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동무벽은 양관척의 목 뒤 옷을 잡아들어 올렸다.
“켁!”
비명을 지른 것도 잠시 양관척의 몸은 정자 옆에 있는 연못을 향해 날아갔다. 관백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미처 말릴 세도 없이 던져진 양관척은 물에 빠져서 가라앉았다가 곧 얼굴이 튀어나오며 소리 질렀다.
“어떤 놈이냐! 어푸!”
동무벽은 팔짱을 낀 채 한참을 더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고서야 대답을 했다.
“동무벽이다.”
“어푸! 뭐라고?”
“동무벽이라고.”
짜증섞인 동무벽의 목소리에 양팔을 미친 듯이 휘졌던 양관척이 소리쳤다.
“어푸! 푸! 동무벽?”
“그래.”
양관척은 물을 먹으며 소리쳤다.
“어푸푸. 그런데 뭐하나! 난 수영을 못한단 말야! 어푸.”
동무벽은 양관척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나랑 장난하나?”
“무슨 말이야? 어푸!”
“그 연못은 가슴 밖에 안 오잖나.”
“응?”
땅에 발을 딛고선 양관척은 정말로 가슴까지 밖에 안 오는 연못에서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동무벽을 바라보던 양관척은 시선을 돌려 관백과 유세운을 바라보더니 투덜거렸다.
“흥. 웬일인가?”
“일단 주독부터 몰아내게.”
걱정스레 말하는 관백을 흘끔 바라본 양관척은 다시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흥. 일없네.”
“자네 대체 왜 이러나?”
양관척은 동무벽을 쏘아보다가 관백을 돌아보고는 연못을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양관척은 연못 밖으로 나와 몸을 털고 옷을 짜며 물을 털어냈다.
말없이 양관척의 행동을 바라보는 관백과 동무벽을 신경도 쓰지 않는 태도였다. 동무벽이 뭐라고 하려는 찰나 양관척이 중얼거렸다.
“이십년 만에 찾아와서 하는 짓이 친구를 연못으로 던지는 것이라니……”
양관척의 투덜거림을 들은 동무벽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어쩔 수 없잖아?”
“흥!”
콧방귀를 뀐 양관척은 다시 정자로 올라왔다. 관백이 걱정스레 그의 퀭한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우선 주독을 몰아내게.”
양관척은 투덜거리며 정자의 중앙에 앉아 술병을 집어 들었다. 동무벽의 도가 순간을 가르며 양관척의 술병을 반으로 갈랐다. 양관척의 인상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지금 뭐하는 짓인가! 이게 얼마짜리 술인 줄 아는 거야?”
동무벽은 쏟아진 술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보더니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냥 싸구려 화주를 가지고 시끄럽게 굴 필요는 없어.”
“쳇!”
“어서 주독이나 풀어.”
동무벽의 말에 양관척의 인상이 다시 구겨졌다.
“뜨거운 물이 있어야 뭔가를 하든지 할 거 아냐!”
관백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래. 여기 욕실이 어딘가? 물을 데워 주겠네.”
“흥! 땔감하나 없는 집에서 무슨……”
동무벽은 커다란 저택을 돌아보며 웃음 지었다.
“무슨 소리야? 집안이 온통 땔감 천지로구만.”
“으윽! 이래서 네놈은 도움이 안돼!”
화를 내며 주저앉는 양관척은 관백의 걱정스런 시선에 투덜거렸다.
“어차피 하루아침에 없어질 주독도 아냐. 그보다 무슨 용기로 다시 강호로 나온 거야?”
양관척은 잠시 동무벽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하는 칼질을 보니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나보지? 하긴 그러니 혈천문에서 아직도 두 눈 시뻘겋게 뜨고 있는데 강호에 나왔겠지.”
관백은 양관척의 말을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네.”
“흥! 내가 왜 이렇게 됐냐고?”
동무벽은 양관척의 말에 수긍했다.
“그래. 어쩌다가 그렇게까지 됐냐?”
양관척은 동무벽의 말에 대답하려다가 여태껏 말없이 서 있는 유세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 아이는 뭐야? 자네들 요새 제자라도 기르나?”
양관척의 물음에 동무벽이 당황하며 수습하려 했다.
“무슨 소리하는 거야!”
유세운은 동무벽의 당황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괜찮아. 반갑소. 난 광오문의 이대 문주인 유세운이라고 하오.”
“광오문? 유세운?”
잠시 고민하던 양관척은 실소를 머금었다.
“내가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이군. 반갑소.”
양관척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발을 휘둘러 정자를 어지럽히고 있던 술병들을 연못으로 차 넣었다.
“일단 앉아.”
술병만 치웠을 뿐이지 더럽기는 매한가지인 정자를 내려다본 동무벽과 관백은 고개를 내저었다. 양관척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기 할말을 시작했다.
“제길! 다 자네들이 떠나고 나서 일어난 일이야.”
“응? 우리가 떠나고 나서라고?”
양관척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혈천문에서 직접적으로 나를 찾아오진 않았지만 내 장사를 암중으로 방해하기 시작했지.”
동무벽은 이를 갈며 북쪽을 바라보았다.
“혈천문. 이 자식들이 정말!”
양관척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아. 하지만 결정적인 건 그들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
“무슨 소리야?”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 산서성, 하남성, 호북성에서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서 강남에서의 장사에 주력을 하게 됐지.”
“잘했군.”
관백의 말에 양관척은 작게 웃음 지었다.
“크크크. 그렇지. 처음에는 좋았어. 적어도 그들이 이쪽 사업에 뛰어들기 전까지는 말야.”
“그들?”
동무벽의 물음에 양관척은 바닥에 양손을 짚으며 대답했다.
“그래. 내가 강남으로 눈을 돌려 장사를 시작할 때 천마방(天馬房)이라는 집단이 상계에 들어섰지.”
“천마방?”
“새롭게 생긴 집단이 상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클 수가 없어. 워낙 텃새가 심해서 말이지.”
“그래. 그러니 아무리 그런 집단이 생겼다해도 자네가 망한 거 하고는……”
말끝을 흐리는 관백을 보며 양관척은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 그들이 많은 고수들을 데리고 있더군. 자금도 튼튼하고 말이야.”
“고수라면 얼마나 고수라는 말인가?”
양관척은 실소를 머금었다.
“천마방의 배경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었지. 망한 사람이 나만이 아냐.”
“배경이 어딘데?”
동무벽의 물음에 양관척은 북쪽을 바라보며 답했다.
“흑무기마대(黑霧騎馬隊).”
가볍게 대답한 양관척이지만 그 말을 듣는 동무벽과 관백의 안색은 확연히 구겨졌다. 동무벽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무슨 소리야! 초원을 달려야 할 놈들이 중원에 들어오다니!”
유세운은 흥분하는 동무벽을 바라보다가 관백에게 물었다.
“흑무기마대가 뭐야?”
관백은 심각하게 굳은 안색으로 답했다.
“흑무기마대는 지금 가장 강력한 세외 세력 중 한 곳으로 초원의 푸른 늑대들이 모인 곳입니다. 북천방과는 다른 의미로 위협적인 자들입니다.”
“흠.”
고개를 끄덕이는 유세운을 신경 쓰지 않고 양관척은 말을 이었다.
“그 중에서 파견 나온 놈들 중 대장은 강환을 사용할 수 있는 자였네.”
“뭐야? 그 정도라면 흑무기마대주라도 온 거야?”
“거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어.”
양관척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들은 곧 힘으로 상권을 잠식하기 시작했지. 상계의 인물들이 연합해서 막으려고 했지만 상대가 되지 못했어. 결국 창천궁에도 손을 내밀어 보았지만 그들도 어쩌지 못했어.”
“무슨 소리야? 창천궁에서도 해결을 못했다니.”
“비밀스런 얘기가 오갔는지도 모르지. 아마도 중원 상권의 삼분지 일만 차지하겠다는 이야기였을 거야. 지금 녀석들이 그 정도만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지.”
“그래도!”
관백은 흥분하는 동무벽을 막으며 말을 이었다.
“그럴지도 몰라. 만약 흑풍기마대가 만리장성을 넘기라도 하는 날에는 세외세력과의 전면전도 불사해야 하니 그렇게 양보했을지도 모르지.”
“으윽!”
양관척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나름대로 버티려고 했지만 천풍표국도 표물들이 계속 약탈당하고 비단길을 이용한 장사도 모두 막혔지. 그나마 간신히 지켜오던 천풍루도 삼 년 전에 아내가 도망가면서 문서를 빼돌려 천마방에 팔아넘기고 방주에게 시집갔다고 하더군. 적어도 천풍루만은 지켜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네.”
“뭐…뭐야? 재수씨가?”
“나에게 미래가 보이지 않았으니.”
관백과 동무벽은 어째서 양관척이 주독을 풀지 않고 이야기를 꺼냈는지 어렴풋이 느꼈다. 동무벽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고슴도치처럼 뻗은 수염을 부르르 떨며 물었다.
“천마방이 어디야?”
양관척은 고개를 내저었다.
“흥. 그들을 어떻게 할 생각은 버려. 그들의 뒤에는 흑무기마대가 있으니 말야.”
“상관없어! 거기가 어디야!”
양관척은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이십년 만에 만난 친구를 사지로 보낼 수는 없어.”
“웃기지마!”
버럭 화를 내던 동무벽은 관백을 돌아보았다. 자신들이 없는 동안 양관척이 혼자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가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자신들의 이름을 딴 천풍루를 지키기 위해 그가 참았을 고통도 여실히 와 닿았다. 비장한 표정을 지은 동무벽과 관백은 유세운을 향해 읍을 했다.
“문주. 미안하지만 친구의 복수를 안 할 수 없소. 이건 우리 둘의 일. 문을 떠나는 것을 허락해 주시오.”
“허락해 주십시오.”
둘의 태도에 유세운은 머리를 긁적였다.
“누구 마음대로? 내가 얘기를 나눠 봐도 될까?”
“예?”
양관척은 관백과 동무벽의 행동에 당황하다가 유세운이 자신의 얘기를 꺼내자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양관척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힘에 의해 상권을 잃었다고 하던데 맞소?”
엉성한 자세였지만 유세운에게서 느껴지는 기도가 범상치 않음을 본 양관척은 절로 말을 조심했다.
“그렇소.”
“그럼 그것만 없으면 다시 찾을 수 있소?”
유세운의 물음에 양관척은 실소를 참지 못했다.
“훗. 그건 아니오. 자금이 없이 무엇을 한단 말이오?”
“그럼 자금이 있으면 가능하다는 말이오?”
유세운의 물음에 양관척은 자신있게 자신의 가슴을 치며 말했다.
“흥! 물론이오. 늦어도 삼년 안에 상권의 삼분지 일을 차지 할 수 있소.”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삼년이라…좋소. 그렇다면 내 밑으로 들어오시오.”
“무슨……?”
양관척은 유세운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유세운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광오문에 들어오시오. 그럼 당신에게 총관의 자리를 내주겠소.”
“그…무슨?”
당황하는 양관척의 시선은 동무벽과 관백에게 향했다. 동무벽은 약간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고 관백은 웃으며 답했다.
“우리가 광오문의 좌우호법이네.”
“뭐?”
관백은 웃음 지으며 양관척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자네를 추천했다네.”
동무벽도 고개를 돌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들어와.”
“허허허. 이게 무슨 소린가? 천하가 좁다고 떠돌던 바람 같던 놈들이……”
관백과 동무벽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유세운과의 어이없는 만남이 떠올라 절로 미소를 지었다. 양관척은 유세운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좋소. 나는 상인이오. 내가 만약 광오문의 총관이 된다면 내게 무엇을 줄 수 있소?”
유세운은 양관척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황금 구만 냥과 흑무기마대라는 자들의 전멸을 약속하겠소.”
“화…황금 구만 냥?”
유세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응? 부족하오? 하지만 나머지는 여행 경비로 쓰고 있는 중이라……”
양관척은 유세운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장난끼가 번뜩이고 있지만 진중한 눈빛을 보던 양관척은 한숨을 내쉬고는 무릎을 꿇었다.
“소인 양관척. 광오문의 총관을 맡겠습니다.”
“하하하하. 좋소. 좋아. 일단 이것을 받으시오.”
유세운은 품에서 묘안석 아홉 개 전부를 꺼내 건네주고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도 앞으로 같이 움직이기는 힘들테니 이 패가 나타나면 내가 나타난 줄 아시오.”
유세운은 광오패를 꺼내 보여줬다. 양관척은 광오패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세운은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 그렇다면 일단 요기라도 하지. 새로 총관이 생겼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
“크하하하. 그거 참 맞는 말이오. 이보게. 어서 한상 차려오게.”
동무벽의 말에 양관척의 인상이 구겨졌다.
“이봐. 난 총관이야 어딜!”
“어라? 그래서 못해오겠다는 거야?”
양관척은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흔들었다.
“알았네. 잠시 기다리게.”
양관척이 상을 보러 간다며 정자를 벗어나자 관백과 동무벽이 유세운을 향해 읍을 했다.
“문주님. 감사합니다.”
유세운은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그럴 필요는 없어. 다 광오문의 일이니까.”
천마방(天馬房)(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