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18화 (118/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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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유세운은 크게 기지개를 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마방을 만나 회포를 실컷 풀고 잤건만 아직도 몸은 여행의 피로가 가득 쌓여 있었다.

일어나 앉은 유세운은 가벼운 마음으로 자연지기를 받아들여 전신을 휘돌렸다. 탁기를 대번에 몰아내는 자연지기를 느끼며 두눈을 감던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언제부터 와 있었지?”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유세운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전신을 흑색의 무복으로 감싸고 그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없는 듯 서있는 자.

일검혈 곽부설은 그렇게 조용히 서서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걸음을 옮겨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동생 일은 잘 해결됐어?”

“예. 신경써주신 덕에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유세운은 잠시 곽부설의 주위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혼자 온 거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동생은? 이제 막 치료했다면서 두고 왔어?”

유세운의 물음에 곽부설은 냉막한 표정에 가벼운 미소를 그렸다.

“만수화의님이 책임지고 낫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음. 그렇군.”

유세운은 탁자에 놓인 물을 한잔 부어 마시고는 웃음 지었다.

“언제까지 문 앞에 있을 거야?”

“크하하하. 역시 알고 있었던 거요?”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동무벽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뒤에서 관백도 아찔한 미소를 지으며 따라 들어왔다. 유세운은 그들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권했다.

“일단 다들 와서 앉지.”

유세운의 말에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유세운은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어보고는 웃음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이렇게 밝은 대낮에 만나기는 처음이군. 서로 인사해.”

유세운의 말에 관백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관백이라고 하오. 광오문의 좌호법을 맡고 있소.”

“난 동무벽이라고 하지. 우호법이야.”

천풍쌍기의 인사에 곽부설도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곽부설이라고 합니다.”

곽부설의 인사에 동무벽이 고슴도치처럼 뻗은 수염으로 찌르려는 듯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며 물었다.

“하나 궁금한게 있는데…”

곽부설은 동무벽의 갑작스런 행동에 냉정한 표정이 풀렸다.

“뭡니까?”

“혹시 이십년 전에…”

곽부설은 동무벽이 말을 끌자 궁금증이 치밀었지만 묵묵히 그의 얼굴을 바라만 보았다. 동무벽은 다시 몸을 뒤로 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우리를 노린 적이 있나?”

“엑? 그게 무슨 말이야?”

동무벽은 유세운의 물음에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분명히 일검혈 곽부설이라면 우리랑 같은 시대의 살수. 혹시 혈천문에서 청부를 넣었나 해서 물어보는 거요.”

동무벽의 물음에 곽부설은 고개를 내저었다.

“적어도 저에게 청부된 일은 없었습니다. 혈천문 정도에서 굳이 살수를 필요로 할 일도 없을테지만 말이죠.”

“그런가?”

안도하는 동무벽의 표정을 바라보며 관백은 씁쓸히 웃음을 지었다. 곽부설은 지나가는 투로 말을 이었다.

“더욱이 혈천문이라면 저 정도 되는 살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유세운의 물음에 곽부설은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혈천문에는 혈영이라는 살수가 있습니다. 뭐 그가 유명한 이유는 살수보다도 그들의 휘하에 있는 정보단이 더 유명하지만 말이죠.”

“그래?”

유세운은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이야기었다고 생각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이렇게 왔으니 아침이나 같이 해.”

유세운의 말에 관백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실 줄 알고 방에 오기 전에 주문해 놓고 왔습니다.”

“하하하. 역시 관호법이 최고야.”

유세운은 웃으며 주루 밖으로 나갔다. 어제의 모습을 보아서인지 점소이들의 겁에 질린 표정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유세운은 자리에 먼저 앉았다. 이미 주루에서 나올 수 있는 음식은 종류별루 나와 있었다.

“모두 앉아. 아침을 먹으면서 얘기를 하자고.”

자리에 앉는 모습을 바라본 유세운은 곽부설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이번에 가는 일에 대한 걱정 따윈 없었다. 굳이 곽부설 정도의 고수가 필요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유세운은 젓가락을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곽문도는 미안하지만 총관을 좀 도와줬으면 해.”

“예.”

너무나 태연한 대답에 유세운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때는 총관이 누굽니까? 라고 물어도 괜찮아.”

유세운의 말에 곽부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악양에 두고 온 광오문의 총관이 있어. 지금 막 사업을 시작해서 위험하기도 하고 바쁘기도 할 거야. 그를 좀 도와줬으면 해.”

유세운의 말에 곽부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세운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쩝. 힘들게 찾아왔는데 바로 내보내는 것 같아 미안해.”

유세운의 말에 곽부설은 가벼운 미소로 답했고 동무벽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누가 보면 연인사이인줄 알겠소.”

동무벽의 웃음에 유세운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훗. 그런가? 일단 아침을 들자고.”

전신을 휘감던 부드러운 검세를 뚫고 들어오는 목소리에 천천히 검을 회수했다.

“이봐 조금쯤은 쉬어가면서 하라고.”

거칠은 머리에 허름한 옷을 입고 한손에는 술병을 하나 들고 들어오는 복상의 모습에 동철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왔어?”

복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무장의 구석에 놓인 바위 위에 주저앉았다.

“이제는 예전과 비교할 바가 아닌걸?”

“농담 하지마.”

흘러내리는 땀을 옆에 놓인 수건으로 닦는 동철의 모습을 보며 복상은 웃음을 지었다.

“힘들텐데 한모금만 해.”

동철은 복상의 손에서 술병을 받아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들이켰다. 죽엽청의 은은한 향이 입안을 감돌았다. 동철은 술병을 다시 복상에게 건네주며 그의 옆에 앉았다.

“사부님은 어떠셔?”

“여전하시지.”

복상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번 싸움에서 한쪽 팔을 잃고서는 업무를 보는 시간을 제하고는 오로지 수련에만 매달리게 달달 볶는 중이었다. 그 덕에 실력은 일취월장하고 있지만 몸이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늘도 동철을 만나러 간다고 반협박해서 간신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현요진인은 무당산에 장문인을 만나러 가고 지금은 거의 쉬지도 않고 수련만 하는 동철이 안쓰러웠다.

복상은 오늘 동철을 보러 온 이유가 그제야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오늘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어.”

“새로운 소식?”

동철은 다시 한 모금 죽엽청을 들이키며 복상을 바라보았다. 복상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응. 유세운에 관한 소식이야.”

“정말?”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묻는 동철을 복상은 서운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너 너무한거 아냐?”

“응?”

복상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됐어. 그런 매정한 놈을 왜그리 생각하는지…”

“무슨 말이야?”

복상은 자신의 귀를 후벼 파며 말을 이었다.

“그녀석은 악양에 와놓고도 너를 한번 찾아오지 않았어.”

“그래?”

동철은 아무렇지 않은 듯 되물었다. 복상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휴. 그것도 며칠씩이나 묵으면서 말야.”

동철은 그제야 약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복상은 그런 동철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하긴 이곳에 오기 전에 한일에 비하면 이곳에서 한일은 일도 아니지.”

“이곳에 오기 전에 한일?”

“그래. 대체 어떤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는 녀석인지 한번 보고 싶어.”

복상은 투덜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혈천문과 한번 드잡이 질을 했더군.”

“혈천문?”

놀라는 동철을 보며 복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 때문에 난리도 아니야. 혈천문의 정보망인 혈영단(血影團)이 전부 움직이는 듯해.”

“혈영단이 왜?”

“왜긴 왜야. 황혜란 그 계집 때문이지.”

“혈라묵편 황혜란?”

복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주 이번에 단단히 사고를 쳤더군. 그녀의 채찍으로 사지를 묶고서는 장강에 집어던졌다는 소문이 이미 강호에 널리 알려졌어.”

“에?”

동철은 복상의 말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혈천문의 금지옥엽인 그녀의 뜻에 한번 거슬리면 어지간한 문파라도 하루 아침에 없어질 정도로 위험한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장강에 집어 던졌다는 얘기를 들으니 혈영단이 왜 움직이는 지 알 것 같았다.

복상은 죽엽청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게다가 이곳에 와서도 사고를 쳤어.”

“악양에서 사고를 칠 일이 뭐가 있어?”

복상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너 모르냐? 이곳에는 천마방이 있잖아.”

“에? 하지만 천마방은 상계의 세력이잖아.”

복상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좀 강호 정세에 관심을 좀 가져라. 천마방은 흑무기마대의 지원을 받으며 근 십년 사이 엄청난 확장을 한 방파잖아.”

동철은 그제야 생각이 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천마방의 이야기 들어 본 적이 있어.”

“그래. 그 천마방을 완전히 쑥대밭을 만들고 사라졌다.”

“천마방을 왜 공격한거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양관척이라는 상인을 위해 그렇게 했다는데? 광오문의 총관으로 들였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래?”

“하긴 천풍쌍기를 수하로 들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황당했지만 말야.”

“천풍쌍기를?”

“그래. 이십년 전의 고수들이지. 그 당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혈천문의 공격으로 사라진 자들로 알았는데 살아 있었나 봐.”

“그래?”

동철은 오늘 새롭게 들은 유세운의 소식에 연신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온통 강호를 휘젓고 다니는 듯 했다. 예전에 철마성과의 담판을 지으러 간다는 얘기를 들었던 만큼 놀라운 얘기의 연속이었다.

동철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검을 들었다. 복상은 동철의 모습을 보며 물었다.

“또 하려고?”

동철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직이야. 다시는 사부님이나 내가 아는 누구도 그렇게 다치게 만들지 않으려면 아직 멀었어.”

동철은 어느새 연무장 가운데로 걸음을 옮겨 천천히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복상은 동철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그 일이 마음에 남았군.’

하긴 자기도 평생을 안고 가야할 일이었다. 하지만 더욱 웃긴 것은 복수의 대상도 사라져 버렸다.

철마십영.

사부님의 오른 팔을 불구로 만든 자들을 상대하기위해 미친 듯이 수련했건만 유세운을 쫓다가 모두 죽었다는 이야기만 들렸다. 자신의 사부만 넘기도 버거워 했건만 그런 사부를 상해한 자들을 혼자서 모두 해치웠다는 이야기는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그래. 나도 이러고 있을 때는 아니구나.’

복상은 일어나 빈 술병을 들고 연무장을 벗어났다.

다그닥. 다그닥.

달려가는 말 위에서 유세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며칠 전 악양을 나오면서부터 느꼈던 찜찜한 기분이 다시 슬며시 들었다. 뭔가를 잊어버린 듯한 기분에 한숨을 내쉬었다.

“휴~”

“무슨 일이십니까?”

관백의 물음에 유세운은 천천히 말을 세우며 대답했다.

“뭔가를 잊고 온 듯해서.”

“무엇을?”

동무벽의 물음에 유세운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신없이 밀린 일정을 걱정하며 달려오느라 뭔가를 두고 온듯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관백이 생각난 듯 손을 마주쳤다.

“아!”

“에?”

유세운은 자신이 잊은 것을 왜 관백이 생각났다는 듯이 말하는 지 의혹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관백은 아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친구 분을 만나신다고 했는데 양총관의 일 때문에 못 만나신 것 때문인 것 같군요.”

“앗! 그거였구나!”

유세운은 어쩐지 뭔가 잊고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뭐였는지 그제야 알고서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돌아올 때 반드시 다시 한번 악양에 들러야겠군.”

유세운은 고개를 돌려 악양을 한번 바라보고는 다시 전방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저것 들은 뭐지?”

경천뇌 도병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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