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26화 (126/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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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는 군웅들

천주는 둘의 변하는 표정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런 표정들인가?”

천주의 물음에 단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나러 가자는 말씀은 저희랑 같이 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물론이지. 그럼 너희는 나를 혼자 보낼 생각이냐?”

천주의 물음에 서중이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아닙니다. 그럼 저희만 갑니까?”

서중의 물음에 천주는 가볍게 고개를 내 저었다.

“아니. 이번일은 우리들만 갈 문제가 아닌 듯 하구나.”

천주의 말에 서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혹시…”

“그래. 이번 북천방의 일을 그냥 넘길 수가 없구나.”

단량은 눈을 빛내며 쏘아붙이듯 말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리 천주라 해도 단독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오.”

단량의 말에 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나 혼자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천주는 단량과 서중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희에게 먼저 묻지. 어떻게 생각하나?”

천주의 물음에 서중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경지에 도달하진 못했지만 실전경험 삼아 괜찮을 듯싶네요.”

서중의 말에 단량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 또한 북천의 무학을 구경해 보고 싶은 마음은 같다. 하지만 이건 자신 둘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갈등하는 단량을 보며 천주는 웃음을 지었다.

“그럼 자네 의견은 잠시 있다가 들어보기로 하지.”

천주는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분지. 절벽 곳곳에 동굴이 뚫려 있고 분지 안에도 천막의 수만 백여 개에 달했다. 천주의 걸음은 분지의 중앙에서 멈춰 섰다.

“낭인천의 낭인들은 모두 나와 보라.”

작게 중얼거리는 듯하지만 담긴 내력에 목소리는 메아리쳐 퍼졌다. 동굴에서 하나 둘 씩 머리를 내미는 사내들은 가지각색의 무기와 가지각색의 복장을 하고서 모이기 시작했다.

분지의 중앙에 팔짱을 끼고 선 천주는 말없이 기다렸다. 그의 뒤에 선 서중은 하품을 하고 있었고 단량은 천주의 등을 바라보았다.

어느날 문득 찾아와 비무를 청한 사내.

자신의 절기를 모두 펼칠 때까지 유유히 막아내기만 하고 단 일검에 자신을 패퇴 시킨 사내다. 그러기는 서중도 마찬가지.

그의 곁에 남은 이유는 그와의 비무가 도움이 되기 때문. 서중도 사부가 죽고 혼자 넘지 못할 벽에 막혀 그의 곁에 머물렀다. 조금씩 벽을 넘어서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가 낭인천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아니지만 이곳은 진정한 낭인들만의 세계. 무엇보다 자유롭게 무예만을 닦는 수도자들의 집단이다. 돈이 필요한 자는 용병단으로들 떠나고 무예만을 위해 남은 자들. 그런 그들이 한 사내를 위해 움직인다는 것은 불길한 일이다.

하지만 낭인천의 이백오십 명의 낭인들. 모두 낭인천주에게 일검에 패했다.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 낭인천주는 이미 낭인들의 주인이 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긴 자신과 서중 둘만을 데리고 소림사로 찾아 갔을 때의 일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소림사 장문인과의 담판.

일대 백팔의 대결. 그가 펼치는 검도를 보고 느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천하를 논할 고수. 자신들에게 조차 전력을 안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느새 낭인천주의 한마디에 분지의 중앙에 모인 낭인들. 한명도 빠짐없다.

낭인천주 영호천의 입이 다시 한번 열렸다.

“오늘 이렇게 모이라고 한 것은 묻고자 하는 것이 있어서다.”

이곳저곳에 주저앉고 드러누워 있지만 그들의 시선은 모두 영호천을 향했다. 영호천은 그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북천방의 일은 들어서들 알고 있을 것이다.”

사방에 수군거리는 소리. 아무리 무예만을 닦는 다고해도 그들 또한 강호인. 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영호천은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보다 못한 서중이 인상을 찌푸렸다.

“조용히들 해!”

나이는 어리지만 서중의 무예는 낭인천을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든다. 약간의 투덜거림을 끝으로 조용해진 분지에 영호천의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세외세력이 중원을 쳐들어온다. 막아낸다. 그런 건 내게 중요치 않다.”

영호천의 말에 단량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무슨 말인가. 자신들에게 그들을 그냥 보아 넘길 수는 없다고 해놓고서 이들에게 하는 말은 다르다.

영호천의 목소리가 갈등하는 단량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난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북천의 무예를 견식하고 싶다.”

영호천의 말에 낭인들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비무라면 자다가도 일어날 자들. 그런 그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말이다.

“그들과 겨루고 싶은 자. 겨루어 이기고 싶은 자들은 손을 들어라.”

영호천의 말에 하나 둘 손을 들기 시작했다. 이백 오십의 낭인 모두가 손을 드는 것을 보고 단량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영호천은 그들을 둘러보고 웃음을 지었다.

“좋다. 준비해라. 지금 당장 창천궁으로 가자.”

단량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장검을 쓰다듬었다.

영호천. 보면 볼수록 놀라운 사내다. 저 나이에 믿을 수 없는 경지하며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 일대종사가 되어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창천궁으로 가고 싶은 유세운의 독촉에 모두들 먼지를 뒤집어쓰고 말을 몰았다.

유세운은 말의 거친 숨소리를 듣고서야 속도를 줄였다.

십일 간의 강행군. 새해가 되기 전에 창천궁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무벽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급해도 좀 쉬었다 가는게 어떻소?”

동무벽의 말에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말들도 좀 쉬어야 하겠어. 오늘은 저기서 자고 가자.”

유세운의 시선이 닿은 곳에 있는 관도상의 작은 마을. 주루라고는 하나 밖에 보이지 않았다.

“흐흐흐. 씻을 수나 있었으면 좋겠군.”

웃음을 터트리는 동무벽을 보며 유세운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 말 않고 있지만 좋아하기는 관백이나 도병우도 마찬가지의 표정이다.

마상에서의 내공운기로 거의 완쾌 된 유세운이야 피로를 못 느끼지만 말들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유세운은 천천히 말을 몰아 주루 앞에 멈춰 섰다.

주루에서 점소이 하나가 땀을 훔치며 뛰어 나왔다.

“어서 옵쇼.”

유세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관도 상에 있다지만 이런 작은 마을. 작은 주루에 점소이가 땀을 흘리며 일할 정도로 잘되다니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말고삐를 건네주고 주렴을 걷어낸 유세운의 표정엔 더욱 의혹이 서렸다.

주루를 가득 매우고 있는 인물들. 모두 병장기를 휴대한 무림인이다. 유세운은 점소이에게 물었다.

“자리는 있는가?”

점소이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예. 자리는 있습니다만.”

점소이의 표정을 보던 도병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은 없는가보군.”

“예. 죄송합니다. 갑자기 손님들이 모이시는 바람에.”

유세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근처에 다른 잠자리를 구할 곳도 없어 보이네만.”

“예. 이곳에서도 십리는 더 가야 그나마 큰 마을이 나오지만 그곳도 이곳과 다를 바가 없을 겁니다.”

유세운은 동무벽을 보며 웃음 지었다.

“그럼 여기서 요기라도 하고 가자.”

유세운의 말에 동무벽은 자신의 보도를 두들기며 말했다.

“여차하면 방 하나 마련 해보는게 어떨지?”

동무벽의 말에 유세운은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 하지마.”

하지만 그들의 우스개 소리를 들은 인물들의 시선은 험악하게 변했다. 주루에 앉아 있는 자들의 불편한 시선을 받으며 유세운은 아무렇지 않은 듯 점소이에게 물었다.

“자리나 안내해 줘.”

“예. 따라 오시지요.”

점소이가 안내해 준 자리. 주루의 중앙에 놓인 탁자다. 탁자 위를 수건으로 닦아내며 점소이가 물었다.

“뭘로 드시겠습니까?”

유세운은 별 생각없이 대답했다.

“죽엽청 네 병에 안주는 자네가 알아서 챙겨오게.”

유세운의 말에 점소이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재신의 강림. 이런 손님들만큼 후하게 수고비를 주는 사람들도 없다. 역시나 유세운의 품에서 커다란 은자 열냥짜리 은원보가 나왔다.

“안주가 맘에 들면 더 주도록 하지.”

유세운의 말에 점소이의 머리가 땅에 닿을 듯 숙여졌다. 유세운은 사방에서 쏘아보는 시선에 눈썹을 가볍게 찌푸렸다.

동무벽과 관백의 표정도 탐탁치 않았다. 주루에 들어서며 동무벽이 한 한마디에 무인들의 시선은 날카롭게 그들을 쏘아 보았다. 도병우는 그런 무인들과 그들 사이의 기류에 한숨을 내쉬었다.

“문주님. 제가 알아보고 와도 되겠습니까?”

도병우의 말에 유세운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무슨 말이야?”

유세운의 물음에 도병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주루에 이정도 무인들이 모여 있다면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도병우의 말에 동무벽과 관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세운도 그 얘기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좋아.”

도병우는 유세운의 말이 떨어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사내들의 몸이 흠칫했다. 도병우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는 무인들을 향해 다가갔다.

짙은 턱수염을 기른 사내와 쌍검을 차고 있는 사내들에게 다가간 도병우는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군.”

도병우의 말에 턱수염을 기른 사내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언제 봤다고 반말이쇼?”

도병우는 자신의 등에 매고 있던 곰방대를 꺼내 입에 물면서 그들의 의자에 주저앉았다.

“난 도병우라고 하네.”

도병우의 한마디에 주루의 분위기는 대변했다. 턱수염의 사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경천뇌 도선배님이십니까?”

“허허. 무림동도들이 그렇게 불러주고는 있네.”

턱수염의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태진문의 송가라고 합니다.”

쌍검의 사내도 일어나 같이 포권을 취해보였다.

“태진문의 곽가입니다.”

도병우는 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럴 것 까지는 없네. 어서 앉게나.”

도병우의 말에 두 사내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세운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보기보다 이름이 있나보군.”

유세운의 말에 관백이 목소리를 죽여 가며 말했다.

“저희 없는 동안 꽤나 유명해 진 듯 합니다.”

동무벽은 턱수염을 긁적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잔머리 굴리는 놈들은 적성에 안 맞아.”

도병우는 태진문의 두 사내에게 웃음을 지은 채 물었다.

“그래. 이런 곳 까지는 무슨 일인가?”

도병우의 물음에 송가라 말한 턱수염의 사내가 웃음을 지었다.

“모르셨습니까?”

도병우는 자신의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요즘 좀 바쁜 일이 있었거든.”

“하하하. 그러셨군요.”

턱수염의 사내는 웃음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북천방의 이야기는 들으셨습니까?”

“으음. 그 이야기야 들었지. 꽤 된 이야기 아닌가?”

턱수염의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창천궁의 태상궁주이신 창궁검(蒼穹劍) 백노대협이 폐관수련을 마치셨답니다.”

“오호. 그 분은 은퇴하신 줄 알았더니 폐관 수련에 드신 거였군.”

턱수염의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노대협의 팔순을 맞이해서 모이는 곳에서 북천방을 막으러 갈 강호인들을 모집한다는 배첩이 돌았습니다.”

턱수염의 사내가 하는 말에 도병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된 일이었군.”

도병우는 자신의 곰방대에 불을 붙여 한모금 들이키며 웃음을 지었다.

“자네들도 그 일 때문에 가는 건가?”

“예. 미력하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지요.”

도병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사내의 어깨를 두들겼다.

“자네 같은 강호인들이 있으니 누가 감히 중원을 넘보겠나.”

도병우의 말에 턱수염의 사내는 얼굴가득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과찬의 말씀 이십니다.”

도병우는 사내에게 웃음을 지어 보인 뒤 자리로 돌아왔다. 유세운은 도병우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도병우는 유세운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뭐가 그리 좋으십니까?”

유세운은 도병우의 물음에 고개를 숙이며 목소리를 죽였다.

“사람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

도병우는 옆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대답했다.

“이정도 용인술이야 용병단의 단주가 되려면 기본입니다.”

동무벽은 도병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말로 해결하려는 놈들을 보면 화가 난단 말야.”

도병우는 동무벽을 쏘아보며 으르렁 거렸다.

“흥. 너라고 뭐 다를 것 같아?”

동무벽은 자신의 보도에 손을 얹으며 웃음을 지었다.

“네놈이 혀를 내두르는 속도가 빠를까? 아님 내 도가 네놈의 혀를 베는 속도가 빠를지 해볼 테냐?”

“쳇.”

모이는 군웅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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