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오문-99화 (99/194)

(99)

섬서성 흥안주(興安州). 진령산(秦嶺山)과 대파산(大巴山)의 사이에 있는 분지의 동부에 자리한 주로 비옥한

땅으로 둘러싸여 있는 주였다.

유세운은 천천히 말을 몰아 흥안주로 들어섰다. 비옥한 토지여서 인지 사람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어보였다.

유세운은 그의 양옆에 걸어오고 있는 관백과 동무벽을 바라보고서는 품에 손을 넣어 황금 백 냥짜리 전표를 꺼내

들었다. 유세운은 관백에게 전표를 주며 말했다.

“이걸로 옷을 좋은 걸로 사서 입고 와요. 저기 보이는 주루에서 기다리죠.”

관백은 황금 백 냥짜리 전표를 받아들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저희가 목표는 제대로 정했었군요.”

“크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실패하지만 않았어도 한평생 떵떵거리며 살수 있을 뻔 했어.”

동무벽도 관백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한평생 떵떵거릴 수 있을 뻔 했죠.”

관백과 동무벽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대륙전장으로 향했다. 유세운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주루로 말을

몰아갔다. 이층으로 된 주루의 앞에 서 있던 점소이 하나가 다가와 말고삐를 받아들었다. 유세운은 말에서 내리며

웃음 지었다.

“자리가 있나?”

“예. 물론입죠. 혼자십니까?”

“아니 일행이 있네. 세 명 정도 되는군.”

“이층으로 오르시지요.”

점소이는 유세운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말을 메어 놓으러 갔다. 유세운은 주루의 주렴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루에는 편한 차림으로 서로들 술을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유세운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이고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어서 오십시오.”

젊은 점소이 하나가 달려와 고개를 숙여 보였다. 유세운은 고개를 돌려 돌아보다가 창가의 자리가 빈 것을 보고

물었다.

“창가의 자리가 있나?”

“예. 물론입니다. 이리 오시지요.”

점소이는 허리띠에 매고 있던 수건을 꺼내 탁자를 닦으며 물었다.

“몇 분이나 되십니까?”

“조금 있다 두 명이 더 올 테니 죽엽청 세 병과 안주거리를 좀 내오게.”

“안주거리라 하오시면……”

유세운은 잠시 고민하더니 은자 다섯 냥을 꺼내 건네주며 말했다.

“그거에 맞춰서 고급 요리로 내오게.”

“예.”

점소이는 입이 귀에 걸릴 듯 미소 지으며 일층 주방으로 뛰어 내려갔다. 유세운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밖으로는 특이한 복장을 한 무리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전신을 핏빛의 복장을 하고 등에는 커다란

혈겸(血鎌)을 하나씩 매고 있었다. 그들은 곧장 주루 안으로 향했다.

유세운은 고개를 돌려 이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여섯 명으로 된 혈겸의 사내들은 주루의 이층에

올라와 주변을 돌아보았다. 날카로운 눈매에 불거져 나온 태양혈을 보자니 꽤나 고된 수련을 한 자 같아 보였다.

중앙에 서 있던 자는 계단 옆의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가 앉자 나머지 인원도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신기한 취미군. 저런 옷을 입고 다니다니… 그것도 여섯 명 씩이나……”

유세운의 중얼거림은 주변의 적막함에 묻혔다. 유세운은 주변 모든 사람들이 혈겸의 사내들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고 젓가락질만 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이 분위기는……”

“이봐.”

혈겸의 사내 중 우두머리인 듯한 자가 점소이를 부르는 소리만이 주루의 이층을 휘저었다. 유세운은 가볍게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서려다가 이층으로 올라오는 천풍쌍기를 보고 웃음 지었다.

“여기요!”

“아직 늦지 않았군요.”

“크하하. 이거 얼마나 서둘렀는지 땀이 다 나려고 하는구만.”

동무벽은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유세운의 옆자리에 앉았다. 관백도 웃음을 지으며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동무벽은 그 거구에 맞는 청삼을 어떻게 구했는지 우락부락한 느낌보다는 듬직한 느낌이 들게 옷을 입었다. 관백은

황삼에 이마에는 영웅건을 하나 두르고 있었다. 빼어난 외모는 황삼과 어우러져 더욱 눈이 부셨다. 유세운은 밝게

웃음 지었다.

“하하하. 이거 두 호법 다 젊었을 때 여자 여럿 울렸겠는데요?”

유세운의 말에 관백과 동무벽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역시 문주의 눈은 피할 수 없군. 나보다는 관가에게 넘어간 여자들이 훨씬 많았었소.”

“무슨 소린가? 하지만 알짜배기는 모두 자네 차지였지 않나.”

관백의 투정어린 목소리에 동무벽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크하하하. 그렇지. 하지만 우리는 어차피 바람. 한 여자에게 머물지 못 하는게 문제지.”

“하하하. 이거 두 호법이랑 다니다가 나쁜 물드는 건 아닌가 모르겠군요.”

“하하하.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관백의 말에 유세운은 웃음 지었다. 점소이가 죽엽청 세 병을 들고 올라오는 모습이 보이자 동무벽이 물었다.

“문주가 시킨 거요?”

“내가 시킨 거요.”

점소이가 죽엽청을 들고 오려는데 혈겸의 사내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리로 가져와라.”

점소이는 혈겸의 사내가 한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유세운을 한번 바라보고는 그들의 탁자로

다가갔다. 동무벽의 송충이 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유세운도 안색이 찌푸려졌다. 동무벽이 점소이에게 물었다.

“그거 우리한테 가져오던 게 맞나?”

“예. 하지만……”

“그럼 이리 가져 오거라.”

“크크크크. 이거 또 별거 아닌 거에 목숨을 거는 놈들인가 보군.”

괴소를 흘리는 혈겸의 사내를 바라보며 관백의 미안이 살며시 찌푸려졌다.

“혈의에 혈겸이라면 혈겸천사대(血鎌千邪隊)인가?”

“크크크. 그래도 눈은 제대로 박혀 있는 놈들이군. 알았으면 조용히 처박혀 있어라.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혈겸의 사내 중 가운데 앉아 있는 자가 웃으며 죽엽청 한 병을 병째 들이마셨다. 관백과 동무벽이 눈길로

유세운에게 물었다.

유세운의 입가에 가는 미소가 어렸다.

“재밌군. 감히 내 앞에서 저 따위 배짱 좋은 짓을 하는 놈이 있다니 말야.”

유세운은 관백과 동무벽의 눈길에 답했다.

“아직 미처 말을 못해줬었는데 누구 앞에서도 굽히지 않소. 세상을 오시하는 문파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시오.”

“크하하하. 정말 마음에 드는군.”

“잘 알겠습니다.”

유세운의 말에 동무벽의 두 눈에선 살기가 진득하게 묻어 나왔다. 관백은 고개를 돌려 혈겸천사대의 인물들을

바라보았다. 유세운은 천천히 하고 싶은 말을 이었다.

“아무리 악인이라 해도 개과의 길은 열어주도록 해요. 한번이라도……”

“그러지요. 이봐!”

동무벽의 말에 혈겸의 사내 들 중 괴소를 흘리던 자가 인상을 확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무벽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오늘은 경사스런 날이다. 조용히 사라지면 목숨은 살려주마.”

동무벽은 자리에서 일어난 자의 인상이 점점 더 구겨지는 것을 보며 나직이 뒷말을 이었다.

“꺼져라.”

자리에서 일어난 자는 자신의 혈겸의 날을 가볍게 손으로 어루만지며 괴소를 흘렸다.

“크크크. 이거 죽고 싶어 안달인 놈이었군. 이곳이 우리 혈천문(血天門)의 세력권 코 옆이라는 것을 모르나?”

동무벽은 코웃음을 쳤다.

“흥! 그거야 나도 알지. 하지만 섬서성은 청의문의 세력권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얘기지. 그건 그렇고 아직도

안 꺼졌나?”

“이거 도저히 말이 안 먹히는 녀석들이군. 막내야 처리해라.”

“예.”

혈겸의 사내들 중 이제 막 스물을 넘긴 듯한 자가 일어나 동무벽을 마주 바라보며 섰다. 동무벽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분명히 말해두마. 그 혈겸이 뽑히는 순간 네 오른 팔을 두고 가야 할거다.”

“크크크. 이거 살다보니 별 녀석을 다 보겠군.”

괴소를 흘리는 사내의 목소리에 스물을 넘긴 듯한 자는 주저 없이 몸을 날리며 혈겸을 뽑아 들었다. 동무벽은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넌 지금 실수한거야.”

말을 마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허리춤의 도를 잡은 동무벽은 코앞까지 다가온 혈겸을 흘려내며 도를 내리그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도에 막내라는 자의 오른쪽 어깨가 떨어져 나갔다.

푸학!

핏물이 치솟으며 경악한 사내는 혈겸을 떨어트리며 뒤로 물러났다.

“크윽!”

움켜쥔 오른쪽 어깨에는 핏물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로 혈을 짚는 막내라는 자의 옆에 다섯

명의 혈겸의 사내들이 가로 막고 섰다.

“괜찮으냐?”

“크윽! 예.”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는 막내라는 자의 얼굴을 보던 괴소를 흘리던 자가 혈겸을 꺼내들며 물었다.

“실력을 보아하니 무명소졸(無名小卒)은 아니구나. 이름이 무엇이냐?”

동무벽은 그의 물음에 코웃음을 쳤다.

“나? 하하하. 내 이름을 알 자격도 없는 것들이 감히! 그놈이나 데리고 꺼져라.”

“갈! 죽어랏!”

다섯이 일제히 달려들며 혈겸을 휘둘렀다. 거대한 혈겸이 붉은 빛을 뿌리며 다섯 방위를 점하며 다가오자 동무벽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멍청한 놈들!”

동무벽의 도가 다섯 번을 허공을 가르고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다시 한번 다섯 번을 베었다.

서걱.

푸학!

“크아악!”

핏물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고 다섯은 모두 어깨를 움켜쥐며 뒤로 정신없이 물러났다. 동무벽은 도를 들어 그들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너희 혈검천사대주가 와도 내 이름을 물을 자격이 없다. 그만 꺼져라.”

“크윽! 두고 보자!”

혈겸의 사내들은 자신들의 혈겸을 주어 들고는 주루의 이층에서 사라졌다. 어느새 주루의 이층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동무벽은 천천히 걸어가 혈겸천사대의 인물들이 가져간 죽엽청 세병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유세운은 죽엽청을 받아 병 째 들이키다가 코를 찡그렸다. 혈향(血香)이 주루를 온통 휘졌고 있었다.

“다른 주루로 갑시다.”

동무벽은 고슴도치처럼 뻗어있는 자신의 수염을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고 관백도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예.”

자리에서 일어난 일행은 사색이 된 주인에게 은자 열 냥을 던져주고는 가까운 주루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벌써 소문이 났는지 점소이의 안색은 사색이 되어 주문을 받았다. 별탈없이 주문을 받은 점소이는 빠르게 주방으로

달려갔다. 유세운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일단 우리 문은 광오문이라고 해요.”

“이름이 아주 맘에 드는군.”

동무벽의 말에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하하. 이런 호법들이라니 사부님도 좋아하시겠군.”

“아! 문주님의 사부님은 누구십니까?”

“사부님요? 은태정이라고……”

유세운은 경악하는 관백과 동무벽으로 인해 미처 말을 맺지 못했다.

“설마 무광 은노선배님을 말하는 거요?”

“은노선배님이십니까?”

“그래요.”

유세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관백과 동무벽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분이라면 충분히……”

“어쩐지……”

관백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유세운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디를 가시던 중이셨습니까?”

“아! 철마성에서 나에게 현상금을 걸어서 담판을 지으러 가는 길이었죠.”

유세운의 말에 관백과 동무벽의 안색이 변했다.

“진심이십니까? 철마성이 어떤 곳인지는 아시는 겁니까?”

“뭐 대충은 알고 있죠.”

관백은 부채로 자신의 손을 두들기며 난처해했다.

“하하 이것 참…… 그들의 흑마천살대는 그렇다고 쳐도 철탑백마인과 홍마철시대와 황마철웅대등 외성의 고수만 수를

헤아리기 어렵고 내성의 고수는 또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유세운은 관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다 나한테 와해된 곳이군요.”

“엥? 지금 뭐라고 했소?”

동무벽이 놀라 묻자 유세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모두 나한테 와해된 곳이오. 홍마철시대야 도망을 갔지만… 내성의 고수라면 흑마육령과 철마십영도 나한테

패했소.”

유세운의 말에 동무벽과 관백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반신반의(半信半疑) 했다. 관백이 설마 하는 마음에 다시

물었다.

“정말이십니까?”

“하하하. 내가 관호법과 동호법에게 거짓말 할 필요가 있나요?”

동무벽은 손가락으로 꼽아보며 중얼거렸다.

“헐. 이거 철마성의 전력이 거의 오할 가까이 무너졌군.”

관백도 부채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웃음을 지었다.

“강호에 파란이 일고 있겠군요.”

유세운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관백은 유세운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문주님. 하지만 아직 내성의 남은 고수나 철마성의 태상성주와 성주는 위험합니다.”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거요. 하지만 결코 물러설 수는 없소.”

추호도 주저함이 없는 유세운의 대답에 관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같이 하겠습니다.”

“크하하하. 문주는 아무 걱정도 마쇼. 우리가 있지 않소.”

유세운은 그들의 말에 웃음을 지어 보였다. 관백은 유세운을 향해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철마성으로 곧장 가실 겁니까?”

“물론이요.”

유세운의 대답에 관백은 부채로 턱을 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장강을 건너야 하겠군요.”

“응? 무슨 소리요. 장강을 건너왔는데?”

유세운의 말에 동무벽이 의아한 듯 물었다.

“어디서 출발했는데 장강을 건넜소?”

“창천궁에서 출발했죠.”

유세운의 말에 관백과 동무벽은 당황했다.

“예?”

“창천궁은 무산에 있는데?”

관백과 동무벽의 말에 유세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장강을 따라 가다가 암습을 당해서 그들을 해치우고 장강을 건넜소. 그리고 남서 방향으로 계속 말을 몰아

온 거요.”

관백은 유세운의 말에 실소를 터트렸다.

“훗. 문주님. 이곳은 장강 이북의 섬서성입니다. 장강을 반대로 건너셨군요.”

동무벽도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문주 혹시 방향치요?”

유세운은 둘의 반응에 인상을 확 구겼다.

“엥? 또야?”

유세운의 반응에 관배과 동무벽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기가 막힌 우연이군. 용케도 우리를 만났어.”

“그러게 말일세.”

승천단창(昇天短槍) 헌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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