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15화 (115/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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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부수는 소리가 요란했는지 많은 수의 무사들이 다급하게 병장기를 움켜쥐고 달려 나오는 모습들이 보였다. 유세운을 필두로 천천히 말을 몰고 장원 안으로 들어온 일행은 말을 세우고 서서 그들을 내려 보았다.

대략 오십여 명의 무사들이 살벌한 기세로 그들을 쏘아보다가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자가 검을 뽑아 든 채로 앞으로 나섰다. 불쑥 치솟은 태양혈로 보건데 사람들에게 충분히 고수라고 불릴만해 보이는 자였다.

“네놈들은 누구냐!”

오십 명이라는 인원을 믿는 것인지 사내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서려있었다. 유세운은 콧잔등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천마방주 나오라고 해.”

유세운의 말에 사내의 두 눈에는 노기가 치솟아 올랐다.

“지금 이곳이 어디라고…”

유세운은 사내의 두 눈을 마주 보면서 기세를 내뿜었다. 사내도 보는 눈은 있었음인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유세운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천마방주에게 돌려받을 것이 있어 왔다고 전해라. 지금 당장 튀어나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다는 것도 전해.”

사내는 두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애써 참으며 물었다.

“누구시라고 전하면 되오?”

“유세운.”

짤막한 대답. 하지만 장내에 모여 있던 오십 명의 인원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헉!”

“유…유세운?”

“일…권무…적.”

앞에 나섰던 사내는 다급히 신형을 틀어 장원 안으로 사라졌다. 유세운의 말 한마디에 무사들은 무기를 슬며시 숨기며 눈치만을 살피고 있었다.

무사가 뛰어 들어가고 오래지 않아 장원의 내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 열린 문으로 흑색의 갑주를 입은 백여 명의 기마대가 질서정연하게 나타났다. 가장 선두에 나서는 자의 기세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자도 느꼈음인지 유세운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며 말을 몰았다.

유세운은 그자의 옆에서 난처한 기색으로 눈치를 살피는 뚱뚱한 화복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유세운의 시선이 닿자 뚱뚱한 화복 중년인은 비단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안절부절 못했다.

“유대협께서 이곳에는 어쩐 일로…”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천마방주?”

“예. 제가 방주입니다만…”

“듣자하니 이곳에 흑무기마대원(黑霧騎馬隊員)이 있다고 들었는데…”

“흥! 알면서도 왔다는 말이냐.”

선두에 선 자의 말에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 역시 맞나보군. 그러니까 초원의 개들을 끌고 돈을 벌었다는 게 맞는 말인가 보군.”

“유대협. 그게…”

난처한 듯 변명을 하던 화복 중년인은 유세운의 뒤에 서 있는 양관척을 보고 흠칫 놀랐다. 유세운을 쏘아보던 사내가 화복 중년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수방주. 물러서 계시오. 저자의 목을 선물하리다.”

수방주라 불린 천마방주는 사내의 말에 대답을 하려다가 유세운의 뒤에 서 있는 천풍쌍기를 발견하고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천풍쌍기?”

동무벽은 부리부리한 눈을 들어 수방주를 쏘아보았고 관백은 눈부신 미소를 지어보였다. 동무벽이 이를 갈며 작게 으르렁 거렸다.

“용케 아직도 우릴 기억하는 구나.”

안절부절 못하는 수방주에게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수방주. 우리를 이럴 때를 대비해 불러온 것 아니오. 걱정마시오.”

흑무기마대의 질서정연한 모습에 가려져 미처 발견하지 못한 네 명의 사내를 보고 유세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작다 작다하지만 저렇게 눈이 작은 자를 미처 보지 못한 유세운은 절로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눈을 감고 있지 않은가라는 의심이 짙게 만드는 자였다. 등에 한 자루 검을 차고 있던 사내는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아직도 걱정하는 수방주에게 눈이 작은 사내는 호언장담을 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기 유세운이라는 자가 아무리 유명해졌다고 해도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 흑무기마대의 부대장님이 충분히 처리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천풍쌍기라고 해봐야 이미 이십년 전에 꼬리를 말고 도망간 자들. 저희가 처리하도록 하지요.”

“가능하겠나?”

“물론입니다.”

눈이 작은 사내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힘을 얻은 수방주는 헛기침을 터트렸다.

“흠. 흠. 흥! 그래 무슨 일이냐?”

갑자기 돌변하는 태도에 유세운의 입가에 미소가 진해졌다.

“이봐. 그러니까 저기 있는 흑무기마대와 저 네 명의 사내를 믿고 하는 소리야?”

“흥! 그래.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느냐?”

당당하게 말하는 수방주를 보며 유세운은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재미있군.”

유세운의 미소를 본 수방주는 불길한 예감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지만 기호지세(騎虎之勢)라. 배짱을 부렸다. 잔뜩 배에 힘을 주고 고개를 쳐들었다. 유세운은 그런 천마방주를 향해 단언했다.

“무슨 일이냐면 오늘부로 천마방의 현판을 깨주려고 왔다.”

“무…무슨?”

유세운의 말에 당황한 수방주에게 유세운은 말을 이었다.

“우리 광오문의 양총관에게 비겁한 수로 빼앗아가 쌓은 부. 오늘 부로 돌려받겠다.”

“흐흐흐. 듣자 듣자하니 웃기는 녀석이로군.”

앞으로 나서는 사내를 바라보던 유세운은 질문을 던졌다.

“네가 흑무기마대 부대장이라는 녀석이냐?”

“흐흐흐. 그렇다. 그리고 오늘 네놈을 저승으로 보내줄 분이기도 하지.”

부대장의 말에 그 뒤에 정렬해 있던 흑무기마대원들에게서 살기가 뭉클 피어올랐다. 유세운의 입가에 미소가 진해졌다.

“좋아. 초원에서나 달릴 것이지. 중원으로 넘어와 부린 행패. 다시는 넘어올 생각이 안들게 해주마.”

“흐흐흐. 기대하지.”

유세운은 눈이 작은 사내와 같이 있는 자들을 흘끔 보고는 관백에게 물었다.

“저자들 괜찮겠어?”

유세운의 물음에 동무벽이 코웃음을 쳤다.

“문주. 농이 너무 진한 것 같소.”

관백도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설마 저희가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훗. 좋아. 그럼.”

고개를 돌려 흑무기마대의 부대장을 바라보는 유세운의 입가에 장난끼 어린 미소가 진해졌다.

“어디 초원의 개들이 얼마나 사나운지 한번 볼까?”

“흐흐흐. 마지막 저승가는 선물이니 감사히 받아라. 모두 반월진(半月陣)을 펼쳐라.”

대답도 없이 순식간에 펼쳐지는 반월형을 바라보며 관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예전에 듣기로 흑무기마대의 싸우는 법을 본 자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검은 안개에 휩싸여 무엇에 당한지도 모른 사이에 당한다고 하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걱정 붙들어 매.”

유세운은 말에서 뛰어 내려 흑무기마대의 반월의 중심을 향해 쏘아져 갔다. 유세운이 달려들기 무섭게 반월진에서 흑무(黑霧)가 뻗어 나와 시야를 가렸다.

양관척이 걱정스레 그 모습을 바라보자 동무벽이 코웃음을 쳤다.

“걱정하지마라. 우리가 직접 봐서 아는데 문주는 감히 천하제일을 논할 만한 사람이니까.”

“그런가?”

“헛소리 지껄이고 있을 틈이 없을 텐데?”

눈이 작은 사내를 필두로 네 명의 사내가 질풍처럼 관백과 동무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무벽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거지?”

“죽일 필요도 없을 것 같아.”

태연하게 대답하며 같이 몸을 날리는 천풍쌍기를 보며 양관척은 가슴을 졸였다.

유세운은 사방을 둘러싼 검은 안개에 인상을 찌푸렸다.

“독은 아닌 것 같고… 환술(幻術)인가?”

“흐흐흐. 알 것 없다. 그냥 죽으면 되는 것.”

부대장의 목소리만이 들렸다 사라지고는 사방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유세운은 멀뚱히 안개의 중심에 서서 기다렸다. 아무 말이 없던 암흑 속에서 부대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흐흐흐. 죽어랏!”

부대장의 목소리가 신호였던가. 사방에서 말발굽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이 작은 공간에서 저렇게 말들이 달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만큼 요란한 말발굽 소리에 이어 사방에서 수십 개의 장창이 내리 꽂혔다. 장창보다 앞서 검기처럼 날카로운 기세들이 사방에서 내리 꽂히자 유세운은 입가에 장난끼 어린 미소를 지었다.

“이거 재미있는데?”

검기와 같은 기세들은 모두 유세운의 호신강기에 튕겨져 나가고 떨어져 내리는 장창을 향해 유세운의 신형이 회전을 시작했다. 동시에 찔러오는 듯한 장창이 유세운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팔각연환권에 모조리 튕겨져 나갔다. 신형을 멈춰 세우기도 잠깐. 좌우에서 달려드는 여섯 개의 만도(彎刀)가 번뜩였다. 만도에 서려 있는 도기가 사뭇 위험해 보였지만 태연하게 호신강기를 펼쳐 막아냈다.

한차례의 공격이 끝났는지 부대장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흐흐흐. 제법이군. 이 정도까지 막아내는 자는 초원에서도 손에 꼽을 만 하거늘.”

유세운은 가볍게 목을 꺾으며 몸을 풀었다.

“그럼 이제 내 차례인가?”

“흐흐흐. 웃기는군. 네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그 웃음. 잘 기억하마.”

유세운은 전방을 향해 와선파천지 세 방을 날리고 곧장 뒤로 이권을 내뻗었다. 와선형으로 뻗어가는 경력을 확인조차 않고 곧장 좌측을 향해 장강붕파를 시전 했다.

콰아아아.

장강붕파의 노도와 같은 강기무리와 와선파천지의 파괴력. 이권에 담긴 경력에 검은 안개가 순간 흐릿해졌다. 흐릿해진 안개 너머 당황한 기색의 흑무기마대원들이 보이자 주저없이 섬광마멸지를 펼쳤다.

“커헉!”

“윽!”

의기상인(意氣傷人).

고금제일지법이라 불리는 섬광마멸지가 거리와 시간을 넘어 펼쳐지자 다섯 명의 흑무기마대원들이 말에서 떨어졌다. 유세운은 태연한 기색으로 다시 서서는 웃음 지었다.

“별거 없군.”

이미 다섯 명의 인원이 빠진 것만으로도 검은 연기는 많이 흐려져 있었다. 부대장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길! 저자가 사술을!”

“사술? 하긴 너 정도의 수준에서 보면 충분히 그렇게 얘기할 만 하겠군.”

유세운의 빈정거림에 부대장의 노기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갈! 헛소리는 집어 치워라!”

유세운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 거렸다. 부대장의 분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다. 네놈의 목. 확실히 따주마.”

“아직도 그런 허튼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크크크. 이것을 받아낸다면 모르지. 흑무연강환(黑霧連罡環)을 펼쳐랏!”

질서정연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검은 안개가 서서히 걷혔다. 걷혔다기 보다는 서서히 한점으로 뭉치고 있었다. 검은 안개가 전부 걷히고 나자 부대장을 중심으로 쐐기모양의 진형을 갖춘 자들이 보였다. 모두의 기운이 모였음인지 부대장의 앞에는 위화감을 조성하는 흑색의 강환이 맹렬히 회전하고 있었다.

유세운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 치고는 가장 기대할 만 하군.”

흑무연강환에서 느껴지는 위력은 혈천오로의 혈천오행환에 버금가 보였다. 유세운은 머리위로 양손을 교차시키며 웃음 지었다.

“너희 평생에 다시 못 볼테니 잘 기억해둬라.”

“헛소리! 죽어랏!”

백 명의 기운이 몰린 흑무연강환이 섬전처럼 쏘아져 왔다. 유세운은 양손에 머문 은빛의 강기를 뿌렸다.

눈부신 은빛 광채는 세상의 무엇이라도 벨 것처럼 뻗어나가며 맹렬히 회전을 했다. 두 가닥의 광채가 하나가 되는 지점에서 검은 기운을 머금은 흑무연강환과 작렬했다.

콰콰쾅.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경력에 좌중은 모두 눈을 가렸다.

세찬 경력이 지나가고 나서 눈을 뜬 양관척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흑색의 갑주들이 산산조각이 나며 기마에 타고 있지 못하고 사방으로 비산되어 있는 흑무기마대원들이 보였다. 내상을 입지 않은 자가 없는지 모두 선혈을 토해내고 있었고 그들의 가장 선두에 있던 부대장은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의 몰골을 하고 있었다. 양관척의 시선은 다시 유세운을 찾았다.

오연히 서서 흑무기마대원들을 바라보던 유세운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궁금할 것 같아서 알려주마. 장강양단풍이라는 초식이다.”

“장강양단…풍?”

힘겹게 말을 꺼내는 부대장에게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을 거다. 이 초식이 세상에 빛을 본지 얼마 안됐거든.”

“크크크. 그런가?”

부대장은 힘겹게 웃음을 흘리고는 말에서 떨어졌다.

천마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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