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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하나 둘 별이 뜨는 시간 대청은 오히려 더욱 시끄러워졌다.
가득 차 넘칠 듯 찰랑이는 술잔을 들어 올리는 얼굴들에는 웃음들이 가득했다. 유세운은 잔을 들어 올린 채 입을 열었다.
“양총관 고생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제가 뭘 했다고 그러십니까?”
편하게 말하는 양관척의 옆에는 부인이 그린 듯이 미소 지으며 앉아 있었다. 유세운은 동무벽과 관백을 바라보았다. 도병우는 잔을 들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우리야 여행 삼아 돌아다니고 있지만 자네는 요즘 잠잘 시간도 부족하잖아.”
유세운의 말에 양관척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렇게 치자면 저보다 곽아우가 고생이 많지요.”
양관척의 말에 곽부설을 향해 모두의 시선이 향해졌다. 곽부설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들 보지 마십쇼.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양관척은 곽부설을 향해 웃음 지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총 몇 번이었나?”
“다섯 번 있었습니다.”
“호오. 다섯 번이나?”
놀라 묻는 양관척을 향해 동무벽이 물었다.
“뭐가 다섯 번이냐?”
양관척은 씁쓸하게 웃음을 지었다.
“천마방이 거의 무너지다시피 됐다는 소문은 이미 전 강호. 특히 상계에는 모두 알려졌네.”
“그렇겠지.”
“그리고 내가 다시 상권을 장악해가자 벌써부터 나한테 선물을 보내주더군.”
관백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선물?”
“의례 있는 일이야. 그래서 상인들은 항상 호위를 두고 다니기도 하는 거고.”
유세운은 슬며시 잔을 내려놓았다.
“어디냐?”
유세운의 물음에 양관척은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이미 곽아우가 다 처리했으니 말입니다.”
양관척도 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알기도 쉽지 않고 말이죠.”
유세운의 시선이 곽부설을 향했다.
“어디의 누군지 못 알아냈어?”
“자객은 정보가 유출될거 같을 시에는 자결을 택하는 법입니다.”
“그런가?”
곽부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 곳은 알아냈습니다.”
“어디냐?”
유세운의 묻는 말투에는 어디에도 술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곽부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의외의 곳이더군요.”
“상관없다.”
유세운의 말에 곽부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혈영단의 인물이었습니다.”
“혈영단?”
곽부설은 유세운의 반문에 차분히 대답했다.
“일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혈천문의 암살자 집단.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곳의 인물이었습니다.”
곽부설은 말을 마치며 품에서 핏빛 옥패를 하나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유세운은 핏빛 옥패를 집어 들고 바라보았다. 혈영(血影)이라고 새겨진 옥패.
“혈천문인가?”
유세운의 중얼거림에 곽부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상당한 위치에 있는 자입니다.”
유세운의 시선이 곽부설을 향했다.
“무슨 말이냐?”
“혈영단에서도 손에 꼽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그 옥패입니다.”
곽부설의 말에 관백과 도병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병우는 곰방대에 불을 붙이며 대답했다.
“아마 열을 넘지 않을 겁니다.”
관백도 침중한 표정으로 혈옥패를 바라보았다.
“동패, 은패, 금패, 그리고 최상위를 나타내는 것이 그 혈옥패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세운은 혈옥패를 매만지며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양관척도 몰랐던 사실인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자가 고작 날 노렸단 말인가?”
곽부설은 갈증을 느끼고 앞에 놓인 술잔을 들이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자였습니다.”
유세운은 입가에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계속 초대하지 않아도 찾아 갈 것이거늘. 혈천문. 재미있는 곳이군.”
양관척은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쭈욱 들이키고는 유세운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문주님. 이번에 창천궁으로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유세운은 갑자기 양관척이 왜 그러나 싶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지.”
“무척 서두르신 다는데 누굴 만나러 그리 급하게 가시는 겁니까?”
유세운의 싸늘한 시선이 동무벽과 관백을 지나 도병우를 향했다. 헛기침을 하는 동무벽을 보고 유세운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유세운은 좌중을 말없이 둘러보았다.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 하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그나마 곽부설만이 태연한 척 했지만 귀를 기울이고 있음에 유세운은 미소를 지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유세운의 말에 모두들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세운은 얼굴을 약간 붉히며 말을 이었다.
“지금이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서둘러 가는 것. 이해해라.”
유세운의 말에 동무벽이 웃음을 지었다.
“양가야 말을 네 필만 더 준비해다오.”
“으음. 안 그래도 미리 말해 놨네.”
관백은 양관척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역시 자네답군.”
“하하하. 뭘 이정도 갖고 그러나.”
유세운은 멀뚱히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좌중을 보고 물었다.
“말은 왜 더 네 필이나 필요한 거야?”
“번갈아 가면서 달리는 것이 쉬지 않고 갈 수 있는 법입니다.”
관백의 설명에 유세운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좋아. 내일 아침부터 다시 강행군이다.”
유세운의 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걱정하지 마쇼. 문주보다 더 서두를테니.”
“쉴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게 좋을 겁니다.”
“후. 이거 몸이 버티려나.”
궁시렁대는 도병우와 웃음을 짓는 동무벽과 관백을 향해 유세운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양관척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문주님. 이번이 창궁검 백대협의 팔순인 것은 알고 계십니까?”
유세운은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 정도도 모를까봐?”
유세운의 말에 동무벽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하지만 동무벽의 웃음은 유세운의 싸늘한 눈빛에 금세 잠잠해졌다. 양관척은 그런 동무벽을 향해 한번 웃어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응. 다녀와.”
유세운은 뭔지도 모르면서 양관척을 내보냈다. 양관척을 따라 일어나 나가는 부인을 보고 동무벽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좋아진 것 같지?”
“그러게 말일세.”
도병우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쳇. 아직도 노총각인 자네들이나 내가 보기엔 별로 보기 좋지 않군.”
도병우의 말에 동무벽과 관백의 싸늘한 시선이 꽂혔다. 동무벽이 자신의 보도를 움켜쥐며 웃음을 지었다.
“지금 너랑 우리를 비교한거냐?”
관백도 부채를 펼쳐들며 아찔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 참 신기하군. 자네가 우리랑 같이 놓고 비교하다니 말야.”
도병우는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투덜거렸다.
“쳇! 마찬가지 아냐? 어차피 너희나 나나 지금은 노총각에 여자 하나 없는거 아니냐고!”
동무벽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천하의 천풍쌍기가 도병우에게 저런 말을 듣다니 다됐군. 다됐어.”
관백도 부채를 접어 넣었다.
“결과적으로 얘기하자니 할말이 없군.”
“크크크. 거봐. 뭐가 다르다고 그런 소리냐?”
도병우의 마지막 말에 동무벽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보도를 뽑을 뻔했다. 양관척이 때마침 문을 열고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양관척은 양손에 검을 한 자루 받쳐 들고 대청으로 들어섰다.
유세운은 멀뚱히 양관척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뭐야? 갑자기 웬 검이야?”
양관척은 유세운에게 다가가 검을 들어올렸다.
유세운은 말없이 검을 받아 들었다. 검에 대해선 문외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유세운이 척 보기에도 고풍스런 멋이 나는 검이었다.
스릉.
검을 뽑아든 유세운은 푸른빛을 발하는 검을 보고 감탄을 터트렸다.
“햐. 이거 보검이네?”
검신에 양각으로 새겨진 두 마리 승천하는 용의 모습. 살아 움직일 것 만 같았다. 곽부설이 두 눈을 빛내며 물었다.
“문주님. 제가 잠시 봐도 되겠습니까?”
“응?”
유세운은 검을 검집에 다시 집어넣고 곽부설에게 건네주었다. 곽부설은 조심스럽게 검을 꺼내 보았다. 한손에 들고 검극을 바라보던 곽부설은 절로 탄성을 내질렀다.
“최고의 명장의 숨결이 느껴지는군요. 균형감. 예리함. 무엇하나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찰칵.
곽부설의 검을 회수하는 모습을 본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예전보다 많이 늘었나본데?”
“과찬이십니다.”
다시 두 손에 받쳐서 건네주는 검을 받아든 유세운은 양관척을 바라보았다. 양관척은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천마방의 보고(寶庫)에서 발견한겁니다.”
“그래?”
관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양관척에게 물었다.
“설마 창룡검(蒼龍劍)인가?”
관백의 물음에 양관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창룡검이지.”
유세운은 검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런데 이걸 나한테 주는 이유가 뭐야?”
“창룡검은 육백년 전 천하제일검이라 불리던 분의 검입니다.”
“육백년 전?”
유세운의 물음에 도병우는 곰방대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믿을 수 없군. 이것이 다시 나오다니 말야.”
유세운은 도병우를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적당히 하고 꺼. 눈이 맵군.”
도병우는 역시나 투덜거리며 곰방대의 불을 껐다. 관백은 웃음을 지으며 유세운에게 설명했다.
“창천궁의 제 일대 궁주인 창룡검 백무흔대협의 애검이었습니다.”
“엑? 그런데 그게 왜 천마방의 보고에 들어가 있는 거야?”
유세운의 물음에 동무벽이 자신의 턱수염을 긁적이며 말했다.
“내가 듣기로는 당시 그의 가장 친한 지기에게 주었다고 들었는데…”
도병우는 곰방대를 등에 꽂아 넣고 술을 들어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지. 하지만 무인은 아니었다고 들었어.”
양관척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어찌어찌 흘러 돌아다니다가 천마방주 눈에 들었나봅니다. 골동품이라면 미치는 녀석이었으니까요.”
“그렇군.”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검을 내려다보는 유세운은 양관척이 이걸 왜 자신에게 주었나? 고민했다. 권법가에게 검이라니.
관백은 유세운의 눈치를 보고 입을 열었다.
“창궁검 백대협에게는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응? 아하하. 그렇겠지?”
그제야 눈치를 챈 유세운을 보고 동무벽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초대궁주의 검이라면 어떤 것과 바꿔서라도 가지고 싶을 겁니다.”
유세운은 다시 한번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매끄럽게 뽑혀 나오는 검을 보고 유세운은 웃음을 지었다.
“멋지구나. 내 비록 검을 익히진 않았지만 탐낼만하구나. 이제 그만 주인에게 돌아가거라.”
한점 욕심 없는 눈빛의 유세운을 보고 좌중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검만으로도 충분한 무림의 보물. 무림인이라면 눈이 뒤집힐만한 물건이다. 더욱이 창천궁과의 연이 있는 검.
초연한 유세운의 모습에 좌중은 말없이 시선을 돌려 잔을 들었다. 유난히 술이 달다고 느껴지는 날이었다.
창천궁으로(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