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악양의 복호산장.
정협련의 총단이 되고 나서부터는 항시 철통같은 경계를 서고 있다.
유세운은 가죽부대 하나 가득 죽엽청을 담아서는 복호산장을 향했다. 그 뒤를 따르는 동무벽이 관백을 보고 웃음 지었다.
“구파일방도 요즘은 뭔가 조금은 변화를 주려나 보군.”
“그래도 명실상부 명문정파 아닌가.”
도병우는 그들의 말에 곰방대를 빨며 대답했다.
“그래봤자야.”
도병우의 말에 동무벽이 자신의 턱수염을 긁적이며 물었다.
“뭐가 그래봤자라는 거냐?”
도병우는 깊이 연기를 빨아들이며 대답했다.
“철마성의 행사를 하나도 막아내지 못했어.”
도병우의 말에 관백이 고개를 내저었다.
“누가 육대세력의 행사를 막겠나. 당연한 거지.”
“그만들 해.”
유세운의 한마디에 셋은 조용해 졌다. 유세운은 천천히 말을 몰아 긴장한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무인에게 다가갔다. 무인은 자신들 앞에서 방약무인 떠든 일행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용건입니까?”
억눌려 있지만 절도있는 말투. 유세운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태혜검 동철을 만나러 왔는데 지금 자리에 있나?”
유세운의 물음에 무인의 눈빛은 날카롭게 빛났다.
“부련주는 왜 찾으시는 거요?”
유세운은 뺨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지기를 만나러오는데 왜냐고 물으니 마땅히 할말이 없군.”
유세운의 말에 무인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지기를 찾아왔다면서 면전에서 구파일방을 욕보이다니 믿을 수 없었다.
“누구신지 말해 주시죠.”
유세운은 무인의 표정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유세운이라고 하면 알거야.”
유세운의 말에 무인의 표정에 경악이 스쳤다. 모든 감정을 뒤덮는 경악.
철마성을 봉문 시킨 당사자. 천하제일에 거론되는 자 앞에서 무인은 분노의 감정도 잊어버린 채 읍을 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응.”
황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무인을 바라보던 유세운은 시선을 돌려 도병우를 쏘아보았다. 도병우는 유세운의 시선을 피해 곰방대를 빨았다.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도병우는 고개를 숙여보였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됐어.”
유세운은 시선을 돌려 복호산장의 대문을 바라보았다. 꽤나 많은 인원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중에 아는 얼굴을 보고 유세운은 말에서 내려섰다.
“하하하. 이거 오랜만입니다.”
웃으며 말을 건네던 유세운의 표정이 굳어졌다. 펄럭이는 빈 소매. 왼팔이 있어야 할 곳의 소매가 허전했다.
“무슨 일입니까?”
유세운의 물음에 현요진인은 홍안에 웃음을 머금었다.
“크하하하. 아무 일 아니다. 철마십영과 싸우다 이리 된 거니라.”
현요진인의 말에 유세운은 안색을 풀지 않았다.
“철마십영에게 말입니까?”
“그래. 네놈도 모르고 한거겠지만 내 대신 복수를 해줬더구나.”
유세운은 현요진인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세운은 주변을 돌아보다 매화문양을 소매에 그려놓은 호강현을 바라보았다. 읍을 하는 호강현을 향해 마주 읍을 했다.
“유대협. 오랜만에 뵙는군요.”
“오랜만이오.”
어색하게 대답한 유세운은 고개를 들다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거지를 보고 의아함을 가졌다. 초면에 인사도 없이 뚫어지게 바라보던 거지는 읍을 했다.
“복상이라고 하오. 만나게 되어 영광이오.”
복상의 말에 유세운은 가볍게 마주 읍을 해주었다. 유세운은 곧 시선을 돌려 현요진인을 바라보았다.
“동철인 없습니까?”
유세운의 물음에 복상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부련주는 정협련의 고수들을 데리고 먼저 창천궁으로 떠났소.”
복상의 말에 유세운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한발 늦었군.”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고는 현요진인을 향해 가죽부대를 들어 보였다.
“괜찮으시면 저랑 차나 한잔 하시죠?”
유세운의 말에 현요진인은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그거 좋지. 따라 오거라.”
현요진인의 발걸음은 동철이 자주 가던 정자였다. 푸른 대나무 숲이 보이는 곳. 꽤나 많은 사람들이 따라온 것을 본 유세운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진인과 둘이서 있고 싶어.”
“예.”
멈춰선 동무벽과 관백은 뒤를 돌아섰다. 뿜어져 나오는 기세.
유세운과 현요진인의 뒤를 따르던 자들의 안색이 변했다. 한걸음이라도 더 내딛으면 베일 듯한 느낌.
동무벽과 관백은 말없이 기세만으로 중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정자에 오른 유세운은 현요진인에게 가죽부대를 넘기면서 웃음 지었다.
“곡차 한잔 하시지요.”
현요진인은 가죽부대를 받아 한 모금을 들이켰다. 입안을 감도는 죽엽청의 향에 흐뭇한 미소를 지은 현요진인은 유세운에게 가죽부대를 넘겨주었다.
벌컥.
현요진인은 시원하게 죽엽청을 들이키는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열두 살 나이에 맹랑하기만 하던 꼬마가 어느덧 자신조차 함부로 볼 수 없는 경지에 도달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자 십장 밖에서 말없이 등을 내보이고 서있는 사내들. 뿜어내는 기세가 십장 밖인 정자 안까지 느껴졌다. 천풍쌍기와 경천뇌 도병우. 남의 밑에 있을 자들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자들이다.
유세운은 가죽부대를 넘기면서 물었다.
“동철인 요즘 어떻습니까?”
유세운의 물음에 현요진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에 미쳐있지.”
현요진인의 말에 유세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정도의 속도라면 충분할 듯한데 어쩌다가…”
현요진인은 씁쓸하게 웃음을 지었다.
“다 노도 때문이지. 복수심에서 시작한 무에 대한 녀석의 의지가 식지를 않는군.”
현요진인의 말에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겁니다. 말이 없어서 그렇지. 무공이야 누구 못지않은 녀석이니까.”
“크하하하. 뭐 자랑은 아니지만 그녀석의 재능은 내가 본 사람 중 너 다음이다.”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현요진인을 보고 유세운도 따라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맞아요. 대단하죠.”
현요진인은 웃음을 멈추고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멀뚱히 바라보는 모습에 유세운은 머쓱해져 웃음을 멈추었다.
“왜 그렇게 보시는 겁니까?”
유세운의 물음에 현요진인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동철이를 부탁하마.”
현요진인의 말에 유세운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 가십니까?”
유세운의 물음에 현요진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지금껏 내가 가르쳐 왔다만 곧 내가 가르칠 수 있는 한계를 넘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현요진인의 시선에 진심이 담겼다.
“녀석이 벽에 막혀 괴로워 할까봐 두렵구나. 그리고 그때 아무 도움이 못되어줄 내가 아쉽고… 그래서 하는 부탁이다.”
현요진인의 말. 유세운은 결국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물론이죠. 진인에게는 애물단지 제자일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친구 아닙니까. 당연한 말을 그렇게 심각하게 말하지 마세요.”
유세운은 작은 목소리로 말을 마무리 지었다.
“전혀 안 어울리니까…”
“이놈이…”
화를 내려는 현요진인에게 유세운은 턱을 괴며 물었다.
“하나 궁금한게 있습니다.”
“…뭐냐?”
화를 낼 순간을 놓친 현요진인은 김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유세운은 입가에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대체 그 때 삼청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뭔 소리냐 그게?”
유세운은 먼 곳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예전에 동철이가 말하려다가 진인의 일수에 기절했던게 기억이 나서 말이죠.”
“흠흠.”
현요진인은 헛기침을 터트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건 알 것 없다.”
현요진인의 표정에 유세운은 미소를 지었다. 십년이 넘게 지나도 변함없는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유세운은 가죽부대의 죽엽청을 한 모금 들이켰다.
죽엽청의 향기가 입안을 감돌고 정자 밖의 푸른 대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가슴에 그려졌다.
신강성을 남북으로 양분하고 있는 천산산맥.
천산산맥의 주 봉우리인 성리봉에 지어져 있는 거성.
수라성의 성주가 기거하는 태황각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허허허. 그 말이 정말이냐?”
핏빛의 눈썹과 수염을 한 이의 웃음에 보고를 올리던 천이마왕은 묵묵히 부복하고 있었다. 대답을 원하고 묻지 않은 것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재밌는 일이군.”
핏빛의 수염을 쓰다듬는 자. 수라성의 성주 수라마황 단우적은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철마성의 봉문이라니. 육백년을 이어오는 육대세력의 역사에 그런 일은 단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던 일이다. 그리고 유세운과 철마성의 태상성주와의 싸운 상황이야기는 더욱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유세운이라는 녀석도 의외이지만 그것보다도 철마성의 태상성주가 의외이군.”
“독고청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단우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검에 들 수 있는 자와 없는 자. 그것의 차이는 크다. 벽을 넘는 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넘어선 자 만이 넘지 못한 자를 인도할 수 있다. 자신이 여태껏 알아온 바로 철마풍 독고청은 절대로 혼자서 그 벽을 넘을 수 없는 자다. 단우적은 뒷짐을 진 채 태황각 밖의 하얗게 덮인 설경을 바라보았다.
“어찌 된 일인지는 알아보았나?”
“아직 정확한 정보는 없습니다.”
“계속 말하라.”
부복하고 있던 천이마왕은 단우적의 등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십이 년 전 폐관 수련에 들어가기 직전 그를 찾아간 인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후로도 몇 번 철마성에 나타난 적이 있다고만…”
“어떤 자냐?”
“죽립을 쓰고 검을 품에 안고 다닌다는 것 밖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죽립을 쓰고 검을 품에 안고 다닌다라…”
단우적의 중얼거림에 천이마왕은 묵묵히 기다렸다. 단우적은 자신의 핏빛 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자가 열쇠를 쥐고 있는 듯 하군.”
단우적의 시선은 멀리 천산산맥을 넘어 중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더욱 멀리 남쪽을 바라보았다.
“설마 그들인가?”
천이마왕은 부복한 채 물었다.
“그들이라 하심은…”
천이마왕의 물음에 단우적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직 정확한 일은 아니다. 죽립인에 대해 조사해보라. 그리고 유세운이라는 자의 향방도 계속해서 알아보라.”
“존명.”
창천궁으로(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