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12화 (112/194)

(112)

총관 양관척

삼장의 높이를 떠올라 매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떨어져 내려오는 유세운을 보며 황혜란은 반사적으로 채찍을 들었다. 뱀의 머리마냥 치솟아 오르는 채찍의 끝을 보고 유세운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가볍게 채찍의 끝을 움켜쥔 유세운의 신형이 허공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황혜란은 채찍으로 느껴지는 유세운의 경력에 손을 놓았다.

“꺄악!”

유세운은 채찍을 받아들고는 휘둘러 보려했지만 배운 적도 없는 채찍이 나갈리 만무했다. 유세운은 황혜란의 코앞까지 다가가자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이를 악물며 장력을 내뻗는 황혜란은 손을 가볍게 쳐내고 목을 잡고 들어 올렸다. 말 등에 올라탄 유세운은 황혜란의 목을 움켜쥔 채 바닥으로 내려섰다. 유세운은 황혜란을 보고 미소 지었다.

“아까 들으니 묵각혈린망의 껍질로 만들었다고 하더군.”

“크! 그래!”

여태껏 느껴본 적이 없는 통증과 공포에 황혜란의 얼굴은 샛노랗게 변해갔다. 유세운은 채찍의 끝을 잡고는 황혜란의 양팔을 뒤로 묶었다.

“꺄악!”

손목에 닿는 부분에서 피가 나자 유세운은 짐짓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이봐. 조심해. 움직이니까 피가 나잖아.”

“아악! 죽여 버릴 테야.”

유세운은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이를 어쩌면 좋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유세운은 황혜란을 무릎 꿇리고는 발목도 한꺼번에 묶어 들었다.

“꺄아악! 뭐하는 짓이야!”

“조심하라니까. 발목에서도 피가 나잖아.”

흥분과 고통에 충격을 참지 못한 황혜란은 결국 거품을 물며 기절했다. 유세운은 고개를 들어 장내를 살폈다. 이미 혈마단 오백의 인물들 중에 남은 인물은 백여 명 밖에 되 보이지 않았다.

“관호법. 동호법. 그만해.”

“예.”

“알겠소.”

대답을 하면서까지 한명을 더 베며 동무벽은 관백을 향해 웃음 지었다.

“내가 이겼지?”

관백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내가졌네.”

“크하하하. 나중에 한번 거하게 사게.”

관백은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유세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미 단주마저 잃은 혈마단의 남은 인원들은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유세운은 그런 그들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너희가 예뻐서 봐주는 거 아니니 명심해. 너희를 남겨놓은 이유는 이것 때문이니까.”

채찍을 짧게 들자 황혜란은 손발이 뒤로 묶인 채 유세운의 손에 들렸다. 유세운은 황혜란의 뺨을 왼손으로 쳐 깨웠다.

“으음…”

“이봐. 일어나. 다시 못할 경험을 하게 해 줄 테니 말야.”

“꺄악! 미친 놈! 퉤.”

거칠게 욕을 하며 침을 뱉는 순간 유세운은 손에 들고 있는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에 묶여 있던 황혜란은 원하던 바를 이루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악! 죽여 버릴 테야.”

유세운은 황혜란을 어깨에 걸쳐 메고 혈마단의 남은 인물들을 바라보았다.

“헤엄을 못 칠 테니까 서둘러 구해 주라구.”

“무…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얼굴이 사색이 되어 소리치는 황혜란을 힐끔 바라 본 유세운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어디 한번 헤엄쳐 나와 봐.”

채찍을 잡고 힘껏 집어던진 황혜란은 장강을 향해 날아갔다.

“꺄아악! 살려줘!”

삼십 장을 넘어 날아간 황혜란은 손발이 앞뒤로 묶인 채 물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이런 미친!”

“소문주님!”

살아남은 혈마단의 인원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물로 뛰어 들었다. 유세운은 열심히 헤엄치며 황혜란을 구하러 가는 혈마단원들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이거 다시 보기 힘든 구경거린데.”

“크하하하. 역시 문주답소.”

시원하게 옆에서 같이 웃음을 터트리는 동무벽을 보고 관백은 고개를 내저었다.

“문주님.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데 너무 과하심이 아니온지……”

“응? 하하하. 걱정 말아요. 그보다 배로 돌아가죠.”

“예.”

몸에 힘을 빼려는 동무벽과 관백을 보며 유세운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저 정도의 발판을 두고도 배로 못 돌아온다면 실망인데?”

유세운은 말을 마치자 바로 신형을 날렸다. 유세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동무벽과 관백은 실소를 머금었다.

“일부러 그런 것인가?”

“크하하하.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느냐? 하지만 이것처럼 통쾌한 일도 없군. 혈마단 녀석들을 발판으로 삼다니 말야.”

구척의 거구가 날아올라 황혜란을 구하기 위해 정신없이 장강을 헤엄치는 혈마단원의 머리를 발판 삼아 다시 날아올랐다.

“켁!”

갑작스레 머리를 눌린 혈마단원은 물을 먹고서는 고개를 내밀다가 다시 관백의 발에 밟혔다.

“풉!”

관백과 동무벽은 마지막 황혜란을 구하기 위해 자맥질 하려는 자의 머리를 밟고서는 힘껏 날아올랐다. 하지만 이십 장의 거리를 넘기란 아직 그들에게도 무리가 있었다. 유세운은 가볍게 장력을 날렸다. 관백과 동무벽은 유세운의 장력을 밟고서는 배 위로 다시 올라왔다.

유세운은 망연한 표정으로 황혜란을 구해내는 혈마단원들을 바라보고 있는 혈천오로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혈천오로. 혈천문주에게 곧 내가 찾아 갈테니 굳이 내게 사람들 보낼 필요 없다고 전하라.”

혈마단원들의 어깨에 물을 먹고 기절한 황혜란의 모습이 보였다. 혈마단원들은 자신들의 손이 찢어지는 것을 아랑곳 하지 않고 채찍을 풀렀다. 강가로 헤엄치는 모습을 보며 유세운은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다음에 혈천문에서 기다리라구.”

유세운을 태운 배는 천천히 장강의 물결을 가르며 다시 악양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남성(湖南省) 악양(岳陽).

동정호(洞庭湖)의 물이 장강으로 흘러가는 출구에 위치한 곳으로 호남성의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다.

악양에 도착한 배에서 내린 유세운은 길게 기지개를 켰다.

“우우웃! 드디어 지긋지긋한 배 생활도 끝이구나.”

유세운을 따라 내린 동무벽과 관백은 주변을 돌아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십 년이 지났건만 별로 변한 것은 없군.”

“그러게 말이야.”

관백은 유세운이 사방을 둘러보는 것을 보고 물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뭘?”

되묻는 유세운에게 관백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악양에 친구분이 계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렇군. 간만에 배에서 내렸더니 중요한 걸 잊어버렸네.”

“친구 분을 먼저 만나실지 아니면 제가 소개한 자를 만나러 가보겠습니까?”

“응? 아. 그 거부? 흐음.”

유세운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동철을 만나는 문제는 시급을 다투는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관백이 소개해주는 자를 만나는 것도 시급을 다투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유세운은 관백을 바라보았다.

이십 년 만에 강호에 돌아와 찾아가는 친구니 당연히 자신보다 더 보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개할 사람부터 만나러 가도록 하지.”

“예. 그럼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오랫동안 배를 타서 그런지 말들도 땅을 딛고 있는 발에 즐거움이 담겨있는 듯 했다. 유세운은 관백과 동무벽이 담소를 나누며 가는 뒤를 따라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어쩔 수 없군.”

수많은 시객과 협사들이 돌아다니는 악양이라지만 관백과 동무벽 같은 외모는 아무 때나 구경할 수 있는게 아닌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보았다. 유세운은 둘과 일정거리를 유지하며 말을 몰았다.

악양의 중심가까지 간 관백과 동무벽의 말이 멈춰 섰다. 그들의 앞에는 사층으로 이루어진 천마루(天馬樓)가 서 있었다. 고풍스런 외관에 달려 나오는 점소이 또한 교육이 잘되어있는 곳인 듯했다. 유세운은 말을 몰아 관백과 동무벽의 사이로 파고들며 웃음 지었다.

“이곳인가?”

점소이에게 말고삐를 내주려는 유세운을 동무벽이 말렸다.

“문주. 잠시만 기다려 보시오.”

“응? 왜?”

관백이 인상을 미미하게 찌푸리며 대답했다.

“저희가 가려던 곳이 이곳이 맞기는 합니다만. 주루의 이름은 천풍루(天風樓)라고 합니다. 녀석이 우리를 생각해 만든 곳이니 만큼 이름이 바뀔 리가 없습니다.”

“그래?”

관백은 다가오는 점소이를 불렀다.

“이보게.”

“예. 어르신.”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다가오는 점소이를 향해 관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내 기억으로 이곳은 천풍루가 아닌가?”

점소이는 관백의 질문에 웃음지으며 답했다.

“천풍루 말입니까? 망한지 한 삼 년 됐습니다. 그 자리에 바로 천마루가 생겼지요. 음식 맛은 변함없으니 드시지요.”

점소이의 말에 동무벽이 버럭 화를 냈다.

“무슨 헛소리냐! 양관척은 뭘 했길래 이곳이 망할 때까지 가만 두었단 말이냐!”

“아! 양대인을 아십니까? 그분은 모든 사업이 망하셔서 요즘은 술만 드신다고 들었습니다.”

“뭐야! 그 녀석 지금 어디 있나?”

거칠게 콧김을 내뿜으며 묻는 동무벽의 위세에 점소이는 뒤로 물러나며 간신히 대답했다.

“소인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집에 가보시면……”

관백은 겁에 질린 점소이에게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고맙네. 많은 도움이 됐군.”

“아…아닙니다.”

관백과 동무벽은 말머리를 돌려 악양의 외곽을 향했다. 유세운도 영문을 모른 채 그들의 뒤를 따라 말을 달렸다.

말의 콧김만큼이나 거친 숨을 내쉬며 동무벽은 말을 몰았다. 그 옆을 나란히 달리는 관백의 표정도 예전과 다르게 굳어있었다. 유세운은 그들의 뒤를 따르며 입맛을 다셨다.

이토록 흥분한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다. 마치 지금은 건들면 폭발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말을 몰고 있었다. 일각 여를 달려 도착한 저택은 한눈에 보기에도 대부호의 집 같았다. 크기만으로 본다면. 하지만 마치 사람이 안사는 마냥 을씨년스럽기까지 해보였다. 동무벽은 말에서 내려 대문을 두들겼다.

“아무도 없느냐?”

내력까지 담아 소리쳤건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다시 문을 두들기는 동무벽의 주먹에 경첩이 비명을 내질렀다.

관백이 다가와 동무벽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동무벽은 관백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선 동무벽은 다시 한번 소리쳤다.

“아무도 없느냐?”

역시나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유세운은 잠시 귀를 기울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후원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데?”

유세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동무벽과 관백의 신형이 후원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유세운은 말에서 내리고는 대문을 닫았다.

“문주를 내팽개치고 가는군. 해도 너무 한거 아냐?”

투덜거리며 그들이 간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후원의 정자에 도착한 관백과 동무벽을 맞이한 것은 정자를 가득 메운 술병들과 술에 잔뜩 취해 드러누워 있는 거지형색의 사내였다. 동무벽은 불같이 화를 내며 드러누워 있는 사내를 발로 흔들며 불렀다.

“이봐!”

“으응. 누구야?”

고개를 드는 인물은 사십대 초반정도 되어 보이는 인물이었다. 멋들어지게 나있는 콧수염도 술과 음식찌꺼기가 묻어있어 보는 이들의 안색을 찌푸리게 했다. 온통 술에 절어 있어 눈 밑도 퀭하고 안색도 푸르스름했다.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던 동무벽이 주먹을 날려 정신을 차리게 하려는 순간 관백이 그의 손을 잡았다. 동무벽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왜 그래?”

관백은 동무벽을 바라보지 않고 쓰러져 있는 사내를 보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러 보았다.

“양관척?”

“응? 뭐야? 너희 둘은 크… 누군데 남의 집에 와서 주인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그래? 딸꾹.”

입에서 온통 술냄새를 풍기며 얘기하는 사내를 보며 동무벽의 안색이 구겨졌다.

“이 자가 양관척이라고?”

관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주독(酒毒)이 오른 것 같네.”

“제길.”

동무벽은 누구를 향한지 모른 욕설을 내뱉었다.

총관 양관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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