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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릉.
날이 밝고 말위에 올라서 육우령의 진영을 바라보던 조상의 얼굴에 웃음이 감돌았다.
‘녀석. 어디 나가질 않아서 남자 하나 만날 수 있을까 걱정했더니 어느새 남자가 생긴 거지?’
시원하게 불어오는 남풍에 조상은 말의 고삐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들어라! 청의문의 문도들이여.”
조상은 손을 들어 올렸다.
“오늘 이 자리에서 북천방의 선발대를 막는다. 최후의 하나가 살아남는 순간까지 막아라.”
“예!”
우렁찬 대답에 조상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가자!”
“예!”
조상의 말이 쌓인 눈을 박차며 앞으로 치달렸다. 그리고 그 뒤를 수백의 무인들이 줄을 이었다.
진영에 나와 자신의 말에 올라탄 육우령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드디어 나오는가?”
육우령의 뒤로 한 사내가 다가왔다. 검은 안대를 하고 있는 사내는 달려오는 푸른 무인들을 보며 물었다.
“청의문주가 나온 것입니까?”
육우령은 자신의 뒤에 선 사내를 바라보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육우령은 청룡도를 비스듬히 들고서는 입을 열었다.
“오늘도 너에게 맡기마.”
“걱정 마십쇼.”
고개를 숙이며 답하는 사내를 보던 육우령의 시선은 다시 달려오는 청의문의 무인들을 향했다. 가장 선두에 달려오는 중년인을 보며 육우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도 아닌가?”
“예?”
물어오는 안대의 사내에게 육우령은 고개를 내저었다.
“문주는 내가 맡으마.”
“예.”
육우령의 흑마가 앞으로 치달려 나갔다. 안대의 사내가 손을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청의문에게 북천의 공포를 알려줘라! 가자!”
“예!”
사내의 손길을 따라 북천방의 선발대 이천이 일제히 말을 달렸다.
가장 선두에 달리던 육우령은 불어오는 남풍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시선은 단 한번의 흔들림도 없이 선두에 나선 청의문주를 향했다.
북천에까지 들려오는 중원의 여섯 패자들의 주인 중 하나를 만난다는 것에 가벼운 흥분이 일었다.
흑마도 느꼈는지 더욱 빨리 내달렸다. 달려 나가는 기세 그대로 청룡도에 강기를 머금고 휘둘렀다.
촤악!
거침없이 뻗어가는 강기를 향해 청의문주 조상이 가볍게 일장을 뻗었다. 한없이 부드러워 보이는 가벼운 일장에서 뻗어 나온 경력이 강기와 부딪쳤다.
콰쾅!
경력의 여파에 흑마가 비틀거리는 틈을 타 조상이 솟구쳐 올랐다. 육우령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과연 이로다!”
육우령의 신형도 흑마의 등을 밟고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조상의 부드러운 장법이 펼쳐졌다.
마치 봄바람처럼 살랑이며 다가오는 장력을 향해 육우령은 거침없이 청룡도를 뻗었다.
콰쾅!
부드러움 속에 담긴 장력의 경력과 육우령의 청룡도가 뻗은 도강이 부딪쳐 뒤로 날아갔다. 육우령은 신형을 한번 뒤집어 자신의 흑마에 올라탔다. 조상은 선회하더니 바닥에 사뿐히 내려섰다.
조상의 시선이 육우령을 향했다.
“자네인가?”
“청의문주인가 보군.”
육우령의 되물음에 조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상은 양팔을 내린 채 웃음을 지었다.
“하후 외문주가 입은 상처가 가볍지 않더군.”
“기다려줄 만큼 기다려 줬다.”
조상은 육우령의 흑마를 바라보고는 감탄했다.
“대단한 명마로군.”
육우령은 조상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군.”
조상의 눈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 위에서 겨뤄도 되겠는가?”
조상의 물음에 육우령은 말에서 내려섰다. 육우령은 흑마의 콧잔등을 쓰다듬어 주고는 조상을 향해 돌아섰다.
조상의 안색이 미미하게 떨렸다. 수도 없이 들어 왔지만 마주선 육우령의 기세는 다른 육대 세력의 주인들 못지않았다. 육우령이 청룡도로 겨누며 입을 열었다.
“청의문의 주인임을 증명해 보여라.”
조상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물론. 북천방의 선두에 선 자네의 능력도 증명해 보이게.”
육우령의 고개가 끄덕여짐과 동시에 청룡도가 도강을 머금고 베어 들어왔다.
조상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좋은 베기로구나.”
조상의 손에서 차례로 장력이 뻗어 나왔다. 좌우에 이어 원을 그리며 뻗어오는 장력에 육우령의 청룡도가 풍랑을 만난 듯 격렬하게 떨려왔다.
“좋구나!”
육우령의 청룡도에 불어넣던 내력이 배가 되었다.
쿠르릉.
격렬한 소리와 함께 육우령의 청룡도가 짧게 흔들리며 도강을 뿌리기 시작했다. 조상이 원을 그리며 뿌린 장력의 사방을 향해 뻗어간 도강이 맥을 잘랐다.
콰쾅!
좌로 비스듬히 걸음을 옮긴 조상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육우령은 조상의 움직임을 지켜보다가 앞으로 반보 내딛으며 청룡도를 짧게 움켜쥐었다.
물이 흐르듯 사뿐히 걸어오며 조상의 쌍장이 춤을 추듯 뻗어 나왔다.
육우령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리며 청룡도를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쿠아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회전하는 청룡도를 향해 조상의 쌍장에서 뻗어나간 장력이 작렬했다.
콰콰쾅!
소리 없이 부드럽게 날아와 부딪치는 강력한 장력에 육우령의 얼굴이 붉어졌다.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니 공세로 변할 틈을 찾질 못했다.
“흥!”
원을 그리며 돌던 청룡도가 멈춰서는 듯싶더니 육우령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조상의 장력을 피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육우령의 청룡도에는 도강이 이글거렸다.
조상의 신형이 뒤로 물러나며 왼손을 뒤로 숨기고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육우령의 걸음이 멈춰졌다.
“서두르는가?”
육우령의 청룡도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조상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가벼이 다가갈 수 없게 만들었다. 육우령의 청룡도가 조상을 향해 겨누어졌다.
슈아악.
육우령의 청룡도의 끝에 맺힌 도환을 바라보던 조상의 안색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푸른색의 도환을 바라보던 조상은 작게 중얼거렸다.
“하후 외문주가 왜 당했는지 알겠군.”
조상의 뒤로 감춰진 왼손에도 맑은 하늘색의 강환이 생겨났다. 육우령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그려졌다.
“과연! 사대천왕 못지않은 실력이군.”
한발 앞으로 내딛은 육우령의 청룡도가 힘차게 찔러 들어갔다. 조상의 신형이 갈대처럼 흔들리며 청룡도의 공세를 피해냈다. 직접적인 공세는 피했지만 뒤따라오는 풍압에 청삼이 찢어질 듯 펄럭였다.
육우령의 손목이 흔들리며 청색의 도환이 조상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조상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간격을 줄이고 들어가 일격에 끝내려던 계획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조상의 뒤로 감춰졌던 왼손이 호선을 그리며 뻗어나갔다.
콰쾅!
주르륵.
바닥의 눈에 긴 고랑을 만들며 뒤로 물러난 조상과 육우령의 시선이 얽혔다.
두두두두.
긴 흙먼지 구름을 만들며 달리는 선두에서 유세운이 고함을 내질렀다.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둘러!”
질풍처럼 내달리는 갈색마의 고삐를 움켜쥔 유세운의 눈에 멀리 전장이 보였다.
수적으로 보아도 청색 옷의 인물들이 반도 안돼 보였다.
“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관백의 말에 동무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껏 버텨준 것만 해도 고맙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던 유세운이 고개를 내저었다.
“시간을 다툴 문제 같은데? 동호법! 먼저 달려가!”
“알겠소. 선발대는 내 뒤를 놓치지 마라!”
두두두두.
선두에 몰려있던 동무벽의 선발대가 일제히 앞으로 치고 나갔다. 유세운은 옆에서 달려오는 도병우를 향해 물었다.
“어떤 것 같아?”
도병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전장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완전 막무가내 전툽니다.”
“뭔 소리야?”
유세운의 질문에 도병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적을 아무 대책 없이 공격하고 있는 겁니다. 가만 놔두면 길어야 반시진이면 전멸할 것 같습니다.”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럴 줄 알고 그렇게 미친 듯이 달려 온 거니 겁을 주러 가자!”
“예!”
“와아~~”
유세운의 말을 듣고 피로에 지쳐 초췌해진 무인들의 기세가 피어올랐다. 유세운은 관백에게 말을 몰아가서 웃음 지었다.
“미안한데 내 말 좀 부탁해.”
“알겠습니다.”
유세운은 고삐를 넘겨주고서는 신형을 뽑아 올렸다. 이미 앞에서 내달리고 있는 동무벽의 선발대를 향해 허공을 박차고 날았다.
“너무 서두르시는군.”
도병우의 말에 관백이 눈을 흘겼다.
“뒤에서 받쳐줄 생각이나 해.”
“당연한 소리를 하는 군.”
도병우의 손짓을 따라 연환강편을 배운 고수들이 넓게 부채꼴로 퍼졌다.
두근. 두근.
조상과의 숨 막히는 접전 중에 느껴지는 심장 고동소리에 육우령은 당황했다.
“차핫!”
육우령의 청룡도가 허공을 아홉 번을 베었다.
“핫!”
조상의 연환장이 차례로 육우령의 도환을 막아냈다.
콰콰쾅!
뒤로 물러난 조상을 넘어 육우령의 시선이 멀리 남쪽을 향했다. 조상은 멈춰선 육우령을 보고 경계하며 물었다.
“왜 그러나?”
육우령은 청룡도를 들어 조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원군인가?”
“벌써 도착 할 리가 없을 텐데…?”
되레 반문하는 조상을 보고 육우령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처절하게 저항하는 청의문도들 덕에 북천의 무인들도 꽤나 많은 수가 상처입고 죽어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결판을 내기는 힘겨울 것 같군.”
조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나를 모욕하는 건가?”
육우령은 자신의 심장의 두근거림이 커지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냉막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육대 세력의 주인 중 하나라는 자가 자신들의 문도들이 어떤 상황인지 보지도 않는단 말인가?”
“그들은 이미 죽기를 각오했네.”
“그 각오 식지 않기를 바라지.”
쿵!
육우령의 청룡도가 땅을 내리치며 큰소리로 울렸다.
“모두 물러서라!”
육우령의 일갈에 북천의 무인들이 일제히 검을 내질렀다. 청의문도들이 검을 막는 틈을 타 간격을 벌린 북천의 무인들이 순식간에 뒤로 물러섰다.
양쪽 진영에 십장의 거리가 벌어지자 육우령은 조상을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내일 다시 기대하지.”
육우령의 말에 조상의 얼굴에 노기가 어렸다. 하지만 이미 청의문도들이 오백여 명밖에 남지 않았음이 한눈에 보였다.
“내일 기대해도 좋을 것이네.”
육우령은 조상의 뒤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오는 무리들을 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뒤돌아서 흑마에 오른 육우령은 자신의 심장소리가 유달리 크게 느껴졌다.
두근. 두근.
청룡도 육우령(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