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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궁의 태운각에 모인 무인들의 수가 물경 천을 헤아렸다. 자리가 없어 태운각 밖에도 무인들을 위한 자리가 준비 되었다.
두런두런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던 인물들은 태운각에서 걸어 나오는 백염의 노인을 보고 말들을 멈췄다.
창궁검 백건호는 상석에 올라 좌중을 내려보았다. 백건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노부의 생일에 찾아와 주어 고맙소.”
“백대협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내원은 물론 그 밖에 있던 인물들까지 백건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내력에 감탄하며 생일을 축하했다. 정파인들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인 백건호다.
백건호는 포권을 취해보였다.
“오늘 이 자리는 노부의 생일을 위해 모이기만 한 자리는 아님을 이미 배첩을 받아보아 알고 계실 것이오.”
백건호의 말에 좌중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백건호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이 자리. 모인 이 모두 중원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오.”
백건호의 눈에 단호한 빛이 서렸다.
“단 한 번도. 세외에게 넘어간 적이 없는 중원이오. 그리고 중원을 지키고자 했던 무림혼은 지금 이 자리.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소. 그리고 이번 역시 우리는 중원을 지켜낼 것이오.”
백건호는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들어 올렸다.
“자! 승리를 위해 건배합시다.”
“승리를 위해!”
“승리를 위해!”
수천의 목소리가 하나 되어 창천궁을 떨어 울렸다. 백건호는 자신의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를 바라보던 모든 무인들도 그를 따라 잔을 들이켰다. 비장한 분위기가 창천궁을 감돌았다.
백건호는 잔을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이번 북천방의 일전을 위해 모인 것으로 알고 있소. 하지만 모든 이가 나갈 수는 없는 일. 자파의 일도 돌봐야 하지 않겠소. 지금까지 온 인원의 명단을 문창부에서 분류하고 있소. 아마 내일이면 부대편성이 끝날 것이오.”
백건호의 말에 모인 인물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무리 세외세력의 일에 발 벗고 나선다 해도 자파의 안위 또한 생각해야 하는 것.
백건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부대는 두 부대로 편성이 될 것이고 두 부대의 대장을 맡을 이들은 정해졌소.”
좌중의 시선이 모여졌다. 백건호는 미리 상석으로 배치한 영호천과 유세운을 가리켰다.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낭인천주 천검 영호대협과 광오문주 일권무적 유문주가 두 부대의 대장을 맡아 줄 것이오.”
백건호의 말에 유세운과 영호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든든합니다.”
“이긴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와~~~~”
좌중의 열광에 유세운은 당혹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다. 백건호는 얼굴에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 이 자리는 흥겹게 즐기도록 하시오.”
“다시 한번 생신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고맙소.”
좌중의 목소리에 백건호는 포권을 취해보였다.
모인 무인들은 서로들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백건호는 자리에 앉으며 유세운과 영호천을 바라보았다.
“자네들만 믿겠네.”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지요.”
영호천의 대답까지 들은 백건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의 흥복일세. 자네들 같은 천고의 기재들이 이 시대에 나왔다는 것은 말일세.”
백건호의 말에 유세운과 영호천은 그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백건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이를 먹으니 이런 자리가 어렵구만. 내일 일찍 창주궁으로 모이게. 아마 자세한 이야기는 거기서 나올 걸세.”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백건호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유세운은 잔을 들며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북천방이라…”
커다란 천막은 백 명이라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거대했다. 그리고 그 안에 앉아 포도송이를 뜯고 있는 인물.
가슴까지 내려오는 수염에 굵은 눈썹과 굵은 콧날의 사내는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꽤나 지루한 여행이군.”
사내는 천막으로 들어서는 인물을 바라보았다. 전신을 흑의로 감싸고 두 눈만을 내놓은 사내. 수라마교의 비천마왕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자다.
“어쩐 일인가?”
비천마왕은 이청형의 물음에 웃음을 지었다.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그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 궁금해서 왔을 뿐입니다.”
이청형은 포도송이 하나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북천의 무인은 강하다. 그게 궁금한 건가?”
“저도 선발대의 소식은 들었습니다.”
이청형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자네 아직 잘 모르는군. 육우령이 어떤 자인지.”
비천마왕은 고개를 흔들었다.
“제법 알려지기는 했지만 자세한건…”
이청형은 포도를 다시 입에 물며 답했다.
“무인이다. 그는. 그가 조금만 더 야심이 있었다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을 자다.”
이청형은 기지개를 키며 일어나 앉았다.
“그에게 맡긴 이상 선발대의 걸음이 멈출 일은 없을 거다. 적어도 육대세력의 인물들이 나서기 전까지는.”
이청형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지. 그들이라 해도 그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할 뿐일 거다.”
비천마왕은 이청형의 절대적인 믿음에 의아해했다.
“그자. 그렇게 대단한 자입니까?”
이청형은 웃음을 지었다.
“그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본좌가 도착하길 기다리게 만들 자가 과연 무림에 얼마나 있을까?”
이청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천마왕을 향한 그의 눈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자가 그렇게 대단하냐고?”
이청형은 천막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북천의 오천 무인의 선봉에 설 수 있는 자. 많으리라 생각하는가?”
천막의 문을 걷어 하늘을 바라보는 이청형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중원. 그를 막아 보아라. 본좌를 기다리게 만들어 봐라.”
창주궁의 대청에 깔린 지도를 가리키며 문상 초평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이곳에서 화산의 정예 오백이 전멸 당했습니다.”
초평의 말에 백건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청송자라는 아이. 그렇게 경솔한 아이는 아니었건만.”
백건호의 말에 하후패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곧은 성격이라면 혼자서라도 막으러 갔을 것입니다.”
“그렇긴 하군.”
백건호는 안타까운 눈으로 초평이 가리킨 지도의 한 지점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무인들을 만나 보았다. 그중에 기억나는 화산의 검사. 그가 매화검수일 때 만나보았었다. 훗날 곧은 성격에 어울리게 화산의 집법장로가 되었다는 말만을 들었었다.
“십년의 폐관 수련이 그렇게 길었단 말인가?”
백건호는 안타까운 듯이 중얼거렸다. 자신이 폐관 수련에 든 십년. 북천방에서 중원을 넘볼 만큼 긴 시간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건호의 입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선인들을 뵐 면목이 없구나.”
백건호는 고개를 들어 초평을 바라보았다. 초평의 보고가 이어졌다.
“화산의 정예 오백이 전멸 당했다는 소식에 청의문의 거의 총력이 출전한 것 같습니다. 청의문에서 일천의 병력이 출발했다는 전언이 들어왔습니다.”
초평의 손이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주위에 산이 없는 대평원.
“아마 이쯤이 될 것 같습니다.”
초평의 말에 백건호가 한 숨을 내쉬었다.
“청의문의 문주도 나섰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
“예. 청의문에서도 태상궁주님과 마찬가지로 태상문주님이 폐관수련을 들어갔지만 아직 마치지 못하신 듯 합니다. 청의문의 문주와 소문주 이하 일천의 무인이 나섰습니다.”
백건호의 시선이 다시 지도로 향했다.
“그렇다면 북천방주가 그 곳에 도착할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나?”
초평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리만치 여유 있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 그들의 이동속도라면 이십 일은 넘을 듯싶습니다.”
“그리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군.”
백건호는 좌우에 앉아 열심히 초평의 이야기를 듣는 유세운과 영호천을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지도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말을 타고 가면 얼마나 걸립니까?”
“아마도 저희도 서둘러 가야 이십 일 안에 도착할 수 있을 듯 말 듯 합니다.”
영호천은 지도에 그려진 강줄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쪽은 어떻습니까?”
“수로로 간다해도 그 시일은 그리 다르지 않을 것 입니다.”
백건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북천방의 선발대는 청의문의 몫이군.”
“예.”
“그런데 선발대장이 청룡도 육우령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유세운은 백건호의 말투에 이상함을 느끼고 물었다.
“그가 누굽니까?”
백건호는 웃음을 지었다.
“북천의 최고의 무장이라 부르면 어울리겠군. 북천방주를 제외하고 그를 당할 자가 누가 있을까라는 말이 나돌 정도의 사내지. 십년 전부터 그렇게 불려왔던 사내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군.”
백건호의 말에 유세운의 얼굴에 호기심이 어렸다.
“대단한 자인가 보군요.”
“그 말로도 부족한 자라네.”
초평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어쩌면 그를 상대하기 위해 청의문주님이 직접 나서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유세운의 지도를 바라보는 시선에 흥미가 어렸다.
초평은 명부첩을 두 개 꺼내어 유세운과 영호천에게 건넸다.
“일천의 무인들이 선발됐습니다. 그 외의 무인들은 오히려 짐이 될 뿐일 것 같아 이렇게 편성했습니다.”
유세운은 명부첩을 펼쳐보지도 않고 옆에 내려놓았다.
“그렇다면 영호형님과 저. 오백 명의 무인들을 데리고 가는 겁니까?”
초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먼저 청의문의 일천의 병력과 조우하십시오. 저희 창천궁에서도 일천의 무인이. 천룡문에서도 일천의 무인이 곧 출발 할 겁니다.”
유세운은 북천방의 본대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들의 병력이 얼마라고요?”
“북천방 본대의 인물은 오천입니다.”
유세운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칠천 대 사천의 싸움이군.”
유세운의 말에 초평이 씁쓸히 웃었다.
“그렇지요. 혈천문이나 수라성. 철마성에서 무인들의 지원이 없으니 인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절대고수 간의 싸움에 숫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상관은 없어요.”
유세운은 지도를 바라보며 영호천에게 말했다.
“영호형님. 저는 육로로 가고 싶습니다만.”
“그럼 내가 수로로 가겠네.”
영호천은 흔쾌히 대답했다. 비록 숫자는 별 상관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 수도 일이백의 차이다. 삼천 이상의 차이를 막아낼 만큼 이쪽의 절대고수가 많은 것도 아니다. 쉽지 않을 싸움. 영호천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그려졌다.
초평은 둘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이미 무인들에게도 발표하고 말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하후패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쯤이면 준비가 끝났을 것 같군.”
유세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서두르도록 하죠.”
영호천도 따라 일어났다. 죽립을 들어 쓰는 영호천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누가 먼저 가나 내기할까?”
“형님. 잘 모르시나 본데 제가 얼마나 기마술이 늘었는지 아십니까?”
“아무렴 수로보다 빠르겠는가?”
“하하하.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유세운은 백건호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부탁하네.”
백건호의 말을 듣고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 대청을 나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영호천도 가벼운 목례와 함께 유세운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내려가던 유세운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걱정스런 얼굴로 내려가는 계단에 백연혜가 서 있다. 영호천은 가볍게 유세운의 어깨를 두들겨 주고 먼저 내려갔다.
유세운은 걸어 내려오며 백연혜를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백연혜는 눈물을 글썽였다.
“알아요. 아무렇지 않게 또 웃으며 창천궁의 대문을 열고 돌아오실 거라는 거.”
“그런데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유세운의 물음에 백연혜는 가슴에 손을 올려놓았다.
“모르겠어요. 왠지 이번엔 더욱 불안해요. 북천방주는 이미 예전에 심검에 든 고수에요.”
유세운은 면사를 쓴 백연혜의 어깨를 두 손으로 감싸 쥐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난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
유세운은 백연혜의 면사를 벗기며 말했다.
“누가 기다리고 있는데 지겠어?”
백연혜는 유세운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따라 창천궁으로 와주고 어느새 중원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되 버린 사내.
백연혜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누구에게라도 진다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유세운은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걱정 하지마. 이번에도 웃으며 돌아 올테니 말야.”
유세운의 말에 백연혜는 미소 지었다.
“기다릴께요.”
유세운은 미소짓는 백연혜의 입술에 가만히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감기는 백연혜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유세운은 면사를 내려주며 말했다.
“아버지와 누나를 부탁할게.”
백연혜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유세운은 그녀를 가만히 안아주고서 작게 속삭였다.
“이번에도 걱정하면 와서 혼내 줄 거야. 승전보만 기다리라고.”
“예.”
눈을 뜨지 못하는 백연혜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어찌 걱정하지 않겠는가.
천천히 눈을 뜬 백연혜는 손을 흔들며 계단을 내려가는 유세운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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