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08화 (108/194)

(108)

호북성(湖北省) 의창(宜昌).

악양까지 가는 길 중 가장 빠른 길은 의창에서 배로 가는 길이다. 의창은 적지 않은 배들이 지나갔기에 유세운은 관백과 동무벽을 데리고 들어섰다.

관백은 유세운에게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문주님. 일단 여관이라도 잡지요.”

“흐음. 그게 좋을 것 같군.”

유세운은 번잡한 주위를 한번 훑어보았다. 배가 드나들기 때문인지 의외로 주루가 눈에 많이 띄었다. 유세운은 가장 커 보이는 건물을 향해 말을 몰았다. 관백과 동무벽도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유세운은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자신들을 향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서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후와. 저 거구라니 말이 불쌍해 보이는구만.”

“어머. 저 황색 옷을 입은 미공자를 봐. 하아.”

유세운은 자신과 함께 가고 있는 천풍쌍기가 사람들의 시선을 충분히 잡아 끌 만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커다란 주루의 이름은 다화루(多花樓)였다. 다화루의 점원은 꽃이 그려진 옷을 입은 채 뛰어 나왔다.

“어서 오십쇼.”

시원한 목소리의 점원을 바라보던 유세운은 주저 없이 말고삐를 건넸다. 말고삐를 받아든 점원은 천천히 말을 몰아 다화루로 향했다. 다화루는 삼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유세운은 말에서 내리며 웃음 지었다.

“좋아. 그럼 오늘은 여기서 묵겠네.”

“감사합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화루의 입구에 쳐져 있는 주렴을 걷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장사꾼인 듯한 인물들이 앉아서 술을 마시거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점원 하나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허리를 숙이며 물었다.

“어서 오십쇼. 식사를 하시겠습니까?”

“오늘 묵고 갈 테니 방 세 개를 잡아주게. 그리고 지금 시장하니 먼저 밥을 먹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 오시지요.”

점원은 삼층의 창가로 자리를 안내하며 웃음 지었다.

“이곳이면 장강을 바라보실 수 있어서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입니다.”

“음. 고맙네.”

유세운은 동무벽과 관백이 앉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술이라도 한잔 할까?”

“크하하하. 당연한 말을 왜 묻소?”

유세운은 동무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주문을 했다.

“일단 죽엽청 세 병과 최고급 안주로 세 가지 정도 내오게.”

“예.”

점원이 고개를 숙이고 내려가자 유세운은 창밖으로 보이는 장강을 바라보았다. 영호천이 만들어 백연혜에게 선물한 장강삼검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무래도 일찍 해치우고 돌아가야겠어.’

요즘 들어 백연혜의 생각이 더 자주 나는 것 같아 유세운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관백은 말없이 유세운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농담으로 들었었지만 지금이라면 정말로 자신과 동무벽 같은 인물 열 명이 달려들어도 이기지 못할 것 만 같았다. 관백은 넌지시 유세운에게 말을 걸었다.

“문주님.”

“응?”

백연혜를 생각하며 철마성에 대한 결의를 다지던 유세운은 갑작스런 부름에 고개를 돌려 관백을 바라보았다. 관백은 탁자위에 두 손을 올리며 물었다.

“광오문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목적?”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세운을 바라보며 관백은 말을 이었다.

“예를 들면 천하통일이라든가. 아니면 천하제일문이 되겠다든가 하는 그런 것들 말이지요.”

유세운은 관백의 얘기를 듣고서야 이해가 갔다.

“아! 하하하하. 그런 것 없어. 뭐 목표가 하나 있기는 하지만 그건 요원한 거고 일단은 자유로우면 된 거 아닌가?”

동무벽은 자신의 턱수염을 긁적이며 물었다.

“그래도 어디 자리라도 잡고 세력을 가지든가 그럴 거 아뇨?”

“푸훗. 동호법. 바보야? 내가 있는 곳이 곧 광오문이야.”

“흐음.”

동무벽은 한숨을 내쉬며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관백은 동무벽을 바라보다가 유세운을 향해 다른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앞으로의 계획이라면야 일단 철마성부터 담판을 짓고……”

“하하하. 그 뒤의 일말입니다. 뭐 예를 들면 돈 관리라든가 아니면 제자를 받는 일이라든가 하는 그런 것 말이죠.”

“돈이야 지금 가지고 있는 정도면 충분할 것 같고, 제자를 받을 생각은 아직 없는데?”

관백은 손을 들어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악양에 가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응.”

“사실 저희 친구 한 놈이 악양에 살고 있습니다.”

“정말? 그럼 가서 같이 만나면 되겠네.”

관백은 미소 지으며 가장 하고 싶던 말을 꺼냈다.

“그놈도 광오문에 데려오면 어떨지……”

“음. 관호법이 추천할 만한 친구인가?”

관백은 입가에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할만한 미소를 그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동무벽이 나섰다.

“양가 녀석 얘기를 하는 거냐?”

“응.”

관백의 말에 동무벽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녀석이라면야. 무공은 우리만 못하지만 돈버는 재주는 귀신도 울고 갈 놈이니까.”

“호오~ 정말?”

“이십 년 전 우리가 한창 강호를 주유할 때 이미 중원 상권의 십분지 일을 휘어잡았던 녀석이오.”

“중원 상권의 십분지 일이면 대체 얼마나 되는 거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유세운에게 동무벽은 자신의 턱수염을 긁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쯤이면 아마 중원 상권의 삼분지 일은 쥐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유세운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죽엽청을 가지고 올라오는 점원을 바라보았다.

“돈을 잘 벌고 못 벌고는 필요 없지. 관호법이 추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가는 길에 만나보면 되겠군.”

관백은 유세운을 따라 웃음 지으며 점원이 내려놓은 술잔에 죽엽청을 따라 건넸다. 유세운은 관백과 동무벽을 향해 잔을 들어 보이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관백은 유세운이 마시자 따라 마시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내일 떠나는 배편을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저녁은 먹고 가.”

동무벽의 말에 관백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으니 자네나 많이 먹어두게.”

유세운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말고 먹고 가는 게 좋을 듯한데?”

관백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유세운은 웃음 지으며 관백의 잔에 죽엽청을 가득 따라 주었다.

“내일 아침에 구해도 늦지 않으니 조급해하지 말고 들지.”

관백은 곤혹스런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휘영청 밝은 달이 밤하늘에 떠오르고 유세운은 따뜻한 물에 몸을 뉘였다.

“크~ 좋다.”

은은하게 올라오는 술기운과 전신의 피로를 녹이는 듯한 욕조 안의 따뜻한 물에 잠이 스르르 왔다. 수마(睡魔)와 힘겹게 싸우던 유세운은 결국 욕조에서 일어났다.

“으~ 좋기는 한데 여기서 잠들면 안 되겠지?”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아낸 유세운은 대충 옷을 걸치고 침대로 걸어갔다. 동무벽이 덩치에 어울리게 술이 강해서 꽤나 과음을 한 것 같았다. 유세운은 침대로 몸을 날려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응?”

유세운은 신경을 자극하는 기이한 느낌에 몸을 똑바로 누우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두운 천장은 별다른 특이한 점이 없어 보였다.

“역시 과음했나 보네.”

유세운은 천천히 눈을 감고 전신의 근육을 이완시켰다. 술을 먹고 따뜻한 물에 들어갔더니 혈맥의 순환이 원활해져 금세 잠에 빠져 들었다.

유세운의 숨소리가 점점 골라지더니 깊은 잠에 빠졌다. 잠든 지 반시진이 지났을까? 천정의 어둠 속에서 검은 색의 죽창이 떨어져 내렸다. 나타났다 싶은 순간 이미 유세운의 미간에 닿을 듯싶었다.

콰직!

어느새 올라온 유세운의 손에 죽창은 반으로 쪼개지고 암습자의 허리에 메어져 있던 검이 순간을 가르며 뽑혀졌다. 유세운의 눈에 이채가 서리는 것도 잠시 누운 자세 그대로 손을 내밀어 검지와 중지로 미간을 노리는 검을 잡았다.

“헉!”

암습자가 헛바람을 삼키는 동안 방문이 부서지며 동무벽과 관백이 들어왔다. 암습자의 눈에 낭패한 빛이 떠올랐지만 그는 검을 놓고 뒤로 물러나며 유세운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일체의 변식이 없는 유성추가 날아왔다. 유세운은 코웃음을 쳤다.

“쾌를 위주로 익힌 것 같은데……”

“헛!”

암습자는 유세운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앞으로 몸을 날렸다.

암습자의 뒤로 돌아가 주먹을 내뻗던 유세운의 눈에 이채가 스쳐지나갔다.

암습자는 날렸던 유성추를 다시 방향을 틀어 유세운에게 던지며 침대에 놓인 검을 집어 들었다. 다급히 동무벽과 관백을 바라본 암습자는 그들의 태도에 당황했다.

“저 친구 제법 빠른데?”

“그러게. 게다가 암습이라면 우리도 쉽지 않겠는 걸?”

유세운은 유성추를 받아 연결된 천잠사를 자르고는 암습자를 바라보았다.

“누가 보내서 온 거냐?”

“제길!”

암살자는 검을 다시 검집에 꽂으며 몸을 웅크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유세운은 기가 차서 코웃음을 쳤다.

“이봐 암습한 놈 치고 너무 태연하게 공격을 준비하는 거 아냐?”

암습자는 유세운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전신에서 살기를 폭출했다. 동무벽과 관백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본신 실력은 모르겠지만 살기만이라면 장난이 아니군.”

“그러게 말일세.”

유세운은 고개를 내저으며 물었다.

“뭐야? 현상금 때문이야?”

츄악!

대답대신 날아온 것은 둘의 사이를 단숨에 가르고 날아오는 검이었다. 검보다 먼저 뻗어오는 검풍을 느끼고 유세운은 손을 들어올렸다.

쩌정!

검풍을 가볍게 해소시킨 유세운이 손가락으로 검을 치자 검은 대번에 두 조각이 났다. 검의 파편에 어깨를 베인 암습자는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 쉽게는 안 되지.”

어느새 다가간 관백은 암습자의 혈을 짚었다. 어금니를 깨물지 못한 암습자의 눈에 씁쓸한 기운이 감돌았다. 유세운은 목을 좌우로 꺾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래. 그렇게 쉽게 가려고 하면 안 되지. 감히 내 단잠을 방해하고서는 말야.”

유세운은 암습자를 바라보았다. 전혀 당황한 빛없이 묵묵히 자신을 노려보는 것을 보고 유세운은 어깨를 으쓱했다.

“관호법. 혈을 풀고 자리 좀 비켜줘.”

“알겠습니다.”

관백은 암습자의 혈을 풀어주고는 동무벽을 끌고 방을 나갔다. 유세운은 그들이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암습자를 바라보았다.

“이봐. 나한테 개인적인 원한있어?”

“……”

“그럼 역시 돈 때문인가?”

“……”

“역시 그런가 보군. 실망인데? 고작 돈 때문에 일면식도 없는 상대에게 검을 뽑다니 말야.”

“…그게 바로 자객이다.”

암습자의 목소리를 들은 유세운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말도 할줄 아는군. 검풍에 이른 고수가 고작 자객이라니 이해가 안 가는데?”

“흥! 죽여라.”

“서두를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내 목을 노렸으니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을 줄거야.”

“흥!”

유세운은 흔들림없는 암습자에게 호감이 조금씩 가기 시작했다.

“죽기 전에 뭐 남기고픈 말은 없어? 쩝. 내가 워낙 착하니 그 정도는 들어주지.”

“……”

“응? 없어? 아니 그 나이 먹도록 결혼도 안 했어?”

“……”

역시나 묵묵부답. 유세운은 침대로 다가가 걸터앉으며 암습자를 바라보았다.

“흠. 그러고보니 이름도 묻지 않았군. 이름이 뭐야?”

“……”

“영 이거 혼자 떠드는 기분이군.”

유세운은 묵묵히 말없이 암습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유세운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돈이 필요한데는 있는 거야?”

“……”

“없어? 그냥 심심풀이로 사람을 해치려고 한거야?”

“…동생이 아프다.”

유세운은 암습자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

“황금 일만 냥이면 나을 수 있는 건가?”

암습자는 계속 말을 거는 유세운을 이상한 놈 본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체념한 듯 대답했다.

“그래. 나랑 나이 차이가 많은 동생이 태양절맥(太陽絶脈)에 걸려 간간히 생명을 이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를 넘기면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했지.”

“흐음.”

“하지만 만수화의(萬手花醫)가 황금 일만 냥이면 치료해볼 방법이 있다고 했다.”

무뚝뚝하게 이어지는 암습자의 말에 유세운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재밌는데?”

암습자의 눈에서 다시 살광이 번뜩였다. 유세운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살인은 너무 한거 아냐?”

“흥! 동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한다.”

유세운은 멀뚱히 암습자를 바라보았다.

“그말 진심인가?”

“흥! 그래!”

유세운은 암습자를 바라보다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하긴 우리 형이라도 그랬을 거야.”

유세운의 말에 암습자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유세운은 암습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좋아! 내 밑으로 들어와라.”

혈라묵편(血羅墨鞭) 황혜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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