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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럭.
“문주. 아직도 자는 거요?”
천막을 걷고 들어오는 동무벽을 향해 유세운은 부스스한 모습으로 쳐다봤다.
“당연하지. 지금까지 며칠을 못 잤는데 조금만 더 잘께.”
동무벽은 자신의 보도를 두들기며 인상을 찌푸렸다.
“해가 중천에 떴소. 지금 북천방의 무인들도 모두 나와 있고 청의문과 지원군의 병력도 모두 모여 있소.”
“끄응!”
유세운은 자리에 앉아서는 화를 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 잠들도 없나. 왜 벌써부터 일어나서 난리야!”
투덜거리며 일어난 유세운은 청색장삼을 걸쳤다.
“뭐야? 청의문은 청의 밖에 없는 거야? 여벌의 옷 좀 달랬더니 뭐야 이게!”
유세운의 투덜거림을 바라보던 동무벽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어쨌든 서두르는게 좋을 것 같소.”
“쳇!”
유세운은 허리띠를 조여 매고는 천막 밖으로 나왔다. 관백이 갈색말의 고삐를 쥔 채 나와 있었다.
“일어 나셨습니까?”
유세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의 해를 바라봤다. 중천에 떠 있는 해를 보며 인상을 더욱 썼다.
“저건 또 왜 그렇게 일찍 뜬 거야?”
유세운은 해를 바라보며 화를 내다가 갈색말에 올라탔다.
관백이 앞장서서 따라간 유세운은 준비하고 있는 청의문의 무인들을 바라보며 조상을 향해 다가갔다.
조상은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유세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아닙니다.”
말을 하면서도 유세운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조상은 유세운의 시선이 북천방의 무인에게로 향하자 웃음 지었다.
‘저렇게 중원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적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나타난 건가?’
유세운은 묵묵히 북천방의 무인들을 바라보다가 조상을 향해 말했다.
“저희가 먼저 공격하겠습니다.”
“무슨 말인가?”
유세운은 북천방의 무인들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저들을 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지켜보시다가 결정적일 때 청의문의 무인들을 이용해 모두 해치우죠.”
조상은 유세운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오백의 인원으로 저들을 공격하는 건 자살행위네.”
유세운은 조상의 말에 피식 웃었다.
“훗. 단지 시간문제일 따름이죠.”
유세운의 태연한 표정에 조상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현 무림에 천하제일로 논하는 사내중 하나다. 그가 육우령을 막아준다면 자신이 나머지 적들을 상대하면 될거란 생각이었는데 자신들만 나가게 해달라는 말에 고민에 빠졌다.
조상의 뒤에 있던 산영삼검의 전음이 들려왔다.
(문주님. 저들에게 선공을 맡겨 보는게 어떻겠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바로 저희가 투입돼도 좋을 듯싶습니다.)
“휴. 알겠네.”
“하하하. 그럼 지켜만 보십시오.”
유세운은 지원군들을 향해 몸을 돌리고는 손짓했다.
“나가자! 우릴 여기까지 쉬지도 않고 오게 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자!”
“와아~~!”
평야에 멀리 퍼져나가는 무인들의 함성에 사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검은 안대를 한 사내가 육우령의 뒤에서 웃음 지었다.
“재밌는 놈들이군요. 무슨 군인도 아닌 무인들이 함성이나 내지르다니요.”
육우령은 아무 말 없이 청의문 진영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달려 나오는 오백여 명의 무리를 바라보는 육우령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누구냐? 나를 이곳까지 오게 한 자가!’
검은 안대의 사내는 육우령이 말이 없자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육우령은 달려오는 무리의 선두를 바라보며 뛰는 심장을 달랬다.
두근. 두근.
‘저자다!’
갈색말에 올라탄 채로 청삼을 걸치고 달려오는 자를 향해 육우령은 청룡도를 겨누었다.
“저자를 내가 맡겠다. 나머지는 예전처럼 하게.”
“알겠습니다.”
검은 안대의 사내는 뒤를 돌아 소리쳤다.
“청의문의 무인들이 아직 손을 놓고 있을 때 모두 해치우자!”
“예!”
우렁찬 대답 소리를 들으며 전방으로 고개를 돌린 검은 안대의 사내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게 뭐하는 짓이지?”
오백여 명밖에 안돼 보이는 무인이 두 무리로 갈라져 좌우로 흩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검은 안대의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고작 그 인원으로 무슨 작전이라는 거냐!”
육우령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두 명의 무인을 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청삼의 무인과 자신과 비슷한 덩치의 거구의 사내가 달려오는 것을 보던 육우령의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과연 내 두근거림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야겠다.”
육우령의 거대한 흑마가 투레질을 하며 전의를 가다듬었다. 검은 안대의 사내가 소리쳤다.
“좌우로 나눠 저놈들을 짓밟아라!”
육우령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돌아서는 북천방의 무인들. 그 정점에 선 육우령의 전신에서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듯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내 물음에 답하라!”
거대한 흑마가 땅을 박차고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유세운은 동무벽과 둘이 달려가다가 자신들을 향해 뛰쳐나오는 미염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긴 흑색의 수염을 휘날리며 청룡도를 비켜들고 달려오는 사내를 보고 유세운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마치 관운장이 현신한 것 같은데?”
동무벽은 유세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조금만 더 붉었어도 속았겠소.”
유세운은 동무벽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잘 해봐.”
“걱정마쇼!”
유세운은 달리는 갈색말의 고삐를 당겨 멈춰세웠다.
“워! 워!”
유세운은 달려오는 육우령을 향해 질주해가는 동무벽의 뒷모습을 보며 웃음 지었다.
“기대해 보지.”
유세운의 신형이 갈색말의 안장을 밟고서 높이 치솟아 올랐다. 허공을 가볍게 밟고 신형을 날리는 유세운의 시선이 닿은 곳은 북천방 무인들의 중심이었다.
“어디를 가는 것이냐!”
육우령의 외침과 함께 도강이 맹렬한 기세로 날아왔다. 유세운은 육우령을 향해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어 주었다.
“네 상대는 내가 아냐. 그리고 조금 있다 보자구.”
유세운은 도강을 살며시 밟고 더욱 앞으로 몸을 날렸다.
“대체 어딜 보는 거냐!”
동무벽은 육우령을 향해 보도를 휘둘렀다. 유세운을 따라 신형을 뽑아 올리려던 육우령은 동무벽의 도강을 보고 이를 갈았다.
“훼방 놓지 마라!”
육우령의 청룡도가 벼락처럼 휘둘러졌다.
콰쾅!
굉음과 함께 뒤로 신형을 뽑아 올린 동무벽과 육우령의 얼굴에 놀람이 깃들었다.
동무벽은 자신의 고슴도치 같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보통 놈이 아닐 거란 기대는 했지만 제법인데?”
“네놈은 누구냐?”
육우령의 물음에 동무벽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나? 광오문의 우호법인 동무벽이라고 하지.”
“들어보지도 못한 문의 호법이라… 중원은 역시 재미있는 곳이군.”
육우령의 시선에 분노가 깃들었다.
“하지만 나를 막은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동무벽은 보도를 좌우로 휘둘러 보이고는 손을 들어 까닥였다.
“와라. 난 말보다 도를 휘두르는게 더 좋거든.”
동무벽의 말에 육우령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좋다. 그건 나와 같군. 그렇다면 도로 답하라!”
육우령의 신형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동무벽의 보도도 햇살을 반사시키며 앞으로 뻗어 나갔다.
“얼마든지!”
관백은 자신의 정면을 향해 달려오는 검은 안대의 사내를 보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아까 육우령의 뒤에서 떠들던 자로군.”
관백의 펼쳐든 부채에 선강이 맺혔다.
“시작은 화려한게 좋겠지?”
관백의 부채에서 세 줄기 강기가 뻗어 나갔다. 검은 안대의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건방지구나!”
검은 안대의 사내가 허리에 매고 있던 검을 뽑아 휘둘렀다.
콰쾅.
굉음과 함께 정신없이 뒤로 밀리던 검은 안대의 사내가 경악에 찬 표정으로 관백을 바라보았다.
“네놈은 뭐냐?”
관백은 여전히 말을 몰아 그를 향해 부채를 휘두르며 대답했다.
“명심해 둬. 광오문의 좌호법인 관백이다.”
“일문의 호법 따위가!”
검은 안대의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휘두른 검은 대번에 조각조각 깨져나갔다.
“크악!”
관백은 쓰러지는 검은 안대의 사내 곁을 지나가며 말했다.
“무슨 소린가? 천하제일을 논하는 문파에게 감히 따위란 말을 쓰다니…”
관백의 뒤를 이어 동무벽의 선발대와 관백 휘하의 무인들이 질풍처럼 북천방의 무인들 틈으로 뛰어 들었다.
도병우는 곰방대를 빨며 전장을 주시했다.
“생각보다 재미있어지는데?”
동무벽이 생각대로 육우령을 막아냈고 관백의 부대가 동쪽에서부터 밀고 들어가고 있었다. 자신들을 향해서도 북천방의 무인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도병우는 연기를 내뿜으며 웃음 지었다.
“결정적인 순간 직전에 피는 맛이 최고라니까. 흐흐흐.”
“어디서 곰방대나 피고 있는 거냐!”
달려오며 소리치는 자의 얼굴을 확인한 도병우는 자신의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북천방의 무인들과의 거리는 대략 이십 장. 아직 강기가 닿을 거리가 아니다.
도병우는 곰방대를 바닥에 털며 소리친 자를 바라봤다.
“뭐. 아직 목숨을 걸만큼 위험한 상황은 아니니 이 상황을 즐겨도 괜찮겠지.”
십장 까지 다가온 북천방의 무인들을 바라보며 도병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연환강편을 펼쳐라!”
넓게 반원을 그리며 서 있던 백오십의 무인들 중 열다섯 명의 검에서 강기가 북천방의 무인들을 향했다.
최선두에서 달려오던 북천방의 무인이 피식 거렸다.
“고작 그 정도로 북천의 힘을 막겠다는 거냐!”
북천방의 무인들을 향해 날아가는 강기를 보며 일제히 검기를 날리는 무인들을 본 북천방의 무인은 더욱 코웃음을 쳤다.
“검기정도라면…”
촤촤촥.
강기에 검기가 작렬하는 순간 셀 수 없을 만큼 작게 쪼개지는 무수한 강편에 달려오던 자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피해라!”
슈슈슉.
피하란 말을 소리친 최전방의 무사는 가장 선두에 나서 검강을 만들어 자신의 요혈만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의 뒤를 따라오며 검을 뽑던 북천방의 무인 중 태반이 이 한번의 공격에 무너져 갔다. 짙은 혈향을 맡으며 전방의 무인이 이를 갈았다.
“이런 비겁한…”
퍽!
소리를 지르던 사내의 머리가 도병우의 곰방대에 의해 수박처럼 깨져 나갔다. 도병우는 곰방대를 털어내며 피식 거렸다.
“꼭 머리 나쁜 것들이 비겁하네. 어쩌네 한단 말야. 아주 지긋지긋해.”
앞서 달려가던 북천방의 무인들이 뭐에 당했는지도 모르는 새 오십 명이나 쓰러지자 뒤에서 달려오던 무인들이 멈칫거렸다. 도병우는 그들을 향해 간사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래야지. 내 생각대로 움직여 줘야 하는 거야.”
도병우는 곰방대를 들어 원을 그리며 소리쳤다.
“쐐기형 진을 만들어라!”
도병우의 외침에 백오십의 무인들은 열명단위로 무리를 지어 쐐기형을 완성했다. 도병우는 다시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북천방의 무인들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그래. 모든 것은 내 생각대로야. 모든 것은…”
도병우의 말에 쐐기형 진의 뒤로 물러나며 다시 한번 그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연환강편을 펼쳐라!”
청룡도 육우령(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