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독고청은 말없이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십장 앞에 마주선 유세운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 확실히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초마의 경지다.
죽립인 또한 초마의 경지에 들어섰지만 그와 마주하고 선 적은 없었다.
자신을 향해 숨김없이 내뿜어지는 유세운의 경지에 절로 손이 뻗어 나갈 것만 같았다. 독고청은 흥분에 떨려오는 손을 소매 속에 감춘 채 입을 열었다.
“선수를 양보하마.”
유세운은 웃음을 터트렸다.
“진심이야?”
유세운의 말을 들은 독고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후회하지 말라구.”
십장의 거리. 그들에겐 코앞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세운의 신형이 땅을 박차고 손을 들어 독고청을 가리켰다.
퍼퍼퍼퍽.
“흠!”
연속적으로 펼쳐진 섬광마멸지가 같은 곳을 노리고 공격하자 독고청의 안색이 미미하게 떨렸다. 한번만 더 공격을 받았다면 호신강기가 뚫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과연 고금제일지법이군.”
자신이 초마의 경지에 들지 않았다면 승부는 이 한번으로 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유세운은 추호도 독고청이 말이나 하고 있을 여유를 줄 맘이 없駭?
허공을 가르고 뻗어오는 유세운의 일권이 어느새 독고청의 코앞까지 들이 닥쳤다.
“흠.”
독고청은 뒤로 가볍게 일보 물러났다. 단숨에 일장 가까이 뒤로 물러났지만 유세운은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은빛 강기에 둘러싸인 주먹이 여전히 그를 쫓았다.
독고청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좋구나!”
독고청의 좌장이 호선을 그리며 유세운이 내뻗은 일권의 경력을 흘렸다. 이어지는 우장이 유세운의 옆구리를 향해 내뻗어졌다. 유세운은 좌권을 뻗어 독고청의 우장을 받아냈다.
퍽.
좌권과 우장의 충돌에 의한 경력을 이용 몸을 선회한 유세운의 팔꿈치가 독고청의 관자놀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독고청의 좌장이 팔꿈치를 옆으로 흘리며 뒤로 다시 반보 물러났다.
독고청은 당황했다. 초마의 경지에 들어서며 이런 식의 초식교환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지만 유세운이 내뻗는 권법 하나하나가 목숨을 내걸어야 할 만큼 위력적이었다.
유세운은 뒤로 물러나는 독고청을 향해 달려들며 우측 무릎을 내질렀다. 독고청은 다급히 쌍장을 내뻗어 유세운의 달려드는 기세를 막아섰다. 이대로 계속 뒤로 물러난다면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할 것 같았다.
펑!
막아내는 쌍장에 담긴 경력에 물러나기도 하련만 유세운은 그 힘을 옆으로 흘려내며 왼발을 차올렸다. 독고청은 다급한 나머지 우측 팔꿈치를 들어 막아내며 좌장으로 유세운의 왼발을 옆으로 밀었다.
유세운의 왼발을 밀어낸 독고청은 식은땀이 흐를 것만 같았다. 상대의 호흡소리마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뻗어지는 목숨을 건 초식의 교환. 극마의 경지에 들고서부터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텅!
그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유세운의 오른발이 진각을 밟았다.
“헛!”
이어서 뻗어오는 좌권의 내력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다. 독고청의 쌍장이 내뻗어지며 경력을 내뻗었다. 하지만 유세운처럼 진각을 밟고 내뻗지 못한 다급한 경력. 내력을 끌어올릴 틈이 없었다.
펑!
손해 보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좌권이 구부러지며 팔꿈치가 들이 닥쳤다.
펑!
“헉!”
호신강기를 끌어 올렸지만 충격이 가히 작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닌 듯 유세운의 어깨가 두 눈에 들어왔다. 독고청은 호신강기를 끌어 올리며 쌍장을 내뻗었다.
퍼펑.
지금까지와는 다른 커다란 충돌음과 함께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난 독고청은 이어질 공세를 대비해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유세운은 그 자리에 서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독고청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이게 뭔가?”
“하하하. 팔각연환권이라는 건데 어때?”
유세운의 말에 독고청은 자세를 바로 잡고 섰다. 그 정도 거리에서 그런 위협적인 공격이 연거푸 나온다는 것은 그 거리에서 수도 없는 경험을 했다는 뜻. 상대의 이점을 그대로 받아들일 마음은 없다.
“무광의 전성기 시절의 무공이군.”
유세운의 눈썹이 역팔자를 그렸다.
“내가 분명히 사부님의 대명을 입에 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이번엔 내 차례다!”
독고청의 좌장이 뻗어지며 강기가 쏟아져 나왔다. 유세운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거리를 두겠다는 건가본데?”
유세운은 몸을 앞으로 날리며 우권을 내뻗었다. 독고청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감히 뚫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결과는 봐야 알지.”
독고청이 내뻗은 강기에 빈틈이라고는 없었다. 유세운은 작게 중얼거렸다.
“빈틈이 없다고 물러난다면 장강불진이 아니지.”
유세운의 주먹 끝에 형성된 진기는 바늘 끝처럼 날카로워지며 와선형으로 회전했다.
슈악.
갈라지는 강기의 틈새를 파고드는 유세운의 일권에 독고청은 침음성을 흘렸다.
“허허.”
독고청은 이정도 거리에서라면 자신 있었다. 강기가 뚫린다는 것이 놀랍긴 했지만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그리 당황할 필요도 없었다.
재차 뻗어지는 장력을 따라 강기가 뻗어 나갔다. 유세운은 고개를 내저었다.
“몇 번을 막아도 소용없다.”
유세운의 일권은 거침없이 다시 한번 강기를 뚫어냈다. 강기의 틈새를 뻗어나가는 유세운의 권풍에 결국 독고청은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독고청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이 초식은 뭐냐?”
“이거? 장강불진이라는 초식이지.”
“좋다. 좋은 초식이구나. 하지만 이것도 받아낼 수 있는지 보자.”
독고청의 좌장에 이은 우장 그리고 쌍장이 차례로 펼쳐졌다.
“철마삼연장(鐵魔三連掌)이라고 하지.”
독고청이 회심의 미소를 지을 만한 위력. 좌장에 이어 뒤늦게 뻗은 우장의 경력이 겹쳐지고 마지막으로 펼친 쌍장의 장력이 그 뒤를 이었다.
강하게 짓쳐오는 경력을 보며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장법이군.”
유세운은 자세를 바로하고는 오른손의 수도를 세웠다.
“장강붕파(長江崩波)!”
유세운의 수도가 긋는 궤적을 따라 강기의 파도가 쇄도해 나갔다.
콰쾅!
독고청은 경력의 여파에 뒤로 두 걸음 물러나며 고개를 들어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유세운도 역시 두 걸음을 밀려나 있었다. 독고청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 나이에 걸맞지 않는 내공 화후로구나.”
유세운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노인장이 너무 무리하는거 아냐? 나중에 뼈골이 쑤신다고 뭐라고 해도 소용없어.”
유세운의 말에 독고청은 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한마디를 지지 않는군.”
독고청의 말에 유세운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독고청은 고개를 흔들며 쌍장을 하늘로 뻗어 올렸다.
“그 버릇부터 고쳐줘야 겠군.”
유세운은 자신의 귀를 후비며 대답했다.
“계속 말만 할 거야?”
유세운의 말에 독고청은 내력을 끌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철마강하장(鐵魔罡下掌)이라고 한다. 내 성명절기니 받아 보거라.”
유세운은 양손을 교차해 올리며 웃음 지었다.
“이건 장강양단풍이라는 초식이야. 내 성명절기는 아니지만 받아 보라구.”
독고청의 입가에 미소가 어리고 그의 쌍장을 따라 강기가 뻗어 올라갔다. 서서히 뭉쳐지는 강기가 흑색의 강환이 만들어졌다. 짙은 흑색의 강환을 바라보며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 정도는 될 줄 알았다구.”
유세운의 양손에도 은빛의 강기가 어렸다.
독고청의 쌍장이 유세운을 가리키며 내려졌다.
“받아 봐랏!”
흑색의 강환이 내뿜는 기운에 유세운은 옷자락이 펄럭였다. 유세운은 양손을 내리그으며 소리쳤다.
“그건 내가 할말이야!”
두 가닥의 은빛 강기가 와선형으로 발출되며 하나가 되어갔다. 흑색의 강환 바로 앞에서 뭉쳐진 장강양단풍의 은빛 강기가 폭발했다.
콰쾅!
폭풍처럼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경력을 가르며 유세운은 독고청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승부는 한 순간.
먼지구름을 가르며 나타난 유세운을 향해 독고청은 미소 짓고 있었다.
“기회라고 생각했겠지?”
독고청의 웃음에 유세운은 혀를 찼다.
“제길!”
독고청의 쌍장을 내뻗은 상황에서 흑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유세운은 허공을 향해 일권을 내뻗으며 뒤로 몸을 빼냈다.
독고청의 전신을 감돌고 있는 흑색의 빛.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심검의 경지가 확실하군.”
독고청은 유세운을 향해 웃음 지었다.
“이대로 끝내면 싱겁겠지.”
유세운은 독고청의 두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둘 중 하나는 죽을 지도 몰라.”
독고청은 유세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칼끝에 사는 것이 강호인의 인생. 나라고 다를 바 무어냐. 후회 없이 겨룬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독고청의 말에 유세운은 버럭 화를 냈다.
“그건 세상 오래 산 당신과 내가 같을 리가 없잖아!”
독고청은 고개를 내저었다.
“오라. 내 최후의 심득을 받아봐라.”
유세운은 독고청의 말에 이를 갈았다.
“최후의 심득 좋아하네! 난 아직 다 이루지도 못했단 말야.”
유세운을 바라보던 관백에게 동무벽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이가 없군. 심검의 경지에 든 자가 문주 말고 또 있을 줄 몰랐다.”
관백도 걱정스런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게 말야. 어디서 저런 심득을 얻었을까? 그가 극마의 경지에 멈춘 것이 우리가 강호를 등지기 훨씬 전이었는데…”
동무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느낌이지만 그 열쇠는 저 죽립인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동무벽의 말에 관백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느낌도 그래. 느껴지는 기운이 결코 문주 아래가 아냐.”
동무벽과 관백의 이야기의 대상인 죽립인은 자신도 모르게 검을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독고청. 이 정도까지 능력을 가졌을 줄은 몰랐군.”
죽립인의 시선은 유세운을 향해 고정되었다.
“그리고 저 나이에 저만한 고수라니. 소도주 못지않은가. 누구냐. 누가 있어 저런 자를 키워낸 거냐.”
유세운은 자세를 바로하고 독고청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끝까지 가보고 싶다면 가주지.”
“좋은 결심이다.”
독고청의 쌍장이 유세운을 향해 내뻗어지며 일갈했다.
“철마흑풍광(鐵魔黑風光)!”
츄아악.
십장의 거리를 흑색의 빛으로 물들이며 쏘아져 오는 것을 본 유세운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뭐야? 이렇게 공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거야?’
생각은 잠시 유세운의 입에서도 일갈이 터져 나왔다.
“은광천세!”
유세운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빛 광채가 덮쳐오는 흑색의 빛과 부딪쳤다.
번쩍.
눈부신 빛에 지켜보던 이들이 눈을 가리는 찰나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콰쾅.
벼락이 치듯 터져 나오는 굉음과 뻗어 나오는 경력에 장내에 있던 인물들은 다급히 몸을 뒤로 날렸다. 그나마 자릴 지킨 인물이라고는 동무벽과 관백. 철마성주와 죽립인 정도였다.
넷의 시선은 장내를 향했다.
“승부가 난건가?”
그들 같은 고수조차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휘몰아치는 먼지에 조급한 마음만 들었다. 주저 없이 장내를 향해 날아드는 철마오령을 보고 동무벽과 관백도 먼지를 걷어내며 몸을 날렸다.
철마풍 독고청(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