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04화 (104/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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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흐르는 듯 안개가 흐르듯 부드럽게 뻗어가는 검의 검로에는 막힘이 없다.

벌써 며칠째 이렇게 수련을 거듭하는 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유세운이 철마성을 향하고 나서부터 시작된 수련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직 수련뿐이다. 좋아하던 차도 마시지 않은지 꽤 됐다. 잠을 아껴가며 운기를 하고 낮에는 온통 현류십삼검을 수련 중이다.

상의를 벗어 균형 잡힌 근육의 몸에는 온통 땀범벅이다. 오늘도 점심을 거르고 검술 수련에 푹 빠져 있다. 유청운은 호흡을 고르며 천천히 검을 거두어 들였다.

짝짝짝.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수련 중에 이미 와 있는 것을 알았지만 흐름을 끊고 싶지 않아 무시하고 있던 사람이 누군지 확인한 유청운은 웃음을 지었다.

“평이로군.”

“하하하. 이거 자네 검술의 조예가 이제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군.”

위지평은 기분 좋게 웃으며 유청운에게 다가갔다. 유청운은 수건으로 땀을 닦다가 갑작스레 들려오는 여자 목소리에 얼굴을 붉혔다.

“청운오라버니 오랜만이에요.”

“위지소저도 왔소?”

유청운은 눈을 반짝이는 위지청을 보고 한숨을 내쉬고는 상의를 걸쳤다. 허리띠를 졸라매던 유청운은 또 다른 한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분명히 기척을 느끼지 못한 상대였다. 청색의 면사를 쓰고 있는 여인을 보고 유청운은 눈으로 위지평에게 누구인지 물었다. 위지평은 여인을 보고 묻는 것임을 알고는 웃음 지었다.

“인사하게. 우리 청의문의 소문주님일세.”

유청운은 얼굴을 더욱 붉혔다. 위지청 뿐만 아니라 그녀도 자신의 벗은 몸을 봤을 거라는 생각에 얼른 포권을 취했다.

“위명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유청운이라고 합니다.”

청색 면사녀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답례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청의문의 조예림이라고 합니다.”

조예림의 맑은 목소리를 들은 유청운은 수련의 피로가 가시는 듯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조예림은 유청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소문 이상이시군요.”

“예? 무슨 말씀이신지?”

조예림은 유청운을 향해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유공자님의 성취가 결코 저희 삼룡삼봉 못지않아 보여서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조예림은 그저 눈웃음만으로 유청운의 겸손을 받아들였다. 위지평은 유청운의 어깨를 두들기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거 별궁으로 가던 중에 워낙 검기가 뻗쳐 와야 말이지. 발걸음이 절로 멈추었네.”

“평. 농담이 너무 지나치군.”

“하하하. 아닐세.”

위지평은 웃음 지으며 유청운에게 전음을 보냈다.

(솔직히 나는 못 느꼈는데 우리 소문주님이 느끼시고는 가보자고 하셨지.)

(그랬나?)

유청운은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위지청은 유청운의 옆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청운오라버니. 세운오라버니 별궁에 있죠?”

유청운은 유세운의 거취를 묻는 위지청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지금 강호에 나가 있단다.”

“예?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위지청이 난처한 표정을 짓자 유청운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왜 그러느냐?”

위지청은 말없이 난처한 표정으로 조예림을 바라보았다. 조예림은 가볍게 눈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유청운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련을 방해한 것 같아 죄송하군요.”

“아닙니다. 저도 마침 그만 두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럼.”

조예림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뒤돌아서 걸어갔고 위지평과 위지청도 손을 흔들어 주고는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혼자 남은 유청운은 멀어져 가는 조예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청수성의 조예림. 의술(醫術)이 하늘도 속일 수 있을 정도라고 하더니 무예 또한 결코 다른 삼룡삼봉에 못지않구나.”

청수성의 조예림.

삼룡삼봉중 청의문의 소문주로 그녀의 의술은 강호의 일절로 알려져 있다. 괴팍하기로 소문난 만수화의(萬手和醫)조차도 그녀의 자질에 놀라 제자로 삼고 십년을 가르쳤다. 만수화의의 적전제자이자 청의문의 청수혼원장 엽패의 무공을 전수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청운은 병약해 보일 만큼 새하얀 피부와 맑은 목소리가 생각나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일단 저녁을 먹고 운기에 들어가야 겠다.”

창천궁주가 머물고 있는 창주궁의 칠층.

대청의 이장에 달하는 자단목 탁자에는 다른 날과 다르게 많은 사람이 자리했다.

창천궁주 백선후는 좌측에 앉아 있는 인물들을 바라보았다.

천운쌍로.

전대의 고수들이자 현 천룡문의 실질적인 내문의 최고수들이었다. 둘의 연수합격이라면 자신도 승부를 짐작할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의 옆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따분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는 여인은 승천단창 헌원옥이었다. 그녀 옆에는 지권향의 향주인 양철심이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백선후는 우측에 앉아 있는 인물들을 바라보았다.

청수혼원장 엽패.

명실상부 청의문의 부문주이자 내문을 담당하고 있는 최고수다. 전대문주부터 보필하던 이로 이미 무공의 화후가 한눈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신경질적인 인상이 더욱 그를 마주 보게 힘들게 했다. 그의 옆으로는 청색 면사를 쓰고 있는 청수성의 조예림이 앉아 있었다. 헌원옥과 마찬가지로 삼봉에 드는 여인으로 무공화후도 헌원옥에 비해 그리 낮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 옆으로는 청의쌍검 위지남매가 앉아있다.

백선후는 천천히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천운쌍로중 백미의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창천궁주의 생각은 어떻소?”

“어떤 생각 말입니까?”

백미의 노인은 혀를 찼다.

“지금 북천방의 일을 말하는 거 아니겠소. 어떻게 생각하시오?”

백선후는 탁자에 양손을 깍지 낀 채로 얹어 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도 지금 생각중입니다. 이번 일을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하는 지를 말입니다.”

말없이 앉아있던 청수혼원장 엽패가 입을 열었다.

“그럼 더 화급을 다투는 일이 있다는 말이오?”

엽패의 말에 백선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철마성과의 일이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습니다.”

엽패는 미간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그런 일이라면 우리가 수라성과의 경계에 병력을 빼내지 못하는 것과 같지 않소.”

백선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천룡문이 혈천문을 견제하고 있고 청의문에서는 수라성을 막고 있지요. 하지만 저희는 이번에 강호일통의 야욕을 내비친 철마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백선후의 말에 천운쌍로중 백미의 노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북천방의 일은 전 중원이 하나가 되어야 할거요.”

“알고 있습니다.”

북천방의 중원침공은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단 한번도 중원을 세외세력에게 넘겨주지 않았던 역사가 말해주듯 이번에도 그들의 공세를 막아내야 했다.

북천방에서 북천의 또 다른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는 인물을 모두 모으고 있다고 들었다. 단순한 일개 방파와의 싸움의 문제는 벗어났다.

더욱이 사파인 혈천문이나 마도인 철마성과 수라성의 도움은 바라지도 못할 상황이다. 북천방에서 적기를 잡았다고 할 수 있었다. 백선후는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을 마셨다.

“알겠습니다. 각 문의 어르신들이 오셨으니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백선후는 찻잔을 내려놓고 엽패와 천운쌍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철마성도 이번 저희와의 결전으로 인해 세력의 오할 가까이를 잃었으니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는 못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중원인이라면 북천방의 일을 돕지는 못할망정 훼방을 놓지는 않겠지요. 그들과의 협약을 빨리 끌어내도록 하겠습니다.”

백미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두르시게.”

“예. 물론입니다.”

백선후는 탁자에 두 손을 올려놓고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결과는 그들과의 협약이 끝나봐야 알겠지만 기본적인 방어를 제외한 모든 고수를 이번 일에 파견할 것을 약속합니다.”

백선후의 말에 백미의 노인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우리 천룡문이 가장 그들과 가까우니 우리는 어차피 모든 고수가 나설 것일세.”

엽패도 그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라성이 어찌 움직일지 모르겠지만 그 외의 병력은 모두 나서겠네.”

백선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무림첩을 돌려 강호동도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겠습니다.”

엽패와 천운쌍로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엽패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웃음 지었다.

“그럼 우리 쪽에도 보내주게.”

“물론입니다.”

백선후는 자리에 일어나서 그들에게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천운쌍로도 일어나 마주 포권을 취하고서는 웃음을 지었다.

“그럼 오늘 하루만 더 묵고 내일 떠나겠네.”

“조금 더 쉬어 가셔도 됩니다.”

천운쌍로는 엽패를 바라보고는 웃음 지었다.

“자네도 이 나이 되 보면 알겠지만 집보다 좋은 곳이 없다네.”

백선후는 천운쌍로의 말에 웃음만 지어 보였다. 천룡문과 청의문의 인물들이 밖으로 나가자 백선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철마성과의 협약을 맺으려면 유문주의 일이 먼저 해결을 봐야 할텐데.”

“예.”

뒤에서 초평도 나가는 인물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답했다.

헌원옥은 창주궁을 나서서 별궁으로 가기 위해 말을 타며 조예림에게 말을 건넸다.

“오랜만이네.”

“그렇군요.”

헌원옥은 말 위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별궁의 향원정이라고 알아?”

조예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모르겠군요.”

“흐음 시녀에게 말해서 와. 오늘은 얘기나 좀 나누자.”

“그러죠.”

조예림은 가볍게 눈웃음을 지어보이고는 마차에 올랐다. 헌원옥은 말의 옆구리를 차며 손을 흔들었다.

“먼저 가 있을게.”

위지평이 조예림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조예림은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줄래요?”

위지평은 마차에게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하고는 향원정을 향해 말을 몰았다.

향원정(香元亭).

가을의 막바지라 국화향이 더욱 진동을 했다. 헌원옥은 시녀에게 말해 차를 시켜놓고는 향원정의 의자에 기대앉았다. 마차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헌원옥은 자신의 어깨에 매인 단창을 어루만졌다.

조예림이 마차에서 내려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삼룡삼봉중 가장 병약하면서 가장 지혜가 뛰어난 여인. 자신보다 한살이 어리긴 하지만 손속을 겨루지 않아 그녀의 실력을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결코 자신보다 아래로 보이지는 않았다.

몇 년 동안 못 본 사이 몰라볼 만큼 예뻐진 것 같았다. 조예림은 천천히 향원정을 오르며 헌원옥을 향해 미소 지었다.

“국화향이 좋군요.”

헌원옥은 조예림의 면사를 눈짓하며 투덜거렸다.

“내 앞에서도 굳이 면사를 하고 있을 필요는 없어.”

조예림은 헌원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면사를 벗었다. 커다란 눈에 어울리게 오똑한 콧날과 새하얀 피부에 대조되어 더욱 붉어 보이는 입술이 조화를 이루었다. 헌원옥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림이의 미모를 따를 자는 없는 것 같아.”

“그런 말씀 마세요. 헌원언니의 미모는 어떻고요.”

헌원옥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모르지. 혈라묵편(血羅墨鞭) 황가 고 계집이나 너만큼 될지도……”

조예림도 고개를 끄덕였다. 헌원옥은 조예림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도 일권무적이 어떤 녀석인가 궁금해서 나온 거지?”

조예림은 헌원옥의 말에 미소 지었다.

“예. 심검에 든 고수를 볼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더군다나 안전하게 만나기는 쉽지 않으니 말이죠.”

“하지만 녀석은 여기 없어.”

“예. 들었어요.”

조예림의 말에 헌원옥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그래? 누구한테?”

“현영검 유공자한테서요.”

조예림의 말에 헌원옥의 안색이 갑자기 찌푸려졌다.

청수성의 조예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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