향해 병기를 겨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유세운은 북천의 무인들을 향해 내력을 담아 소리쳤다.

“그만 항복해라.”

이천이나 되던 북천의 무인들 중 남은 인원이라고는 천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우두머리 격으로 앞으로 나서던 무인들은 모두 관백이나 자신의 손에 쓰러졌다.

“우…웃기지 마!”

긴장된 상황에서 말해서인가 목소리가 떨려오는 사내를 향해 유세운은 시선을 주었다. 유세운의 손이 들어 올려지며 사내의 검을 향해 겨누어졌다.

쩡.

대번에 두 조각나는 검.

“헉!”

사내를 중심으로 좌우의 모든 인물이 놀라 뒤로 뒷걸음치는 모습이 보였다. 유세운은 입가에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었다.

“아까도 말했다만 내가 광오문주 유세운이다.”

“제…제길! 들어보지도 못했다!”

소리치는 사내를 향해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들어 보지 못했겠지. 하지만 이제 너희가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할 이름이니까 잘 기억해둬라.”

유세운은 전신에서 태산과 같은 기도를 뿜어냈다.

히히힝.

본능적으로 뒷걸음치는 말들을 바라보며 유세운은 말을 이었다.

“뭘 믿고 아직 버티는지 모르겠다만 너희 전부를 죽일 생각은 없다. 그만 항복해라.”

“무슨 개수작이냐!”

아직도 이렇게 소리칠 자가 있었나 하는 생각에 유세운의 시선이 사내를 향했다. 거대한 도끼를 뽑아든 사내를 보며 유세운은 고개를 내저었다.

“난 큰 도끼 들고 다니는 놈들… 별로 안 좋아해.”

“헛소리 집어 치워라! 무엇 하는가? 저자의 자랑이라고는 힘밖에는 없다. 쳐라!”

콰앙.

“크헉!”

산산조각 난 도끼의 파편에 사내의 오른쪽 어깨가 너덜 해지자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세운은 와선파천지를 펼친 손을 거두며 웃음 지었다.

“다시 한번 말하마. 여기 있는 전부가 덤빈다 해도 맘만 먹으면 반각 안에 다 죽일 수 있다. 그만 항복해라.”

오른쪽 어깨를 못 쓰게 된 사내가 이를 악물며 물었다.

“제길! 시…심검이냐?”

“그래.”

지력을 펼치는 모습을 보지 못한 사내의 넘겨짚기 식 물음에 유세운은 태연히 대답했다.

“심검?”

“북천방주님과 같은 경지?”

유세운이 천천히 손을 들어올리자 그가 가리킨 방향의 무사들이 허겁지겁 옆으로 비켜섰다. 유세운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비켜선 무인들 사이로 치열하게 박투를 벌이고 있는 동무벽과 육우령이 보였다. 유세운은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무인들의 시선이 유세운을 따라 움직였다.

“지금 못하겠다면 조금만 기다려라. 저쪽 승부가 나고 나면 너희도 결정하기 쉽겠지.”

유세운의 말에 무인들의 시선이 동무벽과 육우령을 향해졌다.

퍽.

뒤로 넘어가는 고개를 다잡으며 육우령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정도 상황으로 치달으면 내력 싸움이라도 하련만 동무벽과 육우령 모두 신력에 의존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워낙 가까운 거리에서 벌어지는 박투라 둘 다 무기를 휘두를 틈이 없었다.

동무벽이 육우령의 청룡도를 밟고 있지 않은 오른 발을 차올렸다.

“하앗!”

청룡도를 넘어서는 순간 진기의 빈틈을 노리고 육우령이 기합을 내질렀다.

“헛!”

힘껏 들어올려지는 청룡도에 일순 자세가 흐트러졌다.

“쳇!”

동무벽은 혀를 차며 발차기를 거두며 청룡도를 밟고 뒤로 몸을 날렸다.

텅.

진각이 내딛어 지며 질풍처럼 육우령의 청룡도가 동무벽이 내려서는 곳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동무벽이 인상을 찌푸렸다.

“제길!”

관백정도의 경신법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해볼 만 하겠지만 자신의 경신술로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였다. 동무벽은 보도를 들어 청룡도의 도신을 때렸다.

쩡.

그 힘을 빌어 뒤로 몸을 날리는 동무벽을 육우령은 놓치지 않았다.

“피하는가?”

“웃기지 마!”

발끈해서 소리치는 동무벽은 이미 자신의 코앞으로 들이닥친 육우령의 청룡도를 보며 철판교 수법을 펼쳤다.

부웅.

코앞으로 스쳐간 육우령의 청룡도가 회수되기 전에 동무벽은 몸을 일으키며 도를 휘둘렀다.

텅.

진각에 이어 뻗어가는 도에는 강맹한 강기가 같이 따라갔다. 육우령은 청룡도를 회수하며 중간부위를 잡고 회전시켰다.

퍼펑.

동무벽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거력마장 염악이라는 노인네한테 배운건데 한번 받아봐!”

텅.

다시 한번 내딛어지는 동무벽의 발걸음에 이어지는 일격. 태산이라도 일도에 쪼개갰다는 의지가 담겼다.

육우령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좋구나.”

회전하던 육우령의 청룡도가 그 힘을 실어 동무벽의 보도를 향해 뻗어갔다.

퍼펑.

강기의 충돌의 여파로 세찬 경력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지만 육우령은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이정도가 전부라면 속은 느낌이 들 것만 같았다. 역시나 동무벽의 다음 발이 앞으로 진각을 내딛는 모습이 보였다.

텅.

두 눈을 감은 동무벽의 얼굴에는 미소가 그려졌다. 힘차게 디딘 진각의 힘을 빌어 전신을 타고 넘치는 기파.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자신의 도로 흘러가는 기세가 베어 내겠다는 의지에 힘을 실어 주었다.

츄아악.

눈을 뜨기 힘들만큼 미친 듯이 불어오던 경력의 여파가 도가 지나가기 전에 반으로 갈라져 나갔다. 바람 한점 없음에 동무벽의 두 눈이 떠졌다. 놀란 얼굴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육우령의 시선을 보고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사선승룡환!”

육우령의 신형이 회전을 하며 진각을 내딛었다.

터텅.

밑에서부터 힘차게 치고 올라오는 도를 보며 동무벽은 웃음이 지어졌다. 지금 자신이 뻗은 도라면 누구도 막아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쩡.

“크윽.”

주르륵.

동무벽의 보도를 막아낸 육우령은 뒤로 일장 가까이 밀려났다. 두 눈에 담긴 것은 경악. 다른 것도 아니고 힘으로 부딪쳤건만 뒤로 밀린 것이 믿기지 않았다.

동무벽은 보도를 든 자세 그대로 육우령을 바라보았다.

“어때?”

동무벽의 물음에 육우령은 피식 웃었다.

“훗. 놀랍군. 방금 그 일도는 뭐지?”

육우령의 물음에 동무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이름은 없고 그저 내 의지가 담긴 일도라고 할까?”

동무벽의 말에 육우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보아온 도법 중 단연 최고였다.”

육우령을 청룡도를 똑바로 집어 들었다.

쿵.

힘껏 내리친 청룡도가 바닥에 박혔다. 육우령은 자신의 가슴까지 내려오는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졌네.”

동무벽은 웃음을 지었다.

“좋은 승부였어. 평생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스릉.

보도를 갈무리 한 동무벽은 육우령에게 다가갔다.

“문주의 말대로 자네를 사로잡았군.”

“문주?”

육우령의 물음에 동무벽은 유세운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일천은 되어 보이는 북천의 무인들 사이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광오문의 문주라네.”

육우령의 시선은 동무벽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두근거림을 느끼게 한 자. 자신을 북천방의 선발대장이 되게 한 자. 그가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인가?”

육우령의 물음에 동무벽은 자신의 고슴도치 같은 수염을 훑으며 말했다.

“나중에 직접 봐. 어떤 사람인지…”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군.”

육우령의 말에 동무벽은 그를 돌아봤다.

“당연히 있지. 자넨 지금 광오문의 포로니까.”

“후후. 포로라…”

유세운은 육우령과 동무벽의 승부를 보고 웃음을 지었다.

“역시 대단해.”

동무벽이 마지막에 펼친 일도는 동무벽의 의지가 느껴졌다. 타고난 무골답게 그의 진전이 광오문에서 가장 빠른 것 같았다.

길어도 십년 안에는 심검에 들 수 있을 듯 한 동무벽의 모습에 유세운은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봤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장내를 바라보던 북천의 무인들은 유세운이 돌아서자 흠칫했다.

유세운은 그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때? 이제 결정들 내렸는가?”

“으윽.”

두두두두.

거친 말발굽 소리와 함께 관백과 도병우의 부대가 유세운의 뒤로 가 섰다. 관백이 같이 끌고 온 갈색 말에 올라탄 유세운은 북천 무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제 그만 항복해라. 대장도 없이 무엇을 하겠다는 거냐!”

유세운의 전신에서 태산 같은 기세가 다시 뿜어져 나왔다.

“지금 항복하지 않는다면 한명도 살아가지 못한다.”

히히힝.

북천 무인들의 말이 놀라 뒷걸음치기 시작하자 육우령이 소리쳤다.

“모두 그만 항복해라. 우리가 졌다.”

누구의 결단이 필요했던 걸까? 북천의 무인들은 일제히 병장기를 거두었다.

유세운은 북천의 무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뭐하는 거야? 부상자들은 너희가 돌봐.”

유세운의 말이 떨어지자 북천의 무인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곧장 부상자들을 향해 말을 몰았다.

관백이 유세운의 뒤에서 웃음 지었다.

“결국 선발대는 저희가 막았군요.”

유세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본대지. 선발대야 원래 우리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했어.”

유세운은 저 멀리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와라. 네놈 때문에 나는 다시 연혜와 헤어지고 달려왔으니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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