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화르르. 탁. 탁.
모닥불이 타오르는 것을 바라보던 유세운은 하품을 하며 물었다.
“아함. 진행상황은 어때?”
유세운의 물음에 도병우는 어깨를 두들기며 답했다.
“예상보다는 습득이 빠르더군요.”
“그래?”
유세운의 물음에 도병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일단 진법이 뭐인지 아는 자 들이다 보니 그리 어렵지 않게 배워가고 있습니다.”
도병우는 동무벽을 힐끔 보고는 말을 이었다.
“게다가 무식하고 패도적인 무인들은 전부 동호법 밑으로 가 있는지라.”
도병우의 말에 동무벽은 자신의 보도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그래?”
“하하하. 그 덕에 자네가 다루기 편하지 않나?”
동무벽은 도병우의 말에 피식 거렸다.
“하긴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지. 몇 놈 손봐주고 나니 이제는 완전히 하나가 된 기분이야.”
“그래? 다행이군.”
유세운은 흡족한 성과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세운의 시선이 도병우를 향했다.
“이제부터 속도를 올려야겠어.”
“속도를 말입니까?”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무인들이 죽고 있을 수 있으니까 말야. 내일부터는 자는 시간도 한 시진을 줄이고 달려야겠어.”
유세운의 말에 도병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는 시간을 줄이며 갔다가 그곳에서 아무 힘도 쓰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도병우의 말에 동무벽은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소리하는 거야? 내 밑에 있는 녀석들은 그 정도로 약해질 만큼 허약한 놈들은 없던데.”
“으윽.”
동무벽은 발끈하는 도병우를 향해 말을 이었다.
“머리 좋은 놈들이 꼭 체력 탓을 하지.”
유세운은 관백과 함께 둘의 다투는 장면을 웃으며 보았다. 관백은 유세운을 향해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아무리 무인들이라 해도 그 정도의 속도로 이동한다면 여럿 떨어져 나갈지도 모릅니다.”
유세운은 관백의 물음에 웃음 지었다.
“뒤쳐지는 자들은 나중에 합류하라고 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시간이야. 많은 인원이 아니라.”
관백은 유세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군이 왔다는 것 만으로도 장내의 분위기는 바뀔 것이다.
콰쾅!
굉음과 함께 뒤로 날아가는 다섯 무인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네놈! 소문 이상이구나.”
“청의문에는 인재가 없는가?”
육우령의 질문에 다섯 무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건방진 자!”
육우령은 청룡도를 비스듬히 내리며 말했다.
“청죽오검(靑竹五劍). 아직도 모르겠나?”
“뭘 말이냐?”
육우령의 두 눈이 빛났다.
“한심하군.”
육우령은 청룡도를 들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더 이상 나를 막을 자가 없다면 청의문주가 나오라 해라.”
“너 같은 자를 상대하기 위해 문주님이 이곳까지 오신 줄 아느냐?”
청죽오검중 맏이인 청죽일검의 외침에 육우령은 청룡도를 들어 올렸다.
“하나쯤 죽어야 나올 텐가?”
“건방진 자!”
청죽오검의 신형이 이 장 높이로 떠올랐다. 청죽오검의 검에서 피어나는 강기를 향해 육우령의 청룡도가 베어나갔다.
스윽.
파도처럼 덮치던 강기를 가볍게 배고 들어간 육우령의 청룡도가 청죽일검의 목을 향했다.
쾅!
강렬한 충돌음과 함께 육우령의 신형이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육우령의 시선이 자신을 막아선 자를 향했다.
“아직 할말이 남았던가?”
“내문의 고수를 죽게 할 순 없다.”
청의뢰검 하후추는 자신의 패검을 든 채로 가쁜 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청죽일검의 목이 달아날 뻔했다.
육우령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청룡도를 들어 올렸다.
“각오는 돼있는가?”
청죽오검이 하후추의 뒤에서며 말했다.
“같이 치죠.”
하후추는 청죽일검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
“비키시오.”
“생각보다 강한 자입니다.”
“알고 있으니 비키시오.”
“외문주 혼자는 무리인 것을 알았지 않습니까!”
하후추의 두 눈이 빛났다.
“지금 나를 부끄럽게 하자는 거요?”
하후추의 말에 청죽오검은 일시에 침묵했다. 하후추는 천천히 자신의 패검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지금 다른 곳은 치열하게 교전중이요. 거기를 도와주시오.”
“알겠소. 무운을 비오.”
청죽오검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던 육우령은 하후추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굳이 상관은 없었다.”
“너무 날 우습게 보는구나.”
육우령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알 때도 된 것 같은데?”
“뭘 말이냐?”
육우령의 시선은 흔들림 없었다.
“이곳에 멈춰선 것도 오늘까지 만이다.”
육우령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를 보며 하후추는 씁쓸히 웃었다.
“아니. 청의문의 정예를 모두 베기 전에는 이곳을 넘을 수 없다.”
“못할 것 같은가?”
육우령의 말에 하후추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충분히 가능 할 것 같아. 지금까지 참아온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밖에 말이 안나오는군.”
육우령은 청룡도를 들어 하후추를 가리키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두근거림의 주인이 없다면 내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육우령의 신형이 비호처럼 앞으로 달려들었다. 마주쳐가는 하후추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차핫!”
청의를 입고 뒷짐을 진 중년의 사내.
청의문주 청연장 조상의 얼굴에 노기가 어렸다.
“무슨 소린가?”
조상의 물음에 무릎을 꿇고 있던 세 명의 검사 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저희가 조금만 늦었어도 청룡도 육우령에게 죽을 뻔 했습니다.”
조상은 기식이 엄엄한 하후추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겠느냐?”
“지켜봐야 알 것 같아요.”
하후추의 옆에서 침을 놓던 청수성의 조예림은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조상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육우령의 무위가 그 정도란 말인가?”
조상의 시선이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사내들을 향했다.
산영삼검(散影三劍).
청의문 내문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들이다. 그들 셋이 덤벼 간신히 하후추를 구해냈다는 이야기. 육우령의 무위가 짐작이 갔다.
자신조차 승부를 점칠 수 없는 상대다.
하후추가 혼신의 힘을 다해 일주일간이나 그들의 발을 묶어 놓았다는 것에 고마울 따름이었다.
조상의 뒷짐 진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결국 청의문에서 육우령을 막을 자는 자신밖에 없었다.
뒤돌아서는 조상은 하후추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춰 섰다.
“문…주님.”
“왜 그러는가?”
조상은 다급히 돌아서서 하후추를 바라보았다. 하후추는 힘겹게 고개를 내저었다.
“안…됩니다.”
“무슨 말인가?”
“문…주님이 나서시면 안…됩니다.”
조상은 하후추를 내려다보며 답했다.
“내가 아니면 이곳에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네.”
하후추는 눈을 힘겹게 뜨고서는 조상을 바라보았다.
“그자의 무위…문주님과 백중세입니다.”
“그렇다고 나보고 피하란 말인가?”
하후추는 조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문주님이 나서셨다가 그를 꺾지 못한다면…그들의 발을 이곳에 묶어 둘 수 없습니다.”
“그들의 발을 묶어 두기 위해 싸우지 말라는 뜻인가?”
하후추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상의 얼굴에 노기가 어렸다.
“난 청의문의 문주 일세. 그런 이유로 육우령. 그를 피할 생각은 없네.”
하후추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더 이상 중원으로 발을 들이게 해서는 안…됩니다.”
하후추의 말에 담긴 굳은 의지에 조상은 잠시 말을 못했다. 청의문을 떠나 중원인으로서 하는 말. 조상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네. 어서 몸조리나 하게.”
“감사합니다.”
“아닐세. 어서 쉬기나 하게나.”
천천히 눈을 감는 하후추를 지켜보던 조상은 뒤돌아 천막을 나왔다. 조예림은 하후추의 수혈을 짚고서는 천천히 조상을 따라갔다.
“어쩌실 거죠?”
조상은 조예림의 물음에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을 바라보던 조상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그만 내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조예림은 고민하는 조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여태껏 단 한번도 흔들림 없던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고뇌에 조예림은 가슴이 저려왔다.
조상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산영삼검은 들으라.”
“예.”
조상은 굳은 의지를 담고서 입을 열었다.
“내일. 총공격을 할 것이다.”
“예.”
“그리고 선두에는 내가서겠다.”
“예.”
“문도들에게 준비를 시키게.”
“예.”
대답과 함께 빠르게 사라지는 산영삼검을 바라보던 조예림이 물었다.
“지원군을 기다리지 않으실 건가요?”
“그들이 오려면 아무리 빨라도 오 일은 남았다.”
“그건 그렇지만…”
“그동안 적을 피해 다니란 말이냐?”
조상은 밤하늘의 달을 향해 시선을 둔 채 말을 이었다.
“청의문의 정예가 모두 죽는다 해도 그럴 수는 없다. 청의문의 이름에 오점을 남길 수는 없다.”
“하지만…”
조상은 뒤로 돌아 조예림을 바라보았다. 조상의 손이 조예림의 어깨위에 올라갔다.
“명심해라. 청의문은 절대 적을 피해 달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중원을 지키기 위해 앞서 피를 흘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버지…”
조예림은 말을 다 맺지 못했다.
조상은 조예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며 말을 이었다.
“외문주와 부상자들을 부탁하마. 네가 고생이 많구나.”
“그런 말 마세요. 제가 도울게 이것 밖에 없다면 어쩔 수 없는 거죠.”
조상은 조예림의 고운 얼굴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혹 마음에 두고 있는 이가 있느냐?”
“예?”
뜬금없는 조상의 질문에 조예림은 당황해 되물었다. 조상은 눈을 가늘게 뜨고 조예림을 바라보았다.
“있는 게로 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조상은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누구냐? 명문가의 자제더냐?”
“아버지!”
조상은 조예림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그가 누군지 못 볼지 모르지만 네가 결정한 사람이면 되었다.”
“아버지…”
조상은 조예림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웃음 지었다.
“녀석 진짜로 있나보구나. 아마 아버님의 폐관수련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잘 말해 보거라.”
“아버지…흑. 흑.”
조예림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조상은 조예림을 가볍게 안아주며 웃음 지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네 애비 그리 약하지 않으니라.”
“알아요. 아버지가 얼마나 강한지…”
조예림은 차마 하후추가 입은 상처를 보고 추측한 육우령의 무위가 결코 아버지 아래가 아니란 말을 하지는 못했다.
수레바퀴는 돌고(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