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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성의(靑手聖醫) 조예림
뿌연 먼지를 휘날리며 달리는 말 위에서 위지청은 귀찮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오빠. 꼭 우리까지 와야 되는 거야?”
위지청의 말에 위지평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세운이를 만날 수 있지 않느냐?”
위지청은 말을 타고 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그렇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따로 만나서 얘기할 시간도 없는걸.”
“그렇지 공무로 오는 길이니.”
“그런데 오빠 정말로 세운오빠가 일권무적일까?”
위지청의 물음에 위지평은 어깨만을 들썩였다.
“모르겠구나. 만약 그렇다면 이제는 편하게 말도 못하게 될 텐데.”
“그러네. 흐음.”
푸른 청마 네 마리가 모는 고급의 사두마차 옆에서 말을 몰아가는 위지남매의 앞뒤로는 백여기의 기마가 같이 먼지를 휘날리며 달리고 있었다.
푸른 청의에 소매에 그어진 세 개의 금줄. 청의문의 정예들인 청의금검대의 고수 백 명을 대동하고 움직이는 긴 행렬의 목적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위지평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일단은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
천엽수 초평은 창천궁의 거대한 철문 사이에 서서 먼지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이백여 기의 기마를 바라보았다. 초평의 뒤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창명백검수가 도열해 있었다.
한기의 말도 흐트러짐 없이 정열한 채 달려오는 청의문의 기마들은 그들의 기마술이 보통이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 초평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달려오는 이들을 지켜보았다.
“청의문에서는 누가 올 것인가?”
초평도 알고 있다. 이번 사안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아직 문주들이 직접 회동 될만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지만 각 문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인물들이 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반각도 채 되기 전에 청의문의 기마들은 초평의 바로 앞까지 와서 멈춰 섰다. 흐트러짐 없는 기마들의 모습에 초평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내력을 뿜어 먼지를 막아선 초평의 앞으로 두 남녀가 말을 몰아 왔다. 두 남녀는 말에서 내리고 남자가 포권을 취했다.
“문상께서 직접 나오셨군요. 청의문의 청의쌍검이 인사 올립니다.”
청의쌍검 위지남매의 포권을 받은 초평은 미소로 답했다.
“이번에 청의쌍검의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네. 본궁을 위한 일이었으니 고맙다는 말은 해두고 싶군.”
“당연한 일이었을 뿐입니다.”
위지평은 백여 기의 청의금검대 사이로 천천히 다가오는 마차를 보고는 옆으로 비켜섰다. 초평은 마차에서 내리는 인물을 보고 절로 몸이 긴장했다.
푸른 청삼에 손목에 보호대를 차고 있는 인물이 내려섰다. 왜소한 몸에 신경질적인 얼굴표정을 보면 대번에 그가 누군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가장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것은 푸른색의 손.
청수혼원장(靑手混元掌) 엽패.
청의문의 부문주이자 그의 청수 아래 죽어간 마두들만 해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 인물로 정평이 나있었다.
‘부문주가 직접 오다니.’
초평은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엽노선배님. 어려운 걸음을 하셨습니다.”
엽패는 귀찮다는 투로 손을 내저었다.
“문주가 시킨 일이니 괘념치 말게.”
초평은 고개를 들다가 마차 안에 한 명이 더 있는 것을 알았다.
“마차 안에는 누가 있는 것입니까?”
초평의 물음에 엽패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소문주도 같이 왔네.”
“아! 그러시면……”
한걸음 앞으로 나가려는 초평에게 엽패는 손을 들어 막았다.
“부끄럼이 많아서 이런 자리는 피하니까 다음에 보게나.”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여독이라도 풀고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주겠나?”
엽패는 초평이 고개를 끄덕이자 몸을 돌려 마차에 다시 올랐다. 엽패는 초평이 거열에게 명하는 말을 들으며 맞은편에 앉은 여인을 바라보았다.
“몸도 안 좋은 녀석이 이곳에는 와서 뭐하려는 거냐?”
청의에 새하얗다 못해 창백하게 까지 보이는 피부와 초승달처럼 휘어진 아미는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커다란 눈은 지혜로 충만해 보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푸른 면사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엽패는 혀를 차며 움직이는 마차의 등받이에 등을 기대었다.
“별로 기대는 하지 말거라. 강호의 소문이라는 것이 대부분이 과장이니 말이다.”
여인은 말없이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엽패는 여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백연혜는 유주란을 만나 차나 한잔하자고 하려고 별궁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투덜거리며 걸어오는 헌원옥을 바라보고 웃으며 다가갔다.
“언니. 뭘 그렇게 투덜대세요?”
“응? 아. 백동생.”
헌원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백연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헌원옥을 바라보았다. 헌원옥이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헌원옥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게 말야. 방금 전에 백오라버니를 만났거든.”
“오라버니 만나고 오시는 길이에요?”
“응.”
“그런데 뭐가 그리 불만인 것처럼 투덜거리시는 거예요?”
“아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말을 하려던 헌원옥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머리를 내저었다.
“아니다. 오라버니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어.”
“어머. 언니. 저를 못 믿으세요?”
백연혜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지만 헌원옥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보자구.”
제집마냥 태연하게 걸음을 옮기며 멀어지는 헌원옥의 뒷모습을 보면서 백연혜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오라버니한테 직접 물어야 하나?”
궁금증이 치밀었지만 백연혜는 유주란을 만나러 가던 것을 생각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유주란은 갑작스런 백연혜의 방문에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어머. 소공녀께서 이곳에는 어쩐 일로 왔어요?”
“차나 한잔하자고 하려고 왔어요.”
유주란은 백연혜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시녀를 부르려 나가려 하자 백연혜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미 오는 길에 말해 놓고 왔어요.”
“어머. 정말요? 그러실 것까지 없는데. 일단 앉아요.”
백연혜는 유주란이 말한 의자에 앉았다. 유주란이 맞은편에 앉자 백연혜는 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유공자의 소식 궁금하지 않으세요?”
“세운이 소식이 있나요?”
백연혜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주란은 백연혜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녀석 괜찮은 거죠?”
유주란의 말에 백연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백연혜의 말에 유주란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네요. 워낙 사고뭉치 녀석이라.”
“그런데 그게 조금.”
백연혜가 말을 끌자 유주란은 다시 의자에서 등을 때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백연혜는 말을 꺼내려다가 차를 들고 들어오는 시녀를 보고 잠시 멈췄다. 차를 들고 들어오던 시녀는 갑작스레 유주란이 내쏘는 눈빛에 깜짝 놀랐지만 애써 태연한 척 차를 두 사람 앞에 내려놓았다.
시녀가 물러가자마자 유주란은 다그쳐 물었다.
“조금 뭐죠?”
백연혜는 미소 지으며 차를 들어 올려 마시기 직전에 입을 열었다.
“어린회라는 살수 집단과 싸움이 있었어요.”
“살수 집단이요?”
백연혜는 용정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거기서 다친 건가요?”
백연혜는 항상 유세운을 잡아먹을 듯 장난을 치던 유주란이지만 그를 걱정하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아니요.”
“그런데 무슨……?”
“그게 방향을 잘못 잡아서 섬서성으로 올라가 버렸어요.”
“에?”
백연혜의 말에 유주란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주란은 고개를 살짝 돌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런 멍청한 녀석. 그래서 다른 사람이랑 같이 가라니까.”
백연혜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는 물었다.
“그런데 청운공자님은 보이질 않으시네요?”
유주란은 백연혜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요즘 오라버니는 온통 연무장에서 살아요.”
“연무장에서요?”
유주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마 저번에 창운산장에서 곡칠이라는 사람과의 싸움이 자극이 됐는지 수련을 무리하다 싶을 만큼 하고 있어요.”
유주란의 말에 백연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들었어요. 창운산장님이 청운 공자님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위험했다고 말하더군요.”
유주란도 찻잔을 들어 한 모금을 마셨다.
“그 후로는 온통 세운이가 말한 대로 수련만 하고 있어요. 무리한다고 갑자기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하지만 청운공자님이라면 충분히 성취를 얻으실 꺼에요.”
“그러길 빌어야죠. 요즘은 수련을 해도 도와주지도 않아요.”
백연혜는 유주란의 투정에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창천궁의 무상인 하후패는 입었던 내상이 거의 아물어가는 것을 느끼고서는 연무장을 벗어나지 않고 온통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다. 하지만 시녀가 차를 가져오며 문산인 초평이 왔다는 말에 연무장에서 나왔다.
초평은 대청에서 차를 한잔 마시며 하후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후패는 옷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대청에 들어섰다.
“허허허. 이런 시간에 어쩐 일이시오?”
초평은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요즘 무상께서 너무 수련에 몰두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허허허. 솔직히 요즘 바쁘지만 않다면 폐관수련이라도 들고 싶을 정도라오.”
하후패의 말에 초평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보고 혼자 이 많은 창천궁의 일들을 처리하란 말씀이십니까?”
“허허허. 그러니까 바쁘지 않으면 이라고 하지 않았소.”
하후패는 초평의 맞은편에 앉았다. 초평은 하후패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찻잔을 들어 한 모금을 마셨다. 하후패는 시녀가 가지고 오는 찻잔을 받아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오?”
“무슨 일이 있어야만 찾아오는 건 아니잖습니까.”
투정부리듯 얘기하는 초평을 보고 하후패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소?”
초평은 한숨을 내쉬었다.
“북천방의 움직임에 대한 얘기는 일전에 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흐음. 하긴 북천방주가 북천의 고수들을 모은 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소.”
초평은 하후패가 그 일을 기억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오?”
“천룡문에서는 천운쌍로가 왔습니다.”
“허허. 그분 들이 나오셨단 말이오?”
초평은 하후패의 물음에 탁자에 두 손을 올려놓으며 대답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오늘은 청의문에서 누가 오셨는지 아십니까?”
“청의문에서라면 뭐 추아라도 왔소?”
“동생분은 오지 않으셨습니다.”
하후패는 자신의 동생인 하후추가 청의문의 외문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가 오지 않았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누가 왔다는 말이오?”
“청수혼원장 엽노선배님이 오셨습니다.”
“아니! 청의문의 부문주까지 왔단 말이오?”
“예.”
하후패는 초평의 대답에 침중하게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북천방에서 몇 번이나 중원을 넘보았지만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중원의 힘은 강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이정도로 걱정할 정도라면 이번 일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 같았다.
초평은 말없이 생각에 잠긴 하후패를 향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북천방주의 무공이 심검에 들었다는 소문이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크음. 그럼 그를 상대할 사람이라고는……”
초평은 하후패의 눈을 바라보며 답했다.
“예. 지금으로는 유문주님 밖에는 없습니다.”
청수성의 조예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