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100화 (100/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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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단창(昇天短槍) 헌원옥

사천성 무산에 자리 잡고 있는 창천궁의 거대한 철문이 활짝 열렸다. 창천궁의 문상인 천엽수 초평은 철문의

가운데에 서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초평의 뒤로는 창명백검수가 도열해 있었다.

먼지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삼백여기의 기마가 시야에 들어왔다. 초평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천룡문의 사람을 만나는 건 정말 오랜만이군.”

반각도 채 되기 전에 구름 먼지를 휘날리던 삼백여기의 기마는 초평의 앞에 멈춰 섰다.

“워! 워!”

초평은 내력을 뿜어내 먼지가 창천궁의 철문을 넘어서는 것을 막으며 가장 선두에 있는 자를 바라보았다. 팔척이

넘는 장신에 떡 벌어진 어깨. 솥뚜껑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주먹을 보고 대번에 누군지 깨달았다. 거구의 사내는

말에서 내려서며 포권을 취했다.

“문상께서 나오셨군요. 지권향(地拳香)의 향주인 철영십권(鐵影十拳) 양철심입니다.”

“양향주의 위명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초평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양철심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저 같은 것을 기억해 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하하하.”

초평은 고개를 들어 양철심을 바라보았다.

“다른 분은 안 오셨습니까?”

“아! 이런 내 정신을 보게.”

양철심은 그 커다란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보고 있던 초평이 안쓰러울 정도의 큰 소리가

들려왔다.

“저희 소문주님께서 이번에 같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천운쌍로(天雲雙老)도 이번 길에 같이 오셨지요.”

양철심의 말에 초평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어디 계십니까?”

“허허허. 이거 문상이 아니신가?”

삼백여기의 기마가 반으로 갈리며 한 여인과 두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푸른 청삼에 구름이 살아있는 듯 꿈틀대는

옷을 입은 두 노인 중 흰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온 노인이 입을 열었다. 백염(白髥)에 백미(白眉)의 노인과

수염이 하나도 나지 않은 노인을 보고 초평은 포권을 취했다.

“어려운 걸음을 하셨습니다.”

“허허허. 다 늙어 흙으로 돌아가야 될 몸을 문주가 놔두질 않는구먼.”

초평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두 노인 사이에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등에 양쪽으로 교차되게 매져 있는 단창과 활동하기 편하게 입은 용이 그려져 있는 갈색 무복이 너무나 어울렸다.

그린 듯한 눈썹에 입가에 머물러져 있는 잔잔한 미소는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눈웃음을 지으며

여인이 입을 열었다.

“초아저씨. 오랜만에 뵙네요.”

“헌원소저. 오랜만에 뵙겠소.”

여인은 고개를 돌려보며 물었다.

“어? 백오라버니는 안나오셨나요?”

투정부리듯 하는 말투에 초평은 미소 지었다.

“공식적인 자리라 성주님이 저를 내보내셔서 자리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요즘은 한창 무공 수련에 열중이십니다.”

“어머! 정말요?”

초평은 기뻐하는 여인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초평은 천운쌍로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일단 짐을 푸시고 오늘은 쉬시지요.”

“그게 좋을 듯 하군.”

“그러게. 오는 길에 먼지를 하도 많이 먹었더니 목이 칼칼하구먼.”

천운쌍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말을 몰았다. 초평은 도열해 있는 창명백검수의 일대장인 거열을 불렀다.

“이분들을 별궁으로 안내해 드리게.”

거열은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전음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 별궁에는 유가장의 식구들이……)

(허허. 이런 별궁이 어디 하나뿐인가? 유가장의 식구들이 머무는 동궁(東宮)말고 서궁(西宮)으로 안내해

드리게.)

(예!)

거열은 깊이 고개를 숙여 보이며 앞장섰다. 천운쌍로는 초평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곧장 거열의 뒤를 따라갔다.

삼백여기의 기마가 별궁 쪽으로 움직이고 그 뒤를 창명백검수가 따라 갔다. 초평은 그들이 가는 곳을 바라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설마하니 천운쌍로가 올 줄이야.”

백연혜는 차를 마시며 봉황비를 쓰다듬다가 시녀가 내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소공녀님.”

“무슨 일이냐?”

“손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손님?”

백연혜는 자신을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오시라고 해라.”

“예.”

시녀는 종종걸음으로 문 앞에서 물러났다. 백연혜는 봉황비를 다시 머리에 꽂고서는 방문을 바라보았다. 시녀의 뒤로

한명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문이 열리고 방안으로 들어오는 여인을 본 백연혜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헌원언니! 언제 오셨어요?”

“호호호. 그래도 이곳에 오면 제일 반겨 주는 건 너뿐이구나.”

두 자루의 단창을 양쪽으로 교차해서 매고 있는 여인의 입가에도 미소가 그려졌다. 시녀는 소리 없이 문을 닫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백연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여인을 바라보았다.

“언니. 예전보다 더 강해지신 것 같은데요?”

여인은 등 뒤에 매고 있는 단창을 어루만지며 웃음 지었다.

“호호. 승천단창이라는 거창한 호칭에 어울리려면 별수 있겠니? 게다가 내가 삼봉에 든 건 다 내가 가진 이 무공

때문이잖아.”

“호호호. 누가 들으면 싸움만 할 줄 아는 우락부락한 여인인줄 알겠어요.”

백연혜의 말에 여인은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 만약 그렇다면 이 헌원옥의 쌍창 앞에 무릎을 꿇려주지!”

백연혜는 헌원옥의 너스레에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권했다.

“앉으세요.”

“그래.”

헌원옥은 백연혜의 맞은편에 앉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혼자 차 마시고 있던 거 아냐?”

“예? 맞아요.”

백연혜는 웃음을 지으며 헌원옥 앞에 놓여 있던 찻잔에 차를 따랐다. 헌원옥은 의아한 듯 자신이 앉은 자리에 놓여

있던 찻잔을 보며 물었다.

“그럼 이 찻잔은 뭐야? 혼자 마시는데 왜 잔은 두 개지?”

헌원옥의 질문에 백연혜는 그저 미소로 답했다.

“언니가 오실 줄 알고 준비했어요.”

헌원옥은 백연혜의 대답에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아냐. 뭔가 있는데?”

“뭐가요?”

백연혜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헌원옥을 바라보았다. 헌원옥은 백연혜의 머리에 꽂혀져

있는 봉황비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이건 또 뭐야? 못 보던 비녀를 꽂고 있네?”

“아! 이거요?”

헌원옥은 자신의 직감을 믿으며 탁자에 양손을 짚으며 고개를 내밀었다.

“잔이 두 개인 것도 그렇고 그런 장신구를 별로 하지도 않던 애가 갑자기 혼자 있으면서 그런 것을 하고 있다는

건……”

“어머! 무슨 생각하시는 거예요?”

헌원옥은 등에 매고 있는 단창을 움켜쥐며 으스스한 목소리로 협박했다.

“좋아. 좋은 말로 할 때 대답해. 아니면 오늘 하루 종일 백동생의 무공을 실험해 볼 수도 있어.”

헌원옥의 협박에 백연혜는 난처한 듯 고민을 하다가 양손을 들어 올렸다.

“제가 졌어요.”

“호호. 진작 그럴 것이지.”

헌원옥은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대며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백연혜는 봉황비를 만지며 애틋한 표정을

지었다.

“한 남자가 선물 해 준거에요.”

“푸흡!”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려던 차를 뿜어내며 헌원옥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백연혜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헌원옥이

뿜어낸 차를 수건으로 닦아냈다. 헌원옥은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었다.

“너…그…그게 무슨 말이야? 남…남자라니!”

백연혜는 다소곳이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남자에게 선물 받았어요.”

“무슨 말이야! 감히 어떤 놈이 우리 순진한 백동생을 꼬드겼어? 어떤 놈이야!”

버럭 화를 내며 안절부절 못하는 헌원옥을 보며 백연혜는 입을 가리며 웃었다.

“호호호. 헌원언니도 참.”

“야! 이게 웃어넘길 일이야? 아니 이러고 있을게 아니지. 여운! 여운은 어딨어?”

백연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여운은 갑자기 왜 찾으세요?”

“이놈이 얼마나 너를 못 챙겼으면 남자가 생기도록 놔둬!”

백연혜는 헌원옥의 말에 입을 가리고 웃었다.

“제가 남자가 생기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뭐?”

헌원옥은 백연혜의 말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헛기침을 삼켰다.

“흠흠!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나한테 말도 안하고 남자를 만나다니. 백동생. 혼이 좀 나야겠는데?”

으스스한 기운을 내뿜는 헌원옥을 보며 백연혜는 천천히 찻잔을 들어올렸다. 가볍게 한 모금 마시고는 미소 지었다.

헌원옥도 제풀에 꺾여 다시 자리에 앉으며 찻잔을 들어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오라버니를 뵈러 왔죠?”

“푸흡!”

미처 삼키지 못한 차를 뿜어내며 헌원옥의 얼굴에 낭패한 표정이 깃들었다. 백연혜는 이번에도 조용히 뿜어낸 차를

닦으며 헌원옥을 바라보았다. 헌원옥은 목까지 붉게 물들이며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흠흠. 이거 어떻게 된 게 가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리 덥지?”

“오라버니는 지금 거의 연무장에서 살아요.”

“그래? 어느 연무장?”

다급하게 묻는 헌원옥을 보며 백연혜는 말없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헌원옥은 말없는 백연혜를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백연혜는 웃음을 머금고 헌원옥의 찻잔에 다시 차를 따라 주었다.

“오늘은 저랑 차나 한잔해요.”

“그래. 오늘은 그 너에게 생긴 남자에 대해서나 들어보자.”

“정말 들어 주실 건가요?”

헌원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감히 어떤 놈이 겁도 없이 창천궁의 금지옥엽이자 이 헌원옥의 하나뿐인 백동생의 마음을 흔들어 놨는지

알아야겠어.”

백연혜는 헌원옥의 말에 미소를 머금은 채 찻잔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석양을 바라보며 백연혜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입술을 매만졌다.

헌원옥은 차를 마시다가 백연혜의 행동에 흠칫 놀라며 입에 머금고 있던 차를 마셨다. 헌원옥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너…너… 설마?”

“예?”

백연혜는 헌원옥의 더듬거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았다. 헌원옥은 입술을 매만지고 있던 백연혜의 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너 설마 벌써 그놈과!”

백연혜도 헌원옥의 흥분한 목소리와 손짓에 자신의 실수를 눈치 채고는 흠칫 놀랐다. 헌원옥은 백연혜의 행동에

확신을 갖고 소리쳤다.

“너! 정말이구나!”

헌원옥이 당장에라도 단창을 뽑아들려고 하자 백연혜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언니. 참으세요. 어차피 궁내에 있지도 않아요.”

“뭐야? 아니 그럼 이놈이 백동생의 마음을 휘저어 놓고 옆에 있지도 않다고?”

점점 더 흥분하는 헌원옥을 보며 백연혜는 한숨을 내쉬고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헌원옥은 한참을 더

흥분하다가 털썩 자리에 주저앉으며 물었다.

“휴~ 그래 백오라버니는 그놈에 대해 아시니?”

백연혜는 말없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헌원옥은 이제 화를 낼 힘도 없는지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하. 이젠 화를 낼 힘도 없다.”

헌원옥은 차를 들어 한 모금 마셔 갈증을 해소하며 중얼거렸다.

“여운도 그렇고. 백오라버니도 그렇고 네가 그놈한테 입술을 도둑맞을 동안 알면서도 못 말렸다 이거지.”

“언니. 꼭 그런 건 아니고요.”

“흥! 웃기지마.”

헌원옥의 눈에서 광채가 난다는 생각이 얼핏 든 백연혜는 부연 설명을 했다.

“오라버니도 여운도 그건 몰라요.”

“흥! 모르는 건 더 큰 잘못이야!”

헌원옥은 눈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단창을 어루만졌다.

“특히 여운! 그동안 얼마나 성과가 있었기에 자신이 할 일을 망각했는지 확실히 물어주지.”

“어…언니.”

백연혜는 당황하며 헌원옥을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백연혜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승천단창 헌원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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