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21화 (121/194)

(121)

푸르릉.

가볍게 투레질을 하는 말의 갈기를 쓰다듬어주며 유세운은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온 건가?”

광동성의 수도인 광주의 동북쪽에 위치한 백운산 전체를 뒤덮는 성채.

무산의 창천궁을 압도하는 크기의 성벽에 유세운은 혀를 내둘렀다. 광주에도 들르지 않고 온 철마성을 앞에 두고 유세운은 미소를 지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참 많은 일이 있었군.”

현상금에 눈이 멀어 달려들던 자들과 혈천문과의 싸움. 천마방의 흑무기마대와의 싸움등이 생각났다.

“이상하네.”

어찌 철벽처럼 느껴지는 철마성의 웅대한 모습을 보면서 백연혜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지.

안본지 너무 오래된 것 같았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녀의 미소를 생각하며 유세운은 천천히 말을 몰았다.

“문주님.”

뒤에서 들려오는 도병우의 목소리에 유세운은 인상을 구겼다. 백연혜를 생각하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도병우의 목소리는 기분을 나쁘게 하기에 충분했다. 돌아보는 유세운의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

도병우는 유세운의 싸늘한 눈빛에 당황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어디 가시는 겁니까?”

유세운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보면 몰라? 철마성으로 가고 있잖아.”

“아니 그러니까 이제 막 도착했는데 아무 준비도 없이…”

유세운은 도병우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왜? 시간을 주면 준비할 거 있어?”

“아니…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도병우도 자신이 말하고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무림의 육대 세력 중 한곳을 자신을 포함 네 명이서 쳐들어가면서 무슨 준비가 있을 수 있겠는가.

아직 단 한번도 그런 생각조차 가지지 못하게 했던 무림의 패자들이었다.

그들의 아성에 도전하는 유세운의 모습에 실소를 머금지 못했다. 하지만 이 길을 따라가면 자신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유세운은 뭔가에 심각한 고민에 빠진 도병우를 바라보다가 웃음 지었다.

“포기할거면 빨리해.”

“예?”

유세운의 말에 놀라 고개를 드는 도병우를 향해 동무벽이 한숨을 쉬었다.

“역시 머리 좋은 것들은 너무 앞뒤를 잰다니깐.”

“크윽!”

발끈하는 도병우를 보며 관백조차 고개를 내저었다. 동무벽은 도병우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그냥 남아라. 가봤자 도움도 안 될테니.”

도병우는 태연하게 말하는 동무벽과 관백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죽으러 가는 줄은 그들도 알고 있을 터인데 어찌 한점 흐트러짐이 없는지.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좋아. 남을 사람은 남아. 하지만 나는 지금 가야겠어. 이랴!”

말의 옆구리를 걷어찬 유세운의 갈색 말이 바람을 가르며 철마성의 거대한 철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동무벽과 관백도 서로 마주보고는 웃음을 지었다.

“역시 못 말리겠군.”

“그러게 말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의 옆구리를 차며 유세운의 말을 쫓아가는 모습에 도병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정말로 할 셈인가?”

도병우도 한숨을 내쉬며 말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어쩔 수 없지.”

쫓아가는 도병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백운산을 오르는 길목에 위치한 대문의 높이만 오장에 달했다. 그리고 그 위에 길이만 삼장에 달하는 편액이 걸려있었다. 편액에는 웅혼한 필체로 쓰여진 ‘철마성(鐵魔城)’.

유세운은 거대한 철문 앞에 서 있는 경비병들이 당황하며 제지하는 것을 보며 소리쳤다.

“관호법.”

“예.”

대답보다 빠르게 날린 지법에 두 명의 경비병이 쓰러졌다.

철문까지의 거리는 이십여 장. 유세운의 오른 손이 말고삐를 놓았다.

“이건 인사라고.”

슈아앗.

유세운의 손 위로 나타나는 세 개의 은빛 강환이 빠르게 회전을 했다. 달려가는 말에서 던진 세 개의 은빛 강환이 와선형으로 회전하며 높이 오장에 달하는 철문에 부딪쳤다.

콰콰쾅.

벼락이 치듯 터지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철문이 안쪽으로 부서져 날아갔다. 시야를 온통 가리는 흙먼지에 유세운은 가볍게 손짓을 했다.

후욱.

장강붕파의 묘용을 이용한 바람에 흙먼지는 철마성 안쪽으로 밀려 사라졌다.

유세운은 철마성의 대문이 있던 자리를 지나 천천히 말을 세웠다. 시끄럽게 울리는 타종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유세운은 뒤를 돌아보며 웃음 지었다.

“일단 이정도면 인사치례는 한 셈이지?”

관백과 동무벽도 같이 웃음을 지었다.

“이정도면 뭐 톡톡히 인사는 한 셈이군요.”

“크하하하. 이래서 광오문이 좋지.”

도병우는 유세운의 신위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음에도 다시 한번 놀랐다. 높이 오장에 달하는 철문을 어렵지 않게 부수고 들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점점 늘어나는 철마성의 무사들을 보며 유세운은 웃음을 지었다. 문을 부수고 들어선 자신들의 앞을 둘러싸는 상대들의 숫자는 일경 천을 넘어서는 것 같았다.

사람의 장벽을 넘어서 들어서는 자들이 보였다. 짙은 흑의를 전신에 두르고 얼굴에 표정이라고는 없는 자들이었다. 대략 백여 명에 달하는 자들이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도병우의 신음처럼 세어 나오는 목소리가 들렸다.

“철영당(鐵影堂)!”

“철영당?”

유세운의 물음에 관백이 대답했다.

“외성의 최강 무력집단입니다. 백 명으로 이루어진 자들로 외성의 수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일단 첫 목표로군.”

유세운은 가볍게 목을 흔들며 몸을 풀었다.

철영당의 흑의인물들 사이로 한 사내가 들어섰다. 마찬가지로 짙은 흑의를 입고 천천히 들어서는 자.

바람에 가볍게 휘날리는 수염이 참으로 어울리는 자였다. 전신에서 내뿜는 기세 또한 가볍지 않아 보였다.

“철영당의 당주 미염장(美髥掌) 주태진입니다.”

“흐음. 미염장이라. 딱 어울리는 별호군.”

주태진은 십장 앞에 멈춰 서서는 뒷짐을 진 채 입을 열었다.

“일권무적 유세운인가?”

주태진의 물음에 유세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유세운이다.”

유세운의 대답에 주태진의 인상이 살며시 일그러졌다. 뒷짐을 진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겁이 없는 것인가? 이곳이 어디라고 온 것이냐!”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재밌는 놈이군. 이곳이 어디기에 그리 큰 소리를 치는 거냐?”

“갈!”

미염장 주태진의 수염이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주태진의 전신에서 험악한 기운이 뻗어 나왔다.

“철마성에 와서 그런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는 자는 철마성이 생긴 이래 네놈이 처음이다!”

분노한 주태진의 말을 들으며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이것 하나 알려주지. 광오문이 생긴 이래 문주의 목에 현상금을 건 자도 너희가 처음이다.”

유세운의 말에 주태진은 양손을 옆으로 내리며 말했다.

“네놈이 초마의 경지에 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말에서 내려라.”

“알면서도 덤비는 거냐?”

유세운이 내려다보며 말하자 주태진은 더욱 분노에 휩싸였다. 하지만 유세운은 그런 주태진을 바라보며 한마디 더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자신의 주제를 모르는 자로군.”

주태진의 흑포가 터질듯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본 관백이 조용히 물었다.

“문주님. 저자는 제가 상대해도 되겠습니까?”

관백의 말에 유세운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관백의 무위가 결코 저자의 밑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에서 천천히 내린 관백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주태진의 오장 앞에 섰다.

주태진은 분노한 눈으로 관백을 쏘아보았다.

“넌 뭐냐?”

“관백이라 하오. 광오문의 좌호법을 맡고 있소.”

주태진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천풍쌍기에 관백이라는 자인가? 네놈이 나설 자리가 아니다.”

관백은 미안에 웃음을 머금었다.

“뭔가 대단한 오해를 하고 있나보오. 당신 정도가 문주님과 손을 섞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요?”

“흥!”

주태진은 시선을 관백을 향해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건방지기는 문주나 네놈이나 매한가지로군.”

기세를 가다듬는 주태진을 바라보며 관백은 천천히 자신의 부채를 꺼내 들었다. 주태진은 관백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이십년 전에 혈천문에게 죽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글쎄… 당신 정도로 그게 가능할까요?”

“그렇게 자신있다면 받아봐라!”

주태진은 날카롭게 파고들며 장을 뿌렸다. 삼장을 격하며 짓쳐드는 장세를 보고 관백은 부채를 들어 장세를 비켜냈다. 장세를 비켜내고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부채를 찔러 넣었다.

슈앗.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찔러 들어가는 부채에 주태진은 질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주태진은 다시 제자리로 물러서서는 관백을 쏘아보았다. 가볍게 나눈 일수였지만 자신의 소매에 자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보였다.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재미있군.”

관백은 부채를 펼쳐 가볍게 흔들며 말을 이었다.

“그리 큰소리 칠 실력은 아니지 않소.”

“하하. 그렇다면 이것도 받아봐라!”

좌우로 쌍장을 내뻗어 경력을 뿜어내고는 관백을 향해 다시 쌍장을 내뻗었다. 관백의 인상이 가볍게 굳어졌다.

“마영삼파장(魔影三破掌)?”

좌우로 뻗었던 쌍장의 경력이 좌우를 압박했고 전면에서 쏘아져 오는 경력 또한 가볍지 않았다.

관백은 빠르게 좌우로 부채를 찔러 경력을 흘리고는 크게 전방을 향해 부채를 휘둘렀다.

콰쾅.

부채를 따라 그려진 강기막에 부딪친 경력의 여파에 뒤로 두 걸음이나 물러난 관백의 시선이 주태진을 향했다. 세 걸음이나 물러난 주태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놈. 소문 이상의 실력이구나.”

“소문이라는 것은 믿을 것이 못되지 않소?”

“흥.”

주태진은 손을 앞으로 내밀어 진기를 모았다. 터질듯이 부풀어 오르는 흑포에 관백도 부채를 들어 그를 가리켰다.

슈아앗.

주태진의 쌍장 앞에 나타난 강환을 보며 관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군.”

“하하하. 이제와 무릎을 꿇어도 소용없다.”

관백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이십년 전에 이미 강환에 이르렀던 당신이 아직도 그자리에 머물고 있군.”

“무슨 소리냐!”

관백의 부채위로 선명한 흰색의 선환(扇環)이 나타났다. 동무벽도 그것을 보더니 웃음 지었다.

“어쩐지 요즘 들어 진전이 있는 것 같더니 저 정도의 경지에 들어섰군.”

“확실히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많이 늘었군.”

유세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만났을 때의 다듬어지지 않았던 강환에 비해 확실히 실력이 는 것이 보였다.

주태진은 관백의 선환을 보며 신음처럼 말을 뱉어 냈다.

“네… 네놈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관백은 아찔한 미소를 지으며 주태진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물러나겠소?”

“미친! 죽어랏. 마영장강환(魔影掌罡環)!”

뻗어오는 주태진의 강환을 보며 관백의 손이 휘둘러졌다.

“천선환(天扇環)!”

관백의 부채의 궤적을 따라 뻗어가는 흰색의 선환은 소리 없이 주태진의 강환을 갈랐다.

강환을 반으로 가르며 파고드는 선환의 기세에 주태진은 질끈 눈을 감았다. 찢어질듯 경력의 여파에 펄럭이는 흑포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흑포의 펄럭임이 점점이 잦아들자 주태진은 눈을 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슨…?”

관백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주태진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소?”

철마성으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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