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17화 (117/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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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뇌(驚天腦) 도병우

천마방을 무너뜨린 지 하루. 아무리 천마방을 남겨 논다고는 했지만 그들에게서 빼앗긴 것들을 돌려받고 장부를 정리하는데 하루는 너무나 부족했다. 눈 깜빡일 시간조차 아끼며 밤을 지새운 양관척의 두 눈은 퀭해 보였다.

유세운은 안쓰럽게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군. 이런 때 총관을 두고 간다는게.”

유세운의 말에 양관척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후후. 그런 말 하시면 섭섭합니다. 어서 철마성의 일을 마무리 짓고 돌아오십시오. 저번처럼 진탕나게 마셔 보지요.”

양관척의 말에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다리고 있어. 금세 다녀오지.”

“알겠습니다.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관백은 양관척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주독을 몰아내는 것도 잊지 말구 열심히 하게나.”

“걱정말게.”

관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말에 올랐다. 동무벽은 가만히 양관척을 바라보다가 훌쩍 말에 올라탔다.

“너를 소개한 우리가 부끄럽지 않게 해라.”

“나를 소개한 것을 평생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될거다.”

동무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유세운도 그의 시선을 받고서는 양관척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럼 수고해.”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양관척은 깊게 읍을 했고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말머리를 돌렸다.

“가자! 철마성으로!”

커다라면서도 눈 꼬리가 약간 올라가 사나워 보이는 인상의 여인. 천하에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배경과 능력, 외모를 타고 난 이래 단 한번도 가지고 싶은 것을 가져보지 못한 것이 없고 무언가를 하고자 해서 못한 것이 없었다. 전신에 꼭 맞는 혈의를 입은 채 자리에 앉아 있는 그녀의 주변은 깔끔히 치워져 있었다.

손목에 감은 붕대와 발목에 감은 붕대를 내려다보는 여인의 눈에는 표독한 빛이 세어 나왔다.

“으윽.”

가만히 있어도 상처가 아려왔다. 그녀석의 장난끼 어린 미소가 떠오를 때마다 양손목과 양발의 통증은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맹세코 단 한번도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없었건만 어이가 없었다. 태연하게 휘두른 손짓에 자신의 채찍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혈마단의 인물들에게 구함을 받을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절대…절대로 용서 못해.”

혈천문의 금지옥엽이자 삼룡삼봉 중 삼봉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여인. 혈라묵편 황혜란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혈영!”

“예.”

그녀의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건만 대답은 들려왔다.

“어떻게 되었지?”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들려오는 대답은 주저함이 없다.

“그의 행적은 악양에서 발견 되었습니다.”

“악양? 철마성으로 가는 자가 그리로 왜 갔지?”

“그곳에서 천마방과의 일전이 있었습니다.”

“천마방?”

옆의 탁자에 팔을 기대며 황혜란은 작게 되물었다.

“예.”

“그곳이라면 흑무기마대의 비호를 받는 곳이 아닌가?”

“예.”

“그래. 어찌 되었지?”

“흑무기마대 백 명을 패퇴시키고 천마방을 이름만 남겨 놨습니다.”

“흥! 그러면 그렇지. 초원의 개들이 뭘 하겠어.”

황혜란은 중얼거림을 마치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대 놓치지마. 그의 행적을 놓치면 사지를 절단해주겠어.”

“알겠습니다.”

황혜란은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누구한테도 양보 못해. 목에 줄을 묶고서 끌고 다녀도 부족해. 두고 보자.”

황혜란의 두눈에는 광기가 내비쳤다.

“휴. 오늘은 이곳에서 묶고 가자.”

“예. 그게 좋을 듯 싶습니다.”

이틀을 쉬지 않고 달려오느라 몸도 많이 지쳤다. 유세운은 먼지를 털며 천천히 말을 몰아 작은 주루로 다가갔다. 고작 이층으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주루였지만 몸을 뉘일 곳과 씻을 곳은 줄 수 있을 터였다.

문 앞에 나온 점소이에게 말고삐를 건네고 이층으로 올라간 유세운은 먼저 자리에 앉으며 투덜거렸다.

“아직도 멀었지?”

“그나마 쉬지 않고 달려와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듯 싶습니다.”

“그래? 일단 오늘은 조금 쉬고 가자고. 먼지도 좀 벗기고 말이지.”

“크크. 하긴 오늘은 좀 술로 목을 씻어줘야지. 이러다가는 숨이 막힐 것 같소.”

“좋아. 여기 죽엽청부터 세병.”

“예.”

옆에서 주문을 기다리던 점소이가 뛰어 내려가는 것을 본 유세운은 웃음을 지었다.

“일단 오늘은 편히 쉬자구. 내일부터 또 서둘러 가려면 힘드니까.”

“크흐흐. 그 말을 기다렸소.”

동무벽의 대답에 유세운도 웃음을 지었다.

“어떤 놈이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 거야!”

이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들려오는 일갈에 유세운과 동무벽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었다. 관백도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올라오는 자를 바라보았다.

곧이어 이층으로 소리친 자가 눈을 부라리며 올라왔다. 팔척의 장신에 등에는 커다란 도끼를 매고 있었다. 발소리 요란하게 올라오는 자의 각진 얼굴에 치켜 올라간 눈초리는 보는 이의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위압적인 얼굴이었다. 올라오는 자를 보는 유세운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유세운의 표정을 본 동무벽과 관백은 의아함에 물었다.

“아는 자입니까?”

유세운은 입가에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안면이 있는 자이니 내가 얘기하지.”

유세운의 말에 동무벽과 관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유세운은 상대에게 다가가며 웃음 지었다.

“이야~ 오랜만인데?”

팔척에 달하는 거한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넌 뭐하는 놈인데 감히 어르신에게 그따위 인사를 하는 거냐?”

“응? 이런 나를 기억 못하나?”

유세운은 옆에 있는 의자를 집어 들며 웃음 지었다.

“이젠 뒤통수가 아프지 않은가 보군.”

“의자? 뒤통수?”

중얼거리던 팔척 거한의 눈에 놀람과 분노가 스쳤다.

“네…네놈은 그 때의 쥐새끼?”

유세운은 거한의 말에 밝게 웃음 지었다.

“하하하. 다행이군. 기억 못해주면 섭섭할 뻔 했는데.”

거한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크흐흐흐. 아직도 비가 오면 그 때 당했던 상처가 쑤셔오지. 하늘도 무심하지 않으시군. 어쩐지 며칠 전 갑자기 등이 쑤셔오더라니 네놈을 만나려는 계시였나 보군.”

유세운은 의자를 내려 놓으며 말을 이었다.

“흉신대부 마방. 이렇게 만나게 되서 반갑다.”

“크흐흐. 그놈의 주둥이는 여전히 변함이 없군. 네놈이 확실하다는 것을 인정하마.”

마방은 천천히 등에 매단 대부를 뽑아 들었다. 대부의 시퍼렇게 선 날을 쓰다듬으며 마방은 웃음을 지었다.

“십년이 넘은 일이군. 청의쌍검을 해치우기 위해 절치부심 수련을 했지. 크흐흐흐. 그런데 네놈을 먼저 만나는군.”

유세운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음 지었다.

“이제 뒤통수는 아프지 않은가?”

“크흐흐. 이번에 네놈의 사지를 자르고 목에 줄을 매달아 사흘 밤낮을 달려주마. 크흐흐. 제발 죽여 달라고 빌게 될 거다.”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참 흥미를 느끼게 하는 이야기군.”

유세운은 팔짱을 끼며 곰곰이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뭐가 미안하다는 거냐?”

“그렇게 해주고 싶지만 그럼 난 희대의 마인이 될 거 같아서 말야.”

“크하하. 그런 걱정은 집어 치워라. 일단 오른팔부터 가져가마!”

마방의 대부가 바람을 가르며 짓쳐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유세운은 가볍게 뒤로 두걸음 물러났다. 마방의 눈에 놀람이 깃들었다.

“호. 그동안 제법 도망가는 재주는 늘었구나.”

마방은 주저 없이 다시 대부를 휘둘렀다. 머리부터 양단할 듯 덮쳐오는 대부를 살며시 옆으로 피하는 유세운을 향해 마방의 대부가 꺾여 들어왔다.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대부의 휘두르는 속도에 맞춰 뒤로 물러났다. 두 번이나 실패한 마방의 얼굴에 노기가 스쳤다.

“이 쥐새끼 변한게 하나도 없구나!”

유세운은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뒤통수 조심하라고. 언제 다시 의자가 날아갈지 모르니 말야.”

“웃기지 마라! 쥐새끼.”

마방의 분노가 전해진 것인지 그의 대부에는 시퍼런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검기처럼 날카로운 기세를 보며 유세운은 처음에 들었던 의자를 들어 올렸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뒤통수 조심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냐!”

죽일듯한 기세로 덮쳐오는 마방을 보며 유세운은 의자를 허공으로 집어 던졌다.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마방의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드디어 포기한 거냐!”

“글쎄?”

머리 앞까지 들이닥친 푸른 기세를 왼손 등으로 걷어낸 유세운의 우권이 날카롭게 뻗어갔다.

파앙!

은빛 강기가 뭉친 채 뻗어나가는 우권의 위세에 마방의 두 눈이 겁에 질렸다.

“이런!”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나며 마방은 대부로 자신의 앞을 가렸다. 하지만 유세운은 물러나는 마방을 향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이…”

유세운의 웃음에 분노해 일갈하려던 마방은 미쳐 말을 잇지 못했다.

빠악!

유세운이 미리 던져 놓은 의자가 소리 없이 마방의 머리를 직격했다. 마방은 아픔보다도 분노가 전신을 휘감았다. 유세운은 그런 마방을 향해 웃음 지었다.

“이번에도 창문으로 도망가려고?”

“크윽! 닥쳐랏!”

마방의 일갈에 유세운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흠. 덤벼. 아직 그때 당한 두 번의 공격에 대한 답례를 해주지 못했으니 말야.”

“크흐흐. 어디서 강기를 익혀 와서는 큰소리 치는군.”

“호오? 그렇다면 숨겨놓은 비기라도 있나보지?”

“크흐흐. 좋아. 각오해랏!”

마방의 대부를 감싸는 푸른 기운을 보며 유세운의 눈에 웃음이 지어졌다. 푸른 유형의 강기. 마방의 실력도 십년 전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크하하하! 어디 받아 봐랏!”

둘의 간격을 지우며 뻗어오는 강기에 유세운은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많이 늘었군.”

유세운은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대부의 날을 왼손으로 잡았다. 은빛 강기에 휩싸인 손은 아무렇지 않게 대부의 날을 잡았다.

턱.

가벼운 소리와 함께 멈춘 대부를 보며 마방의 두 눈은 불신으로 가득 찼다.

“각오하는게 좋을 거야.”

퍼억!

“커헉!”

거의 손목까지 명치에 틀어박힌 일격에 마방의 얼굴은 썩은 돼지의 창자 색으로 변하며 허리가 숙여졌다. 유세운은 왼손으로 받아든 대부를 옆으로 치우며 웃음을 지었다.

“아직 뻗으면 안 돼지.”

빠악!

유세운의 무릎이 숙여지던 마방의 이마를 쳐 올렸다.

“켁!”

“벌써 쓰러지면 내가 민망하잖아.”

파파파팍!

유세운의 전신에서 춤추듯 팔각연환권이 풀어져 나왔다. 이미 정신을 잃었는지 몸만을 들썩거리며 쓰러지지도 못하는 마방을 보며 동무벽과 관백은 식은땀을 흘렸다.

서서히 뒤로 넘어가는 마방의 멱살을 움켜쥐며 유세운은 웃음을 지었다.

“이봐. 벌써 간 거야? 얼마만에 만났는데 벌써 가나?”

동무벽과 관백은 유세운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경천뇌 도병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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