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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고기 하나를 눈 깜빡할 사이에 뜯어먹은 양철심은 기름기 묻은 손가락을 빨며 유태청을 바라보았다.
“형님. 궁금한게 있습니다.”
“말해보게.”
양철심은 자신의 잔에 술을 따라서 단숨에 들이켰다. 국화주의 향기가 은은히 입안을 감돌았다.
“요즘 한창 강호를 떨어 올리는 일권무적이 세운이가 맞습니까?”
유태청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철심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거 참. 들으면서도 설마, 설마 했는데 역시 녀석이었군요.”
“그렇다네. 기연이 있었지.”
“그녀석 무광 노선배님의 제자라더군요.”
유태청은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양철심은 국화주를 다시 잔에 따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녀석. 저한테 무공을 안 배우길 잘 했군요.”
단숨에 잔을 들이 킨 양철심은 말을 이었다.
“그놈 때문에 걱정한 날들을 생각하면…… 어휴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아찔합니다.”
“그래. 자네 마음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걸세.”
“하하하하. 뭐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웃음을 터트리며 손사래를 치고 있었지만 유세운을 찾기 위해 천룡문의 힘도 사용했던 양철심이다. 매년 편지를 보내며 유세운의 안부를 물어온 양철심의 말에 유태청은 그저 웃음만을 지어 보였다.
양철심은 젓가락을 들어 오향장육을 집어 먹으며 지나가는 투로 말을 던졌다.
“요즘 북천방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북천방이라면……”
유태청은 들어본 적은 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양철심은 국화주를 자신의 잔에 가득 따르며 대답했다.
“북쪽의 하늘이라는 자들이지요.”
“아! 그들 말인가?”
양철심은 유태청이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내자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들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중원을 넘본단 말인가?”
양철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세 차례의 중원침략이 실패하고 근 백여 년간 조용했었지요.”
양철심은 국화주를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사방에서 날아오고 있습니다.”
“움직임?”
“북천의 무사들이 모두 북천방의 깃발 아래로 모이고 있는 것이지요.”
“허허허.”
유태청은 그저 헛웃음만을 터트렸다. 양철심은 어깨를 들썩이며 말을 이었다.
“그것 때문에 저희와 창천궁, 청의문의 삼자회합이 있을 예정입니다.”
“청의문에서도 오는 건가?”
양철심은 뺨을 긁적거렸다.
“철마성이야 온통 강호를 휘젓고 다니면서 연락이 끊겼고, 수라성이야 말할 필요도 없는 거지요. 게다가 혈천문도 저번 철마성과의 합동으로 창천궁을 공격해서 오지 못할 겁니다. 원체 연락도 잘 안 되지만 말이죠.”
유태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북천방이 강호를 침략한다해도 그들이 도울지는 알 수 없었다. 양철심은 갑작스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유태청이 의아해 할 때 양철심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세운이가 심검에 든 것 같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맞습니까?”
“그렇더군.”
양철심은 유태청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나?”
유태청의 질문에 양철심은 국화주를 병째 들이 키고는 대답했다.
“북천방의 방주가 심검에 든 고수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 강호에서 그를 상대할 자가 세운이 밖에 없다는 이야기지요.”
유태청은 양철심이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수긍이 갔다. 그 말은 유세운이 적의 수장을 상대해야 된다는 이야기였다. 가장 위험한 곳에 내몰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왔다.
양철심은 문득 고개를 들어 대청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투덜거리며 대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에휴~ 이제 오라버니는 도저히 안 되겠다.”
투덜거리며 들어오던 유주란은 대청에 아버지와 함께 앉아 있는 양철심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양숙부님!?”
“하하하하. 이거 란아가 아니냐?”
“호호호. 숙부님도 참. 아직도 그렇게 부르시면 어떻게 해요? 저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양철심은 유주란의 말에 파안대소(破顔大笑)했다. 유주란은 입술을 삐죽이고 내밀더니 양철심의 맞은 편 자리로 가서 앉았다. 양철심은 웃음을 거두며 물었다.
“그런데 들어오면서 한 말이 무슨 말이냐?”
양철심의 물음에 유주란은 한숨을 푹 내쉬며 답했다.
“청운오라버니 얘기에요.”
“청운이가?”
유주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요즘은 완전 현류십삼검의 오의를 깨우치는데 빠져서는 수련은 하나도 도와주지도 않아요.”
유주란의 말에 양철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청운이의 실력이 많이 는 모양이구나.”
“그럼요. 이제 완전히 예전이랑 다른 사람이에요. 가끔 대련이라도 할라치면 검도 제대로 못 휘둘러본다니까요,”
“그러냐? 하하하하. 형님은 든든하시겠습니다.”
유태청은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그러는 자네는 왜 아직도 혼자 사는가?”
“앗! 형님! 동생의 아픈 부분을.”
“호호호호.”
“하앗!”
하늘에서 쏟아지는 낙뢰처럼 주변 공기를 태우듯 뻗어나가는 검세는 순간 부드럽게 원을 그렸다. 태극을 그리는 강기막은 어떤 공격이라도 막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멈춰선 자세에서는 태산을 느끼게 했다. 높이 쳐들은 검세는 마치 태산압정 일초를 펼칠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하늘을 가르며 떨어져 내리는 검세는 태산압정이었다. 하지만 태산압정과는 하늘과 땅차이의 검력이 느껴졌다.
짝짝짝.
호흡을 가다듬던 백연문은 박수소리에 고개를 돌려 연무장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거늘 창명백검수 일대장인 거열에게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호호호. 오라버니. 이제는 더욱 호승심을 불태우게 만드는데요?”
하지만 상대가 헌원옥인 것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뿜었다. 분명히 막무가내로 들어왔을 거라는 것이 눈에 선했다. 백연문은 옆에 놓인 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물었다.
“막아서던 인물들은 어찌 했느냐?”
헌원옥은 혀를 살며시 내밀며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 뭐 그냥 저를 막길래 막지 못하게 했지요.”
“심하게 하지는 않았겠지?”
“에이 설마요. 그래도 상당한 실력을 가졌던데요.”
백연문은 연무장 구석에 돌로 만든 의자와 석탁이 있는 휴식하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헌원옥은 뒷짐을 진 채 사뿐사뿐 걸음을 옮겨 백연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의자에 앉아 수건으로 마저 땀을 닦으며 백연문은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헌원옥을 바라보았다.
“그래 무슨 일이냐?”
“칫! 오라버니는 제가 온다는 거 알면서도 나오지도 않고 말이죠. 너무한 거 아네요?”
헌원옥의 말에 백연문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어쩔 수 없었다. 요즘 수련이 한창이거든.”
헌원옥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오라버니가 수련을 그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네요.”
헌원옥의 말에 백연문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요즘 너무나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헌원옥의 물음에 백연문은 그저 미소로 답했다. 헌원옥은 양볼에 바람을 집어넣고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보니 마지막 초식은 태산압정 같던데 맞아요?”
“응.”
헌원옥은 백연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지금까지 보아온 태산압정과 다르기는 했지만 갑자기 왜 그런 초식을?”
헌원옥의 물음에 백연문은 자신의 검을 들어 보이며 생각에 잠겼다.
“일권무적 유세운이라고 들어 보았느냐?”
백연문의 질문에 헌원옥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한창 귀를 따갑게 하는 인물 중 한명이면서 창천궁에 같이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백연문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의 헌원옥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럼 천검 영호천도 들어 보았겠구나.”
“그 사람도 알아요?”
백연문의 말에 헌원옥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대의 천하제일인이 될 인물 중 손으로 꼽는 인물들을 둘 다 거론하는 것으로 보아서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백연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둘을 다 보았지.”
“유세운은 그렇다 치지만 영호천은 어떻게?”
“그 두 사람이 겨루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예? 정말요?”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헌원옥의 모습에 백연문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누…누가 이겼어요?”
말까지 더듬거리는 헌원옥의 말에 백연문은 어깨를 들썩였다.
“글쎄? 도중에 멈춰서 누가 이겼는지는 모르겠구나.”
헌원옥은 잔뜩 기대를 가지고 있다가 힘이 쭉 빠진 듯 한숨을 내쉬었다.
“휴~ 난 또 둘의 결판이 난 줄 알았잖아요.”
헌원옥의 말에 백연문은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백연문은 검을 바라보며 그 때를 상상하는 듯 했다.
“천검의 검은 가장 기본 적인 초식이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 하면 태산압정이었지.”
“태산압정이요? 천검정도 되는 사람이?”
“하하하. 그건 누이가 몰라서 그러는 거야. 그의 태산압정은 지금의 내가 어떤 초식을 펼쳐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어.”
“예?”
놀라는 헌원옥을 향해 백연문은 검을 검집에 넣으며 대답했다.
“유대협과 동수를 이루는 정도라면 아마 그도 심검의 경지에 들었을 것 같아.”
“흐음. 그렇군요.”
헌원옥은 자신의 턱을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오라버니. 일권무적이 아직 별궁에 머무나요?”
“아니.”
헌원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자신들이 천룡문을 벗어 날 때만 해도 그는 창천궁에 머물고 있다고 들었었다. 백연문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철마성으로 갔다.”
“철마성으로요?”
헌원옥의 물음에 백연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철마성에서 자신에게 현상금을 건 것을 담판 지으러 간다고 하며 떠났다.”
“뭐라고요?”
놀라 당황하는 헌원옥을 향해 백연문은 힘없이 미소 지었다.
“유대협은 그런 분이다.”
“하! 제정신이에요? 어떻게 철마성을 찾아 간단 말이죠?”
백연문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단신으로 갔지. 창천궁 내성의 인물들을 보내 준다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예? 게다가 혼자요?”
헌원옥은 기가 막히는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헌원옥은 석탁(石卓)에 팔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이번에 오면 그와 한번 겨루어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죽으러 갔다니.”
헌원옥의 말에 백연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나는 아무 탈 없이 돌아올 것 같다만.”
헌원옥은 백연문의 얼굴을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정말이에요? 그 생각?”
백연문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헌원옥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는 오라버니마저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군요.”
“하하하. 그건 네가 유대협이 무공을 펼치는 것을 못 봐서 그렇단다.”
“그의 무공이 어떤데요? 겨뤄봤어요?”
백연문은 어림없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설마하니 내가 어찌 그와 겨뤄 봤겠느냐. 단지 그가 심검의 경지에 든 무공을 펼치는 것을 보았지.”
“정말요? 어땠어요?”
백연문은 당시를 생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전율이었지. 온통 세상이 은색의 광휘로 둘러싸이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은광은 모든 것을 무(無)로 돌렸지.”
“푸핫!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호호호.”
입까지 가리고 웃음을 참지 못하는 헌원옥을 보며 백연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장면은 눈으로 직접보지 못하면 절대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백연문은 아직도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헌원옥을 바라보다가 문득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들었다.
“누이는 이번에 유대협과 겨루기 위해 온 건가?”
“예. 당연하죠.”
태연하게 웃으며 허리에 손을 얹는 헌원옥을 보며 백연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라도 삼봉에 드는 미인인 헌원옥의 눈웃음을 보면 대결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리고 모두들 손사래 치게 만드는 무공을 지녔으니 천룡문의 골치임에는 틀림없었다.
백연문은 은근히 목소리를 낮추며 헌원옥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럼 내가 부탁하나만 해도 될까?”
“부탁이요?”
헌원옥은 목소리까지 낮춰가며 하는 백연문의 부탁이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청수성의(靑手聖醫) 조예림(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