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차차창.
“저 자식은 뭐냐!”
육우령을 넘어서 북천 무인의 중앙을 향해 뛰어내리는 유세운을 향해 검이 겨눠졌다.
“죽여!”
츄아악.
유세운이 내려서는 곳에 있던 이십여 명의 무인이 동시에 검기와 검강을 뿌렸다. 유세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첫인사가 화려한데?”
머리부터 바닥으로 내려오던 유세운의 신형이 회전을 하며 권강을 뿌렸다.
콰콰쾅.
경력에 밀려 내상을 입고 튕겨나가는 북천 무인들을 바라보며 유세운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희 때문에 내가 밤잠 설치며 말을 달린 날이 며칠 인줄 알아?”
나타나자마자 이십여 명의 무인을 날려버린 유세운을 향해 북천의 무인들이 병기를 겨누었다. 장창을 비켜든 무사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넌 누구냐?”
유세운은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려서며 팔짱을 꼈다.
“나? 광오문주 유세운이다.”
유세운은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희가 평생 가슴에 묻어두고 가야할 이름이지.”
“헛소리 마라!”
장창을 든 무사가 말을 몰며 달려왔다. 주변 무인들은 그가 나서자 조용히 바라만 봤다. 장창을 휘감는 강기를 보며 유세운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너희가 오늘 나를 일찍 깨운 것을 평생 후회하게 될 거다.”
슈아악.
달려오는 말의 기세를 빌어 내지른 장창의 강기가 날카롭게 찔러 들어왔다. 일체의 변식이 없는 패도적인 찌르기에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텅.
힘차게 밟은 진각에 왼쪽 팔꿈치에서 뻗어나간 와선형의 경력에 장창의 강기가 비켜나갔다. 장창을 움켜쥔 유세운을 바라보는 무인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난 지금 짜증이 난 상태라고.”
콰드득.
유세운의 내력이 장창에 주입되자 창대가 와선형으로 금이 갔다. 무인은 얼굴을 붉히며 전력으로 내력을 창대에 주입했다.
펑!
“크헉!”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삼장 높이로 날아가는 무인을 바라보며 북천 무인들의 얼굴이 흑색으로 변했다. 장창을 휘두른 무인. 북천에서도 이름 높은 무인이다. 단 일 수에 비명과 함께 하늘 높이 날아가는 그의 모습은 그들에게 경악을 안겨줬다.
“한꺼번에 덤벼라!”
차차차창.
일제히 뽑아든 병장기에 넘치는 기세를 바라보던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덤벼라. 그리고 기억해라.”
“죽엇!”
“하앗!”
현란한 검세. 패도적인 강기. 날카로운 검기를 보며 유세운은 뒷말을 이었다.
“광오문주 유세운이란 이름을.”
유세운의 신형이 흔들리며 그의 전신에서 팔각연환권이 풀어져 나왔다.
펑! 펑! 펑!
“크아악!”
히히힝.
말의 비명소리와 함께 삼장 높이로 날아가는 무인과 말.
인마(人馬)를 동시에 쳐 날리는 유세운의 위력 앞에 북천 무인들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유세운의 전신에서 태산과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날 일찍 깨운 벌은 아직 안 끝났다!”
푸르릉.
말의 콧소리에 정신을 차린 조상에게 산영삼검이 조용히 말했다.
“저희가 나설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조상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일방적인 공격에 나뒹구는 북천 무인들을 바라보는 조상은 할 말을 잃었다.
채 오백도 되지 않는 무인들이 반으로 갈라졌을 때 각개격파를 우려해 도와주려 나가려했다. 하지만 쌓인 것이 많았는지 산영삼검의 지켜보자는 말을 들었다.
천하제일로 논해지는 그의 무위도 기대되는 바가 있었기에 지켜보았다. 하지만 조상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육우령을 단신으로 막아내는 무인.
고슴도치 같은 수염에 구척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패도적인 기세의 도강.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육우령을 막아내고 있다. 천풍쌍기의 일인이라고 들었다.
이십여 년 전 자신들 육룡보다 뛰어날지 모른다던 무인들. 혈천문의 공세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내다.
또 한 명의 사내. 관백이라 자신을 소개한 무인 또한 경탄을 금치 못했다. 수려한 외모에 섭선을 가지고 다니는 풍류공자의 모습을 한 그가 탐탁치 않게 보였지만 외문주인 하후추조차 상대하기 까다로워 하던 검은 안대의 사내를 단 이 초 만에 쓰러뜨렸다.
그를 선두로 질풍처럼 북천 무인들을 가로지르는 지원군의 무인들. 중원 무인들이 이렇게 강했나 싶었다.
염소수염이 참 재수 없어 보이던 전 용병단주 경천뇌 도병우.
경시해오던 그가 데리고 있는 무인들이 쓰는 이상한 전법. 단순한 강기에 검기 일뿐인 것 같은데도 북천 무인들이 속절없이 쓰러져 갔다.
그리고 광오문주 유세운.
젊어서 인가 아니면 패기가 넘치는 것인가? 인마를 동시에 날려버리는 그의 무력 앞에 북천 무인들이 서서히 뒷걸음 치고 있었다. 양들 무리 속에 뛰어든 맹호를 보는 듯한 모습. 그의 행로를 알아보기는 쉬웠다.
여기저기 날아가는 인마들을 보는 것만으로 그의 위치는 쉽게 짐작이 갔다.
“혹시 모르니 산영삼검은 청의 금검대와 은검대의 인원을 데리고 저들의 패주로를 막으시오.”
“저들이 패주한단 말입니까?”
산영삼검의 물음에 조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육우령이 동무벽이라는 사내에게 묶여 있는 이상 저들의 승산은 없소.”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답한 산영삼검은 청의 금검대와 은검대의 인원을 데리고 전장을 우회했다.
조상은 아직도 계속되는 전장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콰콰쾅.
육우령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경악. 그것 밖에 없었다.
자신을 두근거리게 했던 무인을 놓친데 대한 분노에 청룡도에 실린 힘은 배가 됐다. 북천의 하늘 아래 자신의 청룡도를 이렇게까지 막아내던 자가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전력을 다한 청룡도의 공세 앞에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막아내는 자. 광오문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문파의 호법이라던 자다.
고슴도치 같이 사방으로 뻗은 수염에 자신에 필적하는 구척장신의 거구. 육우령은 청룡도를 쉴 새 없이 휘두르면서도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그려졌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신력(神力). 뛰어난 무골로 인정받은 그의 앞에 자신의 청룡도를 힘으로 막아내는 자. 처음이었다. 하물며 북천방주 광천주 이청형 조차 그의 청룡도를 막아내지 않고 피해내며 자신에게 패배를 안겼다.
인정은 했지만 그에게 의탁하진 않았다.
스스로를 갈고 닦은 시간. 결코 짧지 않았다. 북천방의 사대천왕이라도 백초 안에 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자신에게 힘으로 막아서는 사내.
동무벽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웃음끼가 감돌기 시작했다.
“좋구나! 이것도 받아봐라!”
슈아악.
단숨에 생겨나는 푸른 색의 도환을 바라보는 동무벽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오호. 본격적으로 승부를 가리자는 거냐?”
동무벽은 미소를 지으며 보도로 육우령을 겨누었다.
지잉.
붉은 기운이 감도는 도환을 바라보며 육우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힘만 쌘 자는 아니군.”
동무벽은 육우령을 향해 씨익 웃었다.
“흐음.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야.”
“좋다! 본격적인 승부는 지금부터군.”
텅.
힘차게 진각을 밟은 육우령의 청룡도가 단숨에 여섯 번을 허공을 가르며 베어 왔다.
동무벽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맘에 들었어. 풍천팔단!”
동무벽의 도가 팔방을 베었다. 맹렬하게 뻗어가는 도세에 육우령의 도세가 밀렸다.
“갈!”
육우령의 신형이 왼쪽으로 움직이며 청룡도가 벼락처럼 찔러들어 왔다. 일체의 변식이 없는 쾌도. 지금까지 보여준 무공과는 전연 달랐다.
동무벽의 얼굴에는 미소가 그려졌다. 유세운이 말해주고 깨우쳐 가고 있는 심검의 묘리. 의기상인.
동무벽의 보도가 순간을 갈랐다.
쩡.
대번에 청룡도를 쳐내고 육우령을 향해 신형을 날리며 웃었다.
“하하하. 처음으로 옆으로 피하는군.”
동무벽의 말에 육우령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하앗! 사선승룡환(斜線乘龍環)!”
육우령의 신형이 앞으로 튀어나오며 몸을 회전했다. 몸쪽으로 끌어당긴 청룡도의 궤적을 따라 사선으로 도환이 움직였다.
터텅.
힘차게 내딛은 진각. 육우령의 왼쪽 옆구리를 지나 뻗어 올라오는 청룡도의 도환이 땅을 긁었다.
카가각.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돌멩이와 먼지 사이로 푸른 도환이 맹렬히 다가왔다.
“좋은 기세! 풍마참공도!”
텅.
동무벽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육우령의 회전력까지 가미된 사선승룡환의 도세가 뿜어내는 경력에 전신의 옷이 펄럭거렸다. 거력마장 염악의 강환도 이정도의 위력은 아닐 거라 생각됐다. 그나마 그와의 결전이 먼저였던게 다행이었다.
슈하학.
허공의 공기를 찢어발기며 떨어져 내리는 풍마참공도의 도세에 육우령은 미염을 흩날리며 어이없어 했다.
‘맞서려는가?’
비록 위에서 내리친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지만 자신의 회전력까지 실린 사선승룡환을 막아내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육우령의 눈에 안타까움이 실렸다.
서로 도로 얘기를 나눴지만, 가장 자신과 잘 맞는 상대였다. 하지만 이젠 자신도 멈출 수 없는 순간. 안타까운 눈으로 동무벽을 바라보던 육우령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동무벽의 눈가에 스민 웃음기에 이상하다는 예감이 드는 순간 사선승룡환과 풍마참공도의 도세가 부딪쳤다.
콰드득.
맞물린 도세에 사방으로 경력이 뿜어졌다. 동무벽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날고 싶다면 하늘 높이 날아라!”
동무벽의 도가 비스듬히 힘을 옆으로 기울이더니 곧장 사선승룡환의 도세가 뻗어가는 방향으로 뒤집어졌다.
팡.
고여 있던 방독이 터지듯 사선승룡환의 도세는 하늘로 치켜 올라갔고 동무벽의 신형은 오른쪽으로 회전하며 다시 한번 도를 휘둘렀다.
육우령의 시선에 잠시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자신과 대등한 힘으로 막아내던 도세를 대번에 풀어 버리고 휘두르는 동무벽의 보도에 허탈함도 깃들었지만 그 한수가 얼마나 대단한지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전력을 다한 상황에서 진기의 방향을 트는 것. 위험한 만큼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쉽게 패배할 순 없었다.
턱.
앞으로 한걸음 크게 나가며 오른손으로 동무벽의 오른손을 막아냈다.
주륵.
뒤늦게 반응한 덕에 뒤로 밀리긴 했지만 잠시 숨을 돌릴 틈을 얻었다. 왼손으로 다급히 청룡도를 휘두르려는 찰나 동무벽의 발이 들어올려졌다.
쾅.
천근추의 내력을 실어 밟았음인가. 휘둘러지기도 전에 청룡도가 동무벽의 발에 밟혔다.
육우령은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자신의 청룡도를 밟고 서 있는 동무벽과 그의 보도를 휘두르는 오른손을 움켜쥐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직 웃긴 이른데?”
동무벽의 신형이 밟고 서 있는 청룡도를 넘어 달려들었다.
빠악!
육우령은 뒤로 젖혀지는 고개를 따라 움직이는 광경을 보면서도 잠시 어이가 없었다. 박치기라니? 청룡도라는 장병을 든 이후로 단 한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육우령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건방진!”
육우령의 발이 바람처럼 내뻗어졌다. 장병을 들었다고는 하지만 실전으로 익힌 깨달음 또한 얕지 않은 그의 발차기는 위협적으로 동무벽의 옆구리를 노렸다. 동무벽은 왼손으로 그의 발차기를 막으며 고슴도치 같은 수염을 씰룩이며 웃었다.
“아직 끝난게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