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01화 (101/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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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궁에는 여러 개의 연무장이 있다. 그중에 가장 열기를 뿜어내는 곳이라면 단연 창천백검수들의 연무장이었다.

쿵.

“하앗!”

백여 명의 사내들이 윗도리를 벗어던진 채 땀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마음에도 열기를 피어 올리게 했다.

“그 정도 실력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자세가 틀린 검수를 향해 거침없이 일갈을 하는 여운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감돌고 있었다.

“이번 철마성과의 전투에서 우리의 사상자가 거의 없었던 것은 모두 유대협 덕분이지 본신의 능력이 아님을 알아라!”

“예!”

자세가 틀렸던 사내는 크게 대답하고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아침부터 시작한 수련은 점심시간이 다되어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흐음. 열심이네?”

연무장의 입구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여운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두 자루의 단창이 교차되게 매어진 모습을 보고 여운은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오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헌원옥은 가벼운 걸음걸이로 창천백검수의 연무장에 들어섰다. 창천백검수들은 모두 넋이 나간 듯 헌원옥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누가 수련을 멈추라고 했느냐!”

뒤돌아서 일갈하는 여운의 기세에 창천백검수는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여운은 그들을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헌원옥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 십니까?”

“음. 무슨 일이냐고?”

헌원옥은 가만히 여운을 바라보았다. 헌원옥의 발이 가볍게 청석으로 만들어진 연무장의 바닥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어째서지?”

뜬금없는 질문에 여운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헌원옥은 자신의 단창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백동생에게 남자가 생긴 것 같아.”

작은 목소리로 여운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로 말을 하는 헌원옥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여운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에 입맛을 다셨다.

“그건……”

헌원옥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난 여운이 옆에 있으면 백동생에게 남자가 쉽게 안생길거라고 생각했거든?”

헌원옥은 어루만지던 단창 하나를 뽑아 들었다. 여운은 결국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분이라면 저는 찬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분? 호호호. 이거 또 재미있군.”

결국 웃음을 터트린 헌원옥은 단창으로 여운의 가슴을 겨누며 말을 이었다.

“그분이라는 호칭까지 쓰는 걸 보면 대단한 남자인가 보군.”

여운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헌원옥은 단창으로 여운을 가리킨 채 말을 이었다.

“좋아. 하지만 나는 보지도 못한 자에게 동생을 빼앗겼으니 그 책임은 여운이 지겠지?”

여운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헌원옥이 이곳 연무장에 자신을 찾아온 순간부터 이런 일은 예상했었다. 항상 보는 이들에게 비무를 청하는 헌원옥의 버릇은 이미 심심치 않게 겪어 봤었다. 여운은 수련 중인 창천백검수들을 바라보았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여운은 손을 들어 올렸다.

쿵!

동시에 자세를 바로잡는 창천백검수들에게 여운은 입을 열었다.

“오전 수련은 여기까지다.”

“예!”

“그리고……”

여운은 헌원옥을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천룡문의 헌원소저와의 비무를 할테니 자리를 마련하도록.”

“예.”

창천백검수는 순식간에 커다란 원을 만들며 섰다. 고수들의 비무는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더욱이 삼봉에 드는 헌원옥의 자태를 부담 없이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입은 귀에 걸렸다.

여운은 걸음을 옮겨 연무장의 중앙에 창천백검수들이 만든 원안으로 들어섰다.

헌원옥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원안으로 들어서며 단창을 손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여운은 헌원옥의 삼장 앞에 서서는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다.

“모두 앉아라.”

여운의 말에 창천백검수는 모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헌원옥은 여운을 마주보고 서서는 단창으로 땅을 짚었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이네. 거의 삼년만인가?”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여운의 대답에 헌원옥은 단창을 들어 어깨에 걸치며 말을 이었다.

“호호호. 오늘은 가볍게 봐주지 않을 거야. 아무리 부하들 앞이라도 말이지.”

“저들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여운은 대답을 하고는 검을 바로 잡았다.

“그럼 한수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좋아. 어디 삼년동안 얼마나 늘었는지 볼까?”

헌원옥은 단창으로 여운을 가리키며 서서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선수(先手)를 양보할께.”

“감사합니다.”

여운은 삼년 전의 비무에서도 헌원옥의 삼초를 받아내지 못했던 것을 기억했다. 여운은 진중한 기세로 일검을 뻗었다. 창천궁의 기본 검식인 창천십검(蒼天十劍)의 일검인 창천비검(蒼天飛劒)을 펼쳤다.

여운의 창천비검을 바라보던 헌원옥의 아미가 살며시 찌푸려졌다. 일체의 변식을 내포하지 않고 뻗어오는 창천비검의 위세가 예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날카로워 보였다.

“하앗!”

헌원옥의 단창이 작은 원을 그리며 창천비검을 튕겨냈다. 여운은 곧장 몸을 한바퀴 돌리며 품에서 다시 검을 내뻗었다. 연속적으로 여운의 검에서 검화가 피었다. 헌원옥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호오! 멋진 천화연검(天花連劍).”

헌원옥의 단창이 맹렬히 회전을 하며 검화를 향해 뻗어갔다.

스팟.

세 송이의 검화가 스러지기도 전에 여운은 신형을 높이 띄웠다. 여운의 검이 뻗어오며 수십 갈래의 검기를 펼쳤다. 구경을 하던 창천백검수들의 입에서 경탄성이 터졌다.

“창천낙우(蒼天落雨)?”

마치 비가 내리듯 쏟아지는 검기에 헌원옥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어렸다.

“좋아! 천룡승천강(天龍昇天罡)!”

하늘을 향해 뻗어오는 단창에서 강기가 뿜어져 나오며 창천낙우의 검기를 튕겨냈다. 여운은 자신의 검기를 튕겨내고도 여력을 가진 채 날아오는 강기를 향해 장력을 내뻗었다.

펑!

“크윽.”

비스듬히 장력을 내뻗어 몸을 피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작지 않은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여운은 바닥으로 내려서며 다시 검을 뻗었다.

푸른 검기가 단창을 회수하는 헌원옥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헌원옥은 왼손으로 나머지 단창을 뽑아들고 대번에 검기를 반으로 갈랐다. 한걸음에 자세를 바로 잡는 여운에게 다가간 헌원옥의 단창이 다섯 번을 찔러왔다.

“웃!”

차차차차창!

헌원옥은 뒤로 정신없이 밀려가는 여운을 따라가며 웃음 지었다.

“정말 많이 늘었는데? 무슨 기연이라도 있었나? 천룡오연격(天龍五連擊)을 막아내다니.”

여운은 식은땀을 흘리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헌원옥의 공격을 다시 받아낸다 해도 한번을 넘기기 힘들 것 같았다.

여운은 마음을 다잡고 내력을 끌어올렸다. 여운의 검이 원을 그리려는 찰나 코앞에 들이닥친 헌원옥의 단창에서 천룡오연격이 펼쳐졌다. 여운은 미처 검으로 원을 그리지 못하고 헌원옥의 천룡오연격을 막아냈다.

차차차차창!

헌원옥은 천룡오연격을 막아낸 여운의 빈틈으로 파고들어 그의 뒤를 점했다. 헌원옥은 단창으로 여운의 등을 가볍게 찔렀다.

“졌지?”

여운은 검을 내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역시 헌원소저의 상대는 되지 못하는 군요.”

헌원옥은 입가에 미소를 짓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혹시 마지막에 펼치려고 했던 거 설마 창천태극강(蒼天太極罡)이었어?”

헌원옥의 물음에 여운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그것 밖에 헌원소저를 상대할 것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흐음. 정말 무슨 기연이라도 있었나봐. 예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공격을 펼치던데?”

헌원옥의 물음에 여운은 가볍게 미소만 지어 보였다.

“예. 자그마한 기연이 있었습니다.”

자그마하다고는 하지만 유세운이 펼치는 무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것만 해도 기연이거늘 그에게 받은 청심환으로 내력도 증진되었다. 그동안 막히던 창천십검의 묘리를 많이 깨우쳤다. 결코 작은 기연은 아니었다.

여운은 가볍게 검을 검집에 넣으며 포권을 취했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헌원옥은 두개의 단창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등에 매고서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나도 생각보다 재미있었어. 이 정도나 상대해주다니 이걸로 용서해 줄께.”

헌원옥의 말에 여운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감사합니다.”

헌원옥은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연무장을 벗어났다. 여운은 헌원옥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웃음 지었다.

“하하하. 모두 점심은 굶을 작정인가?”

“아닙니다.”

여운의 말에 창천백검수는 황급하게 대답하고 식당으로 우르르 달려 나갔다. 여운은 혼자 남은 연무장을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삼룡삼봉을 본다는 건 무인들의 꿈이기도 하니 정신이 나갈 만도 하지.”

천천히 입안에서 차의 향을 음미하던 유태청은 시녀가 다가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시녀는 대청 앞에서 고개를 숙여 보이며 입을 열었다.

“천룡문에서 손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천룡문에서?”

유태청은 시녀의 갑작스런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이 창천궁이다보니 천룡문과의 사람들이 올 수도 있지만 자신을 찾아올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유태청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라고 해주게.”

“예.”

시녀가 물러가자 유태청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태청은 호탕한 웃음소리로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하하하하. 형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팔척이 넘는 장신에 떡 벌어진 어깨. 솥뚜껑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주먹으로 포권을 취하는 모습에 유태청은 미소 지었다.

“하하. 이게 누군가? 양의제 아닌가!”

양철심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유태청이 내민 손을 가볍게 마주 잡았다.

“형님은 점점 더 젊어지시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이사람 그게 무슨 말인가?”

양철심은 유태청이 마시던 차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형님은 저처럼 술을 안마시고 차만 마셔서 그런가 봅니다.”

“양의제 농이 많이 늘었군. 어서 앉게.”

양철심은 유태청이 권한 자리에 앉았다. 유태청은 시녀에게 가벼운 술상을 차려오라는 말을 하고는 양철심을 바라보았다. 천룡문에서 지권향의 향주로 있는 양철심이 이곳에 왜 왔는지 궁금증이 치밀었다.

“그래. 무슨 일인가?”

양철심은 웃음을 터트리며 탁자를 두들겼다.

“하하하. 형님을 뵈러 오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합니까?”

유태청은 양철심의 말에 그를 바라보았다. 웃음으로 말을 돌리는 것을 보고 유태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야 될 거라면 말려도 말할 사람인 걸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았다. 유태청은 시녀가 술병과 안주를 들고 오자 양철심에게 잔을 권했다.

“이렇게라도 얼굴을 보니 다행이군. 한잔하게.”

“예.”

술잔을 가득 채우자 은은한 국화향이 났다. 양철심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허허허. 창천궁에 와서 국화주를 먹다니 다 형님 덕인가 봅니다.”

양철심은 술병을 받아 유태청의 잔에 가득 따라주었다. 유태청을 향해 잔을 들어 보인 양철심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형님. 이렇게 십년이 넘어서 만나게 된 걸 축하하는 의미로 한잔 올립니다.”

“알겠네.”

양철심은 대번에 잔을 비우고는 안주로 나온 오리고기의 다리를 찢어 유태청에게 건넸다. 유태청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오리고기를 받아 들였다.

“하하하. 창천궁의 별궁 숙수들 솜씨는 강호에서도 알아줍니다. 형님.”

양철심은 웃음을 터트리며 오리고기를 통째로 들고 뜯어먹기 시작했다. 유태청은 말없이 오리고기를 먹으며 양철심을 바라보았다.

승천단창 헌원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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